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l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바둑학과 신설
바둑계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장승원)에서 2025학년도 바둑학과 신입생 모집을 시작한다. 공지된 입시 요강을 보면 정시 1차 모집은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며, 모집 정원은 50명이다.
사실 바둑계는 연초 들려온 명지대 바둑학과 폐과 소식에 발만 동동 구르던 참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둑학과를 운영해 오던 명지대학교가 당장 내년 학기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의 바둑학과 신입생 모집은 바둑학과 입시를 준비해 온 수험생들에겐 그래서 더욱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바둑학과를 중단 없이 이어갈 가교 역할을 맡아 신입생 모집 준비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유승엽(57)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학과장에게 신설 바둑학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5천 년 역사의 바둑으로 1백 년 미래를 설계한다’. 바둑학과 홈피 대문에 소개된 카피 문구가 멋집니다.
원래 제가 월간『바둑』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잘 훈련한 덕분에 글쓰기에 큰 두려움은 없는 편입니다(웃음).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저희 바둑학과의 가장 큰 목표가 좋은 강사 양성, 즉 교육이기 때문에 그런 문구를 만들어봤습니다.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이하 서울문화예술대)에 바둑학과가 개설돼 바둑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학교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 학교는 1997년에 개교한 문화, 예술 분야 전문인재를 육성하는 특성화 4년제 사이버대학입니다. 특히 사이버대학 중에서도 유일하게 블랜디드 러닝(온라인·오프라인 병행수업)을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학생이 원하는 부분을 반복 수강할 수 있다는 점, 또 영상 자료로 남기 때문에 오프라인 강의보다 더욱 성심성의껏 강의 자료와 강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반면 학생과의 소통이 상대적으로 어려운데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오프라인 수업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 또는 지방 거주 등으로 학교에 나올 수 없는 오프라인 학생은 온라인 수업만 듣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블랜디드 러닝을 통해 수업 효과를 더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 학교 안내 브로슈어에 보니, ‘바둑의 전문가로 양성해 취업시켜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오던데요. 내년 학기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을 어떻게 지도하려고 하시는지 포부 및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잘 안된다고 많은 언론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 이름보다 전공이 무엇이고, 또 정말 회사에 입사했을 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하는 능력과 경험이 중요해졌습니다. 저는 1989년 한국기원에 입사한 이후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둑계에서 다양한 업무를 해봤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바둑계에서 일할 때 꼭 알아야 할 실무적인 이야기들을 가르칠 예정입니다. 저희 학교가 실용적 학문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제 교육 목표와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 명지대 바둑학과 폐과 소식에 바둑인들이 많이 가슴 아파했는데, 서울문화예술대에서 바둑학과를 개설한다고 하니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학과를 이끌어 가실 생각이신지요.
바둑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바둑 인구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둑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또는 학원 등을 통해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들의 수는 과거보다 결코 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둑을 몇 달 배우다 그만두고 말아서 끝까지 바둑 인구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둑은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가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해결 방법으로 제가 ‘좋은 강사 양성이 필요하다’고 얘기해 왔습니다만, 그와 함께 바둑계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 어린이 바둑대회는 9줄, 11줄, 13줄 등 빠른 시간에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도록 바둑판을 수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 10대 총장을 역임한 이민우 이사가 바둑학과 창설 산파역을 맡았다고 하던데, 유승엽 교수님이 어떻게 교수로 임용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학교는 문화, 예술 특성화 학교였기 때문에 이민우 이사님께서 총장으로 재직하실 때부터 바둑학과 신설을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다만 그동안 명지대, 세한대 등에 이미 바둑학과가 있어서 보류 상태였는데, 명지대에서 내년도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바둑학과 진학을 준비했던 학생들의 난감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바둑학과 신설을 준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준비 과정에서 제게 몇 가지 의견을 묻기도 하셨습니다. 교수 임용은 7월 공고를 통해 서류, 강의 발표, 1·2차 면접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8월 말에 임용됐습니다.
- 바둑계 경력이 화려하십니다. 교수님 경력란 앞에 ‘취업의 신’이라고 되어 있던데, 취업 노하우를 좀 공유해주시죠^^.
제가 정말 많은 회사를 다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랑이라기보다는 부끄러운 이력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정수현 교수님께서“그것은 오히려 자랑거리다. 이번에 바둑학과가 막 신설돼서 홍보할 거리가 많지 않으니, 그 취업 노하우를 전수한다는 것을 포인트로 내세워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취업의 신’이라는 단어를 말씀하셨습니다. 취업
노하우라면, 저는 세 가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첫째, 항상 미래 트렌드에 관심을 가질 것
둘째, 관심을 가졌으면 공부하고 준비할 것
셋째, 취업을 위해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시도할 것
제가 바둑을 좋아해서 월간『바둑』에 입사했습니다만, 그 뒤에 전산 공부를 해서 컴퓨터 관련 회사에 취업했고, 그 후에는 바둑과 PC통신, 인터넷과 연결된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을 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덕분에 취미를 업으로 오랜 기간 일 할 수 있었습니다.
- 바둑계를 두루두루 거치셨기에 바둑 동네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겪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1995년 삼성SDS 유니텔에 입사했을 때 당시 남궁석 사장님께서 세계바둑대회를 만들라고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이왕 만드는 세계대회, 응씨배보다 더 큰 규모로 만들고 싶어서 예산을 잡아 봤더니 15억 원(당시 응씨배는 약 12억 원)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삼성 계열사인 삼성화재에서 국내대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삼
성화재배를 세계 최대규모의 대회로 바꿔서 주최했습니다. 1년 가까운 준비기간 동안 정말 신명나게 일했던 것이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바둑산업이 하락세에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지, 바둑계가 ‘이것만은 꼭 고쳐야 한다’는 게 있다면 훈수 한 수 해주세요.
바둑은 산업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아직 너무 작습니다. 당연히 파이를 키우는 일을 해야 하는데, 업계가 너무 영세하다 보니 그 작은 파이를 누가 더 많이 먹을까만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바둑을 정말 산업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기존의 고정 관념을 벗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프로기사가 450명 정도 있는데, 이를 약 1만 명 정도로 대폭 늘리면 어떨까요? 그들 모두 바둑계 종사자니까 당연히 업계가 커지겠지요. 물론 그 1만 명이 모든 대회에서 선수로 활동하자는 뜻은 아니고, 프로기사도 레벨을 나눠서 레벨에 맞는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지요. 당연히 상금은 A레벨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래 레벨의 기사들은 교육이 주 수입원이 될 텐데, 그러면서 다양한 산업으로 파생되면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바둑계는 어떤 방면으로 방향 설정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바둑계에서 항상 얘기하는 글로벌 보급이겠지요. 우리나라의 시장만으로는 너무 작습니다. 해외 시장으로 바둑이 널리 보급되면 그만큼 시장도 커지고 바둑이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 ‘우리 학과가 이것만은 꼭 차별화 할 것’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서울문화예술대 바둑학과 졸업생이 가르치면 확실히 다르다’라는 인식을 바둑 교육시장에 인식시키고 싶습니다.
- 꼭 전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보통 스포츠 분야에서는 실력이 강한 사람이 크게 대접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테고, 바둑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활체육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실력을 겨루는 대회에서는 실력이 강한 사람이 더 대접을 받더라도, 일상 바둑 모임에서는 실력의 강약과 상관없이 다 같이 즐기는 동호인으로 서로 존중받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둑을 더 대중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유승엽 교수는 프로기사만 빼면 바둑계에서 해보지 않은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 바둑계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
한국기원 월간『바둑』기자를 시작으로 바둑계와 인연을 맺은 유 교수는 이후 한국기원 초대 홍보팀장, 삼성SDS 유니텔 사업부 바둑&게임 총괄, 타이젬 기획실장, NHN 한게임본부 보드게임사업부장, 서울신문 패왕전 관전필자, 여자바둑리그·시니어바둑리그 담당 기자, 유튜브 ‘동네바둑’,‘ AI바둑강좌’ 채널운영, 명지대바둑학과 강사, 명지대 미래교육원 바둑학과 강사, 방과후학교 바둑강사 등 바둑을 빼면 인생을 이야기 할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던가. 유 교수의 부인인 양은숙(57) 씨도 바둑 특성화 초등학교로 잘 알려진 흥진초등학교에서 첫 바둑 교사를 담당하는 등 방과후 바둑교실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유승엽 교수는 그동안 경험했던 바둑계 노하우 모두를 바둑학과 신입생들에게 쏟아부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항상 준비를 먼저 해야 합니다. 적극성과 준비성만 있으면 누구든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입학생들을 바둑 전문가로 양성시킬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졸업생 취업률 100%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취업의 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유승엽 교수가 바둑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인지, 바둑계의 시선이 유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차영구 편집장·사진/이주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