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바둑뉴스

바둑뉴스

4지명 김상인, '벤치는 제 자리가 아닙니다'

등록일 2021.06.28

후보 선수가 쟁쟁한 주전 선수를 제치고 출전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잘나가는 팀은 주전 선수가 잘해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후보 선수가 등판하는 일이 거의 없다. 4지명이 등판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팀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다. 감독은 '분위기 반전'이라는 기대를 걸고 4지명을 내보낸다.

4지명 김상인이 양건 감독의 기대를 100% 채워주었다. 1승 3패로 부진하던 순천만국가정원은 팀의 막내이자 4지명 후보선수인 김상인이 첫 승의 물꼬를 트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막내의 활약에 언니들도 덩달아 힘을 내면서 두 경기 연속 3-0 완봉승을 거뒀다.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며 3승 3패, 중위권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27일 진행된 2021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 6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2승 3패의 순천만국가정원이 4승 1패로 1위를 달리던 서울 부광약품을 3-0으로 완파했다. 2지명 맞대결에서 박태희가 박지연을 꺾었고 4지명 김상인이 3지명 정유진을 잡으며 일찌감치 팀 승리를 결정지었다. 마지막으로 끝난 주장전마저 오유진이 허서현에게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3-0 퍼펙트 스코어를 완성시켰다.

순천만국가정원의 6라운드 승리 패턴은 5라운드와 똑같았다. 5라운드에서도 2지명 박태희가 선취점을 가져오고 4지명 김상인이 팀 승리를 확정 지었다. 마지막 3국에서 주장 오유진이 불리한 바둑을 역전해 완봉승을 거두는 것까지 일치했다.



▲ 박태희-박지연. 무게감 있는 2지명 맞대결에서 박태희가 본인의 색깔을 여실히 보여주며 승리에 골인했다.


2국은 순천만국가정원 박태희와 서울 부광약품 박지연의 2지명 맞대결. 두 선수 모두 이번 시즌 2승 3패를 기록 중인데, 주장을 지낸 바 있는 두 선수의 성적치고는 부진한 느낌이다. 호조의 흐름을 되찾고 싶은 두 선수가 중요한 길목에서 만났다.

바둑은 쉴 새 없이 휘몰아쳤다. 우상귀 패싸움이 정리되자 다시 좌상귀에서 패싸움이 일어났고, 중앙 전투가 끝나는가 싶으면 다시 좌변에서 불이 붙었다. 마지막 승부처는 상변. '돌주먹' 박태희가 본인 색깔을 드러내며 우직하게 끊어갔고 결국 이곳에서 승기를 잡았다. 박지연에게도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318수, 2시간 42분의 혈투 끝에 박태희가 3집반승을 거뒀다.

▲ 박지연(흑)-박태희(백)의 실전. 백이 ▲로 막았을 때 흑의 좋은 수가 있었다.


▲ 1로 가만히 꼬부리는 수가 좋았다. 2로 둔다면 3으로 막아서 A와 B가 맞보기.


▲ 2로 늦춰서 받는다면 상변 백이 죽게 된다.


▲ 실전 진행. 실전은 1로 붙였는데...


▲ 2로 응수하니 별다른 수가 없었다. 6까지 되어서는 백 우세.


"박태희 선수, 제가 한동안 잊고 있었어요. 이런 스타일이었죠." 바둑TV 최명훈 해설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로 화끈한 전투바둑을 선보인 한판이었다. 리그 초반,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박태희가 이번 경기에서는 본인의 특장점인 전투력을 가감 없이 발휘하며 선취점을 따냈다. 박태희의 승리로 순천만국가정원이 1-0 리드를 가져갔다.

▲ 정유진-김상인. 신예들의 패기 넘치는 대결에서 4지명 김상인이 승리하며 상대 전적을 2-0으로 벌려놓았다.


올 시즌 3승 2패를 거두며 확실하게 이름을 각인시킨 서울 부광약품의 3지명 정유진과 올 시즌 4지명 신분으로 첫 승리를 거둔 순천만국가정원의 김상인이 1국(장고대국)에서 만났다. 자주 볼 수 없었던 신예들의 출전은 늘 관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인데, 최근 여자바둑리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예 선수 둘이 맞붙었으니 관심도는 배가 됐다.

두 선수의 경기는 내용도 '신예의 패기' 그 자체였다. 초반부터 거침없는 패싸움이 진행됐고 큰 바꿔치기가 일어났다. 두 선수는 초반의 분위기 그대로 전판을 휘감아가며 싸웠고 인공지능 승률 그래프는 시종일관 엎치락뒤치락했다.

▲ 김상인(흑)-정유진(백) 초반 모습. 백이 1로 붙이자 흑이 A의 곳에 들어가 패를 결행했다. 이런 치열한 흐름이 전판을 돌며 계속 이어졌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치열하고 재미있었던 1국의 승자는 김상인이었다. 정유진이 우하귀를 끊지 않고 몸조심 하며 중앙을 지킨 수(180수)가 아쉬웠다. 하변이 모두 흑집으로 굳어지자 흑이 승기를 잡았다. 이후에도 평탄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서로 응수를 묻고, 버티고, 잡으러 가는 진행이 되어 끝내는 김상인이 대마를 잡고 불계승을 거뒀다.

▲ 김상인(흑)-정유진(백) 종국 전 마지막 수순. 종국의 형태만 봐도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김상인이 정유진을 꺾으며 스코어는 2-0. 순천만국가정원이 주장전을 남겨놓은 채 승리를 확정 지었다. 3국 오유진의 형세가 극히 나빴던 시점이라 김상인의 승리가 더욱 빛나 보였다.

▲ 허서현-오유진. 4승 1패를 기록 중인 주장들이 만난 최고의 빅매치. 허서현이 크게 유리했던 형세를 지켜내지 못하고 뼈아픈 반집패를 당했다. 종국까지 2시간 37분이 걸린 기나긴 혈투였다.


오유진과 허서현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한솥밥을 먹은 사이. 3년 동안은 오유진이 1지명, 허서현이 2지명이었는데 이번 시즌엔 주장 대 주장으로 만났다. 대국 초반 오유진의 실수를 허서현이 정확하게 응징하면서 오유진이 때이르게 비세를 맞았다.

초반을 대우세로 출발한 허서현의 승리가 유력해 보였는데, 오유진에게 한 판을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오유진은 불리한 바둑을 버티고 버텨 끝내기에서 또다시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종반의 여신'은 오늘도 이름값을 했고 불리했던 바둑을 반집으로 뒤집었다. 오유진의 승리로 3-0 퍼펙트 스코어가 완성됐다.

2승 3패였던 순천만국가정원이 4승 1패로 1위를 달리던 서울 부광약품을 잡아내면서 중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순천만국가정원은 3승 3패를 기록 중인 3팀 중 개인승수가 가장 많아 4위에 자리하게 됐다. 패한 서울 부광약품은 4승 2패 3팀 중 개인승수가 가장 적어 3위까지 내려앉았다.

독보적인 강자 없이 역대급으로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2021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는 7월 1일 7라운드로 이어진다. 7라운드의 대진은 28일 공개된다.





▲ '이번 시즌... 풀릴 듯 풀릴 듯 잘 안 풀리네.'


▲ '아, 이제야 좀 내 바둑을 둔 것 같네!'


▲ '띠로리. 3지명한테는 다 이겼는데... 4지명이 더 쎈건가...?'


▲ '하... 이 바둑을...'


▲ 오유진은 6라운드 모두 주장을 만나는 신기록(?)을 세웠고 주장전 5승 1패라는 감탄할만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7라운드 상대도 또 주장인가요?'


▲ 서울 부광약품 검토실.


▲ 순천만국가정원 양건 감독과 김누리 코치.


▲ 4지명 김상인의 활약으로 주전 자리가 위태로워진(?) 순천만국가정원 3지명 장혜령.


▲ 장혜령이 가장 최근 출전한 4라운드 때 발표됐었던 초반 100수 인공지능 적중률. 리그 1위였다. 벤치에 있기 아까운 선수들이 많아 양건 감독의 머리가 아플듯.


▲ '오늘의 경기력은 전지 훈련 덕분?' 지난 경기가 끝나고 둘러앉아 일정을 짜던 순천팀 모습. 순천팀은 이번 주에 감독과 코치진, 선수들이 함께 전지 훈련을 다녀왔다고 한다. 집라인도 타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는데, 오늘의 성적을 보니 좋은 시간을 보낸 게 틀림없어 보인다.


▲ 양건 감독과 김상인의 승리 인터뷰. "오유진 선수와 최정 선수가 만난다면 매우 기쁠 것 같고요, 할 수만 있다면 맞대결을 붙여보고 싶습니다." (양건 감독)


2021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의 정규리그는 8개 팀 더블리그로 진행되며 총 14라운드, 56경기, 168국이 치러진다. 정규리그 상위 4개 팀이 9월에 시작되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제한 시간은 장고바둑의 경우 각자 1시간에 40초 5회의 초읽기, 속기바둑은 각자 10분에 40초 5회의 초읽기가 주어진다. 정규리그의 모든 대국은 매주 목~일요일 6시 30분 바둑TV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고 NH농협은행이 후원하는 2021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의 팀 상금은 우승 5500만 원, 준우승 3500만 원, 3위 2500만 원, 4위 1500만 원으로 지난 시즌과 동일하다. 팀 상금과 별도로 정규리그에 지급하는 대국료는 매판 승자 130만 원, 패자 40만 원으로 지난 시즌보다 각각 30만 원, 10만 원이 인상됐다. 이번 시즌부터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후보 선수에게 10만 원의 미출전 수당이 지급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