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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참저축은행배 우승한 홍성지 九단 

등록일 2019.12.131,096


커버스토리/2019 참저축은행배 우승한 홍성지 九단


홍성지, 11년 만에 두 번째 우승 포효!

“내년 시드를 받으려고 출전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우승해 너무 기쁘다. 최정 九단과의 준결승전에서 운 좋게 승리한 게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2019 참저축은행배에서 우승트로피를 거머쥔 홍성지 九단은 신민준 九단과의 결승전 못지않게 최정 九단과의 준결승전이 내용 면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최정 九단과의 준결승전은 초반 대착각을 범해 중앙 요석이 잡히면서 한때 패색이 짙었던 바둑이었다.

국내랭킹 1, 2위가 불참하면서 상위랭커들에게 ‘기회의 땅’이나 다름없었던, 그래서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이번 2019 참저축은행배 프로아마오픈전에서 홍 九단은 16강전에서 윤찬희(30위), 8강전에서 변상일(5위), 준결승전에서 최정(22위), 결승에서 신민준(3위) 등 강자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2008년 제4기 한국물가정보배 우승 후 11년 만에 프로통산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린 홍성지 九단을 10월 1일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이번 우승으로 승부사로서의 유예기간 2~3년 더 늘어나
군기반장으로 사이버오로의 포스트시즌 진출 이룰 터

▲ 참저축은행배 결승에서 신민준 9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홍성지 9단(왼쪽).


- 2008년 한국물가정보배 우승(대 이세돌, 2-1 승리) 후 11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이뤄냈다. 오랜 만에 우승이어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서른을 넘겨 우승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지금도 얼떨떨하다. 내 생애에 이런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평생 기억할 것 같다.”

- 국내랭킹 1, 2위인 신진서와 박정환 九단이 이번 대회에 불참하면서 상위랭커들에겐 이번 참저축은행배가 ‘기회의 땅’으로 욕심이 났을 법하다. 홍 九단도 그중 한 명이었을 테고.
“강력한 우승 후보 두 명이 빠졌지만 상위랭커 다수가 참가해 우승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음 대회 시드 정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출전했다.”

- 결승전 못지않게 주목을 받았던 대국이 최정 九단과의 준결승전이다.
“(최)정이한테는 져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데 만나는 친구(동료기사)들마다 ‘이겨도 죄인, 져도 죄인’이라고 놀려대는 통에 부담백배였다. 행여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건 아닌지 생각하니 아찔했다.”

- 재미난 얘기를 들었다. 홍 九단이 준결승전에서 최정 九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던 날 친구들이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단체로 보냈다고 하던데.
“그게 실은 ‘우승을 축하한다’는 것이 아니고 ‘준우승을 축하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친구들을 골려먹었더니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 (결승전을 앞두고) 신민준 九단과는 그동안 세 판을 두어 1승2패로 밀리고 있었는데.
“상대전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스타일이다. 최근이 중요한데, (신)민준이는 가만히 있어도 바둑이 늘 때라 이기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단 변수라면 결승이 3번기가 아닌 단판 승부였다는 것 정도라 할까.”

- 단판 승부가 도움이 됐다는 것인가?
“5번기보다는 3번기가, 3번기보다는 단판이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희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다.”


- 얼마 전 임은선 씨와 6개월 연애 끝에 결혼했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알려진 게 없는데,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됐나?
“연애기간은 6개월 정도였지만 처음 본 건 그보다 훨씬 더 전이다. 지인과의 식사자리에 와이프가 몇 번 자리했는데 이후 호감을 갖게 되면서 결혼하게 됐다.”

- 우승 후 인터뷰에서 부인의 내조가 큰 힘이 됐다고 했는데.
“질문을 그런 식으로 유도해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좋아하실 분 계시죠?’ 하는데 아니라고 답할 수도 없고.(하하) 와이프는 바둑을 전혀 모른다. 내가 어느 정도 레벨의 기사인지도 잘 모르다가 이번에 우승했다며 트로피 들고 집에 들어가니까 약간은 놀란 표정이었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었어?’ 하는 눈치였다.”

- 요즘 바둑TV 해설자로도 간간히 모습을 보이던데.
“20대 때는 오로지 바둑만 바라보고 승부만 해왔는데 어느 날 30대가 되니 승부 말고 다른 것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방송이다.”

- 방송은 준비가 많이 필요한데.
“그게 어렵더라. 처음 한두 번은 그럭저럭 버텼는데 밑천이 바닥나니 준비 없이는 방송을 하기가 겁나더라.”

- 바둑과 방송, 어느 쪽이 더 긴장되고 힘든가?
“바둑이든 방송이든 크게 긴장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묘하더라. 스튜디오에만 들어서면 거짓말처럼 입이 얼어붙어 말발이 안 서더라. 그런 부분이 아쉽다.”

- 2019-20 KB리그가 개막했다. 이번 시즌 사이버오로 2지명 선수로 부름을 받았는데, 각오는?
“양건 감독님이 나를 2지명으로 호명하기에 깜짝 놀랐다. 아직 (최)철한이 형도 지명 받기 전이어서 정말 의외였다. 올해 포지션은 확실하다. 팀의 군기반장이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채찍을 들 생각이다.(하하)”

- 군기반장을 자처하며 채찍까지 든다고 하니 신생팀 사이버오로의 성적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몇 등을 예상하는가?
“전력으로 보면 상위권 팀은 절대 아니다. 실력 이상의 성적을 거둬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거로 본다.”

-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
“KB리그는 단기전이다. 초반 흐름을 잘 탄다면 이번 시즌 ‘도깨비 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린 선수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 금년 서른세 살이다. 20대와 30대, 바둑을 대하는 자세 중 다른 점이 있다면? 
“승부사로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다. 다만 20대 때는 바둑을 지면 세상을 다 잃은 것만큼 괴롭고 아팠지만 30대에 접어들고 보니 예전보다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실히 덜 하더라.”

- 금년 타이틀도 따고 했는데, 앞으로의 목표와 각오는?
“이번 우승으로 승부사로서의 유예기간을 조금 더 받은 것 같다. 남은 2~3년 동안 후회 없는 바둑을 두고 싶다.”

- 한 번 더 우승하고픈 생각은?
“기회가 오면 잡아야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구기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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