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2/이세돌, 전격 은퇴
조명2/이세돌, 전격 은퇴
이세돌, 그 풍파무쌍(風波無雙)의 연대기에 관한 작은 고찰
■글 _ 손종수(시니어바둑리그 전문기자, 시인)
결국, 떠났다. 나이 여섯에 바둑을 배운 뒤 6년 만에 프로의 관문을 뚫었고 24년 동안 승부무대 안팎에서 바람과 파도를 몰고 다니며 그 어떤 프로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세돌이 소속 단체 (재)한국기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떠나는 순간까지 화제의 중심에 존재해야 하는 뉴스메이커답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세계최강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정상을 활보하고 있는 프로가, 서른여섯이라는 빠른 나이에 은퇴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집중됐지만)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세돌의 ‘은퇴설’은 몇 해 전부터 솔솔 풀려나와 바둑계 전체에 퍼져있었다. 한번 입 밖으로 꺼낸 이야기는 남의 시선이나 평판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강행해온 그의 기질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들이라면, 시기가 문제일 뿐이지 머지않아 이세돌이 자신의 말을 실행하리라 예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떠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해도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상금 수급이 예상되는 랭킹 20위권의 젊은 프로가, 그것도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은퇴할 이유가 없는 한국의 프로바둑계에서 서둘러 퇴장하는 모습이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다.
이세돌은 왜 한국기원을 떠나는 것일까. 또 떠나는 그의 걸음은 왜 이렇게 급한 것일까.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이대로 그저 떠나보내고 잊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가 프로기사(棋士)로 활약해온 24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때로는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았고 몇 차례의 단독인터뷰와 인물기사를 써온 기자로서 가졌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내가 이 나라의 보물이에요
2003년 여름 KT배 마스터즈 결승3번기 최종국을 치르던 날 저녁으로 기억한다. 이세돌은 입단시절부터 ‘이창호의 뒤를 이을 천재소년’으로 주목돼 왔으므로 잘 알고 있었으나 저녁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승3번기 제1국을 이겨 타이틀을 눈앞에 두었다가 제2, 3국에서 연패하는 바람에 타이틀은 유창혁의 품으로 넘어갔고 소년은(실은, 83년생이니 만으로 따져도 열아홉 청년이었는데 앳된 그의 얼굴은 오히려 중고생이라고 해야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다소 지치고 우울한 심사를 애써 감춘 표정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서능욱 九단이 한국기원 근처 ‘특우정’에서 저녁을 샀는데 지금은 한국기원에서 은퇴한 문용직 五단(KT배 관전기자, 정치학 박사)과 KT배 바둑TV 관계자 몇이 동석했다. 자연스럽게 패자를 위로하는 자리가 되면서 술잔이 집중된 이세돌의 취기가 꽤 올랐다. 사려고 했던 저녁을 얻어먹게 된 것이 미안해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가볍게 생맥주 한잔 사고 싶다’고 했더니 공교롭게도 이세돌 혼자만 손을 들어 동조했고 모두 뿔뿔이 흩어진 뒤에 이세돌과 단독 취중진담을 나누는 2차를 갖게 됐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인 셈이었다.
이세돌이 손짓을 해서 따라간 소주방에서 찌개 하나를 놓고 마주앉아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소주를 몇 병이나 비웠는지 모르겠다. 그도 나도 부연 안개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로 흔들리고 있었다. 기억나는 말은 딱 한마디였다.
“그거 아세요? 내가 이 나라의 보물인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취기에 젖어 몽롱한 머리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기억한다.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을 수 없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위로에 편승해 기분 좋게 취했지만 그의 말은 마주앉은 상대의 흐려진 뇌리를 명징하게 두드릴 만큼 진지했다. 함께 취하고 함께 기분 좋게 흔들렸지만 그 진지함만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래서 또렷하게 기억했고 햇빛을 먹은 사금파리처럼 반짝, 들어온 그 말은 장기 기억저장소로 옮겨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토록 취한 상태에서도 선명하게 ‘최고’라는 자기 확신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이 대단한 친구는 반드시 1인자가 될 것이라고.
‘리틀 조훈현’은 조훈현을 존경하지 않는다
타이틀을 석권하기 이전이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성적으로 승승장구했던 입단 초기 한때 이세돌에게는 ‘리틀 조훈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섬광 같은 수읽기, 상대보다 한 박자 빠르게 급소를 찌르고 들어오는 예리함, 타개해야 할 수세의 장면에서 현란한 보법으로 역공을 펼쳐 상대를 무너뜨리는 의표 찌르기는 오직 조훈현만이 보여줄 수 있었고 조훈현 이후에는 오직 이세돌만이 비슷한 감흥을 안겨주었다.
그때 한 시사월간지 청탁으로 이세돌과 인터뷰를 했고 이런 저런 문답 중에 ‘리틀 조훈현’이라는 별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대선배 기사로서 조훈현 九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밥상에 올리는 밑반찬처럼 으레 하는 질문은 진부했지만 돌아온 답은 차가운 절도(節度)가 느껴질 만큼 적확(的確)했다.
팬들이 붙여준 ‘리틀 조훈현’이란 애칭에 대해서, 그는 특별히 좋다거나 나쁘다는 감정의 표출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불러주니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 특이했다. 대체로 프로 초년병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위업을 쌓은 대선배와 비교되는 자체를 영광으로 알고 기뻐하지 않나? 그 뒤를 따라온 또 하나의 답은 더 특별했다.
“조 국수님이요? 아, 좋아하죠. 어…, 그런데 존경하지는 않아요.”
보통의 신예들은 자리에 없는 대선배를 이야기할 때, 매우 조심스럽고 굳이 좋아하는 감정과 존경하는 감정을 따로 구별해 말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존경하는 것이고 존경하면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태여 호감과 존경을 구별해서 말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당혹스러움은 그 뒤로 이어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라는 말과 그 부연설명을 들은 뒤에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이세돌의 생각과는 다른, 기자의 일방적 해석일 수 있으나 그때, 이세돌의 말에서 건져 올린 느낌은 이랬다.
‘프로기사로서 눈부신 신화를 이룬 조훈현 국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넘어서야 할 경쟁자로서 승부의 의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존경심은 갖지 않겠다.’
인터뷰어로서 맞닥뜨린 이세돌의 말은 ‘날것’의 솔직함이 그대로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나 돌직구로 날아드는 그의 말에는 무례하게 느껴질 만큼, 상대를 의식하고 배려하는 겸손한 수식이나 우아한 포장이 없다. 그때부터 오랫동안 지켜본 이세돌 특유의 직진형(直進形) 발상과 어법은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때때로(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단도직입으로 들리는 이세돌의 어떤 말들은 행간이 제법 넓다. 이럴 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전혀 엉뚱한 해석으로 다른 말로 와전되기도 한다. 이세돌의 프로생활 내내 구설에 오른 그런 말들은 상당부분, 그 넓은 행간의 미로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전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사실, 옳고 그름을 떠나 가파르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금속성의 목소리에 실려 화자(話者)를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절묘한 부담(?)을 안겨주는 그 말은, 이세돌이 가진 또 다른 재능의 발현이다.
인류가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
공식 세계타이틀전 이외의 빅매치, ‘이세돌 구리 10번기’부터 ‘3.1운동 100주년 기념 블러드랜드배’까지, 왜 이세돌은 늘 화제의 중심에 있고 왜 바둑계의 흥행이벤트에는 꼭 이세돌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일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바둑 최고의 프로라서? 그건 꼭 그렇지 않다. 이세돌이 1인자였던 시기는 분명히 있지만 한국프로바둑계를 완벽하게 세 차례나 석권하고 바둑올림픽 초대우승으로 한국바둑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조훈현이나 그 뒤를 이어 20년 가까이 압도적 기록으로 세계를 제패해, 콧대 높은 일본의 바둑저널로부터 ‘세계가 이창호를 따른다’는 찬사를 받은 ‘국민기사(棋士)’보다 더 큰 전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이세돌의 ‘또 다른 재능의 발현’은 쇼맨십(showmanship)이다. 그가 보여주는 짜릿한 롤러코스터 바둑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종일관 직진의 형태로 훅, 치고 들어오는 그의 발상과 말투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드는 마성(魔性)과 같은 중독의 힘으로 작용한다. 이런 유형의 바둑 엔터테이너(entertainer)는 한중일 프로바둑계를 통틀어도 이세돌이 유일무이하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바둑 엔터테이너 이세돌의 독보적 가치를 만천하에 드러내준 쇼가 바로 2016년 봄에 이세돌과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o Go)’의 챌린지매치(Challenge Match) 5번기다. 이미 잘 알려진 내용과 결과이기 때문에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승부 내용, 상금, ‘음모론’, ‘신의 한 수’ 따위가 아니라 왜 ‘구글 딥마인드’ 팀이 세계 최대의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그만큼 마케팅가치가 더 클 것 같은) 중국의 현역 세계랭킹 1위 커제 같은 프로를 외면하고 이세돌을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 그런 판단과 결정의 배경이다. ‘구글 딥마인드’를 이끌고 있는 데미스 허사비스는 일찌감치 “알파고의 상대로는 지금 이 시기의 챔피언보다 지난 10년의 세계바둑을 지배해온 챔피언이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를 세상에 선보이기 이전에, 세계최초로 개와 고양이를 구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 영상프로그램을 만들어냈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세상 사람들아. 자, 봐라. 우리가 세상의 모든 종류의 개와 고양이를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어때? 대단하지?”
그런데 ‘구글 딥마인드’가 기대했던 세계인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는 쏟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고 시큰둥했다. “그게 뭐? 사람은 서너 살짜리 아이도 개와 고양이쯤은 구별한다고.” ‘구글 딥마인드’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사실, 그들이 출시한 인공지능 영상프로그램은 대단한 것이었다. 훗날 인간을 꺾은 알파고가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두 개의 신경망을 활용하는 데 비해 그들의 인공지능 영상프로그램은 12~15개의 신경망을 움직이는 훨씬 정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상품이라도 세상이 외면하면 가치는 폭락할 수밖에 없다. 명품을 외면당한 ‘구글 딥마인드’는 발끈, 했지만 어떻게든 세상이 자신들의 기술력을 인정해줄 ‘근거’를 제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고 그 고심의 결과가 바로 ‘알파고’의 탄생이다.
“그래? 인간이 그렇게 똑똑해? 그럼, 우리 인공지능으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인간의 대표를 이겨주면 우리의 기술력을 믿어주겠지?” 그렇게 ‘알파고’가 만들어졌고 세상 사람들에게 ‘구글 딥마인드’가 세계최고의 인공지능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줄 드라마의 시나리오도 만들어졌다. 그 다음 준비는 무엇일까?
이미 그 당시 백만 번의 대국을 4주 만에 소화했다는 ‘알파고’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고 ‘구글 딥마인드’는 챌린지매치 직전 은밀하게 현역 세계챔피언을 불러들여 시뮬레이션까지 마친 상태였다.
드라마의 흥행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캐스팅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존폐가 걸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이 쇼에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을 강렬한 개성을 가진 배우가 필요했고 그런 조건을 충족시킬 존재를 찾아내는 검색은 세상에서 구글이 가장 잘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엄선된 배우가 이세돌이고 이 캐스팅은 ‘구글 딥마인드’의 안목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주었다. 그들이 노심초사한 것은, ‘알파고’의 승리가 아니다. 뒷날 밝혀졌지만 그것은 예정된 결과였다. ‘5-0 또는 4-1쯤으로 내가 이긴다’고 호언장담했던 이세돌도 ‘개막 직전 여러 정보를 입수했다. 내가 패할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다’고 최근 방송인터뷰에서 고백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가장 중시한 것은 그 당연한 결과를 얼마나 감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그들이 선택한 배우가 예정된 결과를 받아든 최후의 무대에서 인간의 패배를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까, 예측 불가능하고 예행연습도 할 수 없는 즉석 연출. 바로 그 장면이 세계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결정적 한 수’였기 때문이다.
‘구글 딥마인드’는 그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이세돌의 쇼맨십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누구보다 큰 패배의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을 이세돌은 무대 위에 올라 인공지능에 패한 인류 최초의 승부라는 충격의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울먹이는 동료, 국내외 기자, 팬들 앞에서 이렇게 위로했다. “인류가 진 것이 아니고 이세돌이 진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결과이니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그때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1승 4패로 무릎을 꿇은 결과를 두고 부러움 반, 아쉬움 반을 섞은 조롱을 보냈던 중국의 커제가 그 1년 뒤 중국에서 이어진 ‘바둑의 미래 서밋(The Future of Go Summit in Wuzhen)’ 이벤트에서 ‘알파고 마스터’에게 참패한 뒤 보여준 모습과 비교하면 다시 한 번 2016년 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에 이세돌을 캐스팅한 그들의 안목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우칭위안 선생의 조화(調和)를 떠올리며
프로생활 24년 동안 바둑계를 아로새긴 이세돌의 숱한 언행을 되돌아보면 ‘풍파무쌍(風波無雙)’이라는 사자성어가 절로 떠오른다. 어쨌든 21세기 프로바둑 최고의 풍운아는 떠났다. 물론, 한국 프로기사들의 소속단체 한국기원을 떠난 것이니 당분간 한국기원이 주관하지 않는, 바둑계 또는 바둑관련 행사에서 그의 모습이 아예 사라지지는 않겠으나 공식 프로기전과 세계프로기전에서 우리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었던 그의 바둑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아쉬움은 작지 않다.
그가 떠난 자리에 약간의 갈등과 잡음이 횡행하고 팬들은 우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바둑이라는, 침체되고 경직되기 쉬운 분야에 이세돌 같은 자유분방한 동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승자와 패자가 명백하게 가려지는 승부, 바둑판 위의 최선은 팽팽한 대치상태의 ‘균형(均衡, balance)’이지만 인간관계 나아가 사회공동체의 최선은, 긴장이 극에 이르는 ‘균형’이 아니라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넘나듦이 부드럽고 자유로운 ‘조화(調和, harmony)’다.
‘전설의 10번기’로 당대의 내로라하는 프로들을 모조리 발 아래로 무릎 꿇려 ‘살아있는 기성(棋聖)’으로 우러름을 받은 고(故) 우칭위안(吳淸源) 선생이 이승을 떠나는 그날까지 붙들고 있었던 말년의 심득(心得)이 ‘조화’ 두 글자였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