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 한국바둑의 자존심, 신진서 응씨배 우승!
“마지막 결승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 - 신진서 九단
“응씨배는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꿈의 기전이다. 부끄럼 없는 기보 남기겠다.” - 셰커 九단
2000년생 동갑내기 신진서 九단(23)과 셰커 九단(23)이 40만 달러를 놓고 제9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3번기에서 맞붙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미뤄졌던 결승이 2020년 9월 대회 개막 후 약 3년 만에 열렸다.
신진서 九단은 현지 적응을 위해 목진석 국가대표 감독과 대회 이틀 전인 8월 19일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기를 파는 한식당을 찾아 식사를 해결했고, 숙소 내 부대시설인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를 이용하며 마음과 몸의 긴장을 풀었다.
중국에서는 셰커 九단 옆에 구쯔하오 九단을 붙였다. 란커배에서 신진서를 꺾은 비결을 전수하라는 특명이라도 받은 걸까. 두 사람은 함께 대회장 답사에 나섰고, 같은 숙소에 머물며 대회기간 가장 가까이 지냈다.
본 경기에 앞선 20일에는 중국 상하이(上海) 창닝(長샼)구 더 론지몬트 상하이 호텔(The Longemont Shanghai Hotel) 연회장에서 결승전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에는 중국 위기협회신임 주석으로 임명된 창하오(常昊) 九단과 잉러우얼(應柔爾) 대만 응창기바둑교육재단 이사장 등 중국 측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해 결승 개막을 축하했다.
한국에서는 이번 대회 단장을 맡은 심범섭 인포벨 회장을 비롯해 박정채 전 국제바둑연맹(IGF) 회장과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한종진 프로기사협회장 등이 동행해 신진서 九단의 선전을 기원했다.
응씨배가 재개된 건 2021년 1월 4강전이 끝나고 2년 6개월 만. 온라인으로 진행된 본선28∼4강 경기와 달리 결승전만큼은 대면으로 치르겠다는 주최 측의 의지에 따라 결승3번기 모든 대국은 중국 상하이 창닝구에 위치한 쑨커별장(孫科別墅)에서 대면 대국으로 치러졌다.
응씨배 첫 출전에 우승까지 8월 21일 열린 결승3번기 1국에서 신진서 九단이 셰커 九단에게 25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관련기보 122쪽 참조). 중반 한때 승률이 30%대 밑으로 떨어지며 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방심한 셰커 九단을 한방에 보내버렸다.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국후 신진서 九단은 승리했음에도 기뻐하지 않겠다고 했다. 란커배의 뼈아픈 패배를 떠올리며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루건너 있을 2국을 준비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23일 같은 장소에서 신진서 九단의 백번으로 2국이 이어졌다. 신진서 九단은 1국 때보다 안정적인 모습으로 셰커 九단에게 완승을 거뒀다. 지난 6월 란커배 결승에서 구쯔하오 九단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했던 신진서 九단은 절치부심한 끝에 응씨배 우승컵을 거머쥐며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횟수를 5회로 늘렸다.
시상식은 대국 직후 대회장 인근 콜롬비아 서클해군클럽홀에서 열렸다. 콜롬비아 서클 단지 내에는 레스토랑, 서점, 편집숍, 카페, 펍 등 다양한 업종의 브랜드들이 자리 잡고 있어 상하이 핫플(HotPlace)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시상식을 위해 콜롬비아 서클 단지 내로 이동하는 신진서 九단의 뒤로는 바둑 팬들과 국빈(?)급대우에 신기해하는 관광객들이 뒤를 이으며 아이돌 방문을 방불케 한 장관이 펼쳐졌다.
우승을 차지한 신진서 九단에게는 단일 대회 최고 상금인 40만 달러(약 5억 3600만 원)와 우승트로피가 주어졌다. 역대 우승자들의 이름이 각인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신진서 九단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응씨배 첫 우승을 차지한 신진서 九단은 “아직응씨배에서 두 번 이상 우승한 선수가 없다. 다음 대회도 욕심을 내보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준우승한 셰커 九단에게는 준우승상금 10만 달러(약 1억 3400만 원)와 준우승 트로피가 수여됐다.
한국은 2회 대회 연속(7·8회) 중국에 넘겨줬던 우승컵을 2009년 이후 14년 만에 되찾아왔다.
초대 챔피언 조훈현 九단에 이어 서봉수·유창혁·이창호·최철한·신진서 九단이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은 총 6회 우승을 기록했다. 중국은 창하오·판팅위·탕웨이싱 九단이 우승해 3회 우승을 기록 중이다.
중국위기협회와 응창기위기교육기금회가 주최하고 상하이위기협회·응창기위기교육기금회·창닝구 인민정부가 주관한 제9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의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씩 주어졌다.
다음은 신진서 九단과의 일문일답.
- 염원했던 응씨배 우승을 해냈다.
응씨배만을 위해 특별한 준비를 많이 했는데 우승하게 돼 기쁘다. 이전 세계대회에서 몇 번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 우승이 특히 더 값지다. 굉장히 영광스럽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 어떤 특별한 준비를 했나?
국가대표팀에서 배려를 해줘서 공동연구도 많이 하고 변상일·신민준 선수와 따로 스파링도 했다. 시간 안배를 위해 포석 준비를 많이 했고, 벌점은 받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1국이 끝나고 란커배와는 다르게 준비를 하겠다고 했는데, 2국 시작 전날 휴식일은 어떻게 보냈나.
보통 다음 날 대국 준비를 위해 하루 종일 숙소에서 인공지능으로 연구하면서 계속 공부를 한다. 란커배 때도 그렇게 했는데, 지나고 나니 다른외적인 부분도 신경 쓰고 이번에는 다르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진석 감독님과 운동도 하고 밖에서 밥도 맛있게 먹고, 컨디션 조절을잘했다.
- 응씨배 직전 아시안게임 훈련으로 진천선수천입촌을 하게 됐는데 어땠나.
응씨배 전이라 집에서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가보니 너무 좋았다. 타 종목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도 보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훈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동기부여도 많이 됐고, 운동도 배우고 건강하게 잘 지냈다. 평소 하루 12∼14시간 정도를 활용하는데 이번에 가서는 16시간을 잘 활용했다. 다른 잡생각 없이 바둑과 운동에 몰입할 수 있어좋았다. 또 마침 진천에서 연구했던 포석이 결승2국에 나와 큰 도움이 됐다.
- 이번 응씨배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처음에는 긴장을 안 한 줄 알았는데 대회 기간에 잠을 잘 못 잤다. 부담이 크긴 했지만, 경험이 쌓였으니까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셰커 九단의 올해 페이스도 평소보다는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컨디션이 좋을 때 독특한 감각에서 나오는 좋은 수들이 있는데 최근엔 많이 보이진 않았다. 만약 커제·양딩신을 이기고 올라왔을 때의 컨디션이었다면 이번 결승시리즈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 결승 기간 중국 팬들에게 둘러 싸이고 현지 열기가 뜨거웠다. 중국 팬도 많은 편인가?
한국 팬분들은 대면으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기도 하고, 주로 경기 영상을 시청하면서 유튜브 같은 것들로 응원을 많이 보내주신다. 중국 팬분들은 간혹 찾아와서 선물을 주고 가기도 하는데 문화가 조금 다른 것 같다. 갑조리그나 세계대회 이동할 때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박정환 九단과 갑조리그를 같이 간 적 있는데, 중국 팬 중한 분이 저에게 선물을 주더라, 박정환 선수한테 대신 전달 좀 해주라고(웃음). 지금은 중국에 제팬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 란커배 이후 힘들어 보였는데 극복이 됐나.
어릴 때 실수 한번 하면 좋은 바둑을 그르쳐 버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란커배 때 다시 드러났다. 아홉 번의 결승에서도 고치지 못해선 내 바둑은 끝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실망도 많이 했다. 응씨배가 없었다면 진짜 끝이라고 생각을 했을텐데, 응씨배가 남아있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번 응씨배 때는 그 부분을 많이 생각했고, 결승1국에서 실수를 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따라가 이길 수 있었다. 사실 그때 큰 실수를 하고도 5대 5였는데 왜 놔버렸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
-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장 신경 써야할 부분이 있다면?
아시안게임은 하루에 두 판씩 논스톱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과 속기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보통 세계대회는 AI 승률 90%를 찍으면 상위권 기사들 간에는 역전이 쉽지 않은데, 이번에는 30초 속기다 보니 역전되거나 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역전패를 당하지 않기 위한 연습도 필요할 것 같다.
- 마지막 각오 한마디.
개인전, 단체전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중요한 커리어라고 생각한다. 아시안게임 출전은 쉽게 오지 않는 기회이기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하겠다.
<글·사진/오명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