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현장/ 캐나다 바둑 캠프
나는 2017년 중순 캐나다 동부 몬트리올에서 바둑 보급을 시작했다.
착하기로 유명한 캐나다인들은 역시나 친절했고, 승부만 해온 나로서는 바둑 자체를 즐기는 순수 동호인들의 모습에 매료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나라가 너무 큰 탓(?)에 캐나다 바둑인끼리도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
내가 살고 있는 퀘벡주(州) 만 해도 면적이 한국보다 17배 넓다.
이동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같은 주 대회만 출전하는 경향이 있고, 타 지역 사람들을 만날 기회 자체가 적다. 가장 큰 축제인 캐나다 오픈에 참가하더라도 3일간 치열하게 바둑 두고, 두어 번 저녁 식사 같이 하고 끝이다.
캐나다로 온 뒤 첫 숙제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끼리 가까워 질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것이 ‘바둑 캠프’였다. 나는 유럽 바둑 캠프에 두 번 참가했었기에, 캠프의 힘을 알고 있었다. 1~2주간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 캠프 활동을 함께하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목진석 사범님과 요트에서 한 컷!
이 과제를 어떻게 실현시킬지 고민하던 차에 퀘벡에 사는 피에르-이브(Pierre-Yves)라는 친구와 함께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가게 됐다. 차로 13시간 걸리는 거리였기에 대화 소재는 많을 수록 좋았다.
“지리 여건상 바둑인들끼리 별로 안 친한 것 같아.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고. 내 생각에 일주일짜리 바둑 캠프를 만들면 교류가 원활해질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재밌을 것 같아! 네가 원한다면 도와줄게”
“진짜? 너랑 내가 주최자로 한다면 괜찮겠어?”
“응! 만약 퀘벡에서 캠프를 열게 된다면 적극 도와줄게”
지원군을 얻은 후 곧장 캐나다 바둑 협회장 제임스(James) 와 함께 본격 추진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2019년 8월, 캐나다 바둑협회 여름 캠프(Canadian Go Association Summer Camp)가 만들어졌다.
장소는 몬트리올에서 동쪽으로 90분 떨어진 올포드 캐나다 국립공원 주방스 리조트 (Orford-Jouvence resort). 국립공원 안에 위치했기에 사방이 숲이며 고목들이 쭉쭉 뻗어있다. 숨만 쉬어도 온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캐나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우리가 가진 건 나무와 물 밖에 없어”
사진 속에 보이는 물가는 호수다. 카누 타고 한 시간 30분을 가야 끝을 볼 수 있는 크기다. 이런 환경에서 6일간 바둑 두고, 먹고, 호숫가에서 수영하고! 바둑인들에겐 낙원 아닐까? 마음 같아선 2주간 진행하고 싶었지만, 워낙 인기 많은 곳이라 예약 할 수 있는 최대치가 5박6일이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프로그램, 바둑과 놀이의 조화다. 오전과 저녁은 바둑 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대자연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야외 활동 시간! 한국에서 목진석 九단이 파견돼 참가했고, 캐나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멕시코까지 7개국에서 40여 명의 바둑인들이 캠프를 위해 모여들었다. 특히 영국에서 온 보리스 (Boris) 는 필자의 친구로, 유럽 폴란드 바둑 캠프에서 만나 절친이 됐다.
“내가 캐나다 바둑 캠프를 만들었어! 정말 아름다운 곳에. 재미는 보장돼 있어^^.”
“정말? 나 무조건 간다”
내 한마디에 보리스는 연 휴가 절반을 쓰고 캠프에 참가했다.
오전 대국 후에는 항상 야외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복기를 한다. 캠프가 끝날 무렵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이렇게 끝내주는 바둑 행사는 처음이야! 내년에도 또 하는 거야? 꼭 그랬으면 좋겠어” 라는 소감을 남겼다.
첫 캠프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간은 흘러 2020년, 코로나19로 모든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을 때 우리 캠프 주최자들도 고심에 빠졌다. 국경이 닫혀 있어 외부 참가자들은 없을 것이고 캐나다 내 참가자들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작년의 추억을 잊지 못해 20명의 참가자만 있다면 조촐하게라도 진행하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8월 23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25명의 캐나다 바둑인들이 모였다. 비록 작년보단 줄어든 숫자였지만 이 중 20여 명은 지난해 캠프 참가자였기에 반가움은 배가 됐다. 캐나다 식구끼리만 열리는 캠프도 꽤나 의미가 있었다.
몇가지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1. 실내 마스크 착용 2. 바둑용품 세척 3. 대국 시 간격 두기. 이 중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둑용품 세척! 오전, 저녁 하루 두 번. 자기가 사용한 바둑알은 비눗물에 세척 후 말리고, 바둑판은 소독 용품으로 닦기.
여러 사람이 사용하기에 바둑알은 지금 상황에선 가장 위험 요소(!)다. 떨어지는 구정물을 보며, 바이러스까지 씻겨 나가는 느낌이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매일 단체 활동이 있다. 인기 종목은 배구! 실력, 성별, 나이 상관없이 모두 함께 참가한다. 캐나다엔 공원마다 배구장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를 제외하고는 많이 해 본 솜씨.
“서브 땐 주먹을 쥐고 팔을 쭉 편 상태에서 공을 쳐 올려! (초보자용), 패스 할 땐 손 끝으로만 살짝 건드리면 돼!” 라고 도움을 받으니 그럭저럭 공은 주고 받는다. 이 밖에도 축구, 등산, 호수 위에서 할 수 있는 카누, 카약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하다 보면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부족할 정도. 이곳에 있는 동안 근육통이 안 생긴다면 제대로 못 놀고 있다는 것!
2년 연속 가장 인기 있었던 저녁 이벤트는 팀 다면기(Team Simultaneous). 비슷한 실력을 가진 2-3명이 한 팀을 구성해 의논한 후 다음 수를 결정.
덜컥 수를 줄이고 여러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기에 최소 한 점은 강해진다. 물론 팀워크가 좋을 때만^^. 작년에 참가한 목진석 사범님은 팀 다면기 후 “두 판 연달아 둔 것 같은 피곤함인데…” 라는 말을 남긴 후 사라지셨는데, 알고보니 그 길로 곧장 숙면을 취하셨다고 한다.그만큼 프로쪽도 진땀을 빼야 한다. 사실 이제와서 말하지만 당시 유단자 팀들을 목사범님께 몰아드린 이유도 있으리라. ^^;
매일 밤 캠프파이어가 열린다. 한손엔 맥주 한 잔씩 들고 노래도 부른다.
우쿨렐레를 치며 토론토에서 온 친구가 팝송을 부르다가 끝무렵 시작한 샹송 Champs-Elys? ees. 갑자기 전부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무슨 노래지? 알고보니,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이 노래다.
노래가 끝나고 다들 행복해 하는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캠프파이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마시멜로 샌드위치! 나무 막대기 끝에 마시멜로를 끼워 모닥불의 열기로 노릇하게 구운 후 크래커 사이에 끼워 먹는것이다.
마시멜로 굽는 실력을 보면 캠프 경험을 알 수 있다. 위치 선정부터, 몇 초 간격을 두고 돌려 익히는지. 센 불 쪽에 너무 가까이 굽다가 까맣게 태우면 바로 초보 인증. “노란색과 갈색의 중간. 밖은 바삭하지만 안은 말랑한, 이게 최고의 마시멜로지!” 라는 캠핑 전문가(?)들의 말!
어느덧 마지막 날. 오전 대국이 끝나면 조촐하게 폐회식을 한다.
두자리 급수부 성적 우수자부터 진열된 상품을 고른다. 바둑책, 캠프 로고 티셔츠, 수건, 물병 등. 성적이 안 좋았다고 찌푸리는 이 하나 없다. 그저 이 시간이 끝나감에 대한 아쉬움 뿐. “내년에 다시 만나자”라는 말과 동시에 여름의 추억을 가슴에 새긴다.
한가지 더, 우리 캠프에만 있는 아침 이벤트 Morning Dip! 아침 입수! ‘오전 8시 호수 앞’이 암묵적 약속이며 조식 전, 호수에 풍덩! 자발적 입수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내년에 참가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