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제24회 LG배
커버스토리/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신진서·박정환 동반 결승진출로 LG배 한국우승 확정!
신진서 九단(오른쪽)이 제24회 LG배 준결승에서 천적관계(2승7패)였던 커제 九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신진서 九단에 이어 박정환 九단(왼쪽)도 결승에 합류해 일찌감치 한국우승을 확정지었다. 박 九단은 타오신란 七단과의 준결승전에서 375수까지 가는 사투 끝에 흑 3집반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제24회 LG배 기왕전의 최종우승자는 한국의 신진서·박정환의 대결로 압축됐다.
10월 30일 강원도 강릉시 라카이샌드파인리조트에서 열린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투톱’ 신진서·박정환 九단이 세계 최강 커제 九단과 중국의 복병 타오신란 七단을 각각 꺾고 결승에 진출해 4년 만에 한국우승을 확정지었다.
LG배에서 한국은 지난 2016년 제20회 대회에서 강동윤 九단(대 박영훈 九단, 2-1)이 우승한 뒤 21회 대회에서 중국의 당이페이 九단, 22회 대회에서 셰얼하오 五단, 23회 대회에서 양딩신 七단에게 3년 연속 우승컵을 내줬었다.
결승진출의 승전보는 신진서 九단이 먼저 전했다. 준결승전을 앞두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어차피 넘어야 할 상대다. 내 바둑을 두겠다”고 결의를 다지며 설욕을 별렀던 신 九단은 커제 九단을 상대로 안정감 있는 바둑을 보여주며 쾌승을 거뒀다.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하며 우세를 잡은 뒤 단 한 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국면운영이 돋보인 일국이었다.(관련상보 46쪽 상세관전기)
이번 승리로 커제 九단에게 당했던 6연패의 사슬도 끊었다. 신 九단은 2017년 11월 제22회 LG배 8강전에서 커제 九단에게 패배를 당한 뒤 무려 2년 가까이 1승도 거두지 못하며 6연패를 당해 왔었다. 2년여 만에 1승을 보탠 신 九단은 커제와의 상대전적도 3승7패로 차이를 조금 좁혔다.
엘리트 기사의 상징인 10대 세계대회 우승의 불씨도 살렸다. 2000년 3월 17일생인 신 九단이 내년 2월 벌어지는 LG배 결승에서 승리한다면 이창호·이세돌·박정환에 이어 한국기사로는 네 번째로 10대 우승자의 계보도 잇게 된다.
준결승 대진에서 세계 최강 커제 九단을 피한 박정환 九단은 비교적 쉬운(?) 상대로 여겨졌던 타오신란 七단을 만났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초반부터 고전하며 어렵게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중반까지도 역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며 고전한 박 九단은 종반 타오신란 七단의 판단착오에서 비롯된 패에서 기회를 잡아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바둑은 LG배는 물론이고 세계대회 본선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75수까지 가는, 그야말로 진을 다 뺀 힘겨운 승리였다.
이날 승리로 박 九단은 타오 七단과의 상대전적을 1승1패로 균형을 맞췄다. 타오신란과는 지난해 9월 8일 중국리그 14라운드에서 첫 대면해 1패를 기록했었다. 박정환 九단의 LG배 결승진출은 2015년 제19회 대회 이후 5년 만이다. 당시 결승에서 김지석 九단을 2-1로 꺾고 LG배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었다.
제24회 LG배 기왕전 최종 우승자를 가릴 결승전은 내년 2월 10~13일 3판2선승제로 열릴 예정이다. 지금까지 둘 간의 대결은 총 열아홉 번 만나 박 九단이 15승4패(최근 9연승)로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속기전이 아닌 제한시간 3시간짜리 바둑 대결의 승자가 과연 누가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조선일보사가 주최하고 (주)LG가 후원하는 총규모 13억원의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의 우승상금은 3억원, 준우승상금은 1억원이다. LG배 제한시간은 각 3시간, 40초 초읽기 5회이다.
결승진출자1/신진서 九단
“준비 잘해서 후회 없는 결과를 내고 싶다”
2승7패. 그중 최근 6연패. 커제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졌던 신진서 九단이 마침내 제24회 LG배 준결승전에서 커제 九단에게 당했던 6연패의 사슬을 끊고 자신의 첫 LG배 결승진출을 이뤄냈다. 커제 전 승리 후 환한 얼굴로 대국장을 빠져 나오는 신 九단을 현장에서 만났다.
- 오늘 바둑(커제 九단과의 준결승전) 총평.
“아직 인공지능을 돌려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는 계속 어려웠던 것 같다. (- 승리에 대한 확신은?) 중앙전투에서 잘돼 이겼다고 생각했다. 커제 선수가 착각하지 않았나 싶다.”
- 준결승에서 하필 커제 九단을 만났다. 대진이 원망스러웠을 법한데.
“대진이 안 좋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우승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넘어야 할 상대여서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중국기사 누구와 둬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커제나 천야오예 선수와 두는 게 조금 더 부담될 뿐이다.”
- LG배는 제한시간이 각자 3시간 바둑이다. 초읽기도 60초가 아닌 40초여서 시간 안배가 중요했을 텐데.
“8강전 때 쉬자양 선수가 초읽기에 몰리면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 안배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검토실에서 바둑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이전보다 냉정해졌고 종반 마무리도 깔끔해졌다’는 평가가 있었다.
“3시간짜리 바둑이라서 2시간 바둑보다는 내용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수하면 그만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 두 번의 세계대회 우승 기회를 살리지 못해 조바심도 들고 부담도 클 텐데.
“부담은 누구나 다 있다고 본다.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경기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 있다.”
- 어제(휴식일) 하루 종일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박정환 九단은 검토실에 나와 인공지능을 돌려보며 연구하던데.
“주로 방에 있었다. 인공지능 돌려보며 연구하고 컨디션 조절을 했다.”
- 중국의 2000년생(신 九단과 동갑내기) 기사 중 누가 제일 세다고 보는가?
“평가하긴 그렇고… 눈여겨보는 기사는 딩하오 선수다. 또래들 중에선 승부 기질이 제일 있는 것 같다.”
- 결승전 상대가 박정환 九단이다. 앞으로 3달여 남았는데 어떻게 준비할건지?
“커제 선수와 마찬가지로 우승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선수다. LG배 결승까지는 기간이 많이 남은 만큼 잘 준비해서 후회 없는 결과를 내고 싶다.”
결승진출자2/박정환 九단
“체력 기르고 실력 키워 좋은 승부 하고 싶다”
6시간 30분의 사투. 375수까지 가는 대혈전이었다. 준결승전에서 중국의 복병 타오신란 七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해 5년 만에 LG배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박정환 九단은 녹초가 됐을 법한데, 표정에선 전혀 그런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싱글벙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듯 보였다.
- 375까지 가는 엄청난 바둑이었다.
“입단하고서 최장 수수 바둑이었다. 상대방 집을 다 메우고도 사석(백돌)이 16개가 남았다.”
- 고전하다 어렵게 승리했다.
“중반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잔 실수가 몇 번 나오면서 판이 어려웠다. (- 승기는?) 중반까지 실수가 없던 타오신란 선수가 종반을 앞두고 중앙에서 실리 손해를 보면서 패를 걸었는데 그게 판단미스였던 것 같다. 이후 패를 하는 과정에서 헛패도 나오고 하면서 이길 수 있었다. 아마도 계가에 확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불리한 상황에서도 좀처럼 무리를 안 하던데. 천성인가? 스타일인가?
“바둑이 나빠도 흔드는 스타일은 아니다. 침착하게 따라가는 스타일이다. 오늘 바둑도 불리했지만 최선의 수를 두면서 기회를 노렸다.”
- 어제 검토실에 나와 인공지능을 돌려보며 연구하는 모습을 봤다. 마침 오늘 바둑에서 연구한 형태가 실전에 등장한 듯한데, 결과는 어땠나?
“완전 똑같지는 않고 비슷한 형태가 나왔는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변화를 좀 더 세밀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한 수만 보고 다른 변화를 연구하지 않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
- 최근 안경을 벗었다.
“그동안 안경을 비뚤게 쓰는 버릇이 있었다. 고쳐보려고 했는데 잘 고쳐지지 않아 얼마 전 라식수술을 했다.”
- 안경을 벗고 나서 성적이 더 좋아지고 있다. 안경을 벗으니까 수가 더 잘 보이던가?
“그런 건 없다. 안경을 썼을 때나 벗었을 때나 똑같다.(웃음)”
- 신진서 九단으로 결승전 상대가 정해졌다. 상대전적에서 15승4패로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동안 운이 많이 따라준 결과였다. 신진서 선수는 계속해서 느는 나이다. 시간이 지나면 만만치 않아질 것이다.”
- 그동안 신진서 九단과는 국내기전 결승에서 여러 차례 대국해 모두 승리했다. 이번 LG배 결승은 3시간짜리 바둑인데.
“국내기전 대결은 모두 속기였다. 3시간짜리 바둑은 처음인데, 진짜 승부가 될 것 같다.”
- 결승전까지는 3달여가 남아 있다. 준비는?
“이번에 3시간짜리 바둑을 두면서 체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남은 기간 체력도 기르고 실력도 키워서 좋은 승부 하고 싶다.”
<취재·인터뷰/구기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