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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명지대 바둑학과 존속 서명운동

등록일 2022.12.153,223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에 위치한 창조관 2층 바둑학과 내부 사진
▲명지대학교 자연캠퍼스에 위치한 창조관 2층 바둑학과 내부 사진

■조남철에서 바둑TV까지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이 일본에서 프로기사가 된 후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한성기원’을 세운 해가 1945년 11월 5일이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저기 놀음꾼 대장 간다’는 비아냥을 들어가며 척박한 땅에 프로바둑의 씨앗을 심고 가꾸었다. 

1956년 4월 15일에 동아일보가 주최한 ‘국수(國手)제1위전’이 개막했다. 프로바둑대회의 효시였던 ‘국수전’이다. 말로만 프로였던 기사(棋士)들은 그제서야 바둑을 둔 댓가를 받게 됐다. 신문사는 한국현대바둑을 지탱해준 후원자이자 주요 홍보수단이었다.

1959년 부산일보에서 최고위전(最高位戰)을 만들었고 연이어 서울신문에서 패왕전(霸王戰)을 개최했다. 중앙일보 왕위전(王位戰-1966), 한국일보 명인전(名人戰-1969), 경향신문 국기전(國棋戰-1975), 조선일보 기왕전(棋王戰-1979), 대구매일신문 대왕전(大王戰-1984)이 차례로 열렸다.

팬들은 지면을 통해 수준 높은 대국을 감상하고 신문사는 문화사업과 신문판매증대의 두 마리토끼를 잡았으며 프로기사는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는 순기능의 시대가 열렸다.

조남철이 꿈꾸던 바둑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1988년에 일본에서 후지쓰(富士通)배가, 대만에서 잉창치(應昌棋)배가 열렸다. 세계대회 시대의 막이 열렸다.

순서는 후지쓰배가 앞섰지만 총상금 100만달러에 우승상금이 40만 달러에 이른 잉창치배가 권위를 더 인정받았다.

후지쓰배에서 1회전에 탈락해 체면을 구겼던 한국의 1인자 조훈현은, 잉창치배에서 승승장구 결승에 올라 ‘대륙의 반달곰’ 녜웨이핑(聶衛平)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이 바둑변방국 취급을 받으며 홀로 참가했던 대회라 감동은 컸고 조훈현은 국민영웅으로 떠올랐다.

1990년 2월 2일 제29기 최고위전 도전 5국에서 이창호가 조훈현을 이기고 타이틀을 빼앗았다. 2대2 상황에서 열린 마지막 대국에서 반집을 이기는 드라마였다. 제자가 스승을 이겨 화제였고 그 제자가 4단에 불과해서 놀랐고 4단의 나이가 14세에 불과해 경악했다.

영원할 것 같던 조훈현 시대 몰락의 시작이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눈만 껌뻑이는 천재소년은 ‘돌부처’로 불렸고 전 세계바둑팬이 흠모하는 바둑팬덤형성의 시초가 되었다.

1995년 12월 1일에 바둑TV가 개국했다.

24시간 방송 시대를 열며 뉴미디어로 화려하게 등장한 케이블TV시대에 바둑도 편승했다. 사람들은 이제 새벽이나 명절 때만 볼 수 있던 TV바둑을 하루 종일 즐길 수 있게 됐다.

종이가 이끌던 바둑시장이 영상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2001년에 열린 디지털위성방송시대에도 바둑은 날개를 달았다.

제2의 바둑전문방송 SKY바둑은 바둑전문방송의 경쟁시대를 열었다. 바둑으로도 ‘방송장사’가 된다는 것이 증명됐다. 바둑인구의 감소, 고령화가 문제가 되었지만 그래도 바둑대회, 바둑산업 등 바둑시장은 꾸준하게 성장해갔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바둑은 그저 ‘재미있는 게임’이거나 ‘지적 스포츠’일 뿐이었다. 프로기사들이 주장하는 ‘예(藝)와 도(道)’는 전문가들의 영역이지 바둑을 즐기는 직접 당사자에게는 이기고 지는 ‘승부(勝負)’의 문제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는 있었다. 그래서 바둑을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난가(爛柯)’라고도 부르지 않는가.

하지만 바둑을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명지대 바둑학과

 1997년 명지대학교에서 바둑학과를 개설했다.

당시 이사장은 재단 설립자 유상근의 장남인 유영구였고 국무총리를 역임한 고건이 총장이었으며 별명이 ‘교수’였던 정수현 9단이 초대 교수가 됐다. 유영구 이사장은 한국기원의 이사를 지낸 바둑애호가였다. 

‘바둑이 학문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바둑학과는 명지대학교의 간판으로 착실하게 성장해왔다.

해마다 3대1 이상의 경쟁률을 유지하는 인기학과였고 취업도 잘됐다.

바둑학과의 명성은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높았다.

그동안 바둑학과를 다녀간 유학생(대학원 포함)은 중국, 태국,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홍콩 등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프랑스, 독일, 헝가리, 세르비아, 핀란드, 네덜란드, 루마니아 등 유럽, 미국, 캐나다의 북미, 남미의 브라질 등 총 25개국에서 100여명에 이르렀다.

현 기사회장인 한종진 9단(35대)을 비롯해 32대 기사회장 양건 9단, 홍민표 국가대표 코치, 김영삼 전 한국기원 사무총장, 이상훈 포스코케미칼 감독, 백대현 셀트리온 감독, 한 시대를 풍미한 윤영선 전 여자국수, 삼성화재배 준우승자 안국현 등 67명의 프로기사가 바둑학과를 거쳐갔거나 재학 중이다.

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 등 바둑관련기관, 바둑전문 인터넷업체인 사이버오로, 타이젬, 한게임, 피망바둑, 넷마블, 바둑TV와 K-바둑과 같은 바둑방송에 바둑학과 출신이 진출했다.

최유진, 이소용, 류승희, 장혜연 등 바둑방송 인기 캐스터들도 바둑학과 출신이다.

 SG그룹, 한국물가정보 같은 바둑후원사에 취업을 하기도 한다. 아마추어 여자랭킹 1위 김수영(09학번)은 포스코에서 근무 중이다. 

바둑학과는 바둑산업에 유능한 젊은 인재를 보급하는 화수분이자 명지대학교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바둑계에서는 그렇다. 그런 바둑학과 폐과 위기 소식에 바둑계는 충격에 빠졌고 한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내고 있다. 한국기원이 12일 명지대 바둑학과 유지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고, 대한바둑협회와 대학바둑연맹 소속 바둑동아리에서도 바둑학과 폐지 반대 성명서를 냈다.

바둑학과 폐지 반대에는 한국기원 소속 전체 프로기사의 82%에 달하는 335명(15일 현재)이 서명했다. 이외에 대한바둑협회, 여성바둑연맹, 대학바둑연맹 등 40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참했다.

반대 서명에는 세계 바둑계의 거봉 조훈현ㆍ이창호 사제를 비롯해 현재 한국바둑을 대표하는 신진서ㆍ박정환· 최정 9단 등이 포함돼 있으며 중국 기사들도 동조 서명운동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돌부처 이창호도 입 열었다.

 다음은 바둑학과 존치를 원하는 각계의 목소리다.

 먼저 프로기사들의 의견이다.

 매사에 신중해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돌부처’ 이창호도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명지대 바둑학과의 폐과 예정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가 계속 역사를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이창호보다 더 말수가 적은 ‘리틀 돌부처’ 변상일 9단은 “세계 유일 바둑학과 폐지를 반대합니다”라는 짧은 성명을 냈다. 

‘영원한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은 “세계 유일의 명지대 바둑학과는 바둑계의 큰 재산으로 존재가치가 크다. 폐지논란은 상당이 유감이며 유지를 바란다”고 했다. 국회의원 시절 바둑발전을 위해 바둑진흥법 제정에 큰 공헌을 했기에 더욱 착잡한 심정이 묻어났다.

현 프로기사회 회장이자 바둑학과 2기인 한종진 9단(98학번)은 “세계인의 문화유산인 명지대 바둑학과를 꼭 지켜달라”는 호소를 했다. 한회장은 학과 폐지논의 소식이 알려진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전체프로기사의 80%가 넘는 서명을 받아낼 정도로 바둑학과 존치 서명운동의 최일선에 서서 프로기사들을 독려하고 있다.

32대 기사회장을 역임한 바둑학과 3기(99학번)출신 양건 9단은 “5천년 바둑역사가 명지대에서 학문으로 계속 꽃피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은 “바둑인뿐 아니라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바둑을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온 세계 최초의 바둑학과인 명지대 바둑학과가 폐과 위기라는 것에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대국이 뜸했던 박정환 9단도 이번 사태에는 학과가 없어진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109개월째 여자랭킹 1위이자 사상 첫 여성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진출자(삼성화재배)인 ‘바둑여제’ 최정 9단은 “명지대와 바둑계의 자랑인 세계유일의 바둑학과가 없어진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는 소감을 밝혔다. 

올해 오청원배 우승으로 여자세계대회를 정복한 오유진 9단은 “명지대 바둑학과가 오랜 기간 바둑보급에 공헌했고 기사들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최근 들려온 바둑학과 폐지관련 소식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다”라는 의견을 말했다. 


바둑관련단체에서 일하는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바둑학과의 존치를 원했다. 

바둑학과 1기 졸업생(97학번)으로 현 NHN GB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경민 수석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보급에 앞장서 온 명지대 바둑학과가 앞으로도 바둑발전의 선봉 역할을 계속해주기를 바란다”면서 “1기 졸업생으로 명지대의 자랑인 바둑학과의 폐지논란을 접하고 착잡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정원을 늘려 전 세계바둑보급의 첨병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바둑전문 인터넷업체 컴투스 타이젬의 박해성 운영실장(99학번)은 “전 세계 80개국에 보급되고 있는 바둑은 바둑 강국인 한국의 중요한 문화 상품이다. 세계인이 즐기는 바둑을 연구하는 학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바둑계에 큰 손실이다. 바둑학과 폐지 재고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바둑학과 2기 졸업생이자 한국기원 교육콘텐츠 팀장인 강나연 문학박사(98학번)는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의 미래교육을 위한 방향과 교육의 수단으로 ‘바둑’을 제시했다. 바둑은 앞으로 심화 될 물질문명 사회에 인간성을 회복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명지대 바둑학과가 존속되어, 바둑계를 이끌어나갈 유능한 인재들을 양성하고, 세계 최강국 한국의 실력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정신수양과 문화생활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한다”고 밝혔다.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회장 출신으로 한국기원 기전운영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허수정 씨(13학번)는 “바둑학과 졸업생으로 바둑계를 대표하는 한국기원에서 근무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바둑학과 폐과는 바둑계 발전을 저해하고 나아가 치명적인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다. 부디 명지대학교가 지닌 국제적 자부심을 스스로 저버리지 말고,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앞장서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철식 대한바둑협회 사무처장(03학번)은 “바둑학과는 한국의 대표브랜드 중 하나로, 국내는 물론 세계바둑발전의 산실이다. 폐과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바둑방송 최초의 캐스터 최유진 씨(00학번)는 “폐과 위기 소식에 자꾸 눈물이 나려 한다. 꼭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둑학과 폐지 소식은 바둑전문 특성화 학교인 순천의 한국바둑 중·고등학교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순천의 한국바둑중고등학교 김길곤 교장 선생님은 “명지대 바둑학과는 한국바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북극성 같은 길라잡이자 한국바둑 중·고등학교를 태동시킨 장본인으로 소임을 다해야 한다. 학생들이 어둠으로 길을 잃을 때 반짝이며 길을 안내해주는 나침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바둑중·고등학생에게 희망을 잃게 해서는 안된다”며 폐과에 강하게 반대했다. 

한국바둑중학교 학생회장인 이지환 학생(15세)은 “우리 바둑중학교 학생들에게 명지대학교 바둑학과는 ‘서울대학교 법대’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들의 희망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한국바둑고등학교 2학년 소예호 학생(17세)은 “앞이 캄캄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학생 모집도 잘 되고 우수학생 수급처 역할을 우리 학교가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폐과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허탈해했다. 

한편 직접 당사자인 명지대 바둑학과 고영훈 학생회장(17학번)은 “이번 사태는 단순한 폐과문제가 아니다. 바둑산업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육성, 바둑고등학교 학생들의 진로문제 등 바둑계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지대하다”며 바둑학과 존치를 위한 바둑인들의 협력을 호소했다. 

프로기사 한해원 3단의 남편이자 개그맨인 김학도 씨는 “바둑애호가이자 프로기사가 아내인 입장에서 바둑학과 폐지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바둑학과 존치를 위해 할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팝 칼럼니스트로 바둑이 좋아서 한국기원 인근 유전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방송인 김태훈은 “명지대 바둑학과 폐지계획에 반대한다”는 짧은 한 줄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기원은 대한바둑협회, 명지대 바둑학과를 비롯한 모든 바둑유관단체와 함께 손을 잡고 전 국민에게 명지대 바둑학과 존치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서명에 동참하려면 한국기원 홈페이지(www.baduk.or.kr)에 접속하여 ‘바둑학과 지속 청원서’의 ‘바둑학과 유지 동의’를 클릭하면 된다.

-> 바둑학과 지속 청원서 바로가기(링크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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