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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맛집/ 강동윤 편  

등록일 2020.11.272,252

강동윤 9단
강동윤 9단


제4화  신당동 진성한우곱창

반상의 외계인. 이런 희귀한 별명을 가진 기사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최근에 잘 쓰이지 않지만 오랫동안 이 기사를 지켜본 기자로서는 이보다 적절한 별명을 찾지 못했다. 대개 ‘깡통’으로 부르나 이름을 축약한 애칭에 불과하다. 강동윤 九단의 내면에는 정(正)을 역행하는 오묘한 무언가가 있다.

평상시에 그는 조신하다.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심지어는 여성스런 느낌마저 풍긴다. 하지만 내면에 잠재돼 있는 ‘무언가’는 그의 바둑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천재적인 감각을 소유하고 있으나 결은 사파(邪派)에 가깝다. 격투기의 주짓수처럼 타격보단 비틀어 꺾는다. 절대 의도대로 순응하지 않는 탓에 항상 돌이 얽히고설키는데,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진흙탕 속에서 그의 시력은 몇 배로 밝아진다. 교묘하게 아픈 급소만 후비고 들어오는 통에 초일류 기사들도 그와 바닥을 뒹구는 육탄전은 절대적으로 회피한다.

벼르던 중 기회가 왔다. 올 농심신라면배 와일드카드를 받으며 한국 대표팀에 합류한 것. 국내선발전 결승에서 박정환 九단에 반집 역전패를 당한 상황이 참작됐다. 섭외의 명분이 주어졌다.  

과연 그는 어떤 식성을 가졌을까. 평상시 느낌처럼 깔끔하고 예쁜 집에서 수줍게 파스타를 말자고 할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곁들일 수도.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하지만 강동윤 九단의 선택은 럭셔리와 거리가 먼 평범한 동네 곱창집이었다. 신당동 진성한우곱창을 선정한 이유를 묻자 세 가지를 꼽았는데, 1. 집에서 가까워서 2. 얼마 전 지인과 와봐서 3번이 특히 중요하다고 했는데 ‘가성비가 좋아서’였다. 아뿔싸, 가성비라니. 허를 찔렸다.

신당동에 위치한 진성한우곱창은 신당역 7번 출구로 나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초역세권 식당이었다. 저녁 시간에 가면 한참 줄을 서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점심으로 약속을 잡았다. 24시간 영업하므로 원하는 시간대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주차공간이 없는 부분은 아쉬웠다. 특히 저녁 시간대는 신당동 떡볶이 손님으로 주차가 더 어렵다고 하니 유의할 것.


기자: 어딘가 했더니 떡볶이 골목 바로 옆이군요~ 저도 멀지 않은 곳에 살아서 가끔 이쪽으로 떡볶이 먹으러 오곤 했습니다.
강동윤: 맞아요. 신당동 하면 떡볶이가 젤 유명하지만 제가 별로 즐기지 않아서요. 얼마 전에 지인이랑 여기서 곱창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곳을 추천했어요.        

기자: 지인이라면 혹시 프로기사인가요?
강동윤: 아실 수도 있어요. 김지석 九단이라고….

기자: 아~ 제가 인터뷰를 12번 정도밖에 못 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표지도 몇 번 안 나오셨고요. 어렴풋이 왕십리 센트라스에 산다고 들었는데 서로 동네 주민인 건가요?
강동윤: 그쪽은 성동구고 저는 중구니 엄연히 다른 지역이긴 한데요. 걸어서 10분 이상 걸리긴 하지만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그래요. 한 1년에 50번 정도?

기자: 그 정도면 저처럼 얼굴이 헷갈릴 정도는 아니겠네요. 지난번 만났을 땐 어떤 메뉴를 드셨나요? 그때 두 분이 시켰던 메뉴를 재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강동윤: 그때… 곱창모듬에 한우곱창이랑 해서 3인분을 시켰던 거 같아요. 후식으로는 멸치국수랑 깎두기철판양밥으로 살짝 입가심을 했고요.

기자: 두 분 다 체격에 비해 제법 걸출한(?) 위를 지니셨군요?
강동윤: 원래 마른 고추가 맵다잖아요. 헤헤.

기자: (메뉴판을 보며)그런데 이거 정말 소곱창 맞나요? 가격으로는 오탈자가 아닌가 싶은데….
강동윤: 오늘의 콘셉트는 가성비라고 했잖아요. 많이많이 드세요. 제가 사는 건 아니지만.^^



소곱창모듬 1인분이 1만5000원. 한우곱창도 1만 5000원이다. 양도 220g으로 적은 편이 아니다. 특 등급을 받은 한우곱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가격대. 알고 보니 산지곱창가격이 내려서 판매가격도 1만7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내렸다고 한다. 원가가 떨어졌다고 소비자가격도 함께 내리는 곳은 처음 봤다. 사장님 양심도 특 등급이다.

가격은 확실히 착한데 맛은 어떨까. 커다란 불판 위에 모둠 1인분과 곱창 1인분이 함께 담겨 나왔는데, 곱창과 채소 모두 푸짐하다. 소곱창이란 본디 양이 적어 술안주로 곁들여 먹는 종목 아니던가. 하지만 2인분임에도 한판 가득 들어찬 곱창의 양은 한 끼 식사로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속된 말로 ‘미친 가성비’였다.


기자: 이게 정말 한우곱창 맞나요? 1만5000원이라고 해서 솔직히 쥐꼬리만큼 나올 줄 알았는데… 이건 보통 1인분보다 양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강동윤: 저도 처음 왔을 땐 의심스러웠는데 줄 서서 먹는 사람들이 아직 신고하지 않은 걸 보면 맞는 거겠죠.
기자: 곱창에 곱도 제법 들어차있고… 특유의 냄새도 안 나는 걸 보면 세척과 연육 작업도 제대로 한 것 같아요. 솔직히 맛은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이네요.

강동윤: 형세판단 하는 느낌으로 냉정하게 말하면 다른 곳보다 크게 맛있다고 할 순 없지만 가격이 2배쯤 저렴하니 평점 50점에 ×2를 해주고 싶어요. 보통 소곱창은 주머니가 가벼울 땐 부담스러워서 망설이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언제나 먹고 싶을 때 들어와서 먹고 싶은 만큼 주문할 수 있는 곳이라 최고의 동네 맛집이라 생각해요.
기자: 그럼 이곳의 강점인 ‘가성비’를 체험해보기 위해 대창도 한 번 주문해볼까요?

강동윤: 이미 메뉴판을 준비해두고 있었지요. 헤헤.
기자: (주문을 한 뒤)자~ 그럼 대창이 준비될 동안 배도 꺼뜨릴 겸 토크를 좀 해볼까요? 요즘 근황 얘기부터 해주세요~

강동윤: 음, 요즘은 대국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던 거 같아요. 이제 곧 세계대회들이 시작이잖아요. 일정에 따라 컨디션을 조절하며 준비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맛집 탐방도 자제하면서.^^
기자: 평소 맛집 탐방을 많이 다니시나 봐요?

강동윤: 저는 맛집을 잘 몰라서 맛집을 잘 아는 멤버들 사이에 스며드는 편이에요. 이곳도 지석이가 소개시켜 준 집이고요. 개인적으로는 한식 메뉴, 그 중에서도 순대국을 좋아해요.
기자: 순대국이요? 평소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군요.

강동윤: 의외로 먹으면 배탈 날 것 같은 걸 잘 먹어요. 쫄깃쫄깃한 식감을 좋아해서 찰순대와 내장을 즐기죠. 보통 토종순대가 좋다고들 하는데 저는 거들떠도 안 봐요.
기자: 독특한 취향이네요. 내장을 좋아하시면 곱창은 ‘최애’ 음식 중 하나겠군요.

강동윤: 곱창을 좋아하긴 하는데 가성비가 중요해요. 전에 나현 九단에게 밥을 살 일이 있어서 별 생각 없이 ‘오발ㅇ’이란 곳에 갔는데 대창 몇 점 먹었더니 15만원이 나왔어요. 맘 상해서 당분간 대창은 안 먹기로 다짐했는데 이곳에 왔더니 대창을 10인분 먹어야 15만원이더라고요. 그 뒤로 다시 대창을 잘 먹고 있습니다.
기자: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 나현 九단이 너무했네~ 그냥 밥 살 일을 가지고 ‘오발ㅇ’에 가다니. (대창 등장) 오늘은 대창 실컷 드세요. 사장님~ 여기 양도 하나 추가요!

▲양대창 2인분. 터질 것 같은 대창의 속살이 군침을 유발한다. 가격도 대창 1만5000원+양 2만원 = 3만5000원에 불과해 ‘양대창은 비싼 음식’이라는 공식을 깼다.



강동윤 九단은 양대창을 아주 잘 먹었다.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으로 사르르 녹는 식감이 대창의 매력. 양은 일반적인 조리 시간보다 약간 더 익혀서 꼬들꼬들하게 먹는 식감이 좋단다. 양의 단점은 양이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곱창과 마찬가지로 양대창도 어지간한 집보다 훨씬 싼 가격이라 언제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점이 이 가게의 최대 강점이다.

양대창을 깨끗이 비운 강동윤 九단은 ‘디저트’로 멸치국수와 깍두기철판양밥이 필수라 말했다. 곱창을 먹은 후 느끼한 기름을 담백한 멸치국수로 꼭 씻겨줘야 한다고. 덧붙여 이곳은 멸치국수집을 해도 성공했을 거라 말했다.


기자: 캬~ 멸치국수 국물이 끝내주네요. 솔직히 디저트는 좀 오버가 아닌가 싶었는데 메인(?)을 안 먹을 뻔했네요. 혹시 멸치국수도 김지석 九단의 추천이었나요?
강동윤: 그건 아니고 제가 별 생각없이 시켰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미처 김지석 九단에게 먹어보라고 말할 새도 없이 다 먹어버려서 김 九단은 멸치국수 맛을 모를 거예요.

기자: 김지석 九단이 이 기사를 보면 조금 치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강동윤: 어쩔 수 없죠. 맛집의 세계는 냉정하니까요.

▲후식메뉴인 멸치국수.강동윤 九단은 곱창을 먹은 후 '필수메뉴'라며 멸치국수를 극찬했다.



기자: 자, 후식도 든든하게 드셨으니 토크를 이어가볼까요. 올 초반에는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8월 이후 12승 3패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얼마 전 농심신라배 와일드카드로 지명되기도 했고요. 부활의 전조로 봐도 될까요?
강동윤: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는데 박정환 九단에게 반집 지고 다시 지하로 떨어진 것 같아요. 유리했던 적이 많은데 못 끝내고 반집 지니까 타격이 좀 컸어요.

기자: 박정환 九단과의 농심신라면배 국내선발 결승 말이군요. 박 九단과는 절친으로 아는데 그렇게 이겨가면 아무리 친해도 서운했겠어요.
강동윤: 그렇다 해도 때릴 순 없으니까요.^^ 박정환 九단은 바둑이 세니까 복기하면서 최대한 얻을 건 얻고 나중에 밥도 얻어먹어야죠.

기자: 역시 그쪽에서도 ‘가성비’를 중시하는군요. 신진서 九단이 최근 선두로 치고 나오고 있는데요. 나이 차이는 있지만 라이벌 의식을 느끼나요?
강동윤: 정환이랑 신진서 둘은 천상계라 넘볼 수 없는 위치예요. 아무리 물고 뜯어도 이가 박히질 않는 달까요. 그 아래 인간 최강계에서 서로 위에 서겠다고 티격태격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중이죠.

기자: 신진서, 박정환은 클래스가 다르다는 거군요. 그럼 인간 최강계는 누가 있을까요?
강동윤: 신민준, 변상일, 이동훈, 김지석, 컨디션 좋은 동윤이 정도? 이쪽은 거의 진흙탕 싸움이라 보면 돼요. 천상계는 그 위에서 고고하게 선문답을 나누며 놀고 있고.

기자: 세계 챔프 출신의 겸양으로 듣겠습니다. 요즘도 별명이 ‘깡통’인가요? 과거 이 별명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고 했었는데요. “발로 차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반항하는 게 나와 비슷하다”면서요.
강동윤: 만족스런 별명이었는데 최근엔 듣기 힘들어졌어요. 대국하는 기사들 대부분이 저보다 어려져서… 어딜 가나 ‘사범님’ 소리만 들어서 속상해요. 농심배도 전엔 막내급이었는데 지금은 ‘맞형’이라 불리더라고요. 

기자: 농심배 한국 대표 중 강 九단이 맞형이었다니, 저도 몰랐네요. 정말 세월이 야속합니다. (^^;) 저녁이었으면 술이라도 한잔 따라드렸을 텐데. 그러고 보니 술은 잘 하세요?
강동윤: 잘 하진 못하고 즐기는 편이에요. 주량은 1병 반정도?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집밖을 못 돌아다니니까 온라인 술자리를 즐기고 있죠.

기자: 온라인 술자리요? 그게 뭔가요?
강동윤: 만나서는 못 마시니까 채팅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거죠. 주로 ‘혼술’을 좋아하는 기사들끼리 그러고 노는데, 무 안주로 마시다 보니 안 취할 수가 없어요. 취하면 상대방이 답장이 없어져요. 그럼 혼자 10줄 정도 쓰다가 “잘 자라”고 하고 끝내는 거죠.

기자: 술자리도 비대면으로 스마트하게 하시는군요. 그럼 AI시대 강 九단 본인 바둑의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끈질기게 버티는 힘?
강동윤: 나이는 먹었지만 집중력 하나로 버티고 있어요. 몰아일체(沒我一體)라 할까요. 사람들은 저보고 타개를 잘 한다고 하는데 자기 목숨이 간당간당하면 대충하겠어요?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치겠죠. 바둑 둘 때는 누구보다 제가 가장 열심히 둔다고 생각해요. 실력이 약해서 티는 잘 안 나지만.^^
 
기자: 조치훈 九단의 “목숨 걸고 둔다”는 대사가 떠오르네요. 이건 미처 몰랐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길 하시면서 볶음밥을 다 긁어드셨군요.
강동윤: 헤헷. 방심하시면 안 되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기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각오와 목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동윤: 요즘 중국에 많이 밀리는 데도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위해 힘내 보겠습니다. 목표는 이곳 곱창처럼 가성비 좋은 기사로 남는 거예요. 바둑리그에서 1지명으로 단명하느니 최강의 2지명으로 예쁨 받으며 장수할 생각입니다. 그러다 욕이 나올 때쯤 세계대회 하나 우승해서 바둑 팬들을 놀래켜주는 멋진(?) 기사가 되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인터뷰/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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