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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맛집/ 오유진 편 

등록일 2020.12.29878

오유진 7단
오유진 7단


제5화  서대문구 ‘라임(Lime)’
- 오유진 편


월간지를 제작하다 보면 달력보다 잡지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된다. 1월호를 만들다 2020년이 온 걸 알고 창간호(8월) 마감이 끝나면 휴가 계획을 잡는다. 매년 겪으면서도 이맘때가 되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 뭘 했다고 벌써 12월호?


2020년의 마지막 맛집 코너를 장식할 기사는 소위 바둑계 ‘인싸’다. 외모, 성격, 사교성은 그저 거들 뿐. 프로기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기력(棋力)도 여자 최정상을 다툰다. 항상 맑은 웃음을 머금고 있어 ‘미소천사’란 별명이 생겼다. 팬들로부터 맛집 출연 요청을 가장 많이 받았던 기사, 바로 오유진 七단이다.


그녀가 선택한 곳은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에 위치한 ‘라임’이라는 이름의 롤·초밥집. 하루가 멀다하고 트랜드가 바뀌는 신촌에서 꽤 오랜 시간 영업한 터줏대감으로 캘리포니아 롤 전문점이다. 맛집을 찾아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가 밀집한 젊음의 거리 신촌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 11시 30분, 신촌의 중심가 명물거리에서 조금 외진 곳으로 들어가니 오유진 七단이 먼저 와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기자: 추운데 먼저 들어가 계시지 그러셨어요.
오유진: 혹시 못 찾으실까봐…(^^;) 이쪽으로 오세요~


좁은 계단을 따라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외관에 비해 내부는 깔끔하고 아기자기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후기처럼 소개팅 장소로 적합해 보였다, 특히 창가 테라스 넝쿨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제법 낭만적이다.
테이블로 안내받은 우리는 일단 메뉴판부터 펼쳤다. 롤 전문점답게 롤 메뉴만 한 페이지 가득했다. 오유진 七단이 평소 즐긴다는 ‘뎀뿌라필라롤’과 ‘셀몬롤’ 그리고 기자가 선택한 ‘드래곤롤’에 초밥세트 하나를 추가했다.


기자: 신촌에 이런 롤 전문점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평소 캘리포니아 롤을 즐겨 드시나요?
오유진: 저도 롤집은 여기가 처음이에요.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신기해서 들어와봤어요. 롤을 즐겨먹는 편은 아닌데도 맛있게 먹어서 기억에 남는 곳이랄까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요.

기자: 롤이 메인이고 초밥이 부 메뉴인 게 특이해요. 보통은 반대인데, 초밥보다 롤을 더 좋아하시는 거죠?
오유진: 그건 아니에요. 사실 제가 과거에는 ‘회 킬러’로 불렸는데 최근 체질식을 하는 중이거든요. 검사 결과 생선류가 몸에 안 받는다고 해서… 회랑 초밥을 자제하고 있어요.

기자: ‘회 킬러’가 회가 체질에 안 받는다니, 이런 비극이. 그런데 롤에도 생선이 들어가지 않나요? ‘셀몬롤’은 연어가 들어갈 것 같은데.
오유진: 맞아요. 그래도 회나 초밥보다는 적으니까. 오랜만에 먹으면 괜찮을 거예요.(^^)

기자: 그렇죠.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잖아요. 먹고 싶은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서 분명 몸에도 좋을 겁니다!


기자가 궤변(?)을 늘어놓고 있을 때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알록달록한 롤들이 테이블 위를 장식하자 화려한 비주얼이 눈을 즐겁게 했다. 12피스 초밥세트와 서비스로 나온 치킨샐러드까지 놓이자 풀 세트가 완성된 듯한 풍성함이 느껴졌다.

의외인 것은 서비스로 나온 치킨샐러드가 맛이 꽤 괜찮았다. 소스의 양이 조금 많은 감은 있지만 달콤한 맛과 신선한 채소, 담백한 치킨의 조합이 상큼하게 식욕을 돋웠다.

▲메인 메뉴는 아니었지만 에피타이저로 제격이었던 새콤달콤 치킨 샐러드.


먼저 오유진 七단이 고른 두 메뉴 중 ‘셀몬롤’부터 맛을 봤다. 셀몬(salmon)롤은 롤 위에 연어를 얹은 형태인데 속재료로 크래미(게맛살 상위버전)와 아보카도를 썼다. 롤 전문점인 만큼 부드럽고 고급스런 재료들을 사용했는데 연어 특유의 향을 해치지 않으면서 풍미를 살려주는 역할로 부족함이 없다. 역시 비싼 재료는 그 값을 한다.

다른 하나인 ‘뎀뿌라필라롤’은 이름처럼 재료도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뎀뿌라’는 튀김이고 ‘필라’는 필라델피아 크림치즈이니 풀이하면 크림치즈가 들어간 튀김 롤이다. 여기에 연어와 아보카도를 재료로 넣고 날치알과 소스를 튀김 위에 토핑했다. 기자도 생전 처음 보는 조합. 백문이 불여일식(不如一食)이니 일단 한 입 먹어봤다.

▲가장 화제가 됐던 메뉴 뎀뿌라필라롤(오른쪽). 연어와 크림치즈, 아보카도의 기름진 맛과 날치알, 칠리소스의 조화가 꽤나 신선했다는 평가. 오유진 七단의 메뉴판 미스(?)도 좋은 후식거리였다. 요즘 ‘체질식’으로 회를 못 먹었다는 오유진 七단은 한을 풀듯 연어초밥과 셀몬롤을 집중 공략했다.



기자:
오호~ ‘뎀뿌라필라롤’은 맛이 굉장히 독특하네요. 적당히 바삭한 튀김 속에서 구운 연어의 향이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데 크림치즈와 아보카도가 그 향을 감싸 안으면서,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기름기를 날치알과 칠리소스가 잡아주는 느낌? 맛이 제각각 따로 놀면서도 하나의 롤 속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런 절묘한 느낌의 롤은 처음입니다. 평소 이색적인 맛도 즐기시나 봐요?
오유진: 사실은 말이죠… 그게 아니라 주문을 잘못한 것 같아요.(^^;)

기자: 엥? 무슨 말씀이신지? 
오유진: 원래 시키던 메뉴 두 개가 붙어 있어서 평소처럼 주문한 건데 오랜만에 오다 보니 한 칸(?) 밀렸나 봐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걸 시켰어야 했는데.(^^;) 그래도 맛이 괜찮아서 다행이네요. 헤헷.

기자: 그렇다면 평소 먹던 메뉴가 아니라 잘못시킨 메뉴가 얻어걸렸다는? 하하, 그것도 재밌네요. 맛집이란 게 무릇 줄 서서 힘들게 들어가면 실망하고 별 생각 없이 들어간 곳에서 “어라? 이 맛은?” 하며 눈이 번쩍 뜨이기도 하잖아요. 뎀뿌라필라롤… 이름부터 범상치 않긴 했어요.
오유진: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가는 맛이긴 해요.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이지?’ 싶었는데 가장 먼저 없어진 걸 보면.(ㅎㅎ) 제가 좋아하는 연어도 들어가고 크림치즈도 들어가고.

기자: 연어를 좋아하시나 봐요?
오유진: 네~ 미끌미끌한 느낌이 좋아서요. 회는 다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질긴 것보다는 부드럽고 흐물흐물(?)하게 잘 씹히는 종류가 좋아요.


▲과연 ‘회 킬러’답게 연어초밥에 가장 먼저 손이 간 오유진 七단. 무엇보다 연어의 흐물흐물한 식감이 좋다고.



기자: 음, 부드럽고 미끌미끌이라… 그럼 장어도 좋아하시겠군요?
오유진: 아뇨, 장어는 안 좋아해요. 처음 먹었을 때 상태가 안 좋은 녀석이었는지 좀 맛이 없었던 기억이 있어서요. 그 뒤로 다시 안 먹어요. 아, 새우는 잘 먹어요~

기자:
새우도 맛있죠. 다만 저는 까먹는 게 귀찮아서 어지간하면 손을 잘 안 대긴 합니다.
오유진: 바둑을 두러 중국에 가면 저는 생존을 위해 새우를 먹거든요. 다른 음식은 중국맛이 나서 잘 못 먹는데 새우는 맛이 똑같더라고요. 뷔페에서 제가 자리를 뜨면 새우가 사라진다고 해서 별명이 ‘오새우’가 됐어요.(웃음) 최정 九단도 고개를 절레절레 하더니 나중엔 저랑 같이  까먹고 있더라고요. 

기자: 하핫. 여기 새우 초밥은 다 드릴게요. 마음껏 드세요~

▲요즘 ‘체질식’으로 회를 못 먹었다는 오유진 七단은 한을 풀듯 연어초밥과 셀몬롤을 집중 공략했다.



그동안 체질식 때문에 억눌렸던 것일까. 오유진 七단은 연어초밥, 새우초밥을 깔끔하게 ‘클리어’ 했다. 우연히 발굴한 ‘뎀뿌라필라롤’까지 깨끗하게 비운 뒤 카페로 자리를 옮겨 근황 토크를 이어갔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초코케이크와 함께.



기자: 덕분에 처음으로 롤을 배 터지게 먹었네요! 평소에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이세요?
오유진: 맛있는 건 좋아하는데 막 검색해서 찾아다니진 않아요. 그냥 지나가다 맛있어 보이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거나, 아니면 친구들이 가자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 같아요.

기자: 생각해보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자주 본 것 같아요. 소위 바둑계 ‘인싸’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유진: 그건 확실히 아니에요.(웃음) 그렇다고 ‘아싸’까진 아니긴 한데, 반반 정도?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 건 좋아하는데 약간 귀차니즘이 있어서 막 먼저 살갑게 연락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집에서 외롭게 혼자 있는 것도 좋고, 그러다 답답해지면 밖으로 나가고. 그냥 별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기자: 아하, 그러니까 평소엔 귀찮아서 가만있지만 불러주면 반갑게 뛰어나가는 스타일인 거죠?
오유진: 맞아요! 카톡도 귀찮아서 잘 안 하지만 오면 엄청 반갑게 잘 해줘요.~ 그러다 보니 주위에 다 비슷한 사람들만 있어요. 정(최정) 언니는 저보다 더 심해요. 귀차니즘의 결정체랄까요? 가자고 해야 움직이지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아요.(ㅎㅎ)

기자: 올 KB리그에 신생팀 타이젬에 퓨처스리거로 뽑히셨죠. 타이젬 팀에는 최정 九단과 오 七단, 그리고 오정아 四단까지 여자 기사 세 명이 한데 모여 화제가 됐는데요. 만족하시나요?
오유진: 저희 감독님(안형준 五단)이 팀 간의 단합과 밸런스를 중시한다고 하더라고요. 바둑은 멘탈 게임이니까 친한 사람들끼리 같이 있어야 시너지가 난다고요. 저희 셋도 그렇고 한승주·김진휘도 ‘절친’이고… 각 지명에서 실력적으로 뒤처지지 않는 멤버 중 사이가 좋은 조합으로 구성하셨나 봐요. 저야 언니들과 함께하면 당연히 좋죠!

기자: 최정 九단은 KB리그 4지명으로, 오 七단은 퓨처스 2지명으로 지목됐어요. 여자랭킹 1, 2위라지만 상대전적은 2승 23패로 압도당하는 상황이고요. 반상에서는 지독한 앙숙, 반상 밖에선 소문난 절친… 어떻게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요?
오유진: 그런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하긴 해요.(웃음) 어떤 사람들은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 감정이 개입돼서 더 지는 거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차피 같은 길을 걷는 이상 평생 볼 사이거든요. 승부는 승부고 친구는 친구… 프로기사의 숙명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기자: 그래도 사람 감정이란 게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을 때도 있잖아요. 특히 큰 승부에서 지고 그러면 마음이 많이 상하기도 했을 텐데요. 
오유진: 전에 궁륭산병성배 결승에서 졌을 때는 솔직히 정말 힘들었어요. 정 언니보단 승부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을 때라. 그때는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아마 정 언니도 눈치 챘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멀어질 사이는 아니니까… 단지 상처가 아물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오유진 七단 본인도 말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웃는다. 최정 九단과의 관계가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그만큼 자신의 상처가 깊었다는 뜻이다. 결승전에서만 5번 마주쳐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으니까. 아마 눈물 날 만큼 아팠으리라.
하지만 그녀에겐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와 확신이 있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지금 연락 안 해도 나중에 만나면 더욱 반가울 거야. 조급할 필요 없어. 어차피 우린 그런 사이니까. 아마 최정 九단도 그녀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항상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미소천사’ 오유진 七단. 내년에는 ‘벽’을 넘어 꼭 타이틀 홀더로 복귀할 수 있길.   



기자: 최근에는 어떻게 공부하세요? AI도 활용하고 그러나요?
오유진: 네~ AI로 복기도 하고 궁금했던 모양들을 찍어보기도 하고 그래요. 10월에는 타이젬 대국을 정말 많이 둔 것 같아요. 한 70판쯤 뒀나? 리그 있는 날도 집에 와서 타이젬 두고. 이벤트가 걸려 있던 월간랭킹 1위를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 게 있으면 1위가 너무 하고 싶어요!

기자: 70판이면 주야장천 바둑만 둬야 가능할 듯 한데요. 원하는 결과는 얻었나요?
오유진: 월간랭킹은 1위는 했어요. 그런데 이벤트였던 한중 10-10 대결은 1등을 못했어요.(ㅠㅠ) 1, 2위를 박하민 七단과 변상일 九단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제가 너무 달리니까 박하민 七단이 연락해서 대뜸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더 교란시키고 싶어져서 열심히 뒀는데… 3등으로 만족해야 했죠.

기자: 본의 아니게 생태계를 교란시키셨군요~ 터줏대감들 심기가 꽤나 불편했나 봅니다. 바둑 외 취미는 없으신가요?
오유진: 딱히 없어요.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피아노를 덜컥 사긴 샀는데… 코로나로 학원을 못 가서 그냥 썩히고 있어요. 중국어도 조금 했는데 잘 하는 편은 아니고 기초 정도만.

기자: 운동은요? 바둑에도 체력이 필요할 텐데요.
오유진: 제가 운동을 진짜 안 좋아해요. 그나마 체력 관리를 위해 필라테스를 하고 있어요. 요즘 몸이 약해져서 운동은 해야 할 것 같은데… 혼자 있으면 워낙 움직이는 걸 안 좋아해서.(^^;) 

기자: 그렇군요. 그래도 팬들을 위해서 체력 관리는 조금 신경 써주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이제 올 한해도 다 갔는데 내년 목표가 궁금합니다.
오유진: 2016년 이후로 타이틀전 우승을 못 했는데, 닿을락 말락 기회를 못 잡았어요. 뭔가 한 번 벽을 무너뜨리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내년은 아니고 2022년 아시안게임에 바둑종목이 들어간다면 꼭 출전해보고 싶어요. 금메달을 목에 걸어보고 싶어서. 헤헷. 

기자: ‘벽’이란 단어가 누군가를 지칭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그 벽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오유진: 아 벽한테요?(웃음) 이봐, 벽씨. 독주 좀 그만해~ 이제 보는 사람도 지겨울 거야. 눈치껏 양보도 좀 하고! 내년에는 더 열심히 쫓아갈 테니까 타이틀 잘 닦아놓고 기다리고 있어.(^^)

<인터뷰/김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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