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강지성 九단
이사람/강지성 九단
부산에서 ‘신인왕’ 배출하겠다
승부를 했던 사람이 보급으로 전향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왕년 한가닥 했던 프로기사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변신은 무죄다.
2001년 SK가스배 신인왕전을 우승하며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혔던 강지성 九단. 당시 백대현 八단과 치열한 우승다툼 끝에 신예 최강의 자리에 올라 많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었다.
근래 소식이 뜸하던 차, 우연히 부산에서 강지성 九단을 만났다. 요즘 뭘 하고 있는지 묻자 부산에서 바둑학원을 차렸단다. 서울 사람이 왜 부산에 학원을 차렸는지 묻자 다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부산에서 터를 잡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강지성 九단의 근황을 전한다.
- 굉장히 오랜만입니다. 부산에서 뵙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요.
“하하, 그러게요. 저야 이제 부산 사람이니까 부산에 있는 게 당연하지만 기자님을 부산에서 볼 줄은 몰랐네요. 잘 지내죠?”
- 그럼요. 그보다 부산 사람이라뇨? 부산으로 이사하셨나요?
“이사한지 꽤 됐죠. 학원 문 연지가 6년쯤 됐으니까요. 결혼하고 얼마 안 돼 부산으로 왔어요.”
- 바둑학원 차리셨어요? 왕년 신인왕 출신인데 승부를 떠나긴 아쉽지 않나요.
“안 되니까요. 하하. 당연히 승부를 하고 싶지만 나이도 차고 자주 지다보니 힘들더라고요. 결혼했으니 생계 걱정도 해야 되고요.”
- 그러고 보니 신인왕으로 표지로 등장하신지도 18년이나 지났네요.
“군대 가기 전까지 성적이 꽤 괜찮았죠. 신인왕도 하고 바둑리그에도 선발되고 각종 기전 본선에 많이 올라갔으니까요. 2005년 천원전이 발단이 된 것 같아요. 준결승전에서 박정근 初단(당시)에게 졌거든요. 만약 결승에 올랐다면 고근태 三단(당시)과 맞붙는 거였는데 우승컵이 아른거리더라고요. 부득탐승의 기리를 잊은 거죠. 그 판을 지고 힘들었어요. 미래도 안 보이고… 그래서 2006년에 입대했죠.”
- 많이 힘드셨겠네요.
“군대 갔다 오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대 후 바둑을 둬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웃음) 승부가 이길 때는 좋지만 졌을 때 리스크도 크거든요. 이제 승부가 안 되는구나… 그걸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떤 걸 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 권갑용 도장 사범을 하게 됐는데 가르치는 게 꽤 적성에 맞더라고요. 그때부터 바둑학원을 열어볼까 생각이 들었죠.”
- 권 도장이라면 서울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
“2013년부터 부산바둑협회 연구생 사범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지도를 오게 됐어요. 지도 받던 학생들 실력이 좋아지고 수업시간을 늘리고 싶다는 요청이 오다보니 하루 오던 게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고 사일이 되니까 왕복하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어차피 학원을 할 거면 여기서 차려버리자 생각이 들어 곧장 실행에 옮겼죠.”
- 홀몸이 아닌데 곧장 실행에 옮기고도 무탈(?)하셨는지요.
“제가 승부사잖아요. 일단 저지르고 본 거죠. 아내도 반대는 했지만 못하게 막지는 않더라고요. 처음 학원을 인수해 운영할 때는 너무 어려워서 정신이 나가 있을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꽤 할 만해요. 제 모토가 한 명 한 명 최선을 다해 가르치자는 건데 그러다 보니 실력 있는 학생들도 찾아오고 심지어는 외국에서도 수업을 받으러 오고 있습니다.”
- 아니, 바둑 기자인 저도 얼마 전에 들었는데 외국 아이들이 어떻게 소식을 듣고 찾아왔나요.
“제가 신인왕 출신인 걸 들은 거죠. 농담이고요. 일본에서 친구가 바둑학원을 하고 있는데 소개해줬어요. 제가 일본어를 조금 하거든요. 코지마 후토(12세), 코지마 쥬지(10세) 형제인데 동생은 일본 초등최강부 전국 3위 출신 기재예요. 아무래도 한국이 세다보니 바둑을 배우러 유학을 오는 학생들이 종종 있어서 장단기 연수 프로그램을 열고 있습니다. 성과가 좋다보니 요즘에는 대만, 태국에서도 바둑을 배우러 오고 있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 6년 만에 대단한 성과입니다. 부산은 국제도시로 유명한데 목표는 국제 바둑학원인가요?
“과거에는 한국이 선진바둑을 배우러 유학을 떠났듯 이제는 바둑 최강국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시대잖아요. 제 모토와 바둑이 늘고 싶어 하는 외국 학생들의 입장이 일치하기 때문에 연수 프로그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왕 학원을 열었으니 우선 부산에서 입단자를 배출하는 게 첫 번째 목표고 적어도 신인왕 정도는 만들어야겠죠. 아, 바쁘실텐데 너무 오래 붙잡았네요. 부산 농심배(본선2차) 때마다 공개해설 하는데 한 번 오세요. 부산의 뜨거운 바둑열기를 체험해 보실 수 있을겁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