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박정환:신진서 대결, 바둑TV배에서 성사됐다
지금 우리나라 바둑계의 1인자는 누구인가? 박정환 9단인가, 신진서 9단인가?
국내 랭킹 1위는 신진서 9단이고 올해 대부분의 지표에서 신진서 9단이 앞서 있다. 그러나 두 기사 간의 상대 전적은 박정환 9단이 월등히 좋고 (11승 4패), 무엇보다도 박정환 9단은 이미 여러 차례 세계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데 반해, 신진서 9단은 지난 6월 마이너격인 TV아시아 우승한 것이 유일하기 때문에 많은 바둑팬들은 ‘아직은 박정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1인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곧 해소될 것이다. 바둑TV배 마스터스 결승전에 두 기사가 나란히 진출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벌어진 준결승 1국에서 박정환 9단은 박종훈 3단에게 215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현재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종훈 3단은 초반 정석에서 새로운 변화를 들고 나왔지만, 평소 공부 양이 많은 박정환 9단은 이런 변화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상대의 작은 실수를 응징하며 오히려 우위에 섰다. 이후 박종훈 3단이 세력을 바탕으로 박정환 9단의 대마를 총공격해서 잡으러 왔으나 박정환 9단이 간단히 타개하면서 승부가 결정됐다.
▲ 중앙 흑 대마가 위험하다는 예측도 있었지만, 박정환 9단은 가볍게 타개에 성공하고 승부를 결정지었다.
14일에 이어진 준결승 2국에서는 신진서 9단이 이지현 9단을 상대로 151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초반 이지현 9단의 강수로 신진서 9단의 대마가 거의 잡히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이 순간부터 신진서 9단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반격에 성공하여 거꾸로 포위하고 있던 상대의 대마를 잡으며 역전승을 거뒀다.
▲ 좌변 흑 대마가 잡혀서는 백의 승리. 그런데 신진서 9단이 포위하고 있던 중앙 백돌의 일부를 끊어서 수상전을 하는 반격에 성공해서 역전했다.
이번 두 기사의 결승전은 현재 한국 바둑의 1인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1인자 계보는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으로 이어져 왔는데 박정환의 시대가 조금 더 이어지느냐, 아니면 이번에 신진서로 넘어가느냐의 순간인 것이다.
과거의 예를 보면, 조남철 9단은 김인 9단에게, 김인 9단은 조훈현 9단에게, 조훈현 9단은 이창호 9단에게 패하면서 권좌를 넘겨줬다. 그러나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은 다음 1인자에게 패해서 권좌를 넘겨준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 다른 후배기사들에게 조금씩 패하면서 자연스럽게 1인자의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차기 1인자와의 대결에서는 끝까지 우세했었다.
즉 이창호 9단은 지금까지도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상대 전적에서 36승 34패로 앞서 있고, 이세돌 9단 역시 박정환 9단을 상대로 18승 12패로 앞서 있다. 다만 차차기 1인자에게는 상대 전적이 밀린다. 이창호 9단은 박정환 9단에게 7승 15패이고, 이세돌 9단은 신진서 9단에게 5승 6패이다.
박정환 9단의 우세를 점치는 쪽은 이러한 전례를 예로 든다. 실제로 얼마 전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둔 연습대국에서도 박정환 9단은 초반 정석에서의 우세를 바탕으로 신진서 9단에게 완승을 거둔 바 있다.
반면 신진서 9단의 우세를 얘기하는 쪽은 과거의 전적은 의미 없다고 주장한다. 비록 신진서 9단이 박정환 9단에게 최근 5연패 중이고 통산 전적에서도 4승 11패로 밀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5월 중순부터 20연승 중인 신진서 9단의 최근 기보를 보면 너무나 강해서 누구도 신진서 9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박정환 9단은 16연승을 거두고 있다가 16일의 KBS바둑왕전 본선 32강전에서 박현수 3단에게 패하면서 연승기록이 멈춘 바 있다.
▲ 2018년 2월에 벌어진 2017 크라운해태배 결승전은 지금까지 두 기사간에 벌어진 유일한 타이틀 매치. 당시 박정환 9단(오른쪽)이 2:1로 승리해서 우승했다.
앞의 두 가지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결승전이 벌어지기 전에 박정환 9단은 18일 커제 9단과 이벤트 대국을 두고, 8월초의 국수산맥배에는 두 기사 모두 나란히 출전한다. 결승전 직전에 벌어지는 시합의 결과는 당연히 결승전 승부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결승전이 끝나면 지금 현재 한국 바둑의 1인자가 누구인지는 드러난다고 봐야 한다. 두 기사간의 랭킹 점수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기는 쪽이 랭킹 1위의 자리에도 올라설 것이다. 물론 두 기사간의 승부는 이번 한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몇 년간 중요한 승부에서 계속 만나 치열하게 다툴 것이다.
예를 들어 두 기사는 제2기 용성전에서도 나란히 4강에 올라 있다. 대진표상 두 기사는 준결승전을 각각 승리할 시에 역시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또 한번의 빅매치가 성사된다.
바둑TV배 마스터스의 우승 상금은 3,000만원, 준우승 상금은 1,000만원이고 결승 3번기는 8월 6일~8일 저녁 7시에 진행된다. 모든 대국은 바둑TV를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되며, 네이버TV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 결승 대국은 당초 7월 25~27일이었으나, 다른 대국과의 관계상 일정이 조정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