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1/한국여자바둑 대모 조영숙 3단
한국여자바둑 대모 조영숙 三단(바둑의 날·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대접 받기보다 내가 먼저 섬겨야!”
1948년생, 1975년 입단. 올해로 44년차 프로기사인 조영숙 三단은 한국여자바둑계의 대모(大母)다. 바둑을 둘 줄 아는 여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시기부터 한국여자바둑의 아이콘으로 여성 바둑을 선도했던 조영숙 三단이 지난 11월 5일 ‘제1회 바둑의 날’ 행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 먼저 수상 소감을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광스럽고 감사하죠. 사실 제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사양해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첫 바둑의 날에 주는 상이라고 하니 내심 받고 싶기도 했습니다(웃음). 너무 기뻤고, 과거 작은 일들을 인정해주신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더욱 잘 하라는 뜻으로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 1975년 최초의 여자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가 되셨는데 현재는 여자프로기사가 64명입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벌써 그렇게 많아졌나요? 제가 입단하던 75년도에는 사실상 여자바둑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죠. 당시 조남철 선생님께서 바둑보급을 위해선 여자바둑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 확고하셨어요. 남녀 통합 입단대회에서 프로가 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보니 조 선생님께서 강력하게 여자입단대회를 추진하셨습니다.”
- 두 번째 여자입단대회는 15년이나 흐른 1990년에 열렸습니다. 공백기가 생각보다 길었는데요.
“첫 여자입단대회를 치러 보니 의외로 참가자 수(10명 남짓)가 너무 적었어요. 실력도 많이 약했고요. 그래도 그때 계속 이어졌더라면 조금 나았을 텐데 아쉽긴 하죠.”
- 바둑을 처음 배우신 게 1960년대의 일인데요. 그 당시에 어떻게 바둑을 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둑을 처음 시작하는 계기는 비슷비슷한가 봐요. 제가 지금은 얼굴에 주름도 많고 그렇지만 어렸을 때는 그래도 꽤 이쁘장했거든요(웃음). 생긴 거랑 다르게 어릴 땐 워낙 선머슴 같은 성격이어서 아버지께서 걱정이 되셨나봐요. 바둑을 배우면 좀 차분해질까 싶어 제게 바둑을 가르치셨죠.”
- 지금까지 44년간 프로기사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으실 것 같아요.
“제가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입단을 했습니다. 첫 째가 이창호 국수와 동갑이에요. 이창호 九단의 프로기사 공식 첫 대국의 상대가 바로 접니다(웃음). 그 이후에도 몇 판 더 뒀는데 지금이라면 어떻게 이창호 국수 같은 사람과 대국을 할 수 있겠어요? 아직까지도 추억으로 삼고 있어요.”
- 승부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왜 없겠어요?(웃음) 저도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열심히 공부해서 최고의 기사가 되는 걸 꿈꿨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아무래도 지금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했죠. 요즘 후배기사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아요.”
- 여자바둑은 비교적 호황이지만 더욱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과거에는 바둑이 최고의 취미 생활로 대접을 받았어요. 현재는 너무 재밌는 게 많아져서 바둑의 여건이 상당히 어려워졌죠. 예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사범님’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먼저 팬들에게 다가가야 됩니다. 요즘 젊은 여자기사들은 아주 잘 하고 있더라고요. 지금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바둑 팬들과 소통하면서 바둑보급을 계속 해주길 당부하고 싶어요. 대접 받기보다 내가 먼저 섬겨야 합니다.”
- 향후 바둑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아들, 딸에게 모두 바둑을 가르쳐봤는데 도중에 그만둔 게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올해로 제 나이가 70인데, 사실 손녀를 이때쯤 입단시켜서 바둑TV에서 기념대국을 하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아들에 이어 최근엔 딸도 손녀가 생겼는데 그 아이가 바둑을 좋아하더라고요. 외손녀가 입단하면 이벤트 대국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인터뷰/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