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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등록일 2020.06.011,773

▲ 5월호 표지를 장식한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MVP 신민준 9단.
▲ 5월호 표지를 장식한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MVP 신민준 9단.

커버스토리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MVP 신민준
바둑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MVP로 선정된 신민준(21) 九단의 상승세가 놀랍다. 4월 19일 현재 22승5패, 승률 81.48%를 기록하며 다승 1위, 승률 3위에 올라 있다.

랭킹 1위 신진서(20) 九단이 23승2패로 92%의 승률을 질주 중이지만 이미 보도된 것처럼 신진서 九단이 올해 당한 2패는 전부 신민준 九단에게 당한 패점이다. 

신진서 九단에게 거둔 두 번의 승리는 신민준 九단에게 자신감이라는 무기를 선물했다. 사실 신민준 九단은 바둑 입문 당시부터 바둑을 꼭 해야만 하는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조훈현·이창호 사제와 연을 맺은 것이, 민준이가 바둑을 하라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신민준 九단의 어머니 최영매 씨의 회고다. 

“바둑에 갓 입문한 민준이를 데리고 가족들이 과천 서울랜드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넓디넓은 놀이동산 영화관에서 이창호 九단을 만났죠. 그때 저희 가족과 이창호 九단 일행밖에 없었던 것도 신기했고요. 당시 이창호 九단은 바둑키드들에게 단연 연예인을 능가하는 스타였잖아요.”

신민준 九단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창호 九단의 사인을 받는 행운을 잡았다.

여기까진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 않나 싶은데, 이창호 九단과의 만남 며칠 후 이번엔 민준이의 아버지 신창석 씨가 바둑황제 조훈현 九단을 만나게 된다. 

“(KBS 드라마국 PD로 재직 중인) 민준이 아빠가 평창동에서 드라마 촬영 도중이라고 들었어요. 평창동에 사는 조훈현 九단을 만난 거죠. 아마 강아지와 산책하시는 길이었다나 봐요.”

이때의 인연으로 신민준 九단은 바둑도장에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운 지 1년 만에 조훈현 九단의 초대를 받아 자택을 방문했고 식사까지 하는 행운을 이어갔다. 바둑황제의 자택에서 수많은 우승 상패를 구경하고 에피소드를 들었던 것이 어린 민준이에게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꼬마 민준이가 어느덧 헌헌장부로 성장해 한국바둑의 미래를 짊어질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2020년 상반기를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 신민준 九단을 만났다. 


- 연초부터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 우승하고 MVP를 거머쥐는 등 쾌조의 스타트를 끊고 있습니다. 특히 입단동기 신진서 九단에게 올 시즌 유일한 2패를 안겼는데요.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대국에만 집중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최근 AI의 도움을 받아 기술적으로 성장한 기분입니다. 그동안 멘탈이 약하다는 얘길 자주 들었는데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진 느낌이고요.

- 랭킹 1위에게 연승하며 자신감도 부쩍 커졌을 것 같습니다.
신진서·박정환 九단 등 초일류기사들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도 신진서 九단에게 두 번 승리한 것이 다른 경기에도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것 같습니다.

- KB리그 챔피언결정전과 맥심커피배 4강 경기에서 신진서 九단을 만났을 때 느낌이 조금 달랐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 바둑리그에서 성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챔피언결정전 최종국에서 신진서 九단을 만났습니다. 제가 말을 안 해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바둑리그 첫 우승을 제 손으로 확정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맥심커피배 때는 이상하리만치 편하게 대국했고, 종국까지 집중이 잘 됐던 것 같습니다. 

- 평소 신진서 九단과는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는데, 중요한 대국이 끝나고 함께 자리하고 있으면 불편한 면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승부사로서 감내해야 할 부분이죠. 대국 당일과 다음날까지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금방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니 그 부분은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어린 나이에 바둑과 인연을 맺었다고 들었습니다.
여섯 살 때 바둑을 처음 배웠습니다. 바둑을 배우기 한 해 전에는 주산을 재미있게 배웠고 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때부터 숫자와 관련된 것에 재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 바둑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주로 어떻게 지내시나요?
일주일에 2∼3회 정도 집 근처 한강 시민공원에서 조깅을 합니다. 틈틈이 바둑TV를 보거나 가족들과 드라마도 함께 시청합니다. 최근엔 ‘이태원 클라쓰’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최신곡도 자주 듣는 편인데 조용한 발라드를 좋아합니다.

- 집에서 대국장까지 전철로 이동한다고 들었는데, 이제 알아보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
집근처인 노량진역에서 전철로 한국기원 근처 상왕십리역까지 이동합니다. 가끔 알아보는 분들이 계시지만 아직 불편할 정도는 아닙니다.

-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시는데, 혹시 마이카 계획은 없으신가요.
아직 운전면허도 없습니다. 따긴 따야 하는데, 승부에도 때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바둑에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는 어머니가 데려다 주시기도 하고요.

- 특별히 ‘올해 꼭 이것만은 이루고 싶다’ 하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바둑리그 첫 우승을 이뤄 단추를 잘 꿴 것 같고 다른 대회 성적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올해 응씨배 등 세계대회가 연이어 열려야 하는데…, 그 중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한 차례 정도 우승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여러 일정이 연기되는 등 세계대회가 하반기에 몰릴 것을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 지금의 페이스면 연말 바둑대상 MVP도 도전해 봄직한데….
상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래도 바둑대상 MVP는 한 번쯤 받아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쉽지 않을 것 같고 2∼3년 뒤에는 무대에 서고 싶네요.

-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이 있다면? 이전 인터뷰에서는 천야오예 九단과의 19회 농심신라면배 5국을 꼽던데….
2017년 농심신라면배 6연승 추억이 많이 회자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신진서 九단과의 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최종국이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 AI 활용을 많이 하고 있을 텐데. 어떤 AI를 주로 사용하는지, 또 AI 이전과 이후 가장 큰 차이점은 뭔지 궁금합니다.
초창기에는 릴라제로를 많이 썼던 것 같고 한두 달 전부터는 카타고를 많이 사용합니다. 카타고는 확률 말고도 집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줘 기사들에게 뭔가 느낌을 주는 AI인 것 같아요. AI는 바둑을 두기 보다는 주로 제 바둑을 복기하는데 활용합니다. 바둑 두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승패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고, 두 점 접바둑을 두더라도 워낙 세서요. 신진서·박정환 九단의 바둑은 한큐에서 이용 가능한 ‘줴이(絶藝) 정예’의 하이라이트를 주로 참고합니다.     

- 바둑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공부하고 있는지, 신민준 九단의 하루 일과가 궁금한 팬들이 많습니다.
바둑은 많이 할 경우 하루 8∼9시간씩은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주로 한큐바둑에서 중국 상위권 기사들과 인터넷 바둑을 많이 둡니다. 인터넷바둑은 주로 속기로 많이 두는데, 제한시간은 보통 생각시간 1분에 15초 초읽기 3회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둑을 두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실전들의 복기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 지난해 1월 KBS바둑왕전 우승도 그렇고, 올해 초반도 KB리그 우승 등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실 봄, 여름보다 가을, 겨울에 성적이 좋은 편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입단 후 줄곧 비슷한 패턴이었던 것 같아요. 연승도 많고 연패도 자주 당하는 등 기복이 있는 편인데, 특히 큰 바둑을 패하면 힘이 많이 빠지고 오래 가는 편입니다. 빨리 고쳐나가야 할 부분인데, 바둑에서 많이 이기면 슬럼프도 저절로 극복되는 것 같습니다.    

▲ 2009년 중국 산시성에서 열린 제26회 세계청소년바둑선수권전에서 중국대표 양딩신과의 대국 후 악수하는 모습. 당시 양딩신에 패해 준우승했다.



- 국내외 호적수나 라이벌을 꼽는다면? 특히 까다로운 상대가 있는지?
역시 박정환 九단과 신진서 九단이 강한 상대들이고 변상일 九단과는 기풍상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까다로운 상대인 것 같습니다. 중국의 동갑내기 쉬자양 八단이나 자오천위 七단도 호적수들이고, 한 살 위인 양딩신 九단과 구쯔하오 九단도 강하지만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커제 九단은 당연히 저보다 강한 것 같고요. 그 중에서도 판팅위 九단은 인터넷에서 한 판 이기기 힘들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어려운 상대라 극복해야 할 대상 중 한 명입니다.   

- 입단 당시에는 박정환 九단을 존경하는 기사로 꼽았던데요. 현재도 마찬가지인가요?
박정환 사범님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승부를 계속하고 계신 이창호 사범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스승인 이세돌 사범님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고요.

- 바둑 팬들에게 어떤 기사로 기억되고 싶은지요?
자기만의 색깔로 기억되는, 바둑 역사에 남는 승부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초일류기사로 오랫동안 활약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초일류기사라 하면 랭킹 1위의 ‘넘사벽’이 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나요?
현재 랭킹 1, 2위 기사와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편입니다. 랭킹 1위는 3년 정도 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 2011년 제11회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우승 후 심판위원장인 조훈현 九단과 함께.

 신민준 九단을 비롯한 한국물가정보 선수단은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시상식 후 노영현 회장, 노승권 대표를 비롯한 한국물가정보 직원들과 조촐하게 식사하면서 대회 2연패를 다짐했다고 한다. 다음 시즌에도 올 시즌을 동고동락한 막강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다른 팀으로부터는 벌써부터 공포의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팀 선수단과 우승기념 여행을 함께 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신민준 九단은 영락없는 한국물가정보의 주장이었다. 

<글/차영구 편집장, 사진/이시용 작가>


 

▲ 박하민 七단과의 국가대표 상비군 리그전 복기 장면. 종국 후 신진서 九단이 복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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