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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 반칙패에 관한 소고 

등록일 2021.04.271,469

▲반칙패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벌써 올해 들어서만 두 번의 반칙패가 나왔고 애매한 상황으로 이의제기가 있었다. 경기 규정을 다듬고 심판 자격이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나 현재 심판위원장이 공석 상태로 시간은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칙패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벌써 올해 들어서만 두 번의 반칙패가 나왔고 애매한 상황으로 이의제기가 있었다. 경기 규정을 다듬고 심판 자격이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으나 현재 심판위원장이 공석 상태로 시간은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칙패, 이대로 좋은가?
-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돌아보기
- 애매한 판정으로 억울한 피해자 없어야

바둑은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공정한 게임이라고들 한다. 골방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바둑을 둬도 하등 잡음이 없을 승부. 성별이 달라도, 종교와 언어가 달라도 1대1로 정정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경기가 바둑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룰, 예외 없는 게임의 규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심판이 없어도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취미 수준, 그러니까 친선 우호나 교양 오락 부문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크고 작은 상금과 트로피가 걸려 있는 경우라면 말이 달라진다. 제반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사소한 시비도 공정하게 가리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심판이 입회한다.
그렇게 촘촘히 규칙들을 정비하고 심판이 매의 눈으로 경기 상황을 지켜보더라도 부정이나 반칙에 따른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제반 규정들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알았더라도 평소 대국 습관에 따라 두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반칙패를 당하는 때도 있고, 또 워낙 대국에 집중하다 보면 착수금지나 착수 교대의 기본 규칙들도 망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바둑 사상 최초의 반칙패는 반세기 전으로 올라간다. 1970년 3월 21일에 있었던 제15기 국수전 1차 예선 결승. 당시 18세의 유망주 노영하 二단과 신언철 初단의 대국에서 반칙패가 발생했다. 압도적 우세 국면에서 노영하가 패싸움 공방에서 그만 패를 쓰지 않고 상대 돌을 따낸 것.
지금 같으면 돌아볼 것도 없이 바로 현장에서 처리될 문제였지만, 당시 신언철 初단의 양해로 바둑은 끝까지 갔고 결국 노영하 二단이 이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당시 한국기원 상무이사로 있던 배상연 三단이 대국장에 나타나 자초지종을 듣고는 노영하의 반칙패를 선언하며 결과를 번복했다. 이때부터 대국 규칙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정비되고 반칙패에 대한 세부 규정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이없고 황당한 해프닝도 많았다. 1986년 일본 천원전 본선에서는 바둑알이 옷소매에 쓸려 한 칸 옆으로 옮겨진 것을 둘 다 모른 채 대국에 열중하다 끝내기에 가서야 알아차렸다. 결국  양자 패로 결정. 바둑황제 조훈현도 패의 공방 중에 덜컥 착수금지 구역에 돌을 놓으며 순식간에 반칙패를 당한 적이 있고, 천하의 조치훈도 자기가 패를 따낼 순서마저 잊어버리고 무승부로 대국을 끝낸 경험이 있다.
손에 들고 자기 핸드폰을 찾고 있는 것처럼 뭐에 씌웠거나 귀신에 홀린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되는 황당한 사건들. 그런데 이처럼 알고는 절대 범하지 않을 사건 사고들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반칙패, 팬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물론 규정집이 있고 애매한 상황은 심판의 재량에 따라 최종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모든 상황을 규정집에 다 담을 수 없고 심판도 사람인지라 오심을 내릴 때도 있다. 규정과 심판만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발생한 두 건의 반칙패 사건이 그렇다. 애매하거나 안타까웠고 그래서 억울할 수 있었다. 먼저 올해 3월에 있었던 대주배 16강전 권갑용 九단(흑)과 박영찬 五단의 대국.
사진에서 보듯 흑이 백의 사석 넉점을 다 들어내기도 전에 백이 막 착점을 한 장면이다. 규칙으로 본다면 착수 교대의 원칙에 따라 사석을 끝까지 들어낸 다음 착점을 해야 한다. 따라서 마지막 들어내는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착점한 박영찬의 반칙패.
하지만 모호한 순간이 있었다. 권갑용 九단이 사석 넉점 중에 석점을 먼저 집어낸 다음 약간의 뜸을 들이고 마지막 하나를 들어냈고, 계시원은 이 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초읽기 순서를 박영찬의 차례로 넘긴 것. 당연히 박영찬으로서는 자기 차례로 알고 순식간에 착점한 것이다.

▲대주배 16강전 박영찬-권갑용 대국에서 나온 반칙패. 흑이 사석을 다 들어내기 전에 백이 착점을 하고 있다.

원래 손이 빨라 습관대로 돌이 나온 것인지, 아니면 초읽기 공격을 위해 빨리 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또 권갑용 九단도 충분히 한꺼번에 들어낼 수 있는 사석 넉점을 상대 반칙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뜸을 들이며 들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엄밀히 따지자면 계시원의 실수다. 방송 중계 대국이라 심판은 따로 없었고 해설진이 그 역할을 일부 대신했다. 그렇다고 계시원에게 패배를 떠넘길 수는 없기에 결국 큰 흐름으로 박영찬의 반칙패를 결정했다. 억울한 박영찬은 즉각 심판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다른 하나는 올 3월 초에 있었던 대방건설배 시니어 대 여자바둑리그 챔피언스컵 2차전에서 나왔다. 긴장과 집중에 따른 단순 실수였으나 지켜보는 쪽에서는 뭔가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여자바둑리그팀 박소율 初단과 시니어리그 김기헌 七단의 대국.
사진처럼 박소율이 사석 한점을 들어내지 않은 채 상대에게 순서를 넘겼고, 김기헌은 8초 정도를 기다려 착점한 후 이의를 제기했다. 규정상 반상에서 들어낼 돌을 그대로 놓아둔 경우는 반칙패에 해당한다(한국기원 경기규정 제18조 1항).
사실 이때만 해도 백의 승률 그래프가 70%를 넘고 있었다. 박소율로서는 안타까운 반칙패였으나 본인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김기헌은 김기헌대로 썩 마뜩잖은 행운승이었다.


▲박소율-김기헌 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기원 경기 규정에 따르면 반상의 사석을 들어내지 않는 경우에 반칙패로 인정된다.

물론 판정 시비에 따른 억울함이나 순식간의 실수로 인해 안타까움도 있을 수는 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당사자의 사정으로만 그치지 않고 바둑 팬들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창 흥미진진하게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는데 어이없는 반칙패가 나오거나 황당한 실수들이 반복되면 어떻겠는가. 가뜩이나 온라인 대국 사고를 봤던 시청자들이라면 반복되는 반칙패에 눈살을 찌푸릴 것이며 흥미는 더욱 떨어질 것이다.

예도로서의 바둑, 보편적인 바둑 룰에 충실해야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공자님 가라사대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過則勿憚改]”고 했고, 아울러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큰 잘못[過 而不改是謂過矣]”이라 했다. 악용의 소지가 있는 규정은 좀 더 세심하게 살펴서 수정해야 한다.
물론 이런 사례가 처음이 아니었던 만큼 그동안 수차례 경기규칙에 대한 개정이 있었고, 심판 자격과 권한, 제도도 강화해왔다. 2010년부터 한국기원 상임이사회나 운영위원회에서 개정된 사례만 네 번이나 된다. 그리고 KB한국바둑리그와 여자바둑리그, 시니어바둑리그의 모든 경기에는 전담 심판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매한 반칙패나 어처구니없는 실격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그 규칙들이 아직도 완벽하지 않거나, 아니면 대국자들이 바뀌는 규칙들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다. 비단 숙지를 했더라도 예전의 대국 습관을 버리지 못해 나오는 실수들은 나중 문제다.

그렇다면 과연 완벽한 규칙이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육법전서의 두께로도 모자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고 능사도 아니다. 약간 과장해서 대국 시 발의 위치, 손의 각도, 눈의 방향 등까지 규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착점 후 돌이 얼마나 밀렸는지 자까지 들이댈 수는 없고, 사석의 숫자를 시간으로 나눠 초를 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규칙이 규칙을 낳고 낱낱이 다 적용하다 보면 결국 바둑까지 다 날아가고 규칙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모기 한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다. 심판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나라의 탈세를 모두 막겠다고 세무 공무원만 증원한다면 결국 다시 국민의 세금만 늘어나는 악순환만 계속된다. 현실을 떠난 이상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자,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시 개선책을 내놓을 때다. 한 번에 만족할 수 없다면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 점진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심판위원회를 소집해 비슷하거나 나올 수 있는 사례들을 모아 개정안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운영위원회나 이사회 안건에 부쳐 논의를 이어갈 수도 있다. 심판들의 자격과 권한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직 전담 심판제가 국내 3대 리그에 그치고 있으나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점차 늘여가야 할 것이다. 아직 심판이 없는 예선이나 본선 경기에서 부정행위나 반칙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중재할 방법이 묘연하다.
더불어 선수들이 정확한 경기 룰을 숙지해 대국에 임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꾸준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국 습관을 버리지 못해 실수를 거듭한다면 그건 이미 프로의 자세도 아니고 자격도 없다. 습관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바둑은 그 무엇보다 매너의 게임이다. 규칙이나 심판이 없더라도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신사 숙녀의 태도다. 서두에서 말한 보편적인 바둑 룰, 즉 할아버지와 손자가 골방에서 세뱃돈을 걸고 바둑을 두더라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바둑을 즐길 수 있는 자세를 충실히 이어간다면, 규정집도 그리 두꺼워지지 않고 심판들의 노고도 그만큼 덜 것이며, 팬들의 아우성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글/조남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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