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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1 이하진(전 프로기사)  

등록일 2020.02.051,838


이사람1/이하진(전 프로기사)

엔지니어로 변신한 은퇴 프로기사 이하진


처음 은퇴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 놀랐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2016년 8월 이하진 프로의 은퇴는 바둑 관계자와 팬들에게 물음표를 남겼다. 2008년 제5회 전자랜드배 주작부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과 제7회 정관장배에 한국대표로 선발됐으며 2009년엔 제14기 여류국수전에서 준우승까지 했던 그녀였다. 비록 은퇴 당시 선수로 활동하진 않았지만 국제바둑연맹(IGF) 사무국장으로 보급 최전선을 누볐다. 프로기사는 은퇴를 종용받지 않는 평생직 아니던가. 20대였던 이하진 씨는 은퇴하기에 이른 나이였다.

3년이 지난 2019년 12월, 한국기원에서 우연히 이하진 씨를 만났다. 청바지에 당찬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에게 최근의 소회와 은퇴 이유를 물었다.

- 한국에서 뵙는 게 4년 만인가요?
“2016년 7월에 결혼하고 못 봤으니 한 3년 반 됐나요? 동생이 결혼한다고 해서 한국에 왔어요. 온 김에 프로기사 친구들과 같이 일했던 한국기원 직원 분들을 보고 싶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 현재 미국에서 살고 계시다 들었는데요. 근황이 궁금합니다.
“남편(다니엘 마스)이 미국 사람이라 결혼 후 미국에서 살고 있어요. 캘리포니아의 마운틴뷰(Mountain View)라는 곳이죠. 저도 미국 회사에서 직장생활 하고 있고 여가 시간에 미국바둑협회 일도 도우며 열심히 살고 있답니다.”

- 회사라면 어떤 직종인지.
“‘신스파이어(Xinspire)’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제가 사는 마운틴뷰라는 곳이 구글 본사도 있고 많은 테크 회사들이 위치한 실리콘 밸리의 중심도시 거든요. 그곳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어요.”

▲ 중국에서 열린 2019 IMSA 행사에 참석한 이하진 씨. 은퇴 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종사하고 있지만 미국바둑협회 일을 도우며 여전히 바둑보급 일선에서 뛰고 있다.



- 엔지니어요?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하, 제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스위스에서 MBA 학위를 받고 남편 연고지에 살게 됐는데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 스타트 기업에서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인턴십을 했어요. 그때 느낀 것이 실리콘 밸리에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가장 우대해 주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코딩을 배우게 됐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인턴십을 마치고 좋은 회사 개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돼 이 회사에서 일한지 이제 1년 반 됐습니다.”

- IGF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보급 최전선에서 일하다가 돌연 은퇴를 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프로라는 타이틀 없이 바둑을 부담없이 즐기고 싶었어요. 은퇴를 결정했을 당시 남편과 미국에서 살 계획이었는데 스위스, 미국에 살면서 즐겁게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며 어울리고 싶었거든요. 내심 ‘한국 프로인데 실력이 약하다’는 말을 들을까봐 걱정 되기도 했고요(웃음). 그리고 미국에 가면 바둑과 관련 없는 직업을 갖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력서에 전(前) 프로라고 쓰는 게 깔끔하다고 생각했어요.”

- 한국이 그립진 않나요.
“종종 그렇죠. 그래도 가족들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화상통화도 하고 유튜브로 한국 방송도 보고 있어요. 제가 사는 지역에 한국 식당과 마트 등이 있는 덕분에 아직까지는 살만 한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은퇴 이야기가 나온 김에 프로가 되었지만 성적이 안 나는 기사들이나 프로가 되지 못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 이하진 씨와 남편 다니엘 마스 씨. 7살 연상인 마스 씨는 이하진 씨의 유튜브 채널을 보고 그녀를 알게 됐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고. 온라인 게임회사 최고 기술책임자(CTO)로 재직 중인 마스 씨를 두고 이하진 씨는 “매우 로맨틱한 사람”이라 말했다.



- 소위 미생(未生)이라 불리는 계층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어려서부터 바둑에 모든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 때문에 다른 공부를 해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바둑 아니면 길이 없다고 느끼기 쉬울 텐데,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해요. 바둑 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다른 일에 도전해보세요. 수능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저처럼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될 수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몇 년 공부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아요. 출발점이 조금 뒤처졌겠지만 바둑을 잘 둔다는 게 분명 도움이 되더라고요. 분명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 몇 년은 큰 변화 없이 회사 열심히 다니지 않을까 싶어요. 미국바둑협회 일도 지속적으로 도우면서요. 미국바둑협회는 재정이 여유롭진 않아서 일하는 사람 모두가 자원봉사로 나오고 있지만 역사가 길어서 제법 내공이 있어요. 장기적으로 지원해주는 안정적인 스폰서가 있으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에 미국바둑 활성화에도 열심히 이바지 해보겠습니다.”

<인터뷰/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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