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도쿄대 바둑 교류 40주년 행사 열린다
한국과 일본,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최고 지성들이 바둑을 통해 우의를 다져온 서울대학교와 도쿄대학교와의 바둑 교류전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정식 수교 이후에도 민간 차원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무렵, 바둑을 매개로 두 나라의 20대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쌓아 온 귀한 만남의 장이다.
제40회 교류전은 8월 20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도쿄대에서 재학생 16명과 OB 10명 등 역대 최대 규모 선수단이 방한하며 서울대는 재학생 16명과 OB 40 여명이 참여해 오전, 오후 2차례 대국과 기념식, 만찬 등을 가진다.
1977년 1회 대회, 40년간 한 차례도 중단 없이 지속
1977년 당시 서울대 대학신문 주간이던 고(故) 김영국(金榮國)교수(정치학과)가 도쿄대의 고(故) 이시가와(石川) 교수와 뜻을 맞춰 제1회 대회가 열렸다.
3월 10, 11일 이틀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류전은 당시 홍종현(서울대 법대 졸), 조훈현, 하찬석 등 프로기사가 대강당에서 공개 해설을 해 학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후 짝수 회는 도쿄, 홀수 회는 서울 순으로 한해도 대회를 거르지 않았다. 20회인 1996년에는 개교 50주년 행사와 맞춰 서울대가 연속 개최했고 이후에는 홀수 회를 도쿄에서 열고 있다.
1회부터 4회까지 서울대가 4연승으로 출발한 대회는 5회부터 12회까지는 3승 1무 4패로 호각세, 이후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지난해까지 통산 전적은 16승 2무 20패(21회 미확인)로 도쿄대가 약간 앞선 걸로 나타났다.
87년 도쿄대측에서 10주년 기념 책자로 발간한 <돌소리는 바다를 넘어>는 일본서 활약하는 조치훈 9단이 제자(題字)한 걸로 유명하며, 이에 대한 화답으로 서울대측은 20주년 기념 책자 <오로의 향연>을 펴냈다.
80년대 초부터는 장재식(전 한국기원 이사장), 현재현(전 동양그룹 회장) 등 동문들이 <관악기우회>를 결성해 90년까지 이 행사를 후원했고, 15회부터는 학교 공식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YB간 교류전이 원칙이지만 93년과 96년, 2010년에 도쿄대 OB팀이 방한했고 2011년 서울대OB팀이 일본에 건너가 OB만의 교류전을 갖기도 했다.
1회 대회 때 3명이었던 선수단은 이후 7명, 10명, 12명 이상으로 늘었고, 93년 일본서 활약하고 있는 류시훈 9단의 동생인 류지인이 첫 출전한 이후 여학생 대국도 포함됐다. 이 무렵부터는 4박 5일 행사 중 이틀은 홈스테이와 단체 MT를 갖는 전통이 세워졌다.
박치문, 신병식 1회 선수…부녀 출전 진기록도
출전 선수가운데는 1회 대표 선수인 박치문(한국기원 부총재), 신병식(전 SBS 논설위원), 신봉호(시립대 교수)가 이 해 대학바둑 단체전을 우승하고 아마 랭킹30위 안에 들어 서울대 3인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밖에 안성문(현 KB리그 전문기자)은 재학 중 4년 연속 출전하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우기도.
또한 신병식과 23∼24회에 출전한 신보경(변호사)은 부녀가 합쳐서 4전 전승을 기록했고, 도쿄대 다케다 하루오와 도모코(19회)도 부녀 출전 기록을 남겼다. 이밖에 김형균(29회) 오경환(30회) 노시정(34회) 등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과 프로기사인 오주성(물리학과)이 33회에 출전했다.
여행 자유화 이전인 초기에는 지도교수 동행 없이는 출국조차 어려웠고, 이에 따른 우여곡절도 많았으나 해외여행이 손쉬워진 최근에는 한번 원정 기회를 가진 선배가 후배에게 양보해 원정팀은 잘 이기지 못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대회가 이어지는 동안 큰 위기도 한차례 있었다. 90년대 초반 일본 경제 위기 당시 도쿄대측에서 대회 무기한 연기를 요청해온 것. 하지만 서울대측에서 모든 대회를 우리가 치를 테니 계속하자고 설득, 도쿄대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후 40주년에 오기까지 큰 무리 없이 행사가 치러져 왔다.
두 나라의 젊은 지성들이 수담으로 어울리는 만남의 광장은 50주년, 100주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