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상반기 결산
커버스토리/2019 한국바둑 상반기 결산
박정환(상금) 신진서(연승) 최정(다승·승률) 1위 질주
- 이호승 박종훈, 폭풍질주로 화제 중심에 서다
■글 _ 구기호 편집장
2019년 한국바둑은 화제만발이었다. 메이저 타이틀에 목말라 있던 신민준이 2019년 시작과 동시에 KBS바둑왕전 결승에서 박정환을 물리치고 우승해 소원을 풀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신예 박하민도 크라운해태배에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끝까지 붙들며 정상에 올라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 둘은 이후 크고 작은 타이틀(신민준은 글로비스배, 박하민은 미래의 별 왕중왕) 하나씩을 보태며 초반의 상승세를 계속 이어 나갔다.
한국바둑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박정환과 신진서도 그들 이름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박정환은 국내에서 주춤한 대신 국제무대에서 펄펄 날며 상반기에 벌써 3관왕에 올라 심상치 않은 행보를 예고했다. 이에 뒤질세라 신진서도 국내기전(2관왕)과 국제대회(1관왕)에서 고른 활약을 보이며 3관왕에 올라 박정환과 타이틀 획득 수를 동등하게 맞췄다. 현재 이 둘은 바둑TV배 마스터스 결승에 올라 있어 자신의 네 번째 타이틀을 놓고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여자기사 중에선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치며 LG배 본선진출을 이룬 최정이 단연 돋보였다. 상반기에 다승과 승률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최정은 아쉽게 개인전 우승은 놓쳤지만 단체 대항전에선 한국우승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존재감을 높였다.
신예 문민종은 합천군에서 개최하는 하찬석국수배를 품에 안았고, 최규병은 맥심커피배 우승 후 19년 만에 시니어대회인 대주배에서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듣보잡’들의 돌풍도 눈에 띄었다. 이호승은 GS칼텍스배에서, 박종훈은 바둑TV배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연파하며 둘 다 생애 첫 4강 진출을 이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어느 해보다 다이내믹한 승부가 펼쳐졌던 2019년 상반기 한국바둑을 3가지 키워드로 압축 정리했다.
상금왕은 누구?
- 박정환 6억 4500만원 수입 올려 1위
박정환의 금년 초반 행보는 극도로 부진했다. 4승7패로 시즌을 시작한 건 입단 이후 최악의 성적표였을 것이다. 초반에 당한 7패 중에는 소위 말하는 ‘빅(Big) 판’도 네 판이나 됐다. 두 판은 KBS바둑왕전 결승에서 신민준에게 당한 충격의 2패였고, 또 다른 한 판은 크라운해태배에서 박하민에게 당한 준결승전 패배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판은 GS칼텍스배 예선결승에서 이호승에게 당한 일격이었다.
시즌 초반 우승 기회도 놓치고 우승 가시권에서도 대사를 그르친 그 박정환이 아이러니하게도 2019년 상반기를 마감한 현재 상금 수입 1위를 기록했다. 이후 놀라운 대반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반전의 시작은 2월 하세배였다. 박정환은 하세배를 우승하며 2연패를 이루는데, 여기엔 결승전 상대였던 커제 九단의 지대한 공(?)이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결승전은 종반까지 필승국면이었다. 그런데 종착역을 앞두고 커제 九단이 바둑 두 자리 급수도 알만한 끊어지는 단점을 그만 못 보고 있었던 것. 커제는 계속해서 고고(Go Go)를 외쳤고 이제다 싶었던 순간 박정환이 ‘삭둑~’ 허리를 절단하자 바둑이 끝나버렸다. 한중일 3국 초청전인 하세배의 우승상금이 1억 3000만원인데, 경솔로 그 돈을 박정환에게 넘겨준 꼴이었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국내에서 우승 기회를 잡지 못하던 박정환은 하세배 이후 벌어진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도 결승에 올랐다. 이번에도 결승전 상대는 중국의 커제. 결승전 바둑은 하세배의 경솔한 패배를 의식한 듯 커제 九단은 이번엔 조심조심 수순을 밟아 갔는데 종반 너무 과잉수비를 펼치다 또다시 역전패.
월드바둑챔피언십의 우승상금은 하세배보다 많은 2억원. 여기에 춘란배 우승상금 1억 7700만원까지. 이렇게 해서 박정환이 상반기에 벌어들인 상금은 무려 6억 4500만원. 2위 신진서가 벌어들인 3억 9900만원보다 2억 5000만원 가량 많다.
기록 부문 1위는?
- (여자) 최정...42승8패(승률 84%)로 다승·승률 1위
- (남자)신진서...41승9패(승률 82%)로 다승·승률 1위 (연승) 신진서...20연승 중
2019년 상반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자기사이면서 바둑판 앞에서는 전혀 여자 같지 않은 최정 九단이 다승과 승률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50국을 소화한 최정의 성적은 42승8패로 승률이 무려 84%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최정은 세계대회 개인전에 두 차례 출전해 센코컵 준우승과 8강까지 진행된 오청원배에서 양쯔쉔(16강전), 가오싱(8강전)을 연파하고 4강에 안착, 여제 등극을 앞두고 있다. 단체대항전인 천태산배와 황룡사배에서는 둘 다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모두 한국우승을 이끌었다. 국내에서 벌어진 성대결에서의 활약도 빛났다. 합천군이 기획한 역대 영재 vs 여자 정상 연승대항전에서 1-4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뒤엎고 박현수 문민종 박상진 설현준을 줄줄이 지우며 여자정상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남자기사들과의 승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실력을 과시했다.
여러 활약 중 단연 돋보였던 것은 LG배 본선 진출. 남녀 구분 없이 동등한 조건으로 대결을 펼친 LG배 통합예선에서 최정은 준결승에서 2018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자였던 구쯔하오를 격침시킨 데 이어 5월 27일 속개된 본선 32강전에서는 스웨 九단마저 꺾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남자기사로는 ‘저승사자’로 악명을 떨친 신진서 九단이 41승9패(승률 82%)의 성적을 거둬 다승과 승률 부문 1위에 올랐다. 신진서는 상반기에 국내 최대기전인 GS칼텍스배에서 김지석 九단을 3-0으로 완파하며 2연패를 이뤄냈고, 첫 출전한 입신들의 제전인 맥심커피배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국제기전에선 6월 박정환 九단의 불참 선언으로 대타로 출전한 TV바둑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 3관왕으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연승 부문 1위도 신진서가 유력시 되고 있다. 5월 15일(공교롭게도 박정환의 연승 시작일과 똑같다. 박정환은 16연승에서 마감했다) 2019 IMSA 엘리트 마인드 게임스 단체대항전 3라운드부터 7월 18일 현재까지 무려 두 달 넘게 승승장구하며 20연승을 기록 중이다. 연승은 현재도 진행형이어서 앞으로 몇 승을 더 올릴지 미지수다.
‘듣보잡’의 반란
- 이호승(GS칼텍스배)·박종훈(바둑TV배) 4강 돌풍
‘듣보잡’. 소위 존재감이 없었던 이들을 통칭해 부르는 신조어다. 2019년 상반기에 두 명의 ‘듣보잡’이 돌풍을 일으켜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돌풍을 일으킨 ‘듣보잡 1호’는 이호승 四단이었다. 이호승은 아마추어로 잔뼈가 굵은 기사로 2013년 1월 20일 제132회 일반 입단대회를 통해 늦깎이로 입단했다. 입단 후 프로와 아마의 높은 벽을 실감한 이호승은 좀처럼 성적을 내지 못하는, 그래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듣보잡’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2019년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
진원지는 국내 최고기전인 제24기 GS칼텍스배. 돌풍은 1월 11일 예선결승에서 박정환 九단을 이기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소 뒷걸음질 치다 얻어걸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본선24강전에서 이원도를 이기더니 16강전에서는 신민준마저 제압하고 8강에 이름을 올린 것. 신민준은 올초 KBS바둑왕전을 우승하며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는 기사. 그때부터 이호승에 대한 관심도가 급상승했다.
8강전 상대는 이세돌 九단. 최근 노쇠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한때 한국바둑의 일인자로 세계를 호령했던 이세돌을 꺾기는 역부족일 거로 생각됐지만 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갔다. 또다시 승리한 이호승은 4강전에서 김지석 九단에 패하면서 돌풍을 마감했다.
돌풍의 주인공 ‘듣보잡 2호’는 박종훈 三단이다. 박종훈은 2014년 8월 26일 제3회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가 됐다. 입단 후 2년 뒤인 2016년에 제4회 합천군 초청 하찬석국수배를 우승했고, 2017 크라운해태배에서 16강에 오른 게 최고의 성적이었다.
박종훈이 주가를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 기전은 바둑TV배 마스터스. 본선은 64강부터 진행됐는데 32강전에서 나현 九단을 꺾으면서 심상치 않은 행보를 예고했다. 나현은 기복 없는 대표적인 기사로 국내랭킹 10위권 내에 늘 상주하는 강자인데 그 나현을 격침시킨 것.
이어 16강전에서는 변상일 九단, 다시 8강전에서는 신민준 九단을 차례로 뉘며 앞서 GS칼텍스배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호승 못지않은 유명세를 탔다. 왜 이리 연속해서 강자들만 만났는가 했더니 본선 개막을 앞두고 64강 조 지명식에서 신진서를 피해 한쪽으로 강자들이 죄다 몰렸기 때문.
박종훈의 돌풍도 공교롭게 이호승과 마찬가지로 4강에서 멈췄는데 상대는 박정환 九단이었다. 만일 박종훈이 준결승에서 박정환마저 꺾고 결승에 진출한 다음 내처 우승까지 거머쥐었다면 2019년 상반기 ‘최고 대박남’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