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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등록일 2021.08.041,036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윤종원 IBK기업은행장

코로나19라는 긴 장마 속, 단비 같은 소식이 바둑계 전해졌다. 
하림배의 ‘여자국수전’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에 이어 ‘여자마스터스’가 탄생한 것. 
총규모 1억5000만원, 우승상금도 3000만을 포함한 총상금 규모는 여자 개인전 사상 가장 큰 액수다.  
기업은행이 바둑대회를 창설한 이유는 비인기 스포츠 종목 후원과 꿈나무 육성 차원의 
유망선수 지원 방침에 따른 것이다. 윤종원 행장 개인적으로도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윤종원 행장의 기력은 강(强) 2급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최정 九단과의 만남 때 
바둑국가대표와 ‘절예(세계 최강 바둑AI)’에 대해 질문할 만큼 지식도 풍부하다. 

6월 14일, IBK기업은행배 여자바둑마스터스가 3개월 여정의 첫 발을 내디뎠다. 개막을 기념해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을 만나 대회 창설 계기와 목적을 물었다.  

- 기업은행이 바둑과 손을 잡은 것은 처음인 듯싶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 최고를 다투고 있는 바둑 종목에 후원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바둑은 논리적인 사고가 필요한 멘탈 스포츠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피지컬한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두고 있는 바둑이 기업은행과 첫 연을 맺게 되어 반가울 따름입니다.”  

- 첫 바둑대회로 여자 개인전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70, 80년대에는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현재는 바둑의 저변이 넓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남자 선수층은 ‘신공지능’이라 불리는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 선수 등이 있어 층이 두터운 편이지만 여자바둑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고요. 지난번 최정 선수를 만났을 때 많은 여자선수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여성 바둑의 저변을 넓히고 미래의 최정 선수가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대회를 창설했습니다.” 

- ‘신공지능’이란 신진서 九단 별명을 아시는 걸 보면 바둑에 관심이 많으신 듯합니다. 
“어릴 때 바둑을 배운 바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2급 정도 두셨는데, 처음에는 새까맣게 깔고 두었는데 한 점, 한 점 내려가서 정선까지 가고 나중에는 제가 백을 잡고 두었지요. 초등학생 때는 천천히 늘다가 대학생 때 많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1학년인 1980년에 휴교를 했는데 바둑책을 사서 집에서 한 판 한 판 놔보곤 했지요. 그때 놔보던 책이 여기 이 「名人戰全集」입니다.”
- 「名人戰全集」이라면 바둑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했던 일본 고서(古書)인데요. 지금까지 소장하고 계신 걸 보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셨나 봅니다.  
“책장에 꽂혀 있길래 가져와 봤습니다. 옛 생각도 나고요. 故조남철 선생님의 편저가 맞지요? ‘면도날’ 사카다 九단, ‘우주류’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 등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고수들의 기보를 따라 가만히 따라 놔보고 있자면 그때는 왜 그렇게 마음이 편했을까요.” 

▲일본 고서(古書) 「명인전전집(名人戰全集)」을 펼쳐들며 “너무 오래돼서 노랗게 바랬습니다”라고 말하는 윤종원 행장. 대학 시절 추억이 깃든 이 책은 당시 바둑 마니아라면 누구나 서재에 한권씩 모셔놨던 인기 서적이었다.


- 최근에도 바둑을 즐기시는 지 궁금합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직접 두지는 못하지만 유튜브로는 곧잘 봅니다. 요즘 유튜브가 워낙 재밌게 잘 나오다 보니 신진서-커제 대국이나 최정 선수의 바둑을 짧게 요약된 영상으로 관전하고 있습니다.”  

- 혹시 최정 九단 팬이신가요?
“네, 최정 선수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예전 이세돌 선수가 두듯 바둑을 둬서요. 보는 입장에서 참 재밌습니다.” 

- 남자 기사 중엔 이세돌 九단 바둑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취향이 계속 변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보기에는 싸움바둑이 재밌지만, 옛날 애기가 중 이창호 九단 팬 아닌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때는 돌부처 같이 두텁고 진중한 바둑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기재부에 있을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는데요. 이에 어떤 정책 기조로 대응할지 경제정책을 만들어 기자들에게 설명할 때 ‘지금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바둑으로 치면 두텁게 두어야 할 때’라고 인터뷰 한 기억이 있습니다. 두터움의 가치라는 게 정말 알기 어려운데, 한결같이 두터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이창호 九단의 바둑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80, 90년대는 바둑의 전성시대였다. 제1회 응씨배를 우승하며 한국 바둑을 세계에 알린 조훈현 九단부터 중국과 일본을 ‘공한증’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절대 강자 이창호 九단까지. 윤종원 행장도 그 시절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바둑 팬 중 한 명이었다. 당시 「名人戰全集」은 소위 ‘찐’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증표나 다름없었다.   
그때는 이창호의 ‘두터움’을 추종하다 근래 들어 이세돌, 최정 九단의 스팩타클한 ‘힘바둑’을 즐기는 걸로 보아 윤 행장은 트랜드와 시류에 밝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 바둑계로선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기업은행이 어떤 연유에서 바둑 후원을 결정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IBK기업은행의 기본적인 스포츠 후원 기조가 비인기 종목을 후원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골프 같은 인기 종목은 잘 후원하지 않고요. 여자 배구, 사격처럼 저변이 얕거나 유망선수, 꿈나무 육성에 초점을 맞춰 지원을 결정하곤 합니다. 스포츠들은 각기 다 장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 있는 좋은 종목들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자배구단, 사격 등 비인기 스포츠 종목들을 후원하고 있는 IBK기업은행은 여자바둑마스터스가 바둑의 저변을 넓히고 흥행의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 지난해 ‘코로나19’가 갑작스레 들이닥치며 바둑계도 한 차례 휘청거린 바 있는데요. 감염병이 길어지며 국책은행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습니다.  
“팬데믹 사태는 전 세계적인 재난이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코로나19 위기극복에 기여하고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유동성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창업육성플랫폼 ‘IBK 창공’을 통해 창업기업 육성과 혁신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또 ‘일자리 창출 10만명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중소기업 일자리를 매칭하고, ‘IBK BOX’ ‘i-ONE 소상공인’ 등 소상공인을 위한 맞춤형 디지털 경영지원 플랫폼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힘든 시기 어려운 기업들과 소상공인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재난이 끝날 때까지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책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 비인기 스포츠 지원과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IBK기업은행의 역할과 기조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다시 대회 이야기로 돌아가, 이번 대회에서 혹시 성적을 냈으면 바라는 기사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마 최정 선수가 잘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유진, 김채영 선수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것은 유망주인 김은지 선수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린 선수가 큰 실수를 했지만 이미 반성과 자숙을 하고 있으니 잘못을 딛고 일어나 하루 빨리 재기할 수 있길 바랍니다.” 

- 언급하신 김은지 선수의 예처럼, 바둑계는 알파고(AlphaGo) 등장 이후 급성장한 바둑AI로 인해 발전과 성장통을 동시에 앓고 있는데요. 바둑계에서 AI(인공지능)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은행에서도 인공지능을 통해 여러 업무들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둑도 인공지능이 들어오면서 사람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절예(중국AI)’나 ‘카타고(미국AI)’ 등 최상위 레벨의 바둑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수를 보고 있자면 ‘사람이 과연 둘 수 있는 수일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실제로 절예는 인간 최고수들을 2점에도 이기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바둑은 결국 사람이 두는 것입니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문제들에 연연하기보단, 인공지능이 제시한 수들을 활용해 바둑의 새로운 길을 계속해서 개척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봅니다.” 

바둑에 대한 윤종원 행장의 애정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됐다. 에피소드가 있는지 묻자 돌아가신 선친과 바둑판에 25점 흑돌을 가득 채우고 뒀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고. 판 위에 깔린 돌을 하나씩 없애고 싶어서 그리 열심히 기보를 보고 공부했었다며 입가에 미소를 띠운다. 기력을 묻자 1급은 어렵지만 2급에서는 자신 있는 편이며 프로기사와 대국한다면 넉점에 대국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 며칠 전 대회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 진출자가 가려졌습니다. 쟁쟁한 여자 기사들 사이에 아마추어 기사 한 명이 경쟁을 뚫고 본선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아마추어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대회를 만들면서 바둑을 공부하는 모든 여자 선수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프로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더라도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길 바랍니다. 사실 상금도 다른 기전들보다 높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우승 선수 외에 다른 선수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조금 더 두텁고 포용적인 대회를 만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기력(棋力)이 높으신 만큼 안목도 남다르신 듯한데요. 행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둑의 장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집중력과 논리적 사고를 향상시켜주는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둑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승리를 탐하기 마련이지만 단계가 올라가면 관조(觀照)를 배울 수 있거든요. 높은 산에서 세상을 바라보듯 반상을 살펴봐야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돌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 ‘사석작전’은 대단한 기술이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현실에서는 작은 이득 때문에 대세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특히 신진서 선수가 이 작전을 잘 써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신진서 선수의 가치판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인데요. ‘사석작전’의 비유가 재밌습니다. 혹시 바둑의 그런 요소들을 현실에 적용하는 예가 있으신지요. 
“바둑을 보면 절로 인생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이란 말이 있지요. 바둑은 흐르는 물처럼 선후를 다투거나 욕심내지 말아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데, 이는 제가 좋아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뜻과 상통합니다. 공직생활 36년 동안 되새기며 작은 것을 다투지 말고 큰 흐름을 짚으려 노
력하고 있습니다.”
- 2021 IBK기업은행배 여자바둑마스터스가 예선전을 끝마치고 본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선수들에게 격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한국 선수들은 방향성이 주어지면 굉장히 치열하고 열심히 잘 합니다. 인구가 14억에 이르는 중국과 겨루어도 밀리지 않고 최근에는 더 나은 기량을 보이고 있잖습니까? 이 대회를 통해 실력 있는 여성 기사들이 많이 배출되어 비단 남자 기사뿐 아니라 여자 바둑도 세계를 호령할 수 있길 바랍니다.”

- 끝으로 이제 첫 발을 뗀 대회의 향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첫 기전을 국내대회 할지 세계대회로 만들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현재 여자 기전으로 하림배 국수전과 한국제지 기성전, 그리고 바둑리그도 있으니 거창한 것보다는 꾸준하게 바둑의 저변이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이제 1회를 시작했는데 IBK기업은행이 지속적으로 대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바둑을 포함한 비인기 스포츠 종목들이 힘을 얻고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책은행으로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IBK기업은행배 여자바둑마스터스 대회 조인식에서 여자랭킹 1위 최정 九단이 윤종원 행장에게 사인반을 전달했다. 윤 행장은 전투에 능한 최정 九단의 바둑을 유튜브로 즐겨본다고.


<글/김정민 편집장, 사진/이시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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