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현장 | 스미레 한국기원 이적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미레(15) 三단의 기자회견이 3월 4일 한국기원 4층 대회장에서 열렸다.
한국 유학 시절 스승이었던 한종진 九단과 함께 자리한 스미레 三단은 한국과 일본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앞으로의 각오와 목표 등을 밝혔다.
한국에서도 주요 언론사가 참석하며 관심을 보였지만 특히 스미레 三단의 고국 일본에서 갖는 관심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NHK·후지테레비·니혼테레비(닛테레)·테레비아사히·요미우리신문·아사히신문·마이니치신문·교도통신·지지통신 등 메이저 언론이 대거 취재단을 파견했고, 다큐멘터리 제작PD까지 스미레 三단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았다. 심지어 스미레 三단의 한국입국 소감을 전하기 위해 김포공항까지 취재진이 따라나서는 극성스러움을 보였다. 일본 프로기사사상 첫 한국기원 이적에 대한 관심이 엄청남을 실감케 했다.
일본 메이저 언론사 대거 취재단 파견
서울 한국기원에서의 인터뷰에 국내 기자보다 일본 기자 숫자가 훨씬 많은 것에서 스미레 三단의 일본 내 관심도가 얼마나 높은지 엿볼 수 있었다.
“5년 안에 여자랭킹 2위까지 오르는 게 목표”라고 밝힌 스미레 三단은 “쉽지 않은 도전이라 불안하기도 하지만 매일매일을 소중히 하면서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2월 28일 한국에 도착한 스미레 三단은 3월 2일 맞은 한국에서의 첫 생일을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보냈다고 전했다.
생일 다음날인 3월 3일에는 이적 후 첫 대국을 가졌다. 와일드카드를 받아 출전한 제5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 본선에서 이창석 九단과 데뷔전을 치렀다.(관련기보 126쪽 참조)
“박정환 九단을 가장 존경하며 박정환 九단 같은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고 밝힌 스미레 三단은 3월 11일 한국 이적 후 두 번째 대국에서 박정환九단을 만나기도 했다.
한국 무대에서 2패로 출발한 스미레 三단은 3월 13일 열린 제11회 한국프로기사협회리그 6조 1회전에서 한주영 初단에게 불계승하며 한국에서 첫승을 신고했다.
이후 17일 개막한 2024 KB국민은행 챌린지 바둑리그에서 에스텍파마 위너스 선수단의 일원으로 춘천을 방문하는 등 스미레 三단은 한국에서 분주한 일과를 소화하고 있다. 한국기원 이적 후 3월 17일까지의 전적은 2승 2패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한국 바둑 적응에 들어갔다.
스미레 三단의 한국기원 이적은 지난해 10월 최종 확정됐다.
이에 앞선 8월 9일 일본기원으로부터 스미레三단의 객원기사 신청과 관련한 추천장을 접수한 한국기원은, 9월 13일 한국프로기사협회(기사회) ‘기사 대의원회’에서 관련 사안을 심의한 끝에 스미레 三단을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추천했다. 이후 ‘2023 제2차 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쳤고 10월 26일 한국기원 이사회에 스미레 三단의 객원기사신청안이 보고되면서 이적 절차가 마무리 됐다.
13세 11개월 나이로 타이틀 획득
2009년 3월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스미레 초단은 일본기원이 2019년 신설한 ‘영재특별채용’ 추천기사로 특별입단 했으며 그해 4월부터 일본기원 관서총본부 소속 전문기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입단 당시 나이인 10세 30일은 일본 바둑계 사상 최연소 입단 기록이기도 하다(스미레 三단의 기록은 2022년 9월 일본 관서기원에서 영재 특별채용으로 9세 4개월로 입단한 후지타 레오 初단에 의해 깨졌다).
지난해 2월에는 제26기 일본 여류기성전 타이틀을 거머쥐며 일본 열도에 스미레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타이틀을 차지할 당시의 나이였던 13세 11개월은 일본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이다.
입단 전인 2017년 초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국의 한종진 바둑도장에서 공부하며 실력을 연마한 스미레 三단은 2019년 특별입단이 결정된 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스미레 三단은 “추후 시간이 나면 한국에 와서 공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이번 이적으로 당시의 약속을 지키며 한국에서의 기사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스미레 三단의 이적 배경은 아버지 나카무라 신야 九단의 과거 인터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9년 스미레 입단 기자회견에서 아버지 나카무라는“세 살 때부터 바둑을 배운 스미레가 한국유학을 결정한 것은 일본 내에 비슷한 실력을 가진 또래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전, 오후 내내 바둑에 몰두할 수 있는 바둑도장이 일본에 없는것도 유학을 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 정상급 여자기사로서의 안정된 기사생활을 접고 미래가 불투명한 한국으로 이적을 결정한 이유를 스미레 三단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는 강한 기사들이 많다. 저 스스로 훨씬 강해지고 싶어 수준이 높은 한국으로의 이적을 결심하게 됐다. 쉽지 않은 도전이라 불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열심히 노력해 실력을 더 키우고 싶다.”
한국에 비슷한 연배의 바둑 친구들이 많은 것도 스미레 三단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작용을 했다.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주변에 온통 언니, 이모, 아줌마뻘의 선배들 뿐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신나게 놀면서 바둑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일본과 달랐던것. 아직 중학생 나이의 청소년인 스미레 三단에게는 이 부분도 중요한 이적 요인 중 하나였음을 기자회견에서도 언급했다.
“바둑 공부 외 시간에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싶다. 한국에 친구들이 많아 영화를 같이 보거나 노래방에 함께 가고 싶다.”
자신의 한국 유학이 한일 양국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스미레 三단은 “국제 교류는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한일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배우면서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어른스러운 바람도 잊지 않았다.
스미레 三단의 스승이자 한국프로기사협회 회장이기도 한 한종진 九단은“스미레 선수를 통해 우리 바둑계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과거 한국이 일본에서 바둑을 배우며 발돋움했지만 앞으로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미레 선수가 한국 여자랭킹 2위를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아마도 겸손이 아닐까 생각되며 분명 1위를 목표로 매진할 것임을 확신한다”고 제자의 어려운 결정을 응원했다.
김치찌개와 K팝을 좋아하는 스미레의 성장은 한국과 일본 바둑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것임이 분명하다.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스미레三단은 5년 동안 한국기원 객원기사 생활을 하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정을 절차탁마하며 지금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있다면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일본 바둑계에도 한줄기 빛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스미레 三단이 목표로 한 국내여자랭킹 2위 이상의 수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인지, 향후 세계여자 바둑계 판도가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스미레 三단 이적 전과 이적 후 세계 바둑계 판세 변화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