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3/제2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준결승 진출한 아마추어 이루비
“이젠 프로기사 신분으로 출전할래요!”
세계바둑계를 주름잡고 있는 한국여자바둑. 독보적인 일인자 최정 九단을 비롯해 여자 정상급 기사들이 한국여자바둑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을 때, 여자 아마추어 기사의 반란이 시작됐다.
작년 3월 프로가 된 이단비 初단의 동생인 이루비(19) 양이 주인공.
여자 아마추어 기사들에게 문호를 연 제2기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예선에서 아마추어 이루비가 프로들을 제치고 본선에 올랐을 때만 해도 세간의 주목을 끌진 못했다. 연구생들의 기량이 프로 수준에 이른 건 이미 오래 전의 일. 다만 여자 아마추어가 본선에 진출한 건 첫 번째였다는 사실 정도만 특이점으로 기록됐다.
헌데, 아마추어 이루비가 장혜령 初단을 꺾고 8강에 진출하더니 급기야 초대 여자기성전 우승자 김다영 三단을 격침하고 준결승에 오르자 분위기가 180도 변했다. 아마추어 기사가 프로기전 준결승에 진출한 건 남녀 통틀어 이번이 처음. 여자바둑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큰 사건이었다.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근처에 위치한 한종진바둑도장에서 다가오는 입단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루비 양을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 여자 아마추어 최초 본선 진출에 이은 4강 성적이었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본선에 올라가니까 프로필 사진도 찍고 영상 촬영도 하더라고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어요. 얼떨떨 하면서도 재밌었달까. 준결승에 올라간 다음엔 한종진바둑도장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선후배들과 회식도 했습니다.”
- 최정 九단과의 준결승전은 어땠나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프로기사가 최정 九단이거든요. 평소 존경하던 프로기사와 대국한다는 자체가 영광이고 . 국후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으로 복기를 해보니 80수까지는 만만치 않았다고 나오더라고요. 실착을 딱 한 번 뒀는데 그 이후엔 기회 한 번 없이 허무하게 져서 조금 아쉬웠어요.”
- 역시 이번 대회에선 디펜딩챔피언 김다영 三단과의 8강전이 큰 화제였죠.
“저랑 뒀던 상대들이 제가 아마추어라는 사실 때문에 부담을 크게 가진 것 같아요. 저는 대국할 때 상대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상대보단 사실 방송대국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게 처음엔 힘들었어요. 한 판 이기고 나니 적응도 좀 되고 긴장도 풀린 것 같아요.”
▲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생방송 화면. 이루비의 승리가 확정될 때마다 블랙핑크의 <뚜두뚜두>가 흘러나왔다.
- 언니 이단비 初단이 작년에 프로가 됐습니다. 요즘도 함께 바둑 공부를 하나요?
“입단 전에는 같은 도장에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따로 하고 있어요. 언니의 입단을 누구보다 응원했는데 막상 언니가 먼저 프로가 되니까 자극도 좀 되더라고요(웃음).”
- 바둑도장에서의 생활은 힘들진 않나요?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9시까지 바둑 공부를 해요. 늘 반복되는 일상을 버텨야 하는 도장 생활이 물론 힘든 부분도 많지만 사범님들께서 재밌게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 당면 과제는 역시 입단일 텐데요. 가능성은?
“음… 80% 정도?(웃음)”
- 오~ 상당히 높은데요. 조만간 프로기사로 만날 수 있겠군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실 여자 연구생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 돼서 지금은 누가 입단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거든요.”
- 너무 시간을 많이 뺏으면 도장 사범님들이 좋아하지 않으실 테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하는 걸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8강을 두던 날 이틀 후가 아버지 생신이었거든요. 만약 준결승에 올라가면 인터뷰 때 생신 선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진짜 이기고 나니 잊어버려서 그 말을 못 했어요. 생신은 조금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네요(웃음). 그리고 한국제지 관계자 분들이 아마추어에게 문호를 넓혀주신 덕분에 대회에 출전하게 된 걸로 알고 있어요. 덕분에 값진 경험을 했다는 감사 인사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