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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발랄 바둑캐스터/최유진 

등록일 2019.02.265,633

▲ 2월호 '상큼발랄 바둑캐스터' 코너의 주인공 최유진.
▲ 2월호 '상큼발랄 바둑캐스터' 코너의 주인공 최유진.

상큼발랄 바둑캐스터/최유진

‘최캐’의 변신은 무죄!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는 ‘바둑캐스터’ 최유진이었습니다.”

바둑TV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이 멘트. 지금은 바둑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을 ‘바둑캐스터’로 부르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1세대 바둑캐스터 최유진 이 등장하기 전까지 바둑캐스터들은 ‘해설 보조’ 정도로 여겨졌다. 바둑 해설을 진행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진행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뭔가 임팩트가 없었다.

축구는 축구캐스터, 야구는 야구캐스터가 활약하고 있는데 바둑엔 왜 바둑캐스터가 없을까, 의구심을 갖게 된 최유진은 바둑캐스터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초기 바둑TV PD들은 최유진을 ‘최캐’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최유진 캐스터의 줄임말이다. 경기도 판교의 한 카페에서 최유진 바둑캐스터를 만났다.

▲ ‘최캐’의 즉석 제안으로 최근 ‘뜨고 있는’ SG 스크린 골프 연습장이 사진 촬영 장소로 선정됐다. 최유진 캐스터는 수준급 골프 실력에 왕년엔 스키 선수까지 했던 만능 스포츠맨이다.


- 사실 이 코너 첫 번째 질문이자 공통 질문이 바로 ‘자랑을 곁들인’ 자기소개인데요,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분이 등장하셨네요. SNS에선 요새 온통 아기 사진만 보이던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어머, 열심히 준비한 자기소개 멘트가 필요 없게 된 건가요?(웃음) 작년에 출산했던 딸 아이가 엊그제 돌을 맞았습니다. 예전엔 SNS에 아기 사진 올리고 프사(프로필사진) 해놓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됐거든요. 그런데 제가 아기를 낳아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너무 예뻐서 안 해놓을 수가 없어요. ^^”

- 작년에 벌써 방송 복귀를 하셨습니다. 공백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복귀였는데.
“방송을 하루 빨리 하고 싶었어요. 애기 100일도 안 됐을 때 복귀했죠. 쉰 기간이 너무 짧아서 몸이 회복도 안 된 상태였어요. 복귀 후 방송 초반엔 옷이 안 들어가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지퍼가 안 올라가는 바람에(웃음). 방송에선 앞쪽만 보이니까 지퍼를 못 올리고 방송한 적도 있어요.”

- 그럼에도 빠른 복귀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집에 있으니까 자아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우울증도 살짝 오기 시작했고요. 마침 그때 제가 진행했던 프로그램(SG배 페어대회)이 개막하길래 복귀할 수 있냐고 물어봤죠.”

이세돌과 동문수학

- 근황토크는 이쯤 하고, 이제 본격적인 바둑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이세돌 九단과 ‘절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렸을 때 프로기사를 목표로 하셨나봐요.
“실은 그렇진 않은데(웃음). 제가 프로기사 양성소나 다름 없는 권갑룡 바둑도장 출신이라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아요.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셔서 어머니가 저희 3남매를 아버지 바둑 친구로 만들어 드리려고 했거든요. 언니, 오빠 모두 바둑을 가르쳐봤는데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실패하고 결국 막내인 저까지 온 거죠. 권 도장에 가게 된 건 우연이었어요. 어머니가 집 근처에서 우연히 바둑교실 버스가 지나가는 걸 보고 번호를 메모했다 전화를 걸었는데 거기가 권갑룡 바둑교실(당시)이었던 거죠. 저는 언니, 오빠와 달리 바둑과 인연이 있었는지 재미를 붙이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바둑을 시작한 거라 처음부터 프로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 도장에서, 아니 바둑교실에서 공부하던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제일 친했던 사람은 동갑내기였던 (권)효진이였어요. 요즘 월간 『바둑』에 쓰고 있는 칼럼(중국 바둑이야기)이 재밌어서 책이 나오면 항상 챙겨보고 있답니다. 기자님이 좋아하실 에피소드라면 시간이 흘러 ‘인간 대표’가 돼 알파고에게 유일한 승점을 올린 이세돌 九단과 ‘치수고치기’를 수도 없이 했다는 것?”

- 이세돌 九단과 치수고치기라니 생각만 해도 설레는 걸요?
“당시 이세돌 九단은 이미 입단한 신예 유망주였어요. 이세돌 九단이 바둑 두자고 할 때마다 너무 두기 싫어서 피할 때가 많았거든요. 한 판도 안 져주고(?) 매번 대마를 다 잡고 이겨가니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열심히 바둑을 뒀으면 프로가 됐을지도 몰라요. 그 비싼 수업을(웃음).”

- 1세대 바둑캐스터로서 아직까지 바둑방송에서 큰 역할을 하고 계신데요. 오죽하면 시청자들 중에 ‘여자바둑캐스터는 모두 최유진 같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예요.
“몇 년 전만 해도 그게 고민거리였어요. 후배들이 너무 똑같이 따라하니까… 말투는 둘째 치고 톤까지 따라하는 게 굉장한 스트레스였어요. 심지어 가족들까지 ‘어제 방송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넬 때가 있었거든요. 방송 안했는데(웃음). 그것 때문에 더 새로운 멘트, 남들과 다른 것 찾으려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었죠. 연차가 쌓이다보니 이젠 이런 것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장안의 화제, BASSO배 직장인바둑대회 중계를 맡고 있는 최유진 캐스터(왼쪽)와 김영환 九단.



- 얘기가 나온 김에 후배 바둑캐스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지금까지 그래왔고 여전히 바뀔 필요가 있는 게 바둑방송이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다는 점이에요. 선배들 방송을 보며 공부할 수밖에 없으니 어느 정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서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둑TV를 틀었을 때 목소리와 멘트만 듣고도 어떤 캐스터인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좋겠어요.”

- 방송을 정말 많이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이 있다면?
“당연히 알파고 때죠. 이세돌 九단이 4국에서 알파고를 쓰러뜨렸을 때가 아직도 생생해요. 하나 추가하면,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싹쓸이’ 했을 때예요. 금메달은 세계대회 우승과는 또 다른 의미잖아요. 당시 현지와 전화 연결하고 클로징 멘트할 땐 울먹울먹 하기도 했어요.”

- 방송을 하면서 뿌듯할 때는?
“오프닝, 클로징 멘트를 미리 준비했다가 사용했는데 그게 ‘대박’이 났을 때? 예를 들면, 안국현 九단이 GS칼텍스배에서 김지석 九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는 멘트를 쓴 적이 있는데 바둑기자님들도 인상적이었는지 뉴스 헤드라인으로 걸리더라고요. 그럴 때 기분이 좋죠.”

- 골프에선 CF도 찍어보셨고, <스타킹>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도 있으신데, 바둑방송만의 매력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다른 스포츠 방송이 엔테테인먼트라면 바둑방송은 ‘힐링’ 같은 느낌이랄까요. 바둑방송은 아무래도 좀더 차분하고 정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 안에서 시청자분들이 편안함을 느끼면서 재밌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저는 기전마다 콘셉트를 달리해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SG배 페어대회 같은 이벤트 기전은 재밌게, 톤도 약간 높여서 반면 세계대회 같은 중량감 있는 대국 때는 무게감 있게 하는 식으로요.”

- 미리 생각해둔 바둑방송 아이디어 중 하나만 오픈한다면?
“이벤트 대회에서 프로기사들이 심장박동 기계를 달고 대국을 하는 거 어떨까요? 묘수를 당했을 때, 혹은 실수를 한 직후에 상대가 알아차릴까 조마조마 하면 그게 심장박동으로 나타나는 거죠. 얼굴은 돌부처처럼 포커페이스인데 사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있다는 걸 시청자들이 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얼마 후면 설 연휴인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앞으로 더 감칠맛 나는 중계로 찾아뵙겠습니다. 어떤 방송을 원하시는지 제 SNS나 월간 『바둑』 독자 Q&A에 남겨주신다면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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