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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국제지 여자기성전 우승자 최정  

등록일 2019.01.231,381

▲ 피아노에도 조예가 있는 다재다능한 최정 9단.
▲ 피아노에도 조예가 있는 다재다능한 최정 9단.


“어떡하죠? 최정 九단은 워낙 자주 봐서 더 물어볼 말이 없는데요.”

12월 3일 열린 제2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시상식장에서 우승자 최정 九단이 단상에 오르자 진행을 맡은 한해원 三단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올 10월 하림배 여자국수전, 11월 초 궁륭산병성배를 우승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기성전마저 우승한 탓에 질문이 고갈된 것이다.

라이벌? 취미? 목표? 이미 한두 달 전 다 물어보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정도 고민은 월간『바둑』에 비하면 양반(?)에 불과했으니… 월간『바둑』은 2017년 3월호, 2018년 3월호, 10월호에 이어 2019년 신년호까지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 최정 九단을 무려 4번째 커버스토리로 모시게 됐다. 질문 몇 개가 아니라 짧게는 4페이지, 길게는 6페이지 인터뷰가 나가야 하는데 1년 남짓한 세월 변해봤자 무엇이 그리 변했겠나.

편집팀이 모여 긴급회의를 가졌으나 뾰족한 콘셉트가 떠오르지 않았다. 환장할 노릇인 게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책을 뒤져보면 중복되지 않는 질문이 한 개도 없었다.

모두가 지쳐갈 무렵 필자가 말했다. “물어볼 것도 없는데 그냥 먹방이나 찍죠?”

그 한마디에 커버스토리 담당자가 결정됐다.
독서, 피아노, 농구, 음악…. 최정 九단은 바둑 외에도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키만 조금(?) 더 컸으면 농구선수가 되었을 거라 말하는 그녀. 보너스로 위 QR코드에 최정 九단이 실제 피아노 치는 모습을 올려놓았으니 감상해 보시길.


 


12월 중순, 눈이 하늘을 가득 메우던 어느 날 최정 九단과 한 식당 앞에서 만났다. 

 어서오세요, 최 사범님. 지난 커버스토리 이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그래봤자 얼마 안 된 것 같긴 하네요.(웃음)

 혹시 이곳 상왕십리역 ‘00식당’을 추천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한국기원에서)가까운 게 크고요. 요즘 꼬막이 먹고 싶어서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거든요. 전에도 와본 적 있는데 줄이 길어서 여태 못 먹었어요.

 그럼 맛집을 추천했다기보단 평소 먹어보고 싶었던 곳을 온 거네요?

 맞아요. 가깝기도 하고요. 근래 시합이 많아서 좀 쉬고 싶었거든요. 

한참 수다를 떠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최정 九단은 ‘00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꼬막비빔밥’을, 기자는 해물뚝배기를 주문했다. 벌교에서 잡았다는 꼬막이 매콤한 양념과 버무려져 한 접시 가득 나오자 목젖이 자동으로 꿀렁였다. 최정 九단에게 요즘 유행하는 ‘이영자식’ 맛 표현을 요청했다.


 


 일단 비주얼은 마음에 쏙 들어요. 맛이 없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한 숟갈 입에 넣으며) 음, 바다의 향과 풍미가… 왠지 이런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웃음) 진짜 쫄깃쫄깃해요. 기대했던 바로 그 맛이에요!

 음식도 나온 김에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우승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자기성전은 제가 우승해보지 못한 대회라 꼭 정상에 오르고 싶은 대회여서 너무 뿌듯하고요. 대회를 후원해주신 한국제지와 응원해주신 바둑 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밥 먹으면서도 술술 나오네요? 베테랑 다 됐어요?

 헤헤. 맛있어서 그런가 봐요. 

 평소 어떤 맛집을 즐겨 다니는 편이세요?

 음, 기자님 혹시 고수 좋아하세요? 

 중국이나 태국음식에 주로 쓰이는 풀 말씀하시는 거죠? 아주 질색팔색 합니다. 

 저도 처음엔 아예 못 먹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자꾸 ‘맛있는 거다’ 소리를 듣다보니 어느 순간 세뇌가 됐는지 진짜 맛있는 거예요. 쌀국수는 원래부터 좋아했는데 쌀국수에 고수를 넣어먹는 걸 진짜 좋아해요!

 그럼 중국에 가서도 꽤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겠는데요? 혹시 최근 궁륭산병성배 2연패도 고수의 영향이? 

 하하. 그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추천하고 싶은 맛집은 한국기원 근처에 있는 ‘팜00 쌀국수’집이에요.

 아하~ 맛집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도 나온 적 있는 그 쌀국수집이군요? 물론 ‘수요미식회’보다는 한국기원에서 가까운 것이 더 크게 작용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만. 

 눈치가 좀 있으신데요?(웃음)

푸짐하게 접시를 가득 메웠던 꼬막비빔밥도 어느덧 맨바닥이 드러났다. 뚝배기 속으로 들어간 기자의 숟가락도 점차 공회전 빈도가 높아졌다. 떠날 시간이 온 것이다. 자리를 옮겨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카페00’으로 들어갔다.


 


 원래 커피는 잘 안 드세요? 아니면 유자차를 좋아하시는지 건지. 

 아,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안 와서요. 학생 때는 잘 마셨는데 이상하게 성인이 된 이후부터.(웃음)

 그럼 케이크라도 하나 드세요~

 헤헤,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럼 티라미수로….^^

 평소 단걸 즐기시나봐요? 

 좋아는 해요. 그런데 많이는 못 먹어요. 속이 안 받아서.(ㅠㅠ)

 저런. ‘잠만보’라는 별명도 몸이 안 좋아서 수시로 픽(?) 쓰러져 자는 바람에 생긴 거라고 들었는데. 

 네. 제가 선천적으로 몸이 좀 약한 편이에요. 그래서 맛집도 많이 다니고 싶고 배낭여행도 가고 싶은데 아직 제대로 가본 적이 없어요.
 아… 가까운 곳을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었구나. 올해는 특히 살인적인 대국수(97국)를 소화하시느라 더욱 그러셨겠네요. 이제 올해는 모든 여정을 마치셨는데 재충전 하시고 훌쩍 배낭여행이라도 떠나 보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 몸이 약한 걸 부모님이 가장 잘 아셔서. 절대 혼자 보내주시질 않으세요. 

 그럼 누군가와 함께 가면 되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동성보단 남친과…(^^)

 하하, 그건 너무 먼 얘기인 것 같아요. 여자기성전 시상식 때 들으셨죠? 제가 다른 사업들은 다 잘 되고 있는데 그쪽만 망해서요.(웃음) 당분간은 폐업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인생사 돌고 도는 게 흥망성쇠라는데 조만간 빨리 개업하시길 빌겠습니다.

일 할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는 사이 쏜살처럼 지나갔다. 돌이켜보니 콘셉트(?)를 의식한 나머지 바둑 이야기를 너무 안 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팽팽 놀던 수험생이 수능을 앞두고 날밤 새며 공부하듯, 벼락치기로 기자 본연의 질문을 던졌다.


 


 올해 3억5천만원을 넘게 벌어들이며 역대 여자기사 최고 상금을 경신하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너무 큰 금액이라 감이 잘 안 와요. 어머니가 관리를 하시기도 하고. 금액보다는 바둑을 공부하는 여자 꿈나무들에게 조금이라도 제가 희망을 줄 수 있게 된 부분이 기뻐요. 

 평소 돈을 벌면 꼭 사고 싶은 것이라거나 해보고 싶었던 건 없으세요?

 그런 건 딱히 없어요. 저에게 돈을 쓰는 것보단 친구나 후배들에게 맛있는 걸 사줄 때가 더 보람 있는 것 같아요. 

 듣다보니 제가 너무 속세에 찌든(?) 것 같아 괜히 찔리네요. 이제 국내 여자대회는 다 제패하셨고 궁륭산병성배도 2연패 중인데, 올해 창설된 센코컵과 오청원배는 놓치셨어요. 목표는 당연히 남은 두 대회를 점령하고 모든 여자대회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시는 거겠죠?

 물론이죠! 센코컵은 2월부터 시작되는 걸로 아는데, 아마 위즈잉도 긴장해야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바둑 팬, 월간『바둑』 독자분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바둑을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먼저 감사하단 인사드리고 싶고요.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들었어요. 제 바둑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얻으셨다고.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정말 감동받았고요. 그런 분들이 바둑의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제 팬이라며 선물을 보내주신 분도 계신데 이 자릴 빌려 감사드리고요. 모두 2018년 잘 마무리 하셨길 바라며 행복하게 2019년 맞이하시길 빌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눈이 그쳤다. 2019년으로 향하고 있는 하늘은 여느 때보다 맑아보였다.

<취재/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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