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의 영화와 바둑
중국의 바둑이 그로 인해 위대해졌다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한 것이 될까?
바둑의 종주국인 중국은, 그 최초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위에 한 명의 위대한 기사를 더함으로써 비로소 자신들의 신화를 완성했다. 그 기사의 이름은 녜웨이핑이다.
바둑기사로서의 삶 이전에 한 인간의 삶으로서도 그의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 어린시절부터 수학자인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웠지만, 문화혁명기 바둑말살 정책으로 헤이룽장성의 돼지 도살장에 유배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끝나고 다시 바둑이 복권되자 그는 한 시대를 호령한 반상의 제왕이 되었다.
1980년대 일본 바둑의 전성시절,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거둔 연승식 11연승의 대기록은 이창호 九단의 출현 이전까지 불세출의 전과였다. 특히나 지금도 회자되는 제1회 중·일 슈퍼 대항전에서 일본의 3인방 고바야시 고이치, 후지사와 슈코, 가토 마사오를 연파해 삭발시킨 사건은 무협지의 어느 대목에 써넣어도 어울리는 전설적인 일화이다.
제1회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 九단에게 패배한 이후 찬란했던 자신의 시대를 마감했지만, 그는 중국인들에겐 아직도 비견의 대상이 없는 영웅으로 남아 있다.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다 브루스 리(이소룡)의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1972년 홍콩에서 제작된 <정무문>은 브루스 리가 <당산대형>으로 첫 영화 주연을 맡은 후, 그의 전성기를 연 두 번째 작품이다.
무술 문파인 정무문의 창시자 허영가가 의문의 죽음을 맡는다. 그의 장례식장에 수제자 첸이 돌아온다. 그가 멀리 떠나 있던 사이 실질적인 제국의 식민지였던 중국의 무술계는 모진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첸은 스승의 장례식이 끝난 후 일본 무술 도장을 찾아가 홀로 모든 이를 때려눕히고 그들의 간판을 부셔버린다.
정무문의 줄거리는 녜웨이핑의 인생과 꽤나 닮아 있다. 1980년대의 바둑계는 일본 천하였다. 바둑이 중국에서 만들어져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넘어간 걸로 전해지지만 당시의 세계 바둑계는 이런 족보가 무색할 만큼 일본 기사들의 독무대였다. 중국은 모멸감에 가까운 치욕을 당하고 있었고, 한국은 그 전쟁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영화 <정무문>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공원에 들어가려는 첸을 공원 관리인이 막아선다. 그리고 그 입구엔 이런 푯말이 걸려 있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
이는 실제로 있던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1860년 2차 아편전쟁 이후 소위 영국과 프랑스가 맺은 ‘베이징 조약’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미국, 독일, 일본 등 열강들이 중국을 합법적으로 침략하는 빌미가 되었다. 당시 공사관 거리로 불리던 둥자오민샹엔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이 시기는 치욕의 시간이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중화문화는 제국주의의 조롱이 되어버렸다. 영화 <정무문> 속 주인공 첸(브루스 리)은 바로 이런 암흑의 시대를 잊기 위해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판타지다. 광야로부터 도착한 초인이 그들을 조롱하던 이들에게 분노의 주먹을 날려 주길 원했던, 과거로부터 소환된 하나의 욕망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녜웨이핑이라는 현실의 영웅이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영화 <정무문>을 본 사람이라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당연히도 브루스 리가 일본 도장에 홀로 찾아가 싸우는 씬을 이야기할 것이다. 수 십 명의 상대가 덤벼들지만 브루스 리는 혼자서 모든 이들을 압도하며 승리한다. 중일 슈퍼대항전에서의 녜웨이핑은 바로 영화 속 브루스 리의 액션 장면을 반상에서 펼쳐 보였다. 수십의 적을 혼자서 상대하는 그를 보며 중국의 바둑 팬들은 3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홍콩영화의 스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철의 수문장에 의해 무참히 패배한 채 삭발의 징계(!)까지 받아야했던 일본의 기사들을 보며 중국인들은 비로소 지난 시대의 역사와 바둑, 그 모든 것의 열패감을 보상 받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조훈현이라는 불세출의 기사를 만나 그 신화의 마침표를 찍어야만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녜웨이핑은 그들의 영웅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브루스 리의 영화가 필름 속에 박제되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듯, 녜웨이핑의 이야기는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무엇’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