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건설기계 업계 1위 강소기업 YK건기
◆ 반상에도 새바람 일으키며 흥행 돌풍
지난 2월 총규모 3억 원으로 출범한 새내기 기전 YK건기배 본선이 재미를 더하고 있다. 본선 첫판부터 랭킹 1위 신진서 九단이 이지현 九단에게 덜미를 잡히는 이변을 연출하더니, 랭킹 2위 박정환 九단마저 강동윤 九단에게 패점을 안았다.
반환점을 돈 5라운드 현재 강동윤 九단만 5전 전승으로 패점 없이 1위를 달리고 있고, 박정환 九단과 김명훈 八단이 4승 1패로 그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중간 전적이긴 해도 신진서 九단이 벌써 2패를 당하며 3위권 밖으로 뒤처질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혼전을 거듭하며 누가 초대 챔피언이 될지 미궁에 빠진 YK건기배를 후원하는 (주)YK건기는 어떤 회사일까. 채호선 대표를 만나 바둑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YK건기배가 올해 처음 종합기전으로 창설돼 바둑 팬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일반인들에게 YK건기라는 회사는 조금 생소한데, 회사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회사는 건설기계를 수입해 판매하고 거기에 따른 서비스, 부품을 공급해 주는 회사입니다. 건설기계를 수입하는 회사 중에서는 업계 넘버원이라고 자부합니다. 장비 판매대수가 토털 1만 5천대가 넘을 정도로 판매가 절대적이지만, 갈수록 렌털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해 판매와 렌털을 함께 접목하고 있습니다.
- 개막식 때 이창호 九단에게 아마4단증을 받으셨는데, 용산고 출신 기우회원들과 가끔 수담을 나누신다고 들었습니다. 바둑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기우회는 여태까지 두 번밖에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바둑도 그렇고 야구, 축구, 자동차를 좋아합니다만. 여유 있게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고 바쁘게 살다보니 사업 외에는 모든 걸 싹 잊고 백지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바둑은 어깨 너머로 배워 군대 있을 때 조금 뒀습니다. 초등학교 친구 중에 정신과 의사인 라이벌이 있는데 저만 보면 (소액이지만) 내기바둑을 두자고 해서 돈 따먹던 기억이 나네요(하하하).
- 바둑을 좋아하더라도 대회를 후원하는 것은 큰 결심이 없고선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저는 후원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후원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가 못해서 후원을 당하는 거잖아요. 저는 광고주로서 저희 회사를 어떻게 더 알리고, 기여할 수 있을까 싶어 선택한 게 바둑입니다. 말이 조금 이상하죠. 아마 이렇게 이야기한 사람은 처음일 겁니다. 제가 바둑을 약간 두니까 기본적으로 조금 알고 있고, 사람은 자기가 아는 세계를 굉장히 큰 세계로 알잖아요. 바둑이라는 세계가 좀 더 넓고 크게 보였던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바둑이 상당히 전통이 있어 홍보를 길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구, 골프도 많이 생각했는데, 바둑은 전문기자가 있어 계속 홍보가 되는데 반해 골프나 당구는 잠시 보도되고 말잖아요. 이런 점이 바둑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사원들을 위한 것도 바둑대회를 하게 된 동기 중 하나입니다. YK건기가 좋은데 다른 사람한테 설명할 수가 없어요. 업종 특성상 강남에 있을 수도 없고, 상장(上場)이 불편해서 하기도 싫고, 어떻게 회사를 알려줄까 고민하다가, 아∼ 바둑대회를 열면 어떨까, 그럼 너희 회사 무슨 회사야 하면, 우리 바둑대회를 열고 있어. 바둑대회를 할 만큼 큰 회사인지 몰랐네, 이런 반응이 나오거든요.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대회를 후원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본선에서 10명이 풀리그를 벌이는 대회 방식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요.
제가 바둑에 문외한은 아니어서 대회방식에 관해 실무자들과 협의도 하고 제 생각을 전했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리그를 원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최정예 기사들과 어쩌다 한 판은 둘 수 있겠지만 아홉 판을 둔다는 것은 어렵잖아요. 하수끼리 둘 때는 이 수가 다 통했는데 (상수하고는) 안 통하지 않습니까. 본인의 모자란 점을 찾고 자신이 둔 수를 느끼게 해 주고 싶은 측면도 있었고요. 자신을 점검하는 데 리그가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확률로 따지면 진정한 승자가 나오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 대회 중계도 자주 보시겠어요.
본선 중계를 다 보진 못하고 가끔 시청하는데, 보니까 예전보다는 덜 지루한 거 같더라고요. 간단간단하게 해설도 해주고 소감도 물어보는 코너는 상상했던 것 보다 잘 돼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제한시간은 더 짧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선수 입장에서가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관객도 더 늘어나는 거잖아요. 바둑이 살아남고 오랫동안 가려면 팬덤이 가장 중요합니다. 관객이 없는 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얼마나 빨리, 얼마나 쉽게 해설을 이해할 수 있고, 얼마나 재미있게 하느냐, 여기에 맞춰야 된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축구도 그렇고, 야구도 후원을 받아 했던 건데, 이제는 후원이라는 세계에서 벗어나 프로화가 정착됐잖아요. 조속한 시일 내에 바둑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빠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 이번 대회는 후원사 추천 시드로 만 20세 이하 신예와 여자 기사 각 1명씩을 본선 진출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띕니다. 꿈나무 육성에 관한 철학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바둑리그다 뭐다 보다보면, 젊은 친구들이 어느 정도 레벨에 올라가지 않으면 최정예 기사들과 겨뤄볼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둬주질 않으니까, 예선을 거치고 한참 성장한 후에나 비로소 둬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럼 성장이 굉장히 느리죠. 항상 우리는 자기 세계에만 살잖아요. 그런 기회를 줘 봐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신예기사들이 들어가면 흥행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먼 미래를 보면 그게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바둑 애호가로서 현재 본선 판세는 예상대로 흘러가는지요? 결승 진출자와 초대 챔피언을 예측한다면?
솔직하게 판세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신예들이 두다가 특별한 기사들에게 마지막에 두세 판 정도만 이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신예를 많이 응원하게 됩니다. 세대는 바뀌는 거니까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챔피언은 신진서, 결승은 신진서 대 박정환이 될 가능성이 젤 높겠죠. 왜냐하면 단판 승부라면 바뀔 확률이 많은데 단판 승부가 아니기 때문에, (하위 랭커가) 어쩌다 한두 판은 이길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못 이기지 않습니까, 강자한테.
- 본선이 한창입니다만, 지금까지 진행된 대국 중 기억에 남는 바둑을 꼽으신다면.
얽히고설키고 했던 류민형·이지현 판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결과가 예상과 다르기도 했고요. (신진서를 이긴) 이지현이 당연히 이길 줄 알았는데, 동문이라 어릴 적 깨지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바둑 세계에 묘한 역학관계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 본선 진출자 10명 중 특별히 주목하는 선수가 있으신가요.
저는 사실 본선 시드로 추천하기 전에 한우진이란 선수를 알지도 못했어요. 보다 보니까, 한우진이란 선수가 잘 했으면 좋겠고 김은지도 요새 워낙 주가를 올리고 있고. 신진서, 박정환 사범은 실력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엄청난 기사들이기도 하고요.
- 본선 최종 순위 예측(6라운드 종료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첨금만 최대 1천만 원이나 되는데요.
본선 풀리그에 출전하는 선수 10명 중 총 4명의 최종 순위 예측이었죠. 1위와 10위, 5위와 7위를 모두 맞혀야 하는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벌써 2천 명 넘는 바둑팬들의 응모가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습니다. 사전 이벤트 구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요?
이벤트 구상은 제가 했는데 생각보다 응모자가 적어요. 최소한도 몇 만 명은 되야 하는데(하하).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한테 문제가 너무 어렵지 않았나 싶습니다. 단순하게 질문을 하고 추첨을 했어야 하는데, 뽑기 쉽게 만들어야 하는데 맞추기 힘드니까(예상보다 적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아쉽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이 참여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 2017년 모교인 한국항공대학교에 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하셨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발전기금 외에도 별도의 장학금도 희사하셨고, 한국항공대학교에는 ‘YK강의실’까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교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데요.
원래 기업을 하게 되면 사회 공헌을 해야 하는데, 저는 신문에 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희가 연간 5천에서 2억 정도는 어딘가 기부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작년 같은 경우도 팬데믹 때문에 어려워진 곳을 위해, 모교인 용산고에 5천만 원을 기부했고요. 저희가 아동센터를 지원해주는 게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 도와주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왜냐하면 나이 먹은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 잘못이 많이 있잖아요. 인생 살면서 본인이 잘 못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아이들은 자기가 결정할 기회가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어린 친구들 후원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회사에서 기부하는 것, 남이 도움 받는 것도 기분 좋지만 기부라는 게 우선 제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누굴 위해서 산다는 게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발렌티어(volunteer)가 굉장히 적습니다. 외국에서는 봉급을 적게 받으면서도 남한테 주는 기쁨을 위해 자원봉사를 꽤 많이 해요. 자기한테도 기쁨이 오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내가 기쁘면 모두 괜찮은 거거든요.
- YK건기를 1999년 창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공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는 사업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죠. 회사명 YK건기 의미도 궁금하네요.
저희 때는 취직해서 배치 받는 부서가 전공하고 전혀 상관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첫 직장에 1년 동안 근무한 게 평생의 전공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다보니까 큰 기업에 들어갔고, 들어와서 보니까 삼성중공업에 배치 받았고, 국내에서 중장비 영업을 하다가 계속해서 이 일을 하게 된 거죠. 98년도부터 언젠가 독립을 해야겠다 생각하다 그때부터 시작한 게 이 일입니다. 처음부터 비슷한 일을 해 온 거라고 할 수 있죠. 자기가 잘 아는 세계에서 일을 하는거지. 누가 같이 하자고 해서 하면 다 망해요. 사명인 YK건기는 영 코리안이고요, 직접 제가 작명을 했습니다. 그때는 젊기도 했지만 마음은 항상 젊어야죠, 젊은 한국인들이라는 의미로 지은 겁니다. 건기는 건설기계의 약자고요.
- 회사 연혁을 보니 누계판매 1만 2천 대(2019년 9월) 달성, 본사 확장 이전(2020년 2월) 등 나날이 번창하는 회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쉽지 않은 이야기긴 한데,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회사가 커 나가는 것 보다는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시스템적으로 누가 그만두더라도 회사 전산상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하는거죠. 저희 회사 전산이 제법 잘 갖춰졌습니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거래선인 일본, 프랑스 같은데서 매출 10조 하는 회사보다 예약시스템은 우리가 더 나은 거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와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오히려 오래된 데이터베이스 같은 경우는 우리한테 요청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하고, 효율화된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지, 매출액이 목표거나 이런 건 아닙니다. 우린 굉장히 강소기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신용평가로만 봐도 A 마이너스예요. 저희랑 경쟁업체인 모 대기업도 트리플 B인데 말이죠. 저희가 높은데 사람들이 잘 몰라요. 설립 당시 2년은 적자를 봤지만, 그 다음부터는 적자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저희 회사가 어느 정도 위치냐면, 저희가 거래선을 찾아다니지 않고, 한국에서 머 팔고 싶다 그러면 일루 와요, 우리가 노하면 다른 데 가고, 우리가 예스하면 우리가 하는 거죠. 얀마(YANMAR), 겔(GEHL) 외 다른 아이템은 자기네들이 찾아 온 거지, 우리가 하자 해서 한 아이템은 아닙니다.
- YK건기배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YK건기배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으신지, 향후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일단 3년은 할 겁니다. 저는 후원자가 아니고 광고주입니다. 광고주 입장에서 만족이 되면 꾸준히 해야죠. 3년 동안 하면서 어떻게 발전시키고 홍보해야 할지, 어떻게 변신해야 할지 계속 고민할 겁니다. 저는 장사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선전해야 할지를 가장 우선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회사에서 본선진출자 10명 캐리커처가 들어간 컵을 만들었어요. 왜 만들었느냐. 이거 뭐야? 너네 바둑대회도 하는구나, 고객한테도 한 개씩 주고, 당신이 상대하는 회사가 적은 회사가 아니네 하는걸 보여주기도 하는 의미도 있거든요. 저희는 장사하는 사람이니까 마케팅을 계속 하는 겁니다. 대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바둑은 사실 어렵습니다. 다른 쪽에 쉽게 공유하기가 어려워요. 야구나 축구처럼 쉽게 얘기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 걸 어떻게 만들고 젊은 사람에게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이런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기사 입장에서 하는 대회가 아닌 팬을 위한 대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프로답게 더 포장을 잘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바둑 이야기 와중에도 채호선 대표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빼놓지 않았다.
“아이티 업종에 근무하면 세련돼 보이지만 기술 변모 속도가 엄청나잖아요. 서른다섯 만 되면 벌써 갖고 있는 기술이 노땅 취급받는 경우가 허다해요. 아이티 쪽에서 아들 이기는 아빠 없거든요. 그런데 기계 쪽은 잘 안 바뀌거든요. 이게 오히려 직업 경쟁력이 있는 겁니다. 다른 직업은 트렌드가 엄청나게 빨리 바뀌는데 이쪽의 트렌드는 굉장히 평온하게, 예전에 배웠던 지식을 갖다가 쓸 수도 있고 새로운 지식도 기존 지식에 추가만 하면 되거든요. 나쁘지 않아요. 캐나다에서 가장 봉급 많이 받는 사람이 누군 줄 아세요? 벌목하는 사람들 급여가 굉장히 세거든요. 사람이 없어서예요. 아무튼 건설기계 쪽으로 배워두면 65세, 70세까지 거뜬히 일할 수 있는데, 요새 사람들은 몸으로 움직이는 걸 싫어해 안타까워요. 이거 채용면접 하는 것 같네요(하하하). 제가 가르치는 걸 참 좋아해서 열심히 가르칩니다. 저희 회사는 모든 소스가 오픈돼 있어요. 전국 16군데 직영 서비스센터도 갖추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도전해 보세요.”
열정과 자신감으로 중무장한 채호선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 식품회사의 광고 카피가 생각났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채 대표가 덧붙인 한마디는 영락없는 바둑인이었다.
“우리 회사 채용하는 데 바둑 잘 두는 사람 환영하고 우대합니다(하하하하하).”
<글/차영구 편집장·사진/이주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