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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등록일 2020.12.291,780

정수현 교수
정수현 교수

“끝은 새로운 출발선, 인생 2막 준비하겠다”

돌이켜보면 그는 항상 ‘정 교수’라 불렸다. ‘도전5강’과 함께 조훈현 九단의 아성을 두들기던 승부사 시절에도 그의 별명은 ‘교수’였다. 동그란 안경과 차분한 말투, 책과 이론을 중시하는 학구파 성향 때문이었다.
1997년 창설된 명지대 바둑학과와 역사를 함께 했던 정수현 교수(프로 九단)가 올 하반기 수업을 끝으로 교수직에서 내려온다. 2021년 2월이 65세를 맞는 정 교수의 정년이다.
정수현 교수는 바둑학과의 상징과도 같다. 23년간 황무지였던 바둑학의 터전을 마련하며 쓴 논문만 50여 편. 바둑과 관련된 학문으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12월 마지막 수업을 앞둔 정수현 교수를 만났다.


- 곧 정년을 다해 교단을 내려오게 된다. 소회가 어떤가.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 바둑도 그렇지 않나. 아직은 바둑학의 토대가 단단하지 못하다. 더 연구해서 인성, 치매, 집중력 등 바둑의 좋은 점들을 증명했어야 했는데, 아직 학문적인 완성이 덜 된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 23년 들인 공에도 부족함이 느껴지는지.
바둑학이란 게 넓게 보면 무궁무진하다. 심리, 철학, 문화, 기술 등 모두가 학(學)의 영역이지만 어느 하나 정립돼 있지 않아서 전반을 신경쓰다 보니 한 군데 집중하지 못했다. 원래 연구란 게 하나를 오래 파야 성과가 나온다. 후학들이 뒤를 이어 좋은 결과 보여주길 바란다.


- 프로기사로서 한창 활동할 때 갑자기 교수로 부임해 화제가 됐던 걸로 안다.
내 별명이 원래 ‘교수’였다. 교수를 지망했던 것이 아니고 학문을 좋아하고 책도 몇 권 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겼다. 듣자니 명지대학교에 바둑학과가 생기고 교수를 선정할 때 학교 측에서 별명이 ‘교수’라는 프로기사가 있는데 왜 안 뽑냐고 해 나를 찾아왔단다. 나도 바둑 이론에 대해선 나름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교수직을 맡게 됐다. 돌이켜보면 ‘교수’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 바둑학과 교수로서 치적을 한 가지 꼽자면.
허허벌판이었던 바둑학의 전반을 설계했다는 점이 아닐까. ‘바둑학이 뭐다’ 하고 정의한 건 나밖에 없었다. 그것들을 분류하고 영역을 나누며 바둑학의 정초를 세우기 위해 논문 50여 편을 쓰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바둑학’은 무엇인가.
광의적 의미로 해석하면 바둑과 관계된 모든 분야가 바둑학의 대상이다. 바둑계, 바둑 두는 사람, 기술, 문화 등을 포괄한다. 수적인 측면을 말하면 나는 바둑을 ‘문제해결’ 관점으로 해석한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바둑도 인생도 선택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를 5단계로 분류한 내용을 ‘바둑기술의 문제해결적 접근’이라는 논문에 실었다.


-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
바둑학과 학생들이 바둑계에서 활동하는 걸 바라볼 때다. 현재 바둑계 요소요소에 바둑학과 학생들이 있다. 대학에서 배운 걸 접목해 사회 공헌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둑학이란 게 바둑을 잘 두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예부터 인성교육, 두뇌계발, 치매예방 등 바둑의 좋은 점들이 입으로 전해져 왔는데 이를 증명하고 뒷받침하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부분이 입증된다면 바둑에 진흥법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바둑계가 기록물에 대해 소홀히 관리하는 측면도 있는데, 바둑학과에서 이런 자원들을 잘 관리하고 활용해서 연구와 스토리텔링에 보탰으면 한다. 


- 은퇴 후 계획이 있나.
한 후배가 SNS로 “교수님, 인생 2막 기대됩니다”라고 말하더라. 말 그대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그동안 꾸준히 저술해왔던 자료들을 정리해 AI 이후 새로운 시대에 맞춰 재정립해볼까 한다. 치매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해 있는데, 치매 예방으로써 바둑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월간『바둑』에 제언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많이 있다. 새로운 출발 선상에서 인생 2막을 잘 설계해보겠다.

<인터뷰/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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