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배 우승하며 8년 만에 컴백한 조혜연 九단
이사람 제7기 대주배 우승자 조혜연 九단
대주배 우승하며 8년 만에 컴백한 조혜연 九단
2전3기. 조혜연 九단은 대주배 3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5기에서 조치훈 九단을 상대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지난해엔 최규병 九단에게 우승컵을 넘겼다.
두 번 숙성시킨 짜릿한 우승에 필요한 집수는 더도 말고 딱 반집이었다. 반집승이 확정된 순간 조 九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입단 23년 만에 남녀 혼성대회 첫 우승이었다.
조혜연 九단에겐 ‘여자 강호’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지만 우승 기록은 8년 전 여자 십단전을 끝으로 멈췄다. 이후 지지옥션배와 여자리그 등 단체전에서 활약하며 우승 이력을 추가했지만 개인전에서는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세 번 문을 두드려 기어코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은 그녀. 대주배 우승자 조혜연 九단을 만났다.
- 오랜만에 우승이라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8년 만에 우승이다. 말해 무엇 하나. 더욱이 남자 기사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는 첫 우승이다. 무척 기쁘고 영광이라 생각한다.”
- 결승 상대 김영환 九단에게 3연패 중이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워낙 힘이 강한 상대라 애초 쉽게 이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엄청난 전투바둑이 되겠구나 예상했는데 과연 그랬다. ‘쫄지 말고 끝까지 싸워보자!’란 생각으로 임했다. 멋지게 일합(一合) 승부를 나누고 싶었는데 현실은 떼굴떼굴 굴렀다. 상대와 함께 굴렀다. 나 혼자 구를 수 없기에 발목을 붙들고 늘어져 겨우 승리했다.”
- 드라마틱하게도 반집승이다.
“마지막에 역전될 수도 있었다. 1집반 이길 수 있었던 걸 실수를 저질러 반집 역전패 당할 위기에 처했다. 다행인 것은 상대(김영환 九단)도 계산에 착오가 있었던 듯싶다. 어차피 이겼다고 생각하셨는지 치열하게 반집을 다투지 않으셨다.”
- 실수를 했을 때 ‘덜컥’ 했겠다.
“대국 중엔 그 수가 실수인지 알지 못했다. 서로 40초 1회 초읽기라 정신이 없었다. 계가가 정확하진 않았는데 반집승부임은 느끼고 있었다. 도저히 내가 이겼다는 확신이 안 들어 부끄럽지만 공배를 세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마지막 공배를 메우면 반집패). 프로의 자존심으로 간신히 자제했다. 상대가 마지막 공배를 메울 때 마음이 . 그때 승리를 확신했다.”
- 세 번 도전 만에 우승컵을 따냈는데.
“5기 때는 결승에서 조치훈 사범님에게 졌고 작년에는 최규병 사범님에게 패했다. 아쉽기도 했지만 두 번의 실패가 큰 경험과 공부가 됐다. 특히 조치훈 사범님과 결승은 개인적으로 정말 감명 깊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사와의 승부 자체가 흔치 않은 기회이자 영광이다. ‘조치훈’이라는 이름 석 자에 눌려 제대로 판도 못 짜고 진 게 아직도 후회된다. 하지만 대기사의 기운과 투혼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만족한다.”
- 30대 첫 우승이다. 10대, 20대 때 우승과 비교해 어떤가.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 10대에는 예민한 성장기를 보내며 승패에 집착이 심했다. 졌을 때 아픔이 지금보다 1000배쯤 심했던 것 같다. 얼마 전 LG배 예선을 졌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에이, 또 졌네’ 정도다. 그런데 그때는 아픔이 너무 컸다. 또 자만심에 이기고 우승해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여겨 큰 기쁨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20대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지나쳤다. 이때 지면 아프긴 하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서른이 넘어서야 패배의 아픔이 많이 희석됐던 것 같다.”
- 우승의 기쁨보다 패배의 아픔이 더 컸다는 뜻인가.
“과거에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졌을 때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문제다(웃음). 감각이 무뎌질 만큼 무뎌졌다. 그런데 우승하니까 기쁨은 1000배더라.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살면서 우승할 기회가 오긴 올까 생각했는데 우승하니 너무 기쁘다. 패배에 아픔을 느끼고 있는 후배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공감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말라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희석의 순간은 오니까.”
1985년생 조혜연 九단은 1997년 11세 10개월의 나이로 프로 데뷔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성 최연소 입단이었다. 6년이 지난 2003년 18세 나이로 루이나이웨이를 꺾고 여자 국수전 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금세라도 최강의 여자기사가 될 것 같았던 그녀의 앞길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 조훈현, 이창호 등 내로라하는 초일류도 벌벌 떠는 루이나이웨이의 벽은 높고도 높았고 그녀가 중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최정이라는 후기지수가 등장해 여자 바둑계를 휩쓸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녀는 서른 중반을 맞이했다. 승부사였던 조혜연 九단은 바둑도장을 운영하며 인생 중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 박창명 二단과 바둑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들었다. 교육은 적성에 맞는지.
“가르친다는 건 너무 좋다. 이제 1년 살짝 넘어 교육자로서는 아직 초년생이지만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배우는 학생 중 입단에 대한 내면의 갈등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 나도 걸어본 길이라 충분히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예전에는 프로가 되지 못하면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언제든지 프로가 힘들면 학업으로 전향하라고 조언한다. 입단이 인생의 승자는 아니니까. 꼭 프로가 되어야 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길은 열려 있다고 본다.”
- 꼭 프로가 되어야 하는 학생이라면?
“바둑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꼭 바둑을 해야 한다. 기재(棋才)가 없더라도 그렇다. 반대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바둑 둘 때 재미를 못 느끼고 큰 뜻이 없는 사람은 기사의 길을 추천하지 않는다. 바둑 두는 게 행복하지 않은데도 도전할 만큼 기사로서의 삶이 순탄하진 않으니까.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이런 점을 솔직하게 말한다.”
- 서른 중반 도장을 운영하면서도 대회 우승컵을 차지했다. 롱런의 비결이 있다면.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승부사로서 활약하는 걸 지켜봐주시는 바둑 팬들 덕분인 건 확실하다. 그 분들이 내가 승부세계에서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주는 이상 나도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요즘 스스로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에 체력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소띠 삼총사(최철한, 박영훈, 원성진)와 마찬가지로 나도 소띠인데 우리 세대가 아직 더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바둑계가 다양해진다. 올드 팬들은 아직 우리의 이름을 더 기억해주기 때문이다.”
- 대주배 우승 기념으로 바둑 팬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 거라고 들었다.
“맞다. 대주배 우승은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이기 때문이다. 승부를 계속할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나의 우승을 기다려온 많은 팬들을 모시고 조촐하게 파티를 열어보려 한다. 피자와 치킨 100인분 정도 준비해 지나온 이야기들을 나눠볼 계획이다. 기자님도 시간되면 꼭 오시기 바란다.”
-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하다.
“목표가 조금 높다. 당장은 5월에 개막하는 여자리그 우승이 목표다. 지난 지지옥션배에서 예선 탈락을 했는데 신사팀이 우승했다. 올해는 꼭 본선에 올라 숙녀팀 우승에 보탬이 되고 싶다. 그리고 큰 목표는 최정 九단에게 한 번 도전하는 것이다. 최 九단은 독보적인 가능성을 가졌고 국내대회, 아니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천재라고 본다. 너무 쉽게 우승하고 독주하면 안주하기 쉽다. 기습적인 바둑으로 최정 九단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고 싶다. 다시 여자 기사가 통합타이틀 우승을 차지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자그만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 그리고 나와 소통하는 친구들과 바둑 팬들께 대주배 우승 영광을 돌리고 싶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바둑과 함께 잘 극복하기시 바란다.
<인터뷰/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