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신진서의 별명을 지어주세요
.jpg)
‘바둑황제’ 조훈현 9단, ‘돌부처’ 이창호 9단, ‘쎈돌’ 이세돌 9단. 과거 한국 바둑의 1인자였던 이들의 별명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바둑의 1인자를 놓고 다투고 있는 박정환 9단과 신진서 9단은 이렇다 할 별명이 없다.
프로기사의 별명이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는 없으나, 아무래도 인기가 높은 기사들이 별명도 많다. 별명은 바둑팬들이 붙여준 애칭인 경우도 있고, 동료들이 부르던 호칭이 그대로 별명으로 알려진 경우도 있다. 또 바둑평론가나 기자가 글로 소개하면서 별명이 된 경우도 있다. 그 외에 기풍, 성격, 외모, 이름 등 별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매우 다양하다.
조훈현 9단은 한때 별명이 ‘제비’였다. 전성기 시절 날렵한 속력행마를 구사했기 때문에 빠르다는 의미로 ‘제비’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제1회 응씨배에서 우승한 이후로는 주로 ‘바둑황제’로 불린다. 당시 ‘코미디 황제 이주일’, 훗날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이런 식으로 어떤 분야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성적을 남긴1인자에게만 붙는 명예로운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은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훈현 9단의 평생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서봉수 9단의 별명은 ‘된장 바둑’이었다. 서봉수 9단 이전 한국 바둑계에서 정상급에 도달했던 기사들이 대부분 일본 유학파였는데, 서봉수 9단은 유학 경험 없이 순수하게 한국에서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기에 만들어진 별명이다. 그러나 본인은 “내 바둑의 특징으로 본다면 된장보다는 고추장에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외에 실전형 기풍에 잡초 같이 끈질기고 강하게 살아남는 승부 근성 때문에 ‘야전 사령관’이라는 별명도 흔히 같이 쓰인다.
▲ 서봉수 9단의 별명은 '된장 바둑', '야전 사령관' 등이 있다
유창혁 9단의 별명은 ‘일지매’이다. 처음에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칭찬이지 별명이라고 하기는 좀 어색했다. 그때 누군가 고우영 화백의 만화 주인공 ‘일지매’를 닮았다고 해서 이후로는 줄곧 일지매로 불린다. 젊었을 때 유창혁 9단은 미소년처럼 앳된 동안이었고, 또 일지매가 그런 미소년의 얼굴로 엄청난 무술 실력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유창혁 9단의 공격력이 강했기 때문에 딱 맞는 별명이 되어 이후 다른 별명은 생기지 않았다.
▲ 젊었을 때 미소년의 이미지로 '일지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유창혁 9단
이제는 한국 바둑의 전설이 된 이창호 9단은 긴 시간 1인자의 자리를 지켰던 만큼 별명도 여러 가지이다. 초창기에는 바둑 둘 때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고, 자세가 부처님처럼 움직임이 없다 하여 ‘돌부처’였다. 이후에는 특유의 완벽한 계산력 때문에 ‘신산(神算)’이라고 불렸다. 그 외에 ‘전대 고수의 환생’이니 ‘외계에서 온 바둑 고수’ 등 너무나 완벽했던 그의 실력에 감탄하는 종류의 별명도 있었다. 또한 린 하이펑의 ‘이중 허리’보다 더 뒷심이 강하다고 해서 ‘삼중 허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 '돌부처', '신산' 등 많은 별명을 갖고 있는 이창호 9단. '응답하라 1988'에서 박보검이 연기했던 최택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유명한 이세돌 9단의 어렸을 때 별명은 ‘비금도 천재 소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쎈돌’로 굳어졌다. 강력하고 박진감 넘치는 그의 바둑 스타일 때문에 생긴 별명으로 가장 이세돌 9단에게 잘 어울리는 별명이기도 하다.
▲ '센돌' 이세돌 9단. 별명처럼 그의 바둑이나 성격은 윤곽이 뚜렷하고 강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별명이 기풍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칭위엔 9단은 ‘신통’, 사카다 9단은 ‘면도날’, 오다케 9단은 ‘미학(美學)’, 린 하이펑 9단은 ‘이중 허리’, 이시다 9단은 ‘컴퓨터’, 가토 9단은 ‘살인 청부업자’, 다케미야 9단은 ‘우주류’ 등 멋진 별명이 많이 있다.
중국의 녜 웨이핑 9단은 ‘철의 수문장’이다. 일중 수퍼대항전 초창기 일본의 고수들을 상대로 무려 11연승을 거두며 중국의 우승을 혼자 지켜냈기에 생겼던 별명이다. 이세돌 9단의 라이벌이었던 구리 9단은 ‘세계 최강의 아마추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가끔 아마추어들이나 두는 수들을 서슴없이 구사했기 때문이다.
▲ '철의 수문장'이라는 별명의 녜 웨이핑 9단. 제1회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 9단에게 패해서 명성에 흠이 갔지만, 지금도 중국 바둑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활동 중이다.
과거에는 이처럼 프로기사들에게 멋진 별명들이 많이 붙었는데, 최근에는 한중일 모두 멋진 별명이 붙은 프로기사들이 거의 없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요즘의 정상급 기사들은 과거처럼 특정 기풍으로 바둑을 두기보다는 마치 무색무취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와 같이 바둑을 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팬들의 사랑으로 특정 별명을 붙여준다면, 정상급 기사들도 그쪽 분야로 더욱 발전할 수도 있는 일이므로 애정을 갖고 프로기사들에게 적절한 별명을 붙여주면 더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과 유사하게 바둑을 두는 박정환 9단은 ‘인간 알파고’, 2000년생으로 강력한 전투형 바둑을 구사하는 신진서 9단은 ‘밀레니엄 울버린’ 정도는 어떨까?
▲ 박정환 9단의 뒤를 이어 한국 바둑계를 이끌어 나갈 신진서 9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