커버스토리/11월 5일, '바둑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
제1회 바둑의 날 기념식
11월 5일, ‘바둑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에게 대국수 헌정
- 김인 조훈현 조치훈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 등 6명 국수 추대
바둑인이 염원하던 제1회 바둑의 날 기념식이 1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회 기우회장 오제세 의원, 전 국회 기우회장 원유철 의원, 바둑 진흥법을 발의한 조훈현 의원,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김용삼 국민체육진흥공단 전무이사와 프로기사, 바둑 관계자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바둑의 날로 제정된 11월 5일은 고(故) 조남철 선생이 광복되던 해인 1945년 서울 남산동에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세운 날이다. 남산동에 둥지를 튼 한성기원은 이후 적선동 통의동 관훈동 사동궁 원남동 명동 낙원동 관철동 홍익동 등 18번의 이사와 4차례(한성기원→조선기원→대한기원→한국기원) 명칭 변경 끝에 지금의 한국기원에 이르고 있다. 한국기원이 사단법인(1955. 9)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뀐 것은 1970년 3월 25일이다.
이날 기념식은 바둑의 날 기념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과 문희상 국회의장 축사 등 각계 축하 메시지 전달, 대국수 헌정 및 한국바둑을 빛낸 국수 6인에 대한 국수 추대와 함께 메달 수여 순으로 진행됐다.
‘제1회 바둑의 날’을 축하합니다.
1년 전, ‘2017 대한민국 바둑대축제’를 통해 인사드렸습니다. 그 사이 ‘바둑진흥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오늘 첫 법정기념일을 맞았습니다. 바둑을 아끼고 발전시켜온 전국의 바둑인, 바둑기사 여러분이 있기에 오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바둑 용어와 바둑기사들의 이름이 일상으로 스며들 만큼, 우리 바둑은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어르신들의 어깨 너머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듯 강한 바둑의 매력에 이끌려 성인이 되어서는 월간『바둑』을 정기구독하며, 거기에 실린 기보를 복기하는 것으로 연습을 했습니다.
바둑돌을 놓으며, 인생의 교훈을 얻고 세상의 이치를 배웠습니다. 인공지능이 학습을 통해 인간의 바둑을 이길 수는 있어도 바둑에 담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전히 바둑이 사랑받는 이유이자,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작년에 영상으로 인사드리며, ‘바둑기사들이 혼신의 승부를 다하듯 바둑 진흥을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정부의 바둑 지원 예산도 20% 이상 늘렸습니다. 바둑을 보급하고, 인프라를 확대하는데 자양분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수천 년의 역사와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가진 우리 바둑이 더 널리 사랑받을 수 있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제1회 바둑의 날’을 축하드리며, 함께하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1월 5일
대통령 문 재 인
특히 1989년 그가 이룩한 제1회 응씨배 우승은 한국바둑사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록 중 하나다. 바둑 변방국 취급을 받던 한국바둑의 위상을 단숨에 불식시키며 세계최강국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이 됐다. 불혹(40세)이 지난 뒤에도 꾸준히 승수를 쌓으며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비롯해 국내외 기전에서 통산 160회 우승을 기록했다. 프로기사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바둑진흥법 발의와 바둑의 날 제정에 힘썼다.
여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스무 살에 명인을 제패하며 국위를 선양한 조치훈도 국수로 추대되는 영광을 안았다.
1980년 명인 제패 후 바둑기사로는 최초로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조치훈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한국 국적으로 줄곧 기사생활을 하며 1987년 천원전 우승으로 일본 7대 기전을 모두 한 번 이상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데 이어 일본의 3대 타이틀인 기성·명인·본인방을 동시 보유한 ‘대삼관’을 무려 4차례 달성한 바둑의 전설이다.
2017년 일본기원 소속 기사로는 최초로 1500승을 돌파한 조치훈은 세계대회에서는 91년 제4회 후지쓰배 우승과 2003년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제8회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74회 우승을 기록했다.
일본 유학파들이 한국바둑을 좌지우지했던 1970, 80년대에 토종바둑으로 일가를 이룬 서봉수도 국수의 영예를 안았다. 1972년 열아홉의 나이로 조남철에게서 명인을 쟁취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서봉수는 1970, 80년대 독주체제를 구축했던 조훈현의 유일한 대항마였으며 통산 30회 우승을 이끈 ‘근성의 대명사’였다.
조훈현에 이어 1993년엔 ‘한국류’로 제2회 응씨배 우승(대 오타케 히데오)을 이끈 데 이어 1997년 한중일 3국 단체대항전이었던 제5회 진로배에서 9연승의 신화를 쓰며 우승을 이끌어 전세계 바둑인의 뇌리에 서봉수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바둑국보’ 이창호도 국수로 추대됐다. 90년대 중반 15년에 걸친 스승 조훈현과의 사제전쟁에서 승리하며 1인자로 올라선 이창호는 통산 140회(비공식 2회 포함) 우승을 기록하는 동안 최연소 타이틀 획득(14세 1개월, KBS바둑왕전), 최연소 세계챔피언 등극(16세 6개월, 동양증권배),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달성(동양증권배·LG배·삼성화재배·후지쓰배·응씨배·춘란배·도요타덴소배) 등 대기록을 남겼다.
한국바둑사에 수많은 기록과 족적을 남긴 이창호는 1996년 은관문화훈장, 1999년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얼굴’, 2001년 ‘한국의 얼굴 5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한국바둑의 미래를 위한 비전도 선포됐다. 비전 4가지는 ①세계로 향해 나가는 바둑 ②미래의 창의적 인재 육성 ③전 국민이 즐기는 생활스포츠 ④글로벌 문화산업 육성 등이다.
‘바둑진흥법’ 제7조에 따라 바둑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처음 시행된 제1회 바둑의 날 기념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공단이 공동 후원했으며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바둑진흥법’ 시행령 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바둑의 날’에 바둑경기 및 바둑 관련 학술행사 등을 하거나 그런 행사 등을 하는 바둑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는 근거를 마련했으며 10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한국바둑을 빛낸 국수7인. 왼쪽부터 대국수에 헌정된 고 조남철 선생(대리수상한 아들 조송연), 국수로 추대된 김인 조훈현 조치훈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개인사정으로 불참). 시상은 문주현 한국기원 이사(왼쪽에서 네 번째)가 했다.
11월 5일, ‘바둑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에게 대국수 헌정
- 김인 조훈현 조치훈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 등 6명 국수 추대
바둑인이 염원하던 제1회 바둑의 날 기념식이 1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회 기우회장 오제세 의원, 전 국회 기우회장 원유철 의원, 바둑 진흥법을 발의한 조훈현 의원,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김용삼 국민체육진흥공단 전무이사와 프로기사, 바둑 관계자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바둑의 날로 제정된 11월 5일은 고(故) 조남철 선생이 광복되던 해인 1945년 서울 남산동에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세운 날이다. 남산동에 둥지를 튼 한성기원은 이후 적선동 통의동 관훈동 사동궁 원남동 명동 낙원동 관철동 홍익동 등 18번의 이사와 4차례(한성기원→조선기원→대한기원→한국기원) 명칭 변경 끝에 지금의 한국기원에 이르고 있다. 한국기원이 사단법인(1955. 9)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뀐 것은 1970년 3월 25일이다.
이날 기념식은 바둑의 날 기념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과 문희상 국회의장 축사 등 각계 축하 메시지 전달, 대국수 헌정 및 한국바둑을 빛낸 국수 6인에 대한 국수 추대와 함께 메달 수여 순으로 진행됐다.
‘제1회 바둑의 날’을 축하합니다.
1년 전, ‘2017 대한민국 바둑대축제’를 통해 인사드렸습니다. 그 사이 ‘바둑진흥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오늘 첫 법정기념일을 맞았습니다. 바둑을 아끼고 발전시켜온 전국의 바둑인, 바둑기사 여러분이 있기에 오늘의 기쁨이 있습니다.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바둑 용어와 바둑기사들의 이름이 일상으로 스며들 만큼, 우리 바둑은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어르신들의 어깨 너머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듯 강한 바둑의 매력에 이끌려 성인이 되어서는 월간『바둑』을 정기구독하며, 거기에 실린 기보를 복기하는 것으로 연습을 했습니다.
바둑돌을 놓으며, 인생의 교훈을 얻고 세상의 이치를 배웠습니다. 인공지능이 학습을 통해 인간의 바둑을 이길 수는 있어도 바둑에 담긴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전히 바둑이 사랑받는 이유이자,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작년에 영상으로 인사드리며, ‘바둑기사들이 혼신의 승부를 다하듯 바둑 진흥을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정부의 바둑 지원 예산도 20% 이상 늘렸습니다. 바둑을 보급하고, 인프라를 확대하는데 자양분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수천 년의 역사와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가진 우리 바둑이 더 널리 사랑받을 수 있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제1회 바둑의 날’을 축하드리며, 함께하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1월 5일
대통령 문 재 인
대국수 헌정 메달은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국수에게 수여됐다.
조남철 선생은 1945년 서울 남산동에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하여 이 땅에 현대바둑의 씨앗을 뿌린 뒤 기도보국(棋道報國: 바둑으로 나라에 기여한다)으로 평생을 바쳤다. 바둑보급을 위해 펴낸 『위기개론』, 『바둑첫걸음』, 『행마의 기초』, 『행마의 급소』 등은 출판시장이 열악하던 당시 바둑팬들의 필독서로 불릴 만큼 사랑을 독차지했다.
실력 또한 출중했다. 1956년 출범한 국수전(당시 국수제1위전)에서 1~9기 우승을 비롯해 50~60년대 무적시대를 구가하며 한국바둑의 초석을 다졌다. 국내대회에서만 통산 26회 우승을 기록했다.
고 조남철 선생을 대신해 수상한 아들 조송연 씨는 “선친께서 이 땅에 바둑을 일으키셨다면, 후배 여러분과 바둑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한국바둑을 세계에 알렸다.”며 “계속 우리나라 바둑이 끊임없이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국수 헌정에 이어 70여 년 한국 현대바둑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6명에 대한 국수 추대와 메달도 수여됐다. 한국바둑을 빛낸 국수 6인은 김인·조훈현·조치훈·서봉수·이창호·이세돌 九단이 영예를 안았다.
조남철 선생에 이어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간 한국바둑 1인자로 군림한 김인 九단이 국수로 추대됐다.
1963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인은 3년 뒤인 1966년 제10기 국수전에서 조남철 국수의 10기 연속 제패를 저지하며 ‘김인 시대’를 알렸다. 이후 국수전에서 조남철과의 3번에 걸친 리턴매치를 모두 승리한 김인은 6연패를 달성했고, 왕위전에서도 조남철을 꺾고 초대 왕관을 차지한 뒤 7기 연속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특히 기전 수가 많지 않았던 61년 그는 20승2패로 승률 90%(90.9%)를 넘기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국내대회에서만 통산 30회 우승을 기록했다.
‘바둑황제’ 조훈현 九단도 국수로 추대됐다. 세계 최연소인 9세 입단으로 일찍부터 바둑계의 주목을 받았던 조훈현은 도일(渡日) 유학 후 고국으로 돌아와 1974년 제14기 최고위전 우승을 시작으로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1인자였던 김인과의 번기 대결에서 승리한 조훈현은 일본 유학 선배인 하찬석 윤기현을 넘어섰고, 동갑내기였던 서봉수에게마저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80년대 세 차례(1980년 9관왕, 1982년 10관왕, 1986년 11관왕)에 걸쳐 국내기전 전광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조남철 선생에 이어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간 한국바둑 1인자로 군림한 김인 九단이 국수로 추대됐다.
1963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인은 3년 뒤인 1966년 제10기 국수전에서 조남철 국수의 10기 연속 제패를 저지하며 ‘김인 시대’를 알렸다. 이후 국수전에서 조남철과의 3번에 걸친 리턴매치를 모두 승리한 김인은 6연패를 달성했고, 왕위전에서도 조남철을 꺾고 초대 왕관을 차지한 뒤 7기 연속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특히 기전 수가 많지 않았던 61년 그는 20승2패로 승률 90%(90.9%)를 넘기는 경이적인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국내대회에서만 통산 30회 우승을 기록했다.
‘바둑황제’ 조훈현 九단도 국수로 추대됐다. 세계 최연소인 9세 입단으로 일찍부터 바둑계의 주목을 받았던 조훈현은 도일(渡日) 유학 후 고국으로 돌아와 1974년 제14기 최고위전 우승을 시작으로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1인자였던 김인과의 번기 대결에서 승리한 조훈현은 일본 유학 선배인 하찬석 윤기현을 넘어섰고, 동갑내기였던 서봉수에게마저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80년대 세 차례(1980년 9관왕, 1982년 10관왕, 1986년 11관왕)에 걸쳐 국내기전 전광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1989년 그가 이룩한 제1회 응씨배 우승은 한국바둑사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록 중 하나다. 바둑 변방국 취급을 받던 한국바둑의 위상을 단숨에 불식시키며 세계최강국으로 도약시키는 발판이 됐다. 불혹(40세)이 지난 뒤에도 꾸준히 승수를 쌓으며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비롯해 국내외 기전에서 통산 160회 우승을 기록했다. 프로기사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바둑진흥법 발의와 바둑의 날 제정에 힘썼다.
여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스무 살에 명인을 제패하며 국위를 선양한 조치훈도 국수로 추대되는 영광을 안았다.
1980년 명인 제패 후 바둑기사로는 최초로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조치훈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한국 국적으로 줄곧 기사생활을 하며 1987년 천원전 우승으로 일본 7대 기전을 모두 한 번 이상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데 이어 일본의 3대 타이틀인 기성·명인·본인방을 동시 보유한 ‘대삼관’을 무려 4차례 달성한 바둑의 전설이다.
2017년 일본기원 소속 기사로는 최초로 1500승을 돌파한 조치훈은 세계대회에서는 91년 제4회 후지쓰배 우승과 2003년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제8회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통산 74회 우승을 기록했다.
일본 유학파들이 한국바둑을 좌지우지했던 1970, 80년대에 토종바둑으로 일가를 이룬 서봉수도 국수의 영예를 안았다. 1972년 열아홉의 나이로 조남철에게서 명인을 쟁취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서봉수는 1970, 80년대 독주체제를 구축했던 조훈현의 유일한 대항마였으며 통산 30회 우승을 이끈 ‘근성의 대명사’였다.
조훈현에 이어 1993년엔 ‘한국류’로 제2회 응씨배 우승(대 오타케 히데오)을 이끈 데 이어 1997년 한중일 3국 단체대항전이었던 제5회 진로배에서 9연승의 신화를 쓰며 우승을 이끌어 전세계 바둑인의 뇌리에 서봉수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바둑국보’ 이창호도 국수로 추대됐다. 90년대 중반 15년에 걸친 스승 조훈현과의 사제전쟁에서 승리하며 1인자로 올라선 이창호는 통산 140회(비공식 2회 포함) 우승을 기록하는 동안 최연소 타이틀 획득(14세 1개월, KBS바둑왕전), 최연소 세계챔피언 등극(16세 6개월, 동양증권배),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달성(동양증권배·LG배·삼성화재배·후지쓰배·응씨배·춘란배·도요타덴소배) 등 대기록을 남겼다.
한국바둑사에 수많은 기록과 족적을 남긴 이창호는 1996년 은관문화훈장, 1999년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얼굴’, 2001년 ‘한국의 얼굴 5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창호에 이어 한국바둑의 1인자 계보를 이은 이세돌도 국수로 추대됐다. 통산 50회 우승을 기록한 이세돌은 국내대회보다도 국제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2002년 후지쓰배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대회에서 맹위를 떨친 이세돌은 매년 우승을 추가하며 통산 17회 우승 기록을 남겼다.
2016년엔 인간대표로 발탁돼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4국에서는 투혼을 발휘하며 알파고에게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 승리는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승점이었다.
이번 국수 선정은 한국기원이 위촉한 국수선정위원회(위원장 송광수 부총재, 강명주 이사, 김기선 국회의원, 박치문 전 부총재, 신병식 전 SBS논설위원, 엄민용 경향신문 기자, 이홍렬 조선일보 기자, 정수현 명지대 교수, 정충희 KBS기자, 한상열 전 사무총장 등 10명, 가나다순)에서 했으며 선정기준은 전문기사 경력 20년 이상으로 바둑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했다.
이번 국수 선정은 한국기원이 위촉한 국수선정위원회(위원장 송광수 부총재, 강명주 이사, 김기선 국회의원, 박치문 전 부총재, 신병식 전 SBS논설위원, 엄민용 경향신문 기자, 이홍렬 조선일보 기자, 정수현 명지대 교수, 정충희 KBS기자, 한상열 전 사무총장 등 10명, 가나다순)에서 했으며 선정기준은 전문기사 경력 20년 이상으로 바둑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한국바둑의 미래를 위한 비전도 선포됐다. 비전 4가지는 ①세계로 향해 나가는 바둑 ②미래의 창의적 인재 육성 ③전 국민이 즐기는 생활스포츠 ④글로벌 문화산업 육성 등이다.
‘바둑진흥법’ 제7조에 따라 바둑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처음 시행된 제1회 바둑의 날 기념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공단이 공동 후원했으며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지난 3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바둑진흥법’ 시행령 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바둑의 날’에 바둑경기 및 바둑 관련 학술행사 등을 하거나 그런 행사 등을 하는 바둑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는 근거를 마련했으며 10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한국바둑을 빛낸 국수7인. 왼쪽부터 대국수에 헌정된 고 조남철 선생(대리수상한 아들 조송연), 국수로 추대된 김인 조훈현 조치훈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개인사정으로 불참). 시상은 문주현 한국기원 이사(왼쪽에서 네 번째)가 했다.
<글/구기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