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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바둑 | 맥심커피배 5년 만에 다시 우승한 이지현 九단 

등록일 2025.05.26176


30대 중반. 흔히 ‘에이징 커브’가 시작된다고 한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집중력이나 승부감각도 서서히 무뎌지는 시기.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시기를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주인공이 바로 이지현 九단이다.
늦은 입단에 군 복무 시기도 남들보다 늦었다. 그 공백이 성적에 영향을 미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프로기사 세계에서 이 같은 ‘굴곡’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받아들여지겠지만, 이지현 九단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을 밑거름 삼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이지현 九단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25년 1월 랭킹 13위로 새해를 시작한 이九단은 한 달 만에 7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3월엔 5위, 4월엔 개인 최고 순위인 4위에 올랐다. 마치 역류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순위를 하나씩 상승시킨 이지현 九단은 제26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에서 세계 최강 신진서 九단을 꺾고 5년 만에 정상에 다시 섰다.

- 5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습니다. 최종국 후“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우승 소감을 전하셨는데, 다시 떠올려보니 기분이 어떠세요?
결승에 임할 때는 한 판 이기는 게 목표여서…, 그 한 판조차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첫판을 이기고 나니까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잘 준비한 만큼 승리까지 이어지게 된 거 같아요.
- 3국까지 갔을 때 심정이 어땠어요?
뭐, 당연히 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다만 2국 때 내용이 좀 아쉬워서 3국에선 최대한 제 바둑을 두자고 생각했고, 기회가 왔을 때 ‘꼭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 20대 후반, 입대를 앞두고 거둔 우승과 이번 우승은 여러 면에서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 우승했을 땐 제가 입대를 앞둔 시기였는데 당시엔 바둑을 계속해야 할지, 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방황하던 시기에 마침 맥심커피배 결승 기회를 잡았고 운 좋게 우승할 수 있었죠. 이번 우승은 저에게 있어 나이도 있고, 쉽지 않을 그런 시선과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제 안에 잠재력이 있다는 걸 믿고 싶었습니다. 예전 우승도 소중했지만, 지금 제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하기에 두 번째 우승이 좀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 4월 성적을 보니 25승 5패, 승률 83.33%, 랭킹도 4위까지 올랐는데요. 상승세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많이 떨어졌죠(웃음). 아무래도 꾸준함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전에는 바둑 공부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나이도 있어서 체력이나 멘탈 부분도 신경 쓰다 보니 좀 더 좋은 쪽으로 성적에 영향이 미친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30대 중반이다 보니 ‘간절함’도 생겼던 것 같아요(웃음).
- 현재 자신의 기량이 어느 단계쯤 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번에는 운도 따랐고, 승률도 랭킹도 기대 이상 좋게 나왔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은 10위 언저리쯤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기복이 있는 편이라 경기력 차이가 좀 있는데, 제 바둑을 꾸준히 둘 수만 있다면 지금 랭킹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고, 컨디션 관리만 잘 된다면 더 좋은 성적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있어서, 그만큼 더 노력하고 있어요.
- 다른 매체 인터뷰를 보니 “바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후 오히려 성적이 좋아졌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어릴 때는 정말 바둑 공부만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군 복무 시절, 나름 사회생활도 경험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바둑만이 전부는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죠. 그러면서 바둑에 대한 부담감도 내려놓게 됐고, 조금 더 즐기자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물론 바둑 공부도 중요하지만, 제 생각이나 시야가 보다 더 확장되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슬럼프’라고 할 만한 시기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됐는데 코로나19로 대회가 1년 넘게 연기되면서 성적이 점차 떨어졌어요. 랭킹이 20위까지 밀려 ‘내가 대표 선수 자격이 있는 걸까’란 의구심이 들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비록 저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 큰 위로가 됐고, 그때부터 슬럼프를 극복하며 꾸준히 기사생활을 이어 가는 것 같아요.
- 최근엔 어떻게 공부하시나요? 예전엔 사활 문제집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환경이 많이 좋아져서 주로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수읽기나 사활 같은 부분이 제 강점이라고 생각해 왔고, 최상위 랭커일수록 이런 수읽기 능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저도 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수읽기 위주로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사활 공부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웃음).
- 올해 목표와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국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이제는 세계대회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큽니다. 특히 이번에 농심신라면배 대표로도 선발이 된 만큼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요. 앞으로는 세계무대를 목표로 삼고, 열심히 준비할 생각입니다. 

‘제2의 전성기’라는 찬사도, ‘커리어 하이’라는 수식어도 이九단에겐 그저 이정표일 뿐.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글·사진/김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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