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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 中녜웨이핑 九단, 향년 74세 타계 

등록일 2026.01.29112


중국바둑협회 명예 주석 녜웨이핑( ) 九단이 1월 14일 밤 10시 55분경 베이징(北京)에서 지병으로 작고했다. 향년 74세.

2013년 직장암 수술을 받았던 녜웨이핑은 투병기간에도 대회에 출전하는 등 바둑에 대한 열의를 이어갔지만, 지난해 3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타계하고 말았다.

1952년 중국 허베이(河北)성 선저우(深州) 태생인 녜웨이핑은 아홉 살 때 바둑을 배웠고 1975년 중국바둑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우승했다. 1979년까지 다섯 차례 우승한 녜웨이핑은 1982년 九단에 올랐다. 특히 1985년부터 열린 중·일 슈퍼 대항전에서 당대 최고수들인 고바야시 고이치(小쐹光一)·가토 마사오(加藤正夫)·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九단을 차례로 눕히는 등 11연승을 거두며 중국에 바둑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었다.이후 녜웨이핑 九단은 ‘철의 수문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86년 중국 국가바둑팀 총감독으로 취임한 녜웨이핑 九단은 1989년 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5번기에서 조훈현 九단과 우승컵을 다퉈 국내 바둑팬들에게도 친숙하다. 녜웨이핑 九단은 응씨배 준우승을 비롯해 1990년 3회 후지쓰배와 1995년 6기 동양증권배에서도 준우승하며 세계대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창하오(常昊) 九단과 구리(古싩) 九단을 길러내는 등 후학 양성에도 힘썼던 녜웨이핑九단은 저서로 <내 바둑의 길>, <녜웨이핑 자전100국>, <녜웨이핑 전집> 등을 냈다.
 
중국 바둑 부흥의 핵심 인물인 녜웨이핑 九단은 국가체육위원회와 중국바둑협회로부터 기성(棋聖) 칭호를 받았으며, 바둑을 좋아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공식 석상에서 녜웨이핑九단과 여러 차례 만나 ‘중국 바둑의 자존심’, ‘중국 문화의 대표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 녜웨이핑 九단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베이징 25중학에서 동문수학한 동창생으로 문화혁명 때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 바둑 한 판 두자”
한편 고인과 평생 승부를 겨뤄왔던 라이벌 조훈현 九단이 녜웨이핑 九단의 영결식에 참석해 고인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1월 18일 오전 8시 중국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 빈의관(殯儀館) 동례당(東쎒堂)에서 엄수된 고인의 영결식에는 창하오 중국바둑협회 주석, 위빈(兪斌) 중국대표팀 감독 등 바둑계 주요 인사들을 비롯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동생 시위안핑(習遠平) 등 각계 유력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조훈현 九단을 비롯해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홍민표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 등이 현지에서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눈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든 바둑 팬들과 관계자들의 행렬이 수백 미터나 이어지기도 했다. 중국 현지 언론 및 바둑계는 ‘한 시대가 저물었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훈현 九단은 “지난해 2월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건강해 보였는데, 갑작스러운 비보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50년을 함께한 친구를 잃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쉬길 바란다”면서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 바둑 한 판 두자”는 작별 인사를 전했다.
이밖에 유창혁 九단과 이창호 九단, 박정환·신진서·최정 九단 등 한국기원 소속 기사들도 녜웨이핑 九단을 추모하는 글을 전하는 등 중국 바둑계 거목의 추도 행진에 동참했다.
<글/차영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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