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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열전 / 서능욱 vs 강훈 

등록일 2021.01.221,512

서능욱 九단(왼쪽)과 강훈 九단의 가장 최근 맞대결은 지난해 10월 열린 시니어바둑리그 본선14라운드였다. 의정부 희망도시 1지명 서능욱 九단이 부천 판타지아 2지명 강훈 九단에게 승리하며 통산전적을 35승 30패로 바꿔 놓았다.
서능욱 九단(왼쪽)과 강훈 九단의 가장 최근 맞대결은 지난해 10월 열린 시니어바둑리그 본선14라운드였다. 의정부 희망도시 1지명 서능욱 九단이 부천 판타지아 2지명 강훈 九단에게 승리하며 통산전적을 35승 30패로 바꿔 놓았다.

열전 끝의 종국(終局). 마지막 40초로 장장 2시간여를 버틴 대국자가 땀을 닦는다. 하지만 상대방 시계는 제한시간의 절반도 넘지 않았다. 서능욱과 강훈이 마주 앉으면 거의 언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신출귀몰한 서능욱의 별명이 ‘손오공’이란 건 세상이 다 알지만, 강훈의 아호(?)가 ‘진땀’이란 건 교과서에 안 나온다. 언제나 땀에 흠뻑 젖은 바둑돌을 놓을 정도로 끈기 있는 기풍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런데 둘은 정말 그토록 지독한 속기파, 장고파들일까.
서능욱은 “나도 1년에 서 너 판 정도는 초읽기에 몰린다”고 했고, 강훈은 “생각해 봐야 수도 잘 안 보여 요즘엔 열 판에 한 판쯤은 시간 다 안 쓰고 끝낸다”며 약간 김빼는 소리들을 했다.

서능욱 九단


시간 사용량보다 더 확실한 건 둘이 만나면 시종 불구대천 웬수 만난 듯 죽자고 싸운다는 점이다. 그런데 패턴이 있다. 작심한 듯 쫓아다니며 시비를 거는 쪽은 손오공이다. 진땀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받아치지만, 때로는 백스텝도 밟고 철군도 한다. 마이크 타이슨과 에반더 홀리필드의 재림이다(귀 물어뜯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타이슨이 말했다. “전투와 패싸움 하는 재미가 없다면 뭐 하러 바둑 둡니까. 무조건 끊고 싸우겠다고 작심하고 대국에 들어갑니다.” 강훈도 호전형 기풍에 속하지만 서능욱이 워낙 지독한 ‘전쟁광(狂)’ 이다보니 얌전한 색시처럼 포장됐다. 서능욱은 강훈의 기풍을 ‘찢고 물어뜯는 바둑’이라고 했고, 강훈 자신도 스스로를 ‘쥐어짜는 스타일’이라고 자복했다.

장고 바둑은 강훈이, 속기 기전에선 서능욱의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다.
강훈은 “요즘 시니어 공식전은 거의 모두 속기다 보니 맨날 얻어터지기 바쁘다”고 푸념한다. 강훈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나도 사실 입단 전엔 속기파로 제법 인정받았다. 그런데 입단하고 나니 창창한 시간이 제공되더라. 누구에게 건 절대 지고 싶지는 않아서 생각을 거듭하다 장고가 습관이 돼버렸다. 요즘도 김희중 선배같은 속기파를 만나면 번갯불에 곱창 구어 먹듯 한 자리에서 몇 판씩 해치운다”고 했다.

상극인 것은 기풍과 착점 속도만이 아니다. 바둑계에 발을 들여놓은 출발부터 달랐다. 서능욱이 사관학교를 거쳤다면 강훈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징집된 야전군 출신이다.
부평에 살던 서능욱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바둑돌을 잡았다. 그때는 꽤 어린 나이에 속했다. 3급까지 오른 뒤 고(故) 이일선 3단, 김덕규 1급 등에게 5점으로 배웠다. 5학년 때 한국기원 원생으로 들어가 4번 도전 끝에 입단에 성공했다. 1972년 9월, 제36기 입단대회였다. 14세 천재 프로기사가 출현했다고 바둑계가 떠들썩했다.
강훈은 전북 익산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들이 모두 바둑을 잘 두었다. 큰 형이 절친이자 아마 강자인 박명호(79) 씨와 자주 대국했다. 그걸 어깨너머로 관전하다가 스스로 바둑을 깨쳤다. 1년 만에 1급으로 올라섰고, 형님들을 제치고 집안에서 최강자가 됐다. 바둑 책 같은 건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임동균 등 많은 선배 강자들과 어울리면서 실력이 늘어갔다. 입단 대회를 노크해 역시 네 번 도전 만에 수졸에 올랐다. 74년 9월, 서능욱보다 꼭 2년 늦은 출발이었다.

이긴 판은 기억에 없다
성장 코스가 판이하다 보니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인생을 살아가는 성향, 가치관도 달랐다.
강훈은 당대 최고의 한량 김희중과 어울려 술 마시는데 열중했다. 서능욱은 독서와 음악, 그리고 당구를 즐겼다. 마주칠 일이 없으니 다툴 기회도 없었다. 첫 대면에 대한 기억? 서능욱은 기억이 안 난다고 했고, 강훈은 이렇게 옛날 일을 소환했다.
“73년 동대문에 있던 상록기원서 첫 대면했던 것 같다. 서사범은 프로 初단, 나는 아직 아마추어 시절이었다. 내가 정선(定先)으로 두었는데 결과는 기억하지 못한다.”
한 연못에서 함께 프로 물을 마시게 된 후 첫 공식전은 1975년 초여름 제1회 대한기원 승단대회서 이뤄졌다. 서능욱 二단이 강훈 初단을 꺾었다. 반세기 가까운 전사(戰史)의 첫 페이지였다. 둘 모두 성장이 빨랐다. 각종 기전(당시는 대부분이 리그전 방식이었다)서 함께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난형난제의 기량을 보이자 매스컴도 두 사람을 묶어 라이벌 관계를 부추겼다. ‘도전 5강’이란 걸 만들더니 둘을 선두그룹에 끼워넣었다. 본인들도 경쟁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긴 기쁨은 하루, 패한 아픔은 1개월, 억울한 패배는 1년 가는 법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판을 묻자 40여 년 전의 패국 하나씩을 풀어놓았다.
“77년 제13회 패왕전 예선 결승으로 기억한다. 피차 투지를 불태우던 시절이어서 전력을 다 했는데 졌다. 예선 결승은 본선 진출을 결정짓는 무대여서 아픔이 몇 배는 더 된다. 그 바둑을 패하고 나서 반성을 많이 했다. 좀 더 노력하고 신중해지는 계기가 됐다”(서능욱)
“79년 제5기 기왕전 본선 리그였던 것 같다. 그 판도 언제나 그랬듯 서사범이 먼저 도발해왔다. 나는 바둑판 4분의 1에 해당하는 서사범 대마를 잡아먹었는데, 그러고도 욕심을 내 적의 세력권에 뛰어들었다가 잡혔고 역전패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판을 잊지 못한다“(강훈).

강 훈 九단


동병상련… “술 한잔 하면서 10번기를!”
80년대는 날만 밝으면 조훈현과 서봉수가 타이틀을 놓고 2인무를 펼치던 시절이었다. 누가 그들의 틈을 뚫고 제3의 깃발을 꽂을 것인가. 하지만 조서의 벽은 너무 높았다. 서능욱의 13개, 강훈의 7개 은메달은 그들의 영광과 좌절을 동시에 상징한다. 벽을 먼저 깬 쪽은 강훈이었다. 86년 제4회 박카스배서 깜짝 우승했다. 도전제 아닌 선수권제였는데 결승서 김인을 3대 1로 물리쳤다. 조서를 포함해 하찬석 등 쟁쟁한 고수들이 모두 출전한 대회였다.
“그때가 내 바둑의 전성기였다. 국기전서도 도전자가 됐고 4강에 오른 기전도 너 댓개에 이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우승으로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 우승한 날 거나하게 마셨다”(강훈).
“축하요? 열 받아 못 해줬다. 지금 같았으면 당연히 어깨를 두드려줬을 텐데 당시엔 시기심이 먼저 발동하더라. 정말 부러웠다”(서능욱).
서능욱의 목에 첫 금메달이 걸린 것은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난 2011년 연말이었다. 프로 데뷔 40년 만에, 천명(天命)을 안다는 53세에 따낸 생애 첫 타이틀이었다. 50세 이상만 출전하는 제한기전이긴 했지만 그 과정이 드라마틱했다. 평생 마지막 순간 콤플렉스를 안겨온 두 사람 서봉수와 조훈현을 준결승, 결승서 연거푸 꺾었다.
“특히 조훈현 九단은 내가 결승전서 기록한 13번의 패배 중 11번 아픔을 안긴 상대여서 더 기뻤다. 온통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강훈이 말했다. “서사범과 나는 경쟁하면서도 좀체 정상에 오르지 못한 한을 평생 공유하면서 살아왔다. 동병상련이랄까…. 우리는 조서에게 번갈아 흠씬 매를 맞았고, 그런 뒤엔 자신감을 잃어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들곤 했다. 서사범의 우승 소식이 내 일처럼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축하 인사를 전할 기회를 놓쳤다. 지금도 아쉽고 찜찜하다.”
통산 전적은 서능욱이 1135승(6위), 강훈이 1012승(공동 9위)을 기록 중이다. 한국에 1000승 이상 기록한 기사는 몽땅 털어봐도 10명뿐이니 대단한 기록이다(12월 5일 현재). 두 기사는 65번 맞대결해 서능욱이 35승, 강훈이 30승을 기록 중이다. 젊은 시절 백중세였다가 시니어 대회가 늘어난 이후 서능욱이 조금 앞서나가는 추세다. 연승과 연패를 번갈아 하는 패턴이 눈에 띤다. 강훈(57년 12월생)이 서능욱(58년 5월생)보다 5개월 정도 먼저 태어났지만 친구로 지내고 있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에도 AI(인공지능)란 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엔 공부할 여건이 아니었어요. 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하루 인터넷 대국 20판은 기본이었는데,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요즘엔 피씨방 같은데 들러 두다가 들어가곤 해요”(서능욱).
“강사범이야 말로 진짜 천재지요. 앞으로 같은 시니어 팀에 속하게 되면 함께 대포잔 교환하면서 유유자적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요즘엔 주량이 역전돼 내가 더 마시는 것 같습니다.”(서능욱).
“오! 술자리 제안 그거 굿 아이디어네! ㅎㅎ 서사범이 젊은 시절 술을 안 한 진짜 이유가 타이틀 딸 때까지 자제하려는 거였다는 걸 훗날 전해 듣고 놀랐습니다. 서사범의 자유분방한 발상과 빠른 수읽기는 아무도 못 따라 갑니다. 나는 나이 들면서 자꾸 움츠려드는데 서사범은 더 사나워졌어요”(강훈).
누군가가 거액을 걸고 강-서 10번기를 제안해 온다면? 돌발 질문에 둘은 1초만에 대답했다.
“거액 아니라도 한다. 1인당 2시간 이내면 내가 6승 이상 할 것”(서능욱).
“은퇴한 홍종현 선배가 83년쯤 우리 둘을 집으로 불러 번기를 시켰는데 1대 1로 끝난 것으로 기억한다. 돈은 문제 안 되니 끝장승부 한 번 하자. 초속기만 아니라면 자신 있다”(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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