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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암살자, 전설을 낚다 

등록일 2020.06.011,186

▲ 5월호 <내일은 스타> 코너의 주인공은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문유빈 3단
▲ 5월호 <내일은 스타> 코너의 주인공은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문유빈 3단

내일은 스타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신인왕 문유빈 三단

본지 특별기획 ‘한국바둑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이후,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는 ‘내일은 스타’ 코너가 2019년 3월호부터 신설됐다. 오호대장군의 선두 주자 신진서 九단은 한국랭킹 1위로 등극했고, 신민준·변상일·이동훈 九단이 각각 3~5위에 포진하는 등 맹활약하며 한국바둑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내일은 스타’의 주인공 또한 장차 중국과의 치열한 대결의 선봉장 역할을 충실히 하길 독자 여러분과 함께 기원한다.

조용한 암살자, 전설을 낚다


입단 전부터 2년 연속 삼성화재배 아마대표로 출전한 실력파. ‘단칼신세’가 된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예선 준결승까지 치고 올라가며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다.

작년 삼성화재배 통합예선 개막전에선 당시 중국랭킹 3위였던 롄샤오를 격파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문유빈 三단(22)이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4지명으로 전격 발탁된 배경이다.

깜짝 선발에서 그치지 않았다. 15라운드가 끝난 시점에서 8승5패를 질주하며 신인상 후보들을 일찌감치 따돌렸다. 문유빈 三이 거둔 8승에는 한국바둑의 전설 이창호 九단을 비롯해 ‘독사’ 최철한 九단, ‘돌주먹’ 백홍석 九단 등 강자들이 즐비하다.

예약해 놓은 신인상을 수상한 문유빈 三단을 만났다.

- 2016-17 2년 연속 삼성화재배 아마대표
- 2017년 12월 입단
- 2018년 二단 승단
- 2019년 三단 승단
- 2019년 제24기 GS칼텍스배 16강 진출
-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신인상 수상(8승8패·사이버오로)
- 2019 삼성화재배 예선 개막전 롄샤오 九단 격파
-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이창호·최철한 九단 격침
- 프로전적 100전 59승41패


 

▲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신인왕 문유빈 3단.


- 바둑리그 데뷔 시즌에 신인왕에 올랐다. 소감은?

박상진 四단과 5대5 싸움이 될 걸로 예상했지만 살짝 기대한 건 사실이다.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수상할 수 있어 기쁘다.

- 인터뷰를 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는지?
다른 곳은 몰라도 월간 『바둑』이라면 인터뷰 요청이 오지 않을까 예상했다(웃음).

- 부모님의 반응은?
사실 부모님이 저보다 훨씬 더 신인상 수상 여부에 관심이 많았다. 신인상을 받게 돼 굉장히 기뻐하셨다.

- 힘들게 입단한 편이다. 면장수여식 당시 아버지가 동행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도 바둑을 둘 줄 아시는지?
아버지는 바둑에 대해 전혀 모르신다. 하지만 컴퓨터를 잘 다루셔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도움 받고 있다.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구입부터 세팅까지 아버지가 전부 해주셨다.

- 신인 선수가 바둑리그 4지명으로 발탁되는 경우는 드물다. 선수선발 소식을 접했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사실 바둑리그가 당초 일정보다 약간 미뤄지면서 뽑힐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운이 많이 따랐다고 본다. 당시 랭킹이 굉장히 낮아서 4지명은커녕 5지명 선발도 어려웠다. 바둑리그가 미뤄지는 동안 2019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이 먼저 개막했다. 롄샤오 九단에게 이기면서 랭킹도 높아지고 이름도 알릴 수 있었다. 그 덕에 4지명으로 뽑힌 것 같은데, 기쁘기도 했지만 부담도 됐다. 아무래도 5지명에 비해 4지명은 좀 더 많은 승수를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 2019 삼성화재배 통합예선 최대 이변 중 한 판. 문유빈 三단(왼쪽)이 중국랭킹 3위 롄샤오 九단을 격파했다.


- 과거 연구생 사범을 맡았던 양건 감독이 야심차게 선발했고, 결과로서 보답했다. 입단 전부터 인연이 있었나?
연구생 시절 화·목 프로그램(연구생 훈련의 일종)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 저를 성실한 이미지로 잘 봐주신 것 같다.

- 성실하게 공부하는 기사로 잘 알려져 있긴 한 것 같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얼굴이 성실하게 생겨서 그런 것 같다(웃음).

- 8승8패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성적에 만족하는지?
처음 목표를 반타작으로 밝혔다. 출발할 때 심정으로는 당연히 만족스러운 성적인데 8승5패에서 3연패를 당한 것이기 때문에 내심 아쉬움이 남는다. 막판에 조금만 더 잘 했으면 두 자리 승수를 올릴 수도 있었으니까.

- 다음 시즌에는 두 자리 승수에 도전하는 것인가?
바둑리그 선수선발 방식이 바뀐다는 얘기도 있어서 다음 시즌에 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단 뽑히는 게 목표다. 만약 선발된다면 지난 시즌보다 1승만 더 해서 9승 올리는 걸 목표로 하겠다.

▲ 바둑리그에서 줄곧 강한 면모를 보여온 ‘독사’ 최철한 九단(왼쪽)을 맞이한 문유빈 三단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바둑을 뒀다. 배짱으로 상대를 압도한 후, 접근전에서 정확한 수읽기로 숨통을 끊는 모습은 이 바둑을 시청한 바둑팬들에게 ‘문유빈’이 될성부른 떡잎임을 알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공부와 바둑, 신인왕의 선택은?

- 바둑을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릴 때 여러 가지 취미 중 하나였다. 7살 때부터 배웠다. 바둑 선생님이 재능이 있다고 하셔서 6학년 때 바둑도장으로 갔다. 돌이켜보면 재능이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웃음). 제 의지보다 부모님 권유로 본격적으로 프로기사의 길을 걷게 됐다.

- 재능파(?)였음에도 입단이 순탄치 않았다. 두 번의 입단결정국 패배를 어떻게 극복했나?
처음 졌을 때는 잘 넘겼던 것 같은데 2년 연속 마지막 관문에서 떨어졌을 땐 너무 힘들었다. 동갑내기 프로기사 송지훈·박하민 등이 너무 잘 나가고 있어서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때 바둑을 잠깐 쉬면서 검정고시를 봤다. 바둑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에 솔깃하기 전까지 공부도 곧잘 했던 편이었기 때문이다.

- 바둑과 공부, 어느 쪽이 잘 맞았는지?
바둑이 훨씬 재밌다. 어렸을 때 나름대로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고 생각해서 진로를 바꿔도 잘 할 줄 알았는데 직접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예 못하겠더라. 집중도 잘 안 되고. 바둑으로 돌아오니 오랜만에 바둑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문유빈 三단이 꼽는 바둑의 매력은?
일단 상대의 수를 예측하는 일이 재밌다. 예측이 빗나가면 판단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실력이 드러난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 또한 묘미가 있다. 실제 성격이 기풍에 드러난다는 점도 바둑만의 매력이다.

- 성격과 기풍이 비례하는 사례가 있다면?
저로 예를 들면, 외모적으로도 차분해 보이는데 실제로도 침착한 기풍이다. 평소 친한 기사들을 언급하면, 김희수 二단은 통통한 편인데 기풍도 느릿느릿 하고 두텁다. 한상조 二단은 평소 활발하고 발이 넓은데 바둑도 실리적으로 민첩하게 둔다.

문유빈 三단(오른쪽)은 입단 전부터 존경해왔던 이창호 九단과도 맞대결을 펼쳤다. 우상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바둑을 둔 결과는 승리로 돌아왔다.


#거함 이창호를 넘다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판 중 하나가 바로 문유빈 三단이 ‘레전드’ 이창호 九단을 격침한 바둑이다. 시종 팽팽한 승부를 펼치던 문 三단은 이창호 九단의 실수를 전광석화처럼 응징하며 단번에 항서를 받아냈다.

- 이창호 九단과 첫 대국이었다. 어떤 기분이 들었나?
이창호 사범님은 입단 전부터 우상 같은 존재였다. 연구생 시절 월간 『바둑』을 꼬박꼬박 챙겨봤다. 당시 늘 표지를 장식하고 있던 이창호 사범님은 바둑 실력뿐만 아니라 인품도 훌륭했다. 하지만 정작 이창호 사범님과의 대국 때는 우상과 만났다는 낭만적인 느낌보다 승부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강했다. 당시 바둑리그에서 3승1패를 하다 2연패 당한 후 대국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면 안 된다는 중압감이 컸다. 그 때문에 바둑 자체를 즐기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 인공지능을 통한 공부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공지능 추천수가 문 三단의 기풍과 다를 때, AI의 ‘정답’과 소신 중 어느 쪽을 선택하나?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수를 거스르고 내 기풍에 맞게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봐야 초반에는 떨어지는 퍼센티지가 미미한데, 나중에는 한 수에 20~30%도 왔다 갔다 하므로 큰 의미가 없다. 내가 두기 편한 스타일로 판을 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 코로나 시국이라 더 그렇지만, 특히 인터넷 대국을 많이 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인터넷 대국을 통해 실전감각을 유지한다. 인터넷으로 둔 모든 바둑을 인공지능을 통해 복기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는 걸 선호한다.

- 어느덧 프로 입단 후 통산전적 100전을 치렀다. 59승41패로 약 60%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벌써 100판이나 뒀는지 전혀 몰랐다(웃음).

- 100판의 대국 중 기억에 남는 바둑이 있다면?
롄샤오를 비롯해 이창호·최철한·백홍석 九단 같은 강자들에게 승리한 바둑이 물론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전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JTBC 챌린지매치에서 안국현 九단, 강승민 六단에게 승리한 바둑도 기억에 남는다. 강자들을 이기면서 자신감이 많이 향상됐다.

- 프로기사로서 목표가 있다면?
국내대회 결승부터 먼저 올라가보고 싶다. 군대 가기 전에 할 수 있는 최대한 정점을 찍어보고 싶다. 꾸준히 성적을 내는 기사가 되겠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이번에 운 좋게 바둑리그에 선발됐고, 신인상까지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기사가 되겠다.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인터뷰/이영재 기자>

▲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신인상을 수상한 문유빈 三단. 시즌 전적 8승8패, 5할 승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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