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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조남철 20년 아성 허문 ‘영원한 국수’

등록일 2021.04.04965

▲운당여관에서 71년 1월 열린 김인(왼쪽) 7단(당시)과 조남철 8단(당시)의 15기 국수전 도전4국 장면
▲운당여관에서 71년 1월 열린 김인(왼쪽) 7단(당시)과 조남철 8단(당시)의 15기 국수전 도전4국 장면

4일 영면한 김인 9단은 바둑계에서 ‘영원한 국수’로 통했다.

올드팬들은 김인 9단을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린아로 기억하고 있다.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23세의 김인은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조남철에게 3-1로 승리하며 국수 타이틀을 쟁취했다.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였다. 66년 2월 11일자 동아일보 1면은 ‘새 國手에 김인 5단, 조남철 棋聖 10년 만에 붕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1943년 전남 강진 바닷가에서 태어난 김인은 13세 때 바둑판을 안고 야간열차로 혼자 상경했다. 원로 김봉선과 아마 고수 이학진을 사사한 김인은 15세인 58년 프로가 됐다. 19세 되던 62년 제6기 국수전에서 조남철에게 도전한 김인은 1승 1무 3패로 패했다. 국수전이 끝나고 나흘 뒤인 3월 9일 김인은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조남철의 소개 편지로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문하생이 된 김인은 기타니 도장 사범 시절 조치훈을 지도하기도 했다.

김인이 같은 또래 유망주들을 상대로 80% 전후의 승률을 기록하자 당시 일본에서는 ‘머지않아 김죽림(金竹林) 시대가 올 것’을 점치기도 했다. 한국, 일본, 대만 출신 유망주들인 김인,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린하이펑(林海峰)이 조만간 바둑계를 지배한다는 얘기였다.

김인은 63년 11월 스승 기타니 9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 생활 20개월 만에 귀국했다. 엄격하고 규율이 강한 기타니 도장 생활이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국한 김인은 이후 국수 6연패, 왕위 7연패, 패왕 7연패 등 국내 전 기전을 휩쓸었다.
 
 ▲젊은 시절 등산을 즐겨했던 김인 9단과 조훈현 9단이 설악산 등반 중 마등령에서 한 컷 


1978년 김인은 13기 패왕전과 4기 기왕전에서 각각 조훈현, 김희중에게 패하며 마지막 타이틀을 잃었다. 이후 김인은 타이틀 획득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목이 수려하고 기품 있는 김인의 대국 태도는 팬들을 매료시켰다. 중후한 기풍을 지닌 김인은 상금과 대국료로 가난한 동료들에게 밥과 술을 많이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남(白南)배라는 타이틀전은 김인이 타이틀을 잃자마자 사라졌다. 대회 스폰서였던 모대학 이사장이 오직 김인 만을 위해 만들었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바둑이 지닌 도(道)의 가치를 고수했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한 김인 9단은 TV바둑이 바둑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고집스레 참가하지 않았다. 후배들은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을 변치 않는 청산(靑山)이라고도 부른다.

 ▲2019년 10월 열린 제13회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 바둑대회 브로슈어. 김인 9단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대회가 됐다 

김인 9단은 2007년부터 고향 강진(군수ㆍ이승옥)에서 개최된 ‘김인 국수배’에 참가하며 아마추어들과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2007년 전국어린이 바둑대회로 출범한 김인국수배는 2008년 국제시니어바둑대회로 업그레이드 됐고 매년 해외에서 대회장인 전남 강진까지 출전한 선수들로 국제대회의 위상을 갖춘 바 있다.

고인은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회가 열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2019년 10월 열린 제13회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바둑대회를 마지막으로 김인 9단은 하늘에서 대회를 지켜보게 됐다.

김인 9단 약력
- 1943년 11월 23일 전남 강진 출생
- 1958년 입단
- 1962년 도일(渡日)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문하생(63년 귀국)
- 1966년 제10기 국수전 우승 후 15기까지 6연패
- 1966년 제1기 왕위전 우승 후 7연패(통산 8회 우승)
- 1966년 제6기 패왕전 우승 후 7연패 등 통산 30회 우승, 22회 준우승
- 1971년∼1975년 제5∼8대 기사회장
- 1983년 9단 승단
- 2004년∼2021년 한국기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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