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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 라이벌 열전④ 

등록일 2020.11.27567

박지은 9단 프로필 사진
박지은 9단 프로필 사진


반상 라이벌 열전④ 박지은 VS 조혜연


■글 _ 이홍렬(조선일보 바둑전문기자 겸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관전필자)


                ▲조혜연 9단 프로필 사진


지난 추석 바둑TV가 박지은과 조혜연을 불러냈을 때 붙인 부제는 ‘언니가 간다’였다. 70대 원로 조영숙 사범부터 시작해 고참 여기사들이 즐비한데 고작 37세, 35세에 웬 언니? 하지만 여자바둑계엔 이들만 한 숙적 커플도 없다. 박지은-조혜연이 이끌어온 지난 20여년 세월은 한국 여자 바둑계에 절대 소중한 중흥기였다.
수락산서 발원한 계곡 물도, 구곡폭포에서 흘러들어온 폭포수도 바다에서 합류한다. 박지은과 조혜연은 여자 바둑이란 바다에서 만나 함께 ‘언니’ 완장을 찼지만 흘러온 과정은 생판 달랐다.

바둑 입문과 아마추어 시절
조혜연은 만 7살 때, 박지은은 9살 때 처음 바둑돌을 쥐었으니 둘 모두 빠른 편은 아니다. 2살 차를 감안하면 거의 동시에 스타트라인에 섰던 셈이다. 조혜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벌써 쌍용투자증권배 여왕전, 아마여자국수전, 오리온배 초등부를 석권했다. 한국기원 연구생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종교적 신념으로 일요 대국을 피한 것과 관련이 있다. 대신 일반 대회를 종횡무진 누볐다.

반면 박지은은 연구생이란 제도권 안에서 성장했다. 뛰어난 기재를 발휘하며 1조 3위까지 올랐다. 연구생 1조는 프로기사 지망생들에겐 꿈의 성지(聖地)인데, 여성으로선 박지은이 최초로 진입했다. 하지만 일반 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드물었다. 어쩌다 나갔을 땐 승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조혜연) “내가 4학년 시절 어느 초등학생 대회서 언니를 처음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이쉬한 느낌에 범상치 않은 승부사 기운을 느꼈다.“
(박지은) “혜연이가 어린 나이에도 굉장한 활약을 해 주목하고 있었지만 맞대결했던 기억은 없다. 정말 야무진 꼬마라고 생각했다.”

입단 및 프로 초년병 시절
1997년 4월 조혜연이 먼저 입단의 코를 뚫었다. 만 11세 10개월. 역대 최연소 3위였다. 박지은의 입단은 7개월 뒤인 97년 11월 만 14세 때 이뤄졌다. 연구생 1조에 오른 뒤 2조로 떨어지지 않고 2~3번을 잔류한 끝에 ‘급제’했다. 이때 입단을 못했을 경우 박지은은 연구생 입단대회 사상 첫 여성으로 출전케 돼 있었다. 입단은 시간문제였다는 뜻이다.

두 꼬마 여기사의 브랜드 가치는 가을 밤하늘 별빛처럼 빛났다. ‘11살 입단’은 상당한 화제였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무게감은 ‘연구생 1조 출신’ 쪽으로 더 쏠리는 분위기였다. 그러자 조혜연이 먼저 치고나갔다. 입단 3년차이던 99년 중학생의 몸으로 세계대회서 준우승했다. 제1회 흥창배. 루이나이웨이에 1대 2로 역전패했지만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다.

해가 바뀌고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이번엔 박지은이 크게 용틀임했다. 제1회 여류명인전 결승서 이영신을 2대 1로 꺾고 타이틀을 목에 걸었다. 윤영선 이영신 쌍두체제 시대가 무너지는 신호탄이었다. 조혜연의 국제대회 준우승, 박지은의 첫 타이틀 획득은 서로에게 깊은 자극제로 작용했다.

(박지은) “나는 다양한 연구회에 가입해 동년배 기사들과 어울린 반면 혜연이는 소소회 등에도 안 나와 노는 물이 서로 달랐다. 조금씩 혜연이란 꼬마 고수의 존재가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혜연) “내가 흥창배 결승에 올라갈 무렵 언니의 결연한 다짐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언니는 이듬해 바로 여류명인전 우승과 흥창배 준우승을 수확하더라.”

루이나이웨이의 등장
루이나이웨이가 1999년 한국에 정착했다. 이때만 해도 철녀(鐵女)란 별명의 이 중국 출신 여성기사가 2012년까지 13년이나 한국에 머물며 국내외 여성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루이의 존재는 박지은 조혜연에겐 태풍이 아니라 광풍이었다.

세계 혼성 메이저 여성 첫 4강(제1회 잉창치배) 경력의 루이는 한국에 닻을 내리자마자 여성 타이틀 독식에 나섰다. 최대의 ‘희생자‘는 조혜연이었다. 죽죽 성장 중이던 조혜연을 루이가 번번이 가로막았다. 여류국수전서 둘은 99년 6회~2007년 12회까지 7년 연속 결승서 맞붙었는데 조혜연이 우승한 것은 2번뿐이었다. 여류 명인전서도 8번 결승을 펼쳐 7번 루이가 승리했다. 조혜연의 루이 상대전적 18승 37패는 박지은의 루이 상대전적 10승 16패와 비교된다. 조혜연이 메이저 개인전 우승 5회에 그치고 준우승이 15회에 이르는 것도 루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4년 제5기 여류명인전 도전2국 종국장면. 조혜연 四단(당시)이 타이틀보유자 루이나이웨이 九단을 꺾고 종합전적 2-0으로 승리하며 루이 九단의 대회 4연패를 저지했다.


조혜연이 루이의 창칼을 온몸에 맞으며 만신창이로 분투할 때 박지은은 국제무대에서 훨훨 날아올랐다. 2004년 정관장배, 2007년 대리배 및 원양부동산배, 2010·2011년 궁륭산병성배 등 5개 국제대회 연속 석권의 신화를 썼다. 2005년부터 국가대항 연승전으로 바뀐 정관장배서의 맹활약을 빼고도 그렇다. 박지은의 우승컵 수집창고를 들여다보면 국제대회 편향 취미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개인 메이저 대회 7번의 우승 중 국내 타이틀은 2개뿐이고 나머지 5개가 국제기전이다.

(박지은) “루이 九단을 한국에 불러들여 가장 피해를 본 건 혜연이였고, 국제 대회서 재미를 본 건 나였다. 혜연이가 종교와 무관하게 해외 대회에 출전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조혜연) “지은 언니는 나와 달리 루이 사범님을 상대로 만만찮게 대항했다. 루이 九단이 지은 언니를 좀 더 경계하고 내게 잘 대해준 것은 내가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막상막하, 난형난제의 각종 기록들
두 사람은 총 24판을 겨뤄 조혜연이 15승 9패로 앞서고 있다. 98년 6월 첫 공식전 포함 처음 두 경기에서 박지은이 승리한 후 조혜연이 내리 9연승해 간격이 벌어졌다. 눈 여겨 볼 것은 24판 중 타이틀이 걸린 결승전은 단 한 판도 없다는 점이다. 기껏 준결승이거나 예선 결승, 승자조 결승 등이다. 이 의문의 열쇠도 루이가 갖고 있다. 그녀를 거치지 않고는 누구도 결승 무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박지은은 남자기사들과의 사이에서 주목할 만한 승점을 여러 번 올렸다. 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에 출전했던 유일무이의 여성기사가 박지은이다(2003년 제5회 대회). 그보다 1년 전인 2002년 제1회 도요타덴소배 때는 일본 간판 요다 노리모토를 눕히고 세계 16강에 올랐다. 조혜연의 전리품은 상대적으로 소박하지만 값진 것들이다. 고2 시절 여자국수전 결승서 천하의 루이 왕조를 처음 무너뜨렸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주역으로 활약했다. 스토킹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올해 대주배를 제패한 것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2년 1회 도요타덴소배 세계왕좌전 본선 1회전에서 당시 18세 소녀였던 박지은 九단이 ‘한국기사 킬러’로 명성이 자자했던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九단을 꺾는 파란을 연출했다.


두 사람의 다승 경쟁은 언제나 화제였다. 100승 고지는 박지은이 먼저 발을 디뎠지만 200승, 300승, 400승 고지엔 조혜연이 먼저 올랐다. 박지은이 500승 고지에 올라섰던 2015년 1월 27일 조혜연은 아직 491승이었다. 600승 고지의 주인은 다시 또 조혜연으로 바뀌었다. 2019년 8월 28일, 박지은이 아직 589승일 때였다. 둘은 바둑대상(大賞) 여자기사상을 놓고도 3회씩 분할(조혜연 2003·2004·2005년, 박지은 2007·2008·2011년) 수상했다. 九단 승단은 박지은이 2008년, 조혜연은 2010년 달성했다.

“부럽고 존경하는 선배와 후배 사이”
(박지은) “프로가 된 후 매스컴에서 우리 둘 관계를 라이벌로 계속 부각하는 바람에 부담이 컸다. 하지만 실력 면에서 혜연이가 나보다 우위였다. 혜연이가 국제대회를 안 나가는 바람에 내게 많은 기회가 왔던 셈이다.”
(조혜연) “10대, 20대 시절 내가 국제대회에 나갔더라면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란 생각을 종종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국제무대서 언니가 보여준 카리스마를 보면 국내에선 내게 양보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박지은) “내가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혜연이 개인을 미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천적이라는 느낌에 힘들 때면 운동으로 풀었다.”
(조혜연) “지은 언니를 넘어야만 루이 사범님을 만날 수 있기에 어린 시절 결사적으로 두었다. 언니가 루이 사범님을 너무 잘 이겨서, 그 방법을 배우겠다고 언니 기보를 연구하기도 했다.”

(박지은) “종교로 인한 불참 등 혜연이가 보여준 신념이 나로선 신기했다. 어려움 속에서 학업을 병행하며 보급에도 나서는 등 다방면의 재능을 보여준 혜연이가 부럽고 존경스럽다. 혜연이와 (김)은지가 둔다면 나도 모르게 혜연이를 응원하게 된다.”(웃음)
(조혜연) “한국 여자바둑이 이만큼 자리잡은 데는 지은 언니의 존재가 매우 컸다. 언니가 앞으로도 바둑 두면서 더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지은 언니에게 이기고 싶다. 언니는 승부나 인생 모든 면에서 내게 항상 긴장감을 주는 멋진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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