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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바둑황제’ 조훈현 

등록일 2020.07.221,055


커버스토리 ‘바둑황제’ 조훈현
국회의원 임기 마치고 반상 복귀한 ‘바둑황제’ 조훈현 



‘황제’라는 단어에서는 묵직한 울림이 베어 나온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라는 부제로 더 알려져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매년 수십 번 이상 청취 가능한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당대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의 작품을 비교청취 해보면 몇 번을 들어도 새롭다.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는 클래식의 황제 베토벤에 버금가는 인물을 바둑계에서 찾는다면 단연 조훈현(67) 九단일 게다. 조 九단이 1989년 초대 응씨배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후 한국 바둑계가 비로소 중흥기를 맞이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통산 최다승(1949승), 통산 최다대국(2787국), 통산 최다타이틀 획득(160회), 타이틀전 최다 출전(237회), 타이틀전 최다 연패(패왕전 16연패), 최고령 타이틀 획득(49세 10개월·7회 삼성화재배), 최연소 입단(9세 7개월), 국내기전 전관왕 3회,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국내 九단 1호 등 숱한 기록을 양산한 조훈현 九단이 ‘바둑황제’로 불리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반상(盤上)을 평정하고 2016년 5월 정계에 입문한 조훈현 九단은 20대 국회의원 임기 동안 ‘바둑 진흥법’ 제정이라는 큰일을 마치고 바둑계로 귀환했다. 금의환향한 조훈현 九단을 국회의원 임기 마지막 날 평창동 자택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 4년간의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바둑계에 복귀한 조훈현 九단은 국회 적응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바둑진흥법 제정을 위해 일일이 의원실을 찾아다니는 발품을 팔았고 마음고생이 심해 입술이 부르트기도 했다.



 

- 공교롭게도 20대 국회의원 임기(2016.05.30∼2020.05.29) 마지막 날 뵙게 됐습니다. 만감이 교차하실 것 같은데요. 바둑계로 돌아오시게 된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소회는 뭐∼, 이제 (한국기원에) 이름만 걸어놓는 거지. 조금 쉬다 내 할 일을 찾아봐야 하는데, 예전처럼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

- 국회의원 4년 동안을 복기하신다면 몇 점을 주고 싶으신죠.
정치쪽엔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아. 낙제점이지. 그래도 바둑 진흥법은 했으니 점수를 떠나 바둑계로만 보면 합격점 정도는 될 것 같기도 한데, 국회의원으로는 불합격일 거야.

- 여의도에 계시면서 어떠셨는죠. 바둑동네와는 전혀 다른 세계인데요.
어디나 그 나름대로 세계가 있는 거지. 조금 지나보니 알 것도 같긴 한데. 정치를 위해서 간 게 아니고 바둑계를 위해서 간 거니 조금 뜻이 다르긴 해도 적응하기 힘들었어. 생각지도 못 한 세계니깐. 국회를 내가 몰랐으니까 그런 거지만, 그렇게 싸우고도 뒤에선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술도 같이 마시고∼.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더라고.

- 국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신다면.
아무래도 바둑 진흥법이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때겠지. 정세균 위원장이 축하한다고 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긴 해. 국회 기우회, 국회의장배 바둑대회, 한·중·일 삼국 국회의원 대회 등 바둑쪽으론 좋은 기억이 꽤 있었던 것 같아.



- 정계에 입문하시니 달라진 점이 많던가요.
내가 달라진 게 아니고 남들이 달라졌지. 바둑 좋아하는 분들이야 국수로 알아봐주시지만, 일반인들, 특히 공무원들은 국회의원으로 대우 해주니 한국기원 기사 때와는 전혀 다르지.

- 한·일 의원 바둑대회 당시 특히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 九단이 조 의원님을 많이 부러워하더라고요. 국내 동료 기사분이나 중국, 일본 기사들이 (기회가 생겨)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된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시겠어요?
나는 정치하러 간 건 아니고 (바둑 진흥법을 생각하고) 바둑계 연장으로 간 거라 입장이 좀 달라. 정치하려면 바둑 일 다 접고 가야 하는 거고. 말은 다 못 하지만 국회의원 되면 솔직히 좋은 점이 있긴 한데, 난 구태여 그걸 바라고 간 건 아니기도 했고.

- 국회의원이 되신 후 이전 생활 패턴과 많이 달라지셨을 텐데요. 어떤 점이 가장 적응하기 힘드셨는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을 일단 해야 되니까. 대국이 많았을 때는 그래도 매일 기원에 나가긴 했어도 그거하곤 또 다르니까. 일이 있거나 없거나 여의도로 출근하고 저녁 때 퇴근하고, 샐러리맨 생활을 한 거지.



-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셨는데, 고향에서 다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할 생각은 없으셨나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 당에서는 영암쪽 지역구 출마를 권유하기도 하고 도당위원장을 맡으라고도 했지. 당협위원장 맡고 잘 하면 지역구 출마로 가는 건데. 어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거절했어.

-  10만 부 넘게 팔렸죠. 명저 ‘고수의 생각법’에 보면 휴대폰,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관련 대목이 나오는데요. 조 의원님이 기사 시절 ‘3무’ 였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만, 지금은 휴대전화 쓰시는 것 같습니다.
운전면허만 없어. 국회의원 하면서 휴대전화 하고 신용카드는 쓰지 않을 수 없거든. 운전은 수행비서가 해줬지만, 이제 집사람한테 부탁해야지. 

- 의원 임기를 마치고 바둑계로 돌아오십니다만, 한국 바둑계 원로로서 어떤 역할을 해 주실지 주위에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바둑계로 컴백하시면 이것만은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게 있으신죠.
이제 내가 할 일은 거의 했지 뭐. 조금 쉬다가 불러주는 데가 있으면 강연도 하고 하려고 해. 

- 휴직 전까지 1949승으로 세계 최다승이셨는데, 2000승을 언제 달성하실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최다승은 세월 지나다보니 그렇게 된 거고, 사실 의원 그만두고 은퇴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깐 했어. 그래도 바로 그만두는 건 기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해서. 이름이라도 올려놓아야 바둑 활동하기도 좋고, 행사나 초청 비슷한 기전 한두 개 나갈까 하는데, 그것도 실력이 안 되지만. 전체 기사가 참가하는 일반 기전에는 나갈 생각이 없고. 

- 백산수배 시니어 연승최강전 개막 뉴스를 보셨을텐데요. 기록을 찾아보니 조 의원님이 농심신라면배 본선에 다섯 번 출전하셨는데 그때마다 한국이 우승했습니다. 백산수배 대표 출전이 유력한데 우승 자신 있으신죠? 최근 인공지능도 사용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만 인터넷 바둑은 자주 두시나요.
옛날 실력 같으면 희망이 있을 텐데 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인공지능은 못 따라가, 머릿속에 안 들어와. 인공지능이 두라니까 똑같이 둘 수밖에 없지만, 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옛날 사람들은 실전에 나오면 그렇게 못 둘 거야. 너무 달라서. 인터넷 바둑은 어쩌다 두긴 하는데 마주 보고 두지 않으니까 느낌이 많이 달라. 마우스미스 걱정도 있고, 성격이 급해서 수읽기도 잘 안 되고. 젊은 사람들이야 인터넷 바둑 많이 두지만, 나한테는 새로운 세계나 마찬가지야.

- 지난해 응씨배 우승 30주년을 맞아 당시 결승 상대였던 녜웨이핑 九단과 마주 하셨는데요. 89년 응씨배 우승 후 벌써 30년이 지났다는 게 실감 나시는죠? 녜웨이핑 九단을 만나면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세월이) 후딱 가, 그때가 좋았는데. 옛날 얘기로만 끝내야지 어쩌겠어. 녜웨이핑 만나도 옛날처럼 맨날 시합하고 하는 상대가 아니고 추억으로만 생각나는 거지.

- 바둑 진흥법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생겨 바둑계도 이전보다 좋은 환경에서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 한국 바둑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는죠.
일단 세계 최강 자리를 뺏어오는 게 첫 번째지. 중국에 밀려 쉽지는 않겠지만. 다른 쪽에 (관심을) 많이 뺏겨 바둑이 내리막인데, 쉽지는 않겠지만 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지. 에이아이(AI)를 이용하든 뭘 하든 젊은 아이들한테 재미있고 혁신적인 게 있어야해, 이대로 가면 내리막길 밖에 없어. 9줄 바둑이든 13줄 바둑이든 어떻게든지 호응을 얻어 내는 게 중요한 거지.

- 근처 북한산을 자주 산책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요새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죠. 비교적 늦게 시작하신 골프 실력도 상당하시다고요.
이제부터 해야지. 골프는 15년 정도 됐는데 아직도 백돌이(100타 이상)야, 지금은 4년 동안 안 쳐서 더 떨어졌고. 최고 잘 칠 때는 80에서 90타 사이도 쳐봤지. 바둑으로 말하면 3∼4단은 되니까 잘 친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지금은 초∼2단도 안 되는 하수지. 나보다 집사람이 더 잘 쳐. 사위들하고 한두 번 운동도 해봤는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쉽지 않더라고.

- 임기 중인 2017년 11월 고향인 전남 영암에 ‘조훈현 바둑기념관’을 개관했습니다. 감개무량 하셨겠어요. 바둑기념관에는 현재 700여 점의 기념품 중 200여 점이 전시되고 있고 나머지 500여 점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 중 가장 아꼈던 물품이라든지, 이것만은 꼭 팬들이 와서 봐주었으면 하는 전시품이 있으면 추천해 주시고 기념관 자랑도 해 주시죠.
집에 있는 물품 거의 대부분이 기념관으로 갔지. 응씨배 우승컵이 특별하긴 하지만 어떤 건 주고 어떤 건 안 주고 할 수 있나, 주기로 했으니 다 줬어. 기념관에 몇 번 들렀는데, 한 번쯤 구경은 할 만할 거야. 

- 바둑계 후배들 중 눈에 띄는 기사가 보이시는죠? 현재 세계바둑계에서 성적을 내는 국내외 기사 중 누굴 가장 눈여겨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후배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도 한마디 해주시죠.
공부하란 소리밖에 못 하지. 옆에서 얘기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후배들은 잘은 모르고, 그 중에 뛰어난 애가 성적을 내는구나 하는 정도지, 요샌 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자세히는 잘 몰라. 중국은 2∼30명 정도로 층이 두텁지만 한국은 두세 명 정도, 많이 치더라도 4∼5위 정도니 숫자적으로 많이 달리지.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랄까, 향후 목표가 있으시면 팬들께 알려주시죠.
특별한 계획은 없고 1∼2년 쉬고, 나하고 직접 연관되는 일을 찾아야지.

▲ 대국 전 최정 九단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건네받고 웃음짓는 조훈현 九단.


조훈현 九단은 13일 최정 九단과 ‘화려한 귀환, 돌아온 황제 조훈현’이라는 타이틀로 복귀전을 펼쳤다. 중반 승부처에서 착각으로 돌을 거두긴 했지만 4년의 공백기를 느끼기 힘들만큼 잘 싸워, 역시 승부사는 승부사임을 보여주었다.

“최정 九단은 예전보다 더 세졌고 저는 더 약해졌어요. 옛날 실력을 가지고 다시 싸워보고 싶습니다.”

조훈현 九단은 국후 인터뷰에서 진한 아쉬움을 삼켰다.

“1∼2년 정도 쉬면 예전의 기량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밝힌 노 승부사는 다음 한마디로 본인의 심경을 알렸다.
“(국회의원 보다는) 평생을 걸어온 길이니까 오늘처럼 바둑 두는 게 훨씬 행복합니다.”

은연중 ‘수구초심’의 심정을 드러내며 변함없는 사랑과 응원을 부탁한 노 승부사의 얼굴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푸근함이 짙게 묻어났다.
<글/차영구 편집장, 사진/이시용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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