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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스타/송지훈 五단 

등록일 2020.03.25865

▲ 크라운해태배를 접수하며 2020년 첫 발을 힘차게 내딘 송지훈 五단을 만났다.
▲ 크라운해태배를 접수하며 2020년 첫 발을 힘차게 내딘 송지훈 五단을 만났다.

내일은 스타

2019 크라운해태배 우승자 송지훈 五단


본지 특별기획 ‘한국바둑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이후,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는 ‘내일은 스타’ 코너가 2019년 3월호부터 신설됐다. 오호대장군의 선두 주자 신진서 九단은 한국랭킹 1위로 등극했고, 신민준·변상일·이동훈 九단이 각각 3~5위에 포진하는 등 맹활약하며 한국바둑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내일은 스타’의 주인공 또한 장차 중국과의 치열한 대결의 선봉장 역할을 충실히 하길 독자 여러분과 함께 기원한다.



‘크라운 송’  이제는 세계대회 우승이 목표!

누구에게도 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공격력의 소유자, 언제나 제 역할을 꾸준히 하며 한국바둑의 든든한 허리층으로 성장해온 송지훈 五단이 드디어 첫 타이틀을 따냈다.

크라운해태배는 제한기전으로 불리지만, 제1기 우승을 박정환·신진서가 다퉜고 랭킹 10위권 내 6~7명이 출전해왔던 사실상 종합기전급 대회다. 올해도 한국랭킹 3위 신민준 九단, 4위 변상일 九단 등이 출격해 우승을 노렸으나 정상을 차지한 건 ‘크라운 송’ 송지훈 五단이었다.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은 송지훈 五단을 만났다.


 

- 입단 후 첫 우승이라 소감이 더욱 남다를 것 같다.
물론 기뻤지만 크라운해태배 우승이 최종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작년에 (박)하민이가 우승한 당일에 같이 ‘치맥’을 했다. 맥주 한 잔을 하며 소감을 물어보니 하민이가 생각보다 별 거 없다고 그러더라. 저도 우승해보니 사실 딱히 달라진 게 없다(웃음). 기분은 물론 좋다. 기분 좋은 느낌은 오래가긴 할 것 같다.

- 우승하기까지 고비가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 대회는 첫 판 허서현 初단과의 대결부터 시작해서 한 판도 빠짐없이 모두 역전승이었다. 평소에 ‘운이 좋아서 이겼다’는 식의 말은 좋아하진 않는데, 이번 대회에선 진짜 운이 많이 따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눈물, 그리고 동료(feat. 박하민 七단)
송지훈 五단은 평소에도 또래 프로기사 중 감성적인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는데, 결승3국이 끝나고 인터뷰를 할 때 울먹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결승3국 인터뷰 도중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이 났다며 마음 짠했던 순간으로 꼽았는데,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나?
제가 평소에 잘 우는 편은 아닌데 1국을 지고 나서 좀 울었던 기억이 있다. 결승에 대한 압박,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걸 견뎌내지 못했다. 1국은 내용이 너무 안 좋아서 바둑을 둘 때는 어느 순간부터 ‘2국을 잘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승패에 대한 생각은 비우고 뒀다. 국후 복기하고 인터뷰 할 때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게 집에 도착해서야 시쳇말로 ‘현타’가 왔다. 집에서 혼자 울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국가대표 박정상 코치님, (박)하민이 등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 어떤 내용의 메세지였나?
하민이가 “그게 뭐냐”면서 “정신 차리고 후회 없이 둬”라고 말해줬다. 결승전인데 후회 없는 바둑을 둬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였는데 평소 가장 친한 친구(박하민 七단은 작년 크라운해태배에서 박정환·나현 九단을 연파하고 우승했다)로부터 듣는 조언이기도 해서 더욱 힘이 났다. 언급한 두 명 외에도 많은 기사들이 격려해준 덕분에 2국과 3국은 내 바둑을 둘 수 있었다. 실제로도 2국을 두기 위해 대국장에 앉았을 때, 바둑판이 1국 때와 아예 달라보였다. 1국을 둘 때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만약 동료기사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아마 2국도 허무하게 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 눈물을 보인 후에도 우승소감은 멋졌는데, 준비된 멘트였나?
마지막 멘트는 준비했던 게 맞다. 결승2국이 끝난 날 산책 하면서 노래를 들었는데 가사 중에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럼블피쉬의 ‘으라차차’라는 곡인데, “나는 법을 잊어버렸다 해도 내일 향해 걸어가는 이 길이 언젠가는 더 커다란 날개가 되어 줄테니”라는 가사였다. 인터뷰에서는 “화려하게 날기보다는 꾸준하게 달려가는 기사가 되겠다”고 얘기했다.

- 뉘앙스의 차이가 약간 느껴진다. 그 멘트는 어떤 의미였나?
사실 냉정하게 얘기했을 때, 저는 (신)진서처럼 화려하게 날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진 못하다. 저한테 재능이 있다면 꾸준하게 노력하는 재능이 전부다. 화려하게 날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하게 달려가겠다는 의미였다. KB리그 화성시코리요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원성진 九단 같은 선배 기사처럼 결국 세계대회 우승까지 이뤄내는 기사가 되고 싶다.

▲ 결승2국에서 특유의 공격력으로 이창석 五단의 대마를 포획하며 역전 우승의 발판을 마련한 송지훈 五단.



- 특별히 친한 기사들이 있다면?
박하민 七단, 박건호 四단, 송규상 四단 등 98년생 호랑이띠 동갑내기 기사들과 모두 친하다. 국가대표 훈련을 함께 하는 기사들과는 나이로 두세 살 위아래까지 다들 친하게 어울린다. 훈련시간 외에도 함께 운동도 하고 가끔은 술도 한 잔씩 한다.

- 바둑은 사실 굉장히 개인적인 경기다. 1국 패배 후 ‘멘탈’을 잡는 과정에서 가족뿐만 아니라 동료 기사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바둑은 개인전 요소가 워낙 강해서 사실 동료애 같은 게 있기 어려운 종목이긴 하다. 친구가 좋은 성적을 내면 배 아파하고(웃음). 그러다보니 속마음을 친한 친구에게도 잘 털어놓지 못할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저 역시 동료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데… 제가 우승한 것 자체가 하나의 자극제 혹은 기폭제가 되길 기대해보고 싶다. 저랑 두면 자신 있어 할 기사가 많은데, 그 친구들이 “송지훈도 우승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제 또래 기사들이 선의의 대결을 펼치며 점차 성장해간다면 중국과의 대결에서도 지금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걸로 본다. 

- 김해에 계신 부모님과 고향 자랑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태어난 건 경상남도 창원인데, 8살이 되던 해부터 김해로 넘어왔다. 김해에서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을 하셨고 아버지는 기원과 바둑학원을 하신 게 벌써 20년째다. 김해에 가면 아버지가 운영하는 바둑학원에 가서 아이들과 바둑을 둬주고, 기원에 가서 아저씨들과도 종종 대국한다. 그러다보니 제가 우승했을 때 아버지 기원으로 축하 화환을 보내주신 기원 단골손님도 계셨다.

- 우승이 확정된 순간 김해 기원이 난리가 났겠다.
아버지는 조금 무뚝뚝한 편이라 특별히 그런 말씀은 없었는데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웃음)

▲ 송 五단은 결승3국을 승리로 이끌며 입단 후 첫 타이틀을 따냈다(관련상보 112쪽).


#국가대표 유일무이한 모범상 수상자

송지훈 五단은 2015년 1월 16일 입단한 후 그해 2월 곧바로 육성군으로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그 당시 갓 입단한 박하민·최재영·박건호·안정기 등이 국가대표 육성군 초창기 멤버들이었다. 당시 육성군 리그전은 굉장히 치열했고, 지금 상비군으로 ‘업그레이드’한 이 기사들은 현재 바둑리그 3~5지명에 분포된 한국바둑의 허리층으로 성장했다. 이중에서도 송지훈 五단의 ‘노력하는 재능’은 낭중지추처럼 빛났으니, 국가대표에서 딱 한 번 시행됐다 사라진 모범상의 수상자가 바로 송 五단이다.

- 지금은 없어진 국가대표 모범상의 처음이자 마지막 수상자로 알려져 있는데.
제 입으로 얘기하긴 조금 쑥스럽지만(웃음), 국가대표 코치진에서 저한테 상을 준 이후에는 ‘모범상’을 줄만한 사람이 딱히 없다며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사실 국가대표 상비군에 소속되면 매일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쉽지는 않다. 저는 바둑 공부 하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즐겁다.

- 인공지능이 나온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개인적으로는 자신감이 약간 하락했다. 인공지능 나오기 전에는 누구랑 둬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둔 바둑을 인공지능을 통해 복기 받아보면 혼날 때가 너무 많다. 예컨대, (박)하민이 바둑을 찍어보고 제 바둑을 찍어보면 제가 훨씬 더 많이 혼난다. 저는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두는 기풍인 반면 하민이는 정수 위주로 두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고수인 건 사실인데, 자꾸 혼나다보니 자신감이 조금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 같다. 혼날 수밖에 없는 기풍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다르게 보면 앞으로 성장할 게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열심히 노력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 앞으로의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다.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달려가는 건 자신 있는 만큼 언젠가는 그날이 오지 않겠나.

<인터뷰/이영재 기자>
 

▲ 우승을 확정지은 후 소감을 밝히던 중 송지훈 五단이 눈물을 보였다. “동료 기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우승”이라고 말하며 목이 메었던 송 五단.

▲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달려가는 건 자신 있다"는 송지훈 五단의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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