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바둑1 | 남치형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주임교수
파산 위기인 명지학원이 ‘대학·전문대 통합’을 골자로 한 회생 방안을 내놓았다. 부지 개발 수익을 통해 부채를 갚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명지대와 명지전문대가 통합된다.
새로운 ‘통합 명지대학교’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명지대학교는 지난 몇 달 간 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를 꾸려 학사구조개편에 들어갔다.
12월 9일 최종 발표된 통합 명지대학교 학사구조개편 최종(안)에 바둑학과의 이름이 사라졌다.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가 폐지 대상이 된 것이다. 이밖에도 철학·수학·물리 3개 학과가 폐지 통보를 받았다. 통합 명지대학교의 특성화 방향과 4개 학과의 특성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통합 명지대학교 발족을 위한 명지대학교-명지전문대학교 통폐합이 추진 중입니다. 내부적으로 통폐합 이야기는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나요?
학교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은 건 9월쯤이에요. 추석이 지나자마자 학교에서 학과 발전 계획서를 내라고 해서 제가 발전 계획서를 한번 올렸어요. 저희가 제시했던 내용은 전문대와 통합하게 되면 서울캠퍼스가 남을 테니 서울로 보내 달라는 것과 현재 바둑학과 정원이 21명인데 내년부터는 2배 정도인 40명으로 정원을 늘려 달라는 것. 그다음 마인드스포츠 종목인 브리지, 체스 같은 것들을 함께 넣어 학과 규모를 키워보겠다고 했어요. 바둑만 하는 것보다 국제마인드스포츠협회(IMSA)도 있으니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생각해보면 같이 하면 좋겠다 싶었죠. 학과 졸업생 중 브리지 선수도 있고, 이런 여러 가지이유로 바둑학과를 더 확장 시켜보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큰 꿈이었죠.
- 11월 3일 통합 명지대학교 학사구조 1차 통합(안)으로 바둑학과를 미래융합대학으로 이동, 명칭변경(마인드스포츠학과 or 마인드스포츠경영학과)한다는 내용이 발표됐어요.
1차 통합(안)에 제시된 내용이 바둑학과를 서울캠퍼스로 보내긴 하되 미래융합대학이라는 30세이상 재직자 전형으로 넣겠다는 거예요. 일단 고등학교 졸업자는 입학할 수가 없어요.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자만 가능한데, 한국바둑고가 특목고로 바뀌어서 아예 우리나라 학생들을 받을 수 없는 전형이죠. 그리고 정원도 보통 다섯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반대를 했고, 이후 열린 공청회(11월 9일)에 김진환 교수와 학생회장 등이 참석해 ‘도대체 이렇게 바뀐 이유가 뭐냐?’ 이야기했어요.
당시 공청회에 우리 과뿐만 아니라 폐과 대상인 학과들이 많아서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면 2차로 발전 계획서를 내라고 해서 이후에 2차 발전 계획서를 또 냈어요. ‘우리가 너무 원대한 꿈을 꿨구나. 그래서 자연캠퍼스에 남고 바둑이 대한체육회 정식 종목이니 스포츠학부로 들어가 바둑학 전공으로 남겠다. 마인드스포츠도 좋다. 일단 살려만 달라’고 했고, 최근 정원 삭감이 많이 됐는데 삭감되기 전인 25명 정도 선으로 확 줄여서 냈어요. 그런데 2차 통합(안) 발표를 공청회(12월 1일)에서 갑자기 한 거예요. 유튜브 라이브로 보는데 ‘바둑학과 폐지’ 이렇게 나와서 그때 폐지 사실에 대해 알게 된 거죠. 김진환 교수는 통합추진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인데도 몰랐어요.
- 12월 9일 제5차 통합추진위원회 회의에서 학사구조 개편 최종(안)이 의결됐어요. 바둑학과 폐지안이 철회되지 않았는데, 최종안이 교육부로 넘어가기 전 추가적인 내부회의가 있다고 들었어요.
교무위원회-평의회-이사회를 거쳐 최종안이 교육부로 넘어가는데 이사회가 끝나고 교육부에 제출하는 것까지 12월 안에 마무리 돼야 해서 인터뷰가 나갈 때쯤에는 결정돼 있을 거예요. 그래도 예상을 해보자면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결정을 했는데 그 안이 교무위원회든 이사회든 올라갔을 때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는 있어요. 그리고 사실 지금 교무위원, 이사구성이 통합추진위원회에서 했던 것들을 번복할 수 있는 구성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 교육부에 넘어가면 어떻게 진행되나요?
교육부에서는 아마 전체를 아주 꼼꼼하게 검토하지 못할 거예요. 대략적인 것들이 문제가 없다면 통과될 가능성이 있죠. 그래도 바둑은 눈여겨 봐 달라고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우리 과가 전체입시 정원 학생 수로 봤을 때 1%에도 못 미쳐요. 통합 이전인 현재 전체 정원이 2600명 정도 되는데 바둑학과 정원이 21명으로 줄어 1%가 안 되고요. 교내 교수가 530명인데 바둑학과 교수는 3명이에요. 교수 수준은 0.5%가 살짝 넘어요. 너무나적은 비중이기 때문에 교육부에 이걸 아무 말 없이 올리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요. 다른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겠지만 바둑학과를 꼼꼼히 살피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꼼꼼하게 검토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통합 명지대의 방향성으로 학교는 ‘실용’을 키워드로 잡았습니다. 수학, 물리, 철학과도 폐과 대상에 올랐는데 사실상 기초 학문을 내치겠다는 이야기가 아닌지….
우리는 어떻게 보면 완전 실용이에요. 바둑학과를 졸업해서 현장에 이렇게 나가는데 이걸 실용이 아니라고 하면 모순이죠. 보통 다른 과에서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실용적인 측면에서 봐도 우리 과는 실용의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바둑학과가 통합 명지대의 비전이나 방향성 이외에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없나요?
보통 학교가 재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게 합격자를 뽑았는데 다른 곳을 등록해 미달이 생기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예비 합격자 1번도 들어 올수 있을까 말까 하는 그런 학과에요. 또 하나는 정원 외 모집이 있는데 외국인 학생들이 정원 외를많이 채워주고 있어요. 더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이 항상 있었던 과라서 오히려 재정에 도움이 됐을 것이고, 학생 수도 적지만 교수 수가 굉장히 적은편이에요. 홍보효과에 비해 비용은 거의 안 들고 재정적으로는 가성비가 좋은 학과라고 보면 돼요. 알짜학과죠.
- 바둑학과가 없어지게 된다면 국내외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현재 매년 프로기사를 17명씩 뽑는데, 예전에 적은 인원을 뽑을 때는 입단하는 순간 지위가 보장되는 측면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17명 중에 2∼3명이 그나마 승부로 먹고살 수 있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많은 프로기사가 바둑학과에 지원하고 있고, 심지어는 프로기사도 떨어뜨려야 될 정도로 경쟁률이 높아요. 프로가 되려고 보통 학교도 가지 않고 올인을 하잖아요. 몇 년 승부를 했는데 잘 안 되는 경우 그 친구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것도 바둑학과의 큰 역할 중 하나에요. 입단을 못한 많은 친구들한테 기회를 주고요.
만약 이런 백업장치가 없다면 제 생각에는 프로를 지망하는 학생 수도 줄어들 것 같아요. 그럼 경쟁을 통한 정상급 기사 배출 이런 것들이 사실 쉽지 않아지겠죠. 지금 한국이 계속 세계 1위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려워질 가능성이 많죠.
- 입단 외적인 부분은 어떨까요?
체계적인 바둑교육과 바둑 이외에 다른 것들도 함께 교육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도 바둑학과 덕분인데 이제는 그런 교육할 만한 친구들이 없어지는 거죠. 또 해외에서 보급할 수 있었던 것도 학과에서바둑 영어, 중국어도 가르치고 해외 교류도 하고하다 보니 ‘이거 되는구나, 나가서 뭘 하면 되겠구나’ 이렇게 보급을 나간 거지 맨땅에 헤딩한 애들 없거든요.
97년 바둑학과가 생기기 전까지 외국에 나가서보급한 사람 없어요. 해외보급에 나선 윤영선 프로(01), 김윤영 프로(09), 황인성(02), 오치민(07)등 모두 여기를 거쳐 나갔기 때문에 그런 활동을할 수 있었던 거였어요. 바둑 행정 쪽에서도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에 바둑학과 출신이 입사한 것도 대학을 다니면서 교양 등을 배워놓은 친구들이 배출됐기 때문이에요. 바둑도 잘 알고 행정 업무를 맡기면 할 수있는 친구들을 길러내서지 그냥 바둑만 둬서는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바둑학과가 없어지는 게 해외에서도 영향이 커요. 저희랑 교류하는 학교도 많고, 상하이 건교대학교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2년, 명지대에서 2년하면 바둑학과 졸업장이 나오는데 그렇게 직접적인 교류가 맺어져 있는 학교들도 많아요.또 해외의 바둑학원이나 그곳에서 프로기사가 된 친구들도 우리학과에 와요. 유학생 대부분이그런 친구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학과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아요. 바둑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만한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해서 오는 곳이 바둑학과에요.
-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 중이신지도 궁금합니다.
25년이나 됐는데 학교 내에서도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생각돼서 해왔던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 중이에요. 유학생이 몇 명이고 몇 명의 프로기사가 거쳐갔는지 등 숫자로 바로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 어디에 취업을 했고, 교육 부문에는 얼마나 활동하고 있고, 해외에서는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논문이나 이런 연구들은 얼마나 됐는지 자료들을 계속 모으고 있어요.
- 수학과, 물리학과와 이야기를 해보니 소수과라서 힘을 더 못 내고, 목소리가 더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그렇지만 귀찮은 거 하나 잘라내는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가치가 있는 것을 잘라내는 것이라는 것을 어필 중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제가 바둑계에 받은 혜택은 많은데 바둑계를 위해 제대로 뭐 하나 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너그럽게 봐주시고 이번 문제에 대해 많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학교나 교육부에는 바둑학과가 지금대로 남든 마인드스포츠로 독립이 되든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이번 안에 대해 재고해 주셨으면 좋겠다 말씀드리고 싶어요. 바둑 팬들도 서명을 많이 해주시고 해외에서도 많이 도와주셨는데 바둑학과가 없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할 테니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관심 놓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공학과 폐지위기에 처한 바둑·철학·수학·물리학과 학생들은 곧장 행동에 나섰다. 제5차 통합추진위원회가 열렸던 12월 9일, 교무위원회가열렸던 12월 13일 두 차례 반대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생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한 달 만에 통과시키려는 이번학사구조 개편안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초안발표 뒤 이뤄졌던 공청회도 허울에 불과했다. 재단의 잘못으로 비롯된 일이 왜 학생들의 희생으로 끝맺음 되어야하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글·오명주 기자/사진·이주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