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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바둑 규정 이대로 괜찮은가 

등록일 2021.08.041,387

▲한철균 九단
▲한철균 九단

바둑을 두다 보면 분쟁이 생길 수 있다. 이를 판결하는 사람이 심판이다. 심판이 하는 일들을 쉽게 정리해 놔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짜깁기식으로 규정이 생성되어 모순된 조항이 많은 듯 보인다.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한 자의적인 해석 등이 있어 체계화가 필요하다. 
4월 21일 심판위원회 공식 첫 회의를 열고 제도 개선안을 발제했는데 참석자들의 반응이 갈렸다. 개선안을 반기는 쪽도 있었지만 “기존 제도가 괜찮은데 왜 자꾸 바꾸려고 하느냐”는 분위기도 한쪽으로 무겁게 깔렸다.
공청회를 열자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바둑협회 관계자나 바둑방송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등 이미 공청회 성격이 있는 열린 회의였는데도 그런 말이 나온 걸 보면, 위원회의 기조가 체질적으로 변화를 원치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당시 내어놓은 개선안들을 공개하고자 한다. 어차피 확정안이 아니고 의견을 개진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시대에 발맞춰 국제경기 등에서 온라인대국이 많아지고 있다. 온라인대국은 반칙패 자체가 없도록 세팅되어 있다. 이에 반해 오프라인 대국은 반칙패가 일어났을 경우 가혹하리만치 불가역적이다. 이를 차분히 살펴보면서 다음 세 가지를 전제조건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첫째, 인간은 인공지능처럼 완벽하지 않아 실수를 하고 습관도 있다. 
둘째, 여타 스포츠처럼 바둑도 스포츠맨십을 발휘하여 마지막까지 승부를 보기를 바둑팬은 원한다. 
셋째, 호랑이와 사람은 죽어서 가죽과 이름을 남기지만 기사는 훌륭하고 멋진 기보를 남기려고 한다. 이는 기사 본인과 바둑팬을 위한 의무이자 사명이다. 

● 대국 전 준비작업의 중요성
TV대국의 준비과정을 마무리까지 살펴보면 허술한 측면이 많다.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하여 심판위원과 경기위원, 기록원, 계시원은 경기시작 30분 이전에 도착함을 원칙으로 하고 경기 구성원들은 운영본부가 허가하지 않은 물품을 경기장에 반입할 수 없다’는 규정이 거의 사문화되어 있다. 시간을 어기는 사람이 많다. ‘허가받지 않은 물품’에는 휴대폰을 포함하는 것이 좋겠다. 
최근 심판을 하면서 겪은 일인데, 경기 중에 기록자가 소지한 휴대폰의 SNS알림 소리가 울리는 걸 들었다. 심판도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주요 대국은 별도의 모니터가 설치되어 볼 수 있다. ‘휴대폰으로 대국을 보면서 심판을 보는 것’은 대회 운영 규칙에 맞지 않으므로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대국 전 준비작업 중에는 돌통의 돌들을 점검하는 것도 있다. ‘흑돌은 181개 백돌은 180개’를 갖춰놓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 있는데 이 개수를 확인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은, 표준규격의 바둑알을 모두 담으면 돌통이 넘친다고 하는데 만약 넘친다면 바둑통이나 바둑돌 중 한 군데가 불량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사진은 한국기원 본선대국실의 표준 바둑알을 통에 담은 것이다. 흑돌이 꽉차 보이는 것은 검은색의 시각적 후퇴 효과 때문으로 흑돌이 백돌보다 크다.
실제로 점검해 보면 백돌통에서 흑돌이 나오거나 깨진 돌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심판 입회 하에 관계자가 돌통에서 바둑돌을 들어내어 소독을 하고 깨진 돌을 제거한 뒤 돌의 개수와 관계없이 바둑통을 가득 채워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방송 도중 돌이 모자라 서로 교환하거나 깨진 돌을 치워놓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또한 사전 돌가리기를 심판이 없는 곳(예를 들면 검토실)에서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선수나 감독이 심판이 보는 가운데 대국장에서 돌가리기를 하는 것이 훨씬 격조 있고 투명하다. 돌가리기를 진행하게 하는 것은 원래 심판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바둑이 스포츠를 표방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아직도 대국 중 바둑돌이 부족하여 사석과 교환하는 등의 상황이 프로대국에서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대국 전 돌통의 돌을 점검하여 가득 채워놓으면 위와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 밀어서 두는 착점에 대한 생각
바둑 규칙 제3조3항- 반상에 돌이 닿은 곳을 착점으로 한다. 만약 돌이 닿은 곳이 교차점이 아닐 경우 돌이 닿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교차점을 착점으로 한다.
바둑 규정 제18조- 규칙 제3조 3항에 의거해, 돌이 바둑판에 닿거나 돌을 잡은 손이 닿으면 착점이다. 바둑판에 닿는 돌을 밀어서 착점할 경우 민 정도에 따라서 심판이 판정한다.
예를 들어 착수를 A의 곳에 닿은 다음 ‘밀어서’ B의 곳을 두면 보통 대국자는 습관적으로 A는 의미 없고 B를 두기 위한 예비 동작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심판에 따라 반칙패를 주기도 하고 그냥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공정하지 않다.  
시니어리그에서 어떤 유명한 선수는 습관적으로 밀어서 둔다. 그러나 반칙이 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유명하지 않은(?) 어떤 선수는, 어떤 때는 반칙을 받고 어떤 때는 그냥 심판이 눈감아 준다. 
어린이 대회에선, 본인은 수도 없이 반칙행위를 해 놓고선 불리해지면 상대방의 단 한 번의 같은 행위를 지적하며 승리하는 사례도 있다. 

● 의도치 않은 착점에 대한 생각(무르기)
‘무르기’는 어떨까?
초읽기에 몰린 중반의 급박한 상황에서 한곳에 두었다가 다른 곳에 둘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상대가 이의제기하면 실격인데 하지 않으면 그냥 진행하는 게 현행 규정이다. 
여기에 근본적이 의문이 든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안해 본다. 그냥 반칙패로 인정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그대로 두고 경고나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어떨까? 
명인전 16강전에서 어떤 선수가 상대의 무르기 반칙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국이 계속 진행된 적 있다. 방송대국으로 치르고 있었으므로 증거가 남아 있다. 만약 심판이 부재한 경우였더라도 방송관계자가 심판 역할을 하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만약 온라인대국이었다면 무르기 자체가 없다. ‘마우스 미스로 인한 실수는 무조건 본인의 책임이다. 재착점의 기회는 없다.’ 이러한 규정은 대국자와 바둑팬을 완전히 무시하는 대표적인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한번은 중국의 천야오예 九단이 김지석 九단과 대국하다가 김지석 九단이 마우스미스를 저지른 것을 스스로 나서서 무르기를 주선하여 대인배로 칭송받은 바 있다. 반면 커제 九단이 신진서 九단과 대국하던 중 신진서의 마우스미스를 보았음에도 그냥 진행한 적 있다. 
오프라인 대국 착점 규정 중 ‘돌을 떨어뜨린 경우 착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다. 이 규정을 준용하면 인터넷 대국의 마우스미스 등의 경우 선수는 일시정지 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심판은 공정하고 상식적이며 양심적인 판단으로 무르기를 허용할 수도 있다. 심판이 두 명이면 두 명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데, 한 명이라도 착수가 타당하다고 인정하면 그대로 진행하는 식이다. 
물론 대국 상대방의 동의는 필수일 것이다. 누가 봐도 마우스 미스가 분명한 상황이라면 상대방으로서도 상식적으로 무르기를 허용할 것이다. 그래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 계시기 문제- 녹화가 필수적
 입단대회에서 계시기과 관련해 억울한 사태를 예방하려면 녹화는 필수적이다. 내셔널바둑리그에서 어떤 선수가 대국이 끝나기 전에 돌을 들어내면서 실수로 시계를 끈 일이 있었다. 심판이 이를 놓고 반칙패를 선언해서 찬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지극히 상식적인 심판의 판정이었다. 
한 입단대회에서 착수하기 전에 계시기를 눌렀다는 이의신청이 있었다. 이 모든 경우 녹화는 증거자료로서 중요하다. 
다만 계시기와 관련해서는 근본적인 바둑 실력이 아닌 그냥 사소한 실수일 경우가 많다. 주의나 경고를 주는 것이 벌칙의 최대치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석을 남겨 놓겨나 살아 있는 돌을 들어내는 것은 주의만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두 수를 두거나 착수금지의 곳을 두는 것과 패를 되따내는 경우는 경고만 주거나 경고와 함께 페널티를 부가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반칙패 적용
‘반칙이 발생했을 때, 반칙패 적용은 증거가 있는 경우 대국 종료전까지 가능하다. 단 증거가 없는 경우는 다음 착수 시점까지만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TV대국에서 관전한 예로 들어보자. 사석을 들어내지 않는 대국자에 대해 이의제기해서 이기는 경우와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 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어느 것이 정의인가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지만, 위의 두 사례를 보면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선택적 정의로 보인다. 
규정을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죄가 성립하는 친고죄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아도 처벌하는 비친고죄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 AI 부정 대국의 경우
체육 종목에서 보면 심한 부정행위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모든 분야에서 활동을 금하는데 한국기원의 예를 보면 너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는 일벌백계의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온라인 바둑의 경우는 ‘치팅’을 잡아내는 공식 프로그램 도입이 시급하다. 
상대에게 불쾌감(비매너)을 주는 경우 - 그린, 옐로우카드
신체를 자해하거나 부채를 딱딱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히 주의를 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습관의 경우는 경고를 주기보다는 심판이 그 옆에 서서 가만히 대국을 지켜보는 방법도 괜찮다. 이런 대국자일수록 경고를 주면 조금 후에 다시 비슷한 행위를 하여 어쩔 수 없이 반칙패를 선언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대국 태도나 습관이 나쁜 대국자에게 사전에 주의를 주면 감정이 상해서, ‘사범님은 왜 자기를 미워하냐’는 항의를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벌칙이 경고와 반칙패의 두 가지밖에 없어서 그렇다. 일부 기사들 사이에는 대국 종료 후에 시계를 끄지 않고 일시 정지를 누르고, 기권해야 하는 바둑을 상대방의 반칙패를 위해서 일부러 두는 경우도 있다. 
반칙행위에 대해 축구의 ‘옐로우, ‘레드카드’가 영국 교통신호에서 유래됐다는데, 바둑은 주의와 경고를 ‘그린, 옐로우카드’ 주는 것이 어떨까.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는 데다 주의는 두 번까지 줄 수 있고, 세 번째는 경고를 받은 후 주의를 1회라도 받으면 반칙패를 주는 식이다. 
주의의 효력은 그 대국으로 소멸되고 경고는 누적이 되어 두 번의 경고를 받으면 심판위원회에서 다음 시합을 나갈 수 없게 지정해 주고, 경고의 효력이 사라지는 지점은 1년이다. 실격, 반칙, 기권패는 기본적으로 1회 출전금지이지만 사안에 따라 심판위원회에서 가중처벌한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인정하는 모든 대회와 TV대국은 정규적인 룰에 의해 진행되지만, 어린이 대회나 여타 대회는 로컬 룰이 적용될 수 있다. 어린이 대회등 로컬 룰이 적용되는 대회에는 ‘주의의 횟수에 제한이 없다’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결론적인 제안은 바둑 규칙을 ‘경고와 반칙’ 2단계에서 ‘주의-경고-반칙’ 3단계로 완화하고, 밀어서 착수하는 것은 반칙에서 주의나 경고 정도가 적당하다. 무르기의 벌칙의 강도를 생각해 보고 이번 기회에 착점에 대해 새롭게 이론을 정립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계시기에 의해 승부가 뒤바뀌거나 바둑 실력 외적인 문제로 대국이 중간에 종료되지 말아야 한다. 부자연스런 착점은 착수의 정당성에 따라 주의나 경고가 타당하지 않을까?
또 심판위원회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해 혼란을 피해야 한다. 권한은 있는데 책임을 지지 않는 바둑계의 오랜 잘못된 관행이 있다. 그 때문에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이번 글이, 느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논의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글 _ 한철균 九단
고려대학교 졸업. 한국외대 행정학석사 수료. 명지대 바둑학과 겸임교수. 
제24대 기사회장. 현 바둑심판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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