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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기 I 제10회 전라남도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등록일 2024.09.02691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하정웅 미술관 옆 연주 현씨 종가 앞에는 국보 제76호 이순신 장군 서간첩의 어록을 들여다볼 수 있는 비석이 있다. 이 비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 적혀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호남이 없으면 일본군 침입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호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말은, 바둑계에서도 유효하다. 호남이 없으면 바둑도 없다. 즉 ‘약무호남 시무기가(若無湖南是無棋家)’라 할 수 있다. 현대 바둑의 뿌리이자 국수의 고향이라 불리며 많은 국수(國手)를 배출한 호남. 그중 전라남도 너른 평야에 우뚝 솟은 바둑 세 봉우리 강진, 영암, 신안군이 이룬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가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했다. 

8월 2일(개막식)  
영암 호텔현대 바이 라한 목포에서 제10회 전라남도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 개막식이 열렸다. 한국·중국·일본·대만을 대표하는 선수 16명과 내빈 및 대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순선 전라남도 관광체육국장 환영사에서 “제10회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가 세계 바둑인이 화합하고 소통하는 축제의 장으로 바둑의 매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축사에 나선 영암군의 영친소(영원히 잊지못할 친근한 미소) 우승희 군수는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세계인이 하나 돼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영암군은 조훈현 九단을 배출한 바둑의 본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바둑 문화를 활성화하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축사에 이어 열 돌을 맞이한 ‘국수산맥 10주년캘리그라피’ 기념 공연과 함께 ‘10주년 기념 감사패’ 전달식도 진행됐다. 

올해부터 우승상금이 1억 원으로 인상된 세계프로최강전은 16강 토너먼트 형식으로 치러졌다. 한국은 디펜딩 챔피언 신민준 九단을 비롯해 박정환·변상일 九단(본선 시드), 선발전을 통과한 김명훈·박민규·강승민 九단과 최광호 六단이 출전했다. 중국에서는 왕싱하오·자오천위·판팅위 九단이, 일본은 이치리키 료·시바노 도라마루·이야마 유타 九단이 참가했다. 대만은 쉬하오훙 九단과 라이쥔푸 八단이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들 16명 중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자가 6명, 역대 국수산맥 우승자도 4명이나 있다. 게다가 와일드카드를 받은 전기 준우승자 신진서 九단까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이번 대회가 첫 출전인 중국의 왕싱하오九단이 첫 족자를 펼치며 대진 추첨이 시작됐다. 중국, 일본, 대만 선수의 추첨이 끝난 후, 한국 선수의 추첨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최광호 六단이 족자를 들어 올리며 16강 대진표가 완성됐다. 쉬하오훙 九단과 맞붙게 된 신진서 九단은 “10주년 라인업에 걸맞는 강자들이라 누구랑 만나도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우선 결승에 오르는 게 목표고 좋은 바둑을 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8월 3일(16강, 8강)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가 올해로 10회를 맞이했지만, 아직 2회 연속 우승자는 나오지 않았다. 전기 우승자 신민준 九단이 2연패를 달성할지, 중국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왕싱하오 九단이 우승을 안을 것인지, 아니면 일본 최강자, 이치리키 료 九단이 우승컵을 거머쥘지…. 어떤 이변이 나올지 모르는 가운데, 월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영암군 구림마을 영암군립 하정웅 미술관, 이 특별한 장소에서 각국의 최정상급 기사들이 마주 앉았다. 
오전 10시, 명예 심판을 맡은 우승희 군수의 대국 개시 선언과 함께 16강전이 시작됐다. 신진서九단이 먼저 쉬하오훙 九단을 완파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어 신민준 九단과 강승민 九단이 각각 왕싱하오 九단과 이야마 유타 九단을 꺾고 8강에 합류했다. 변상일 九단은 자오천위 九단과의 대결에서 극적인 반집 역전승을 거두며 한국 선수8명 중 4명이 8강에 진출했다. 중국에서는 판팅위 九단이 유일하게 8강에 올랐고, 일본은 이치리키 료 九단과 시바노 도라마루 九단이, 대만은 라이쥔푸 八단이 8강에 합류했다. 
점심 후, 8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선수 3명(박정환, 김명훈, 박민규)이 서울에 올라갈 준비를 한다. 이번 대회에서 첫 패배를 겪으며 세계대회 데뷔전을 혹독히 치른 최광호 六단은 패배하면 왜 바로 돌아가는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오후 2시, 8강 경기가 시작됐다. 신진서 九단과 신민준 九단은 일본 1, 2위 이치리키료 九단과 시바노 도라마루 九단을 제압했다. 첫 세계대회 8강에 오른 강승민 九단은 변상일 九단과의 형제 대결에서 아쉽게 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했고, 대만의 라이쥔푸 八단은 중국 강자 판팅위 九단을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이로써, 중국과 일본 선수들은 모두 탈락하고, 한국 3명, 대만 1명이 4강에서 맞붙게 됐다.

8월 4일(4강)
오전, 오후 나눠서 4강전이 진행됐다. 오전 대국은 한국과 대만의 맞대결. 변상일 九단과 라이쥔푸八단이 대국 시작을 기다렸다. 대국장을 바라보던중,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대국장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벽면 곳곳에는 팝아티스트 홍원표 작가의 작품들이 긴장감이 감도는 대국장에 새로운 시각적 재미를 더했다. 대국이 시작됐다. 변상일 九단은 초중반의 상승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좌변 패싸움에서 실수를 범해 역전패를 당하며 예상치 못했던 대만의 라이쥔푸 八단이 결승에 올랐다. 오후 대국은 ‘양신’대결로 펼쳐졌다. 전기 대회 결승에서 신민준 九단에게 패해 우승컵을 놓친 신진서 九단이 리벤지에 성공했다. 신민준 九단을 상대로 14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4년 연속 결승에 진출한 신진서 九단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한판 한판 두면서 승부 감각이 돌아왔다”며, 결승 전망에 대해선 “라이쥔푸 八단과는 아시안게임에서 만나 힘들게 이겼던 기억이 있다. 속기 연습을 많이 하는 선수라 그 부분을 신경쓸 생각이며, 오랜만에 색다른 선수를 상대하게 돼 새로운 기분으로 준비해 꼭 우승 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8월 5일(결승/폐막식)
전혀 예기치 못한 결승전이 성사됐다. 대만의 라이쥔푸 八단과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九단의 맞대결. 결승에 앞서 라이쥔푸 八단은 신진서 九단을 상대로 “최대한 압박하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대국 초반, 팽팽한 형세에서 신진서 九단의 무리수로 인해 주도권이 라이쥔푸 八단에게 넘어갔으나 공격 과정에서 실수를 범해 기회를 놓쳤다. 반격에 나선 신진서 九단이 미세한 우위를 유지했지만 끝내기에서 연이은 실착으로 라이쥔푸 八단이 반집 차로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신진서 九단은 아쉽게도 우승 트로피를 라이쥔푸 八단에게 내주며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이번 대회에서 최대 이변을 일으킨 주인공 라이쥔푸 八단은 강력한 선수들을 연이어 꺾은데 이어, 신진서 九단까지 제압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며 기대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다. 
오후 6시, 신안 자은도 라마다 프라자&씨원 리조트에서 폐막식이 열렸다. 오미경 전라남도 스포츠산업과장이 우승한 라이쥔푸 八단에게 상금 1억 원과 트로피를, 준우승한 신진서 九단에게 상금 4000만 원과 트로피를 수여했다. 세계대회 첫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라이쥔푸 八단은 “위기도 있었지만 운이 좋아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올해 국제대회 경험이 많아졌지만 결승에서는 여전히 긴장했다. 우승하게 돼 매우 기쁘다”는 우승 소감을 전했다. 만찬 석상에서 신진서 九단이 대만 선수들이 자리한 테이블에 다가가 라이쥔푸 八단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신진서 九단은 일인자다운 품격을 보여줬다. 또한, 강진군에서 열린 국제청소년바둑대회에 참가한 대만 어린 선수들도 자리에 참석해 라이쥔푸 八단의 승리를 함께 축하했다. 아직 두 번째 우승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이 대회에서 내년엔 어떤 새로운 우승자가 등장할지. 10주년을 맞이한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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