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記者) 방담(放談)
빙산은 거대합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장을 누비는 기자의 입을 통해 숨겨진 뒷이야기를 심도 있게 조명해보는 코너 기자방담. 생동감 넘치는 뒷담화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
합니다.
이달의 참석 기자
□ 경향신문 엄민용 기자, 한게임바둑 한창규 기자 GS칼텍스배 이용복 관전기자 사이버오로 김수광 기자, 타이젬 정연주 기자
본지 구기호 편집장, 김정민 기자, 이영재 기자 조범근 한국기원 홍보팀(객원기자)
□ 정리 : 김정민 기자
조명1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 의심스러운 안경
삼성화배재 결승1국에서 안국현 八단이 커제 九단을 꺾고 선취점을 얻었다. 내용은 빈틈 하나 없는 완승. 그런데 안국현을 응원하겠다며 따라온 나현 九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의 안경(?)을 의심해봐야 한다는데….
○…자, 삼성화재배 간 사람들 손 한 번 들어보쇼.
●…난 갔어.
○…나도 갔지.
●…안 간 사람이 있나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지?
●…조용히 따라오쇼.
○…(한 무리들이 카페로 들어선다)
●…대체 뭔 얘길 하려고? 삼성화재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게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이야기요.
●…(???) 무슨 개똥 같은 말이야? 자네가 우리들을 모두 불러모으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저분… 삼성화재배 때 계셨나요?
●…앗, 여기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삼성화재배에 없던 사람이야. 설마 그렇다면…….
○…후후. 다 모인 것 같군. 지금부터 방담을 시작해봅시다.
●…(...) 이제 별 짓을 다 하는구먼. 꼭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당신들이 하도 바쁘다며 요리~조리 피해다니니까 그렇지. 자 어서 말들 해봐. 커피 값은 해야지?
●…이번 삼성화재배 하면 안국현 사범을 빼고 말할 수 있나요. 결승1국이 끝났을 땐 다들 “안 사범이 삼성배를 먹는구나!”하고 들떠있었죠. 물론 결과는 아시다시피였지만.
○…그래도 잘 싸웠지. 1국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명국(名局)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잖아. 실제로 중국 인공지능 ‘줴이’가 분석했을 때도 백(안국현)의 실수가 발견되지 않았다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줴이한테는 프로기사가 두 점 놔도 쩔쩔 맨다던데.
○…1국 내용을 보고 황당한 건 비단 커제뿐만이 아니었어요. 정작 안 사범을 응원한다며 고양 글로벌캠퍼스까지 따라온 나현, 이지현 九단은 “안국현의 안경을 의심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죠. 이건 안경에 카메라를 장착(?)해 인공지능에게 훈수 받지 않는 이상은 나올 수가 없는 퀄리티라고.
●…그런데 왜 2국 때는 그렇게 죽을 쑨거야? 장착된 걸 가져갔어야 하는데 진짜 안경(?)을 가져가기라도 한 거야?
○…일단 커제가 백(白)을 잡은 게 다르긴 해요. 커제가 입이 좀 가벼워서 그렇지 백을 들면 정말 무서운 실력자거든요. 오죽 별명이 ‘백제(白帝)’겠어요.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긴 해요. 1국은 안 사범이 완승, 2국은 커제의 흠 잡을 곳 없는 완승. 3국은 또 오락가락 했잖아요? 안 사범은 초중반 고전했고 커제는 결승점 직전 혼자 흔들려서 역전 직전까지 갔다 오고.
○…그러고 보니… 둘 다 안경의 묘(?)를 사용한 거 아니야!? 1국은 허를 찔러 안국현이 사용하고 2국은 열받은 커제가 사용하고…. 3국은 서로의 안경 성능을 알아 챈 두 기사가 암묵적으로 합의를 한 거지. 그래, 너 안경 좀 쓸 줄 아는구나. 최종국은 안경이 아닌 직접 승부를 내보자.
●…얼씨구. 김전일 납셨네. 그럼 오랜만에 LG배 결승에 오른 스웨도 안경을 좋은 걸로 바꿔서 그렇겠구나~ 신진서 사범은 요즘 최고급으로 하나 장만했겠어. 오유진 사범이 최정 사범에게 족족 졌던 이유도 알고 보니 그놈의 안경 때문이었구만. 나도 어디 좋은 안경 하나 맞춰서 입단대회나 나가봐야겠네 그려. 세계대회 결승에서 만나세나.
○…저는 라식을 해서 안경을 못 쓰는데.(ㅠㅠ) 각막으로는 안 되나요?
●…쯧쯧, 바둑도 약한 것들이 안경 타령은. 그나저나 커제가 3국 대국 도중 경고도 받았다며? 그건 어떻게 된 사건이야?
○…제가 그때 바둑TV 생중계를 보고 있었는데요. 커제가 떡수(?)를 두더니 갑자기 테이블을 주먹으로 막 때리잖아요. 분명히 말하지만 ‘콩콩콩’이 아니라 ‘쾅쾅쾅’이었어요. 그걸 본 차수권 심판위원이 가서 구두로 주의를 준 거죠. 내 참, 자기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는 사람은 봤어도 대국 테이블을 때리는 경우는 첨 봤어요.
●…바둑돌은 안 흐트러졌나요? 주먹으로 ‘쾅쾅쾅’ 때렸을 정도면 바둑판 위의 돌도 막 흔들렸을 것 같은데.
○…그게 어찌된 노릇인지 절묘하게 바둑돌이 좌우로 이동하지 않을 정도로만 흔들리는 거 있죠? 열 받은 와중에도 지장이 없을 정도만 계산(?)해서 친 거죠. 아주 주도면밀한 녀석이에요.
●…그런데 차수권 사범은 중국어를 좀 할 줄 아나? 아니면 주의를 줄 때 통역이 따라갔나?
○…항간에는 차수권 심판이 커제에게 한국말로 주의를 줬고 커제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는 말이 돌았는데 그건 루머고요. 정확히는 주의를 영어로 줬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만했고 커제도 미안하다는 듯 “아아아” 웃으며 손으로 이해했다는 제스처를 취했었죠. 물론 국후 인터뷰 때는 “그런 일이 있었나? 몰랐다.”라고 오리발을 내밀긴 했지만.
●…그나저나 나는 커제가 엄지로 밀어두는 것만 보면 울화통이 치밀어. 꼭 자기가 질 수 없는 상황에서만 그렇게 두더라고. 마치 상대한테 “계속 두게?”하고 물어보는 것 같아.
○…이번 2국에서도 똑같이 그랬죠. 필승지세를 만들어 놓고는 한 수 두고 거의 드러눕더만요. 상대가 두면 엄지로 슥~ 밀어두고 다시 의자에 드러눕고. 누가 한 번 커제한테 이겨놓고 똑같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신진서 사범이 언젠간 설욕해 줄 거라 믿어요. 질 수 없는 국면을 만들어놓고 드러누운 다음 주먹으로 돌이 안 흔들릴 만큼만 탕탕 치고 바둑돌을 엄지로 죽~ 아니다, 똑같이 하면 표절이니까 우리는 중지로 가죠. 헤헤.
○…그러다 중국하고 전쟁 날걸요? 여하튼 안국현 사범 고생 많으셨고 곧 입대하는 걸로 아는데 2년 동안 무탈히 훈련 받으시고 멋진 모습으로 복귀하시길 빌겠습니다.
▲ 삼성화재배 결승2국에서 필승의 형세를 구축해 놓은 커제 九단이 엄지로 바둑돌을 눌러두는 특유의 퍼포먼스가 바둑TV에 포착됐다. 소위 ‘던져라’라는 의미다.
조명2 농심신라면배 / 공포의 체크무늬 양복
2018 농심신라면배 2차전은 온통 판팅위의 이름으로 도배됐다. 2016년에 이어 또 다시 7연승을 달린 ‘불도저’ 판팅위는 매판 체크무늬 양복을 입고와 화제가 됐는데, 그 체크무늬 양복의 효험(?)을 무용지물로 만든 숨겨진 비화가 있었으니…
○…올해도 또 판팅위 때문에 농심배는 망했네요. 2016년에 이어 연속 7연승이라니… 이게 사람이 세울 수 있는 기록입니까?
●…난 이번에 판팅위가 완전히 다 끝내는 줄 알았어. 박정환 사범도 이기고 이야마 유타도 이겨서 완전한 싹쓸이로. 불후의 9연승 기록이 다시 눈앞에 등장하나 했는데… 1승이라도 건진 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러고 보면 예전 서봉수 九단의 진로배 9연승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에요? 판팅위가 그렇게 불도저처럼 승수를 쌓았는데도 부족한 걸 보면. 제가 살면서 다시 볼 일은 없겠죠?
●…없긴 왜 없어~ 우리 정옥(판팅위를 한자 그대로 읽으면 범정옥(范廷鈺)이다) 씨가 그랬잖아. 농심배랑은 특별히 인연이 깊은 것 같다고. 7연승 때 두 번 다 박정환 사범한테 졌는데 그거 한판만 뚫으면 이제 9연승 가는 거지.
○…저는 그 판팅위표 체크무늬 양복을 상하이에서도 봐야 되나… 하고 걱정했는데. 아무리 징크스라고 해도 어떻게 판팅위는 같은 옷을 5일 동안 입을 수가 있죠? 으, 불결해.
●…그런데 왜 체크무늬 양복만 고집하는 거래요? 중국에서 그 옷 하나 싸왔데요?
○…제가 인터뷰 때 첫판부터 7연승을 하기까지 똑같은 체크무늬 양복을 입고 나왔는데 이유가 있냐고 물어봤는데 아무 이유 없대요. 그냥 이 옷이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아침 먹을 땐 다른 옷도 줄곧 입고 오는 걸로 봐서 다른 옷도 분명 있는데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그 옷에 있나 봐요.
●…내가 그런 것 같아서 사명감 하나로 그 옷을 만졌다는 거 아니냐. 7연승한 판팅위랑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판 선생~ 좋은 기 좀 나눠줘요”하면서 옷을 만지니까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더라고. 옷에 징크스가 있긴 있나봐.
○…부정탔네 부정탔어. 판팅위가 박정환에게 왜 힘 한 번 못 쓰고 졌나 했더니 바로 그 이유였어. 선배, 큰일 하셨습니다. 이거 공로상 감 아닙니까?
●…박정환 사범도 자기가 지면 한국이 전패로 탈락하게 되니까 부담이 크긴 컸나봐. 보통은 막 좋아서 춤추고 팔짝 뛰고 싶어도 복기 끝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까진 같이 인상 써주잖아. 근데 이번엔 복기를 하는데 대놓고 하회탈 웃음을 짓더라니까. 판팅위는 의자에 푹 기대서 인상쓰고 있고. 박 사범이 그렇게 밝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저는 그 정도 밝게 웃는 모습을 한 번 보긴 했어요. 박정환 사범이 예전엔 수지 좋아했다가 요즘엔 아이린으로 환승(?)한 건 다 알고 있죠? 그런데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라는 라디오프로그램에 아이린이 출연했는데 스피드퀴즈 문제로 “바둑기사 박정환 九단이 팬이라는 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문제가 나왔어요. 아이린이 또 이쁘게 “저도 팬이에요~~”라고 말했더라고요. 그걸 들은 한국기원 모 직원이 녹음해서 박 사범에게 녹음파일을 들려주자 박정환 왈 “이미 들었어요. 헤헤.” 저는 그때 진정한 ‘하회탈’이 어떤 건지 봤지요. 후후.
●…아이린이 박 사범 팬이라니… 크흑, 부럽다. 나도 안경 하나 맞춰서(?) 세계대회 결승에 오르면 아이린이 내 이름을 불러줄까. 선배! 내 안경도 같이 부탁합시다.
○…그래, 우리 안국현 사범에게 어떤 안경이 좋을지 상담을 받아보자!
●…안 사범 군대갔는데요?
○…(둘이 동시에)이런 젠장!!
▲ 판팅위와의 격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환하게 웃는 박정환 九단.
▲ 판팅위를 7연승으로 이끈 요주(?)의 체크무늬 양복.
조명3 한국제지 여자기성전 / 루이나이웨이의 최고 상금은 얼마?
최정 九단이 한국제지 여자기성전을 우승하며 연 상금 3억5천만원을 돌파했다. 역대 여자 기사 최고 상금이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기자들 사이에서 한 가지 논쟁이 있었으니 과연 ‘철의 여인’ 루이나이웨이 九단이 벌어들인 최다 상금은 얼마였을까?
○…이제 여자 바둑계는 ‘최정 시대’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여자국수에 이어 여자기성까지 국내대회 싹쓸이에 세계 여자 개인전인 궁륭산병성배까지 2연패 중… 올해 벌어들인 상금만 3억5천만원이 넘는다죠?
●…이야~ 여자기사가 3억5천이라니. 루이나이웨이 九단도 대국료만으론 1억도 못 벌었을 텐데. 아무리 이벤트 기전이 많아졌다지만 정말 대단한 기사야~
○…네에? 루이나이웨이 사범이 연간 1억도 못 벌었다고요? 에이~ 종합기전인 국수전도 우승하신 분인데 어떻게 1억을 못 버나요. 매년 수억을 벌었을 것 같은데.
●…쯧쯧, 저렇게 세상물정을 모르니. 루이나이웨이 사범이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여자국수전 우승 상금이 얼마였는지 알아? 1100만원이야. 여자명인전은 1200만원이고. 종합기전 국수전 우승이 4500만원이니 그해 여자기전을 싹 다 우승해도 7000만원 채우기도 만만치 않아요…. 여자 기사가 상금으로 1억을 번다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랍니다, 철부지 후배님.
○…거 좀 모를 수도 있지 철부지라뇨. 저도 기잣밥만 10년 가까이 먹은 사람인데.
●…밥만 많이 먹는다고 지식이 느냐? 공부를 해야지. 공부를. 바둑대회의 역사나 상금, 우승자 같은 건 달달 외고 있어야지 밥만 먹고 있으니 그렇게 살만 찌는 거 아냐. 나 때는…
○…음? 말씀 중 죄송한데요. 저도 듣다가 궁금해서 알아봤는데 루이나이웨이 九단이 국수전을 우승했던 2000년 연 상금이 1억2천만원이라는데요? 그게 지금까지 여자 연간 상금 1위 기록이었대요. 올해 최정 九단이 갈아치운 거고요.
●…쯧쯧쯧쯧쯧쯧~ 이렇게 세상물정을 몰라서 어떻게 기자밥 먹고 사셨을까. 상식을 가지고 사셔야죠. 상식을. 그 시절 멀쩡히 기자생활 하신 분이, 그런 정보도 없이 목구멍에 밥이 넘어 갑디까? 어어? 어디가세요~ 우리 철.부.지. 선배님~
○…크크. 자업자득이긴 한데, 쟤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니 너무 뭐라하지마. 루이나이웨이 九단이 중국으로 가기 직전인 2009년 벌어들인 연 상금이 3300만원이었어. 그때도 여자 상금랭킹 1위였는데도 말이지. 지금은 여자 세계대회가 많고 센코컵 같은 경우는 우승상금만 1천만엔(약 1억원)일 만큼 상금규모도 세잖아? 그때는 세계대회라 봐야 보해배 정도였고 국내에선 싹 쓸어 봤자 몇 천 안 되던 시절이니까. 2000년이 루이나이웨이 사범에게는 정말 특별한 해였던 거지.
●…그렇담 최정 사범의 3억5천 신기록은 더욱 상징적인 기록인 거네요. 그 척박했던 여자 바둑계가 이 만큼 꽃피웠단 증거니까요. 작년에도 1억을 돌파했고 올해는 3억을 넘겼으니 바둑을 배우는 여성들도 점차 늘어나지 않겠어요? 이창호 九단이 10대 때 억대 연봉으로 ‘바둑붐’을 일으켰듯 말예요.
○…그렇지. 연말인데 이런 해피한 이야기들을 하자구. 철부지들처럼 싸우지 좀 말고. 지겹지도 않냐?
●…그나저나 여자기성전 얘기하다 왜 루이나이웨이 사범 얘기로 빠졌죠? 정작 우승자 얘기는 하나도 못했네요.
○…최정 사범이야 앞으로도 주구장창 우승할 텐데 천천히 하지 뭐. 앞서 <커버스토리>에도 출연하셨고. 아, 그래. 시상식 때 최정 九단이 바램 한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그걸 말하면서 끝내도록 할까? 커피도 다 마셨는데.
●…그러시죠. 준비되셨죠? (다 같이)한국제지 회장님~ 다음 시상식 때는 꼭 ‘방탄소년단’ 불러주세요~~
▲ 불붙은 상금논쟁에 뜬금없이(?) 소환된 루이나이웨이 九단. 그녀는 종합기전 국수전을 우승한 2000년 1억2000여 만원을 벌어들이며 첫 여자기사 억대연봉 기록을 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