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1/포항에 바둑학원 연 강만우 九단
몇 년 전부터 서울에서 후학을 길러내던 바둑 지도사범들이 하나둘 지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런 경향은 기존 지역연구생 입단대회(2000년 출범)와는 별개로 2014년 지역영재 입단대회가 추가로 생기면서부터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한국기원 연구생 지도사범으로 오랜 동안 봉직하며 연구생 제1기생 이창호를 비롯해 수많은 프로기사를 키워냈던 강만우 九단도 6년 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서울 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가 경북지역 연구생 지도사범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강만우 九단을 만나기 위해 경북 포항을 찾았다. 기자가 방문한 3월 9일은 마침 강 九단이 포항시청 인근에 바둑학원을 개원한 날이기도 했다.
- 바둑학원 개원식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했습니다.
“학부모님들과 포항시에서 바둑학원 하시는 분들은 거의 다 찾아와 축하해 주셨습니다. 이오균 포항기우회 회장님과 안정현 여성기우회 전회장님은 제가 학원을 연다고 하니 일찍부터 오셔서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바둑학원이 근사한데요.
“감사합니다. 내려오시기 전부터 말씀드렸지만 제 딱한 사정을 듣고 학부모님(배성훈 원장)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분께 제가 큰 빚을 졌죠.”
- 지역에 계신 분이 바둑학원을 차려주실 정도면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인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제가 아이들 가르치는 쪽에선 차부일 이우람도 입단시켰고, 나름 인정을 받았죠.”
- 한종진 이희성 김주호 문도원 유병용 민상연 등 서울에서 내려온 프로기사들의 모습도 보이던데요.
“프로기사들은 오래 전 저에게 바둑을 배운 제자들입니다. 개원식 때 지도기를 부탁했더니 열일 제쳐두고 포항까지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다들 바쁠 텐데 축하해줘서 정말 고맙죠.”
- 포항에 내려오신 지는 6년 정도 되셨죠? 연고가 없는 포항에서 지도사범 일을 하시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당시 기사회장이던 최규병 九단이 경북지역 연구생지도사범 자리가 있는데 생각이 어떤지 넌지시 묻더라고요. 솔깃한 제안이었죠. 하지만 서울 생활을 접고 포항에 내려가 살 생각하니 겁도 나고 막막하더라고요. 며칠 생각해 본다고 하고 고민하다 ‘그래 한 번 가보자’ 하고 그 길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 서울과는 환경이 많이 달랐을 텐데요.
“시설이야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 문제는 사범진이었어요. 입단 가시권 아이들에겐 프로 사범과의 스파링이 필수인데 당최 사범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 같으면 사범 구하기도 쉽고, 또 급하면 제자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포항은 거리가 멀어 선뜻 와달라고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며칠 고민하다 최 사범에게 전화했죠. 거의 막무가내로 ‘당신이 내려 보냈으니 어떻게든 책임지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최 사범이 충암바둑도장에서 일하고 있던 이희성 九단을 포항으로 파견해 주었어요. 구세주였죠.”
- 사범님이 이곳 포항에 내려오기 전까지 포항 출신 프로기사가 없었죠?
“포항은 바둑에 관한한 거의 불모지였어요. 하지만 자신 있었습니다. 젊어서부터 한국기원 연구생 사범을 줄곧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도 있고, 이희성 사범을 비롯해 제자들도 도움을 주고 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포항 출신 프로기사를 배출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 제자였던 차부일 이우람이 입단했을 때 정말 가슴이 벅찼을 것 같습니다.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죠. 그 일 기억하세요. 차부일이 입단하던 날 다짜고짜 기자님 찾아가서 차부일 기사 써달라고 떼쓰다 퇴짜 맞은 일.(웃음)”
- 1984년부터 연구생 지도사범 일을 하셨으니 나름의 지도철학이 있으실 텐데요.
“아이들의 장래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바둑 한냥 사람 서푼 소리를 들어선 안 되죠. 바둑과 인성 둘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 언젠가 사석에서 연구생 지도사범을 천직으로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지금도 그러신지.
“젊었을 때부터 지도사범 일을 해서 그런지 이 일이 너무 즐겁고 좋습니다. 제게 바둑을 배운 아이들이 하나 둘 입단하고 한국바둑의 기둥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가슴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인터뷰/구기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