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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AI 형세분석의 오해와 진실 

등록일 2020.02.243,286

'미니고' 개발자 앤드류 잭슨.
'미니고' 개발자 앤드류 잭슨.

신년특집  AI 형세분석의 오해와 진실

90%면 바둑 끝이라고? 천만의 말씀


■글 _ 조범근(한국기원 홍보미디어팀)


지난해 한국바둑의 가장 큰 쾌거였던 ‘LG배 대첩’을 바둑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10월 강원도 강릉에서 벌어진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4강전에서 박정환 九단과 신진서 九단은 동반 결승진출에 성공하며 4년 만에 한국 우승을 확정지었다. 현장에서 이 광경을 보며 무척 기뻤지만 그런 가운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대국 중반 말미에 여러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는 박정환 九단이 이길 확률을 3∼5% 정도로 낮게 나타냈다. 하지만 국후 인터뷰에서 ‘가장 큰 차이로 격차가 벌어졌던 이때의 AI 승리확률을 집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 수치가 되었을 것 같은가’라는 물음에 박정환 九단은 “대략 3∼4집반 정도였던 것 같다”고 했다.

의외였다. 일반적으로 90% 이상의 수치를 나타내면 이를 두고 ‘판세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고 승부가 거의 결정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 우세한 정도가 3∼4집반 정도라면 프로기사 사이에선 경우에 따라 도저히 뒤집기 어려운 절망적인 차이는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AI가 나타내는 ‘90’이란 수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지면서 생각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AI의 승리확률과 집 차이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또 비례한다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AI를 즐겨 사용하고 있고 평소, 바둑AI 전문가들과 교류해 오던 터라 그들에게 전반적인 자문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잘못 쓰고 있는 용어가 많음을 알게 됐다. 그것부터 언급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 그림1



AI의 형세분석을 나타내는 ‘막대’와 ‘그래프’가 대표적이다. 두 개는 엄연히 다른 용어다. 그러나 혼동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용어정립이 필요하다. <그림1>은 모 바둑방송국의 방송 화면에 나온 ‘AI 막대(Bar)’다. 막대의 크기로 수치를 보여주며 가장 알아보기 쉽게 형세를 나타낸다. <그림2>는 리지(Lizzie)가 보여주는 ‘AI그래프’다(리지는 막대와 그래프의 2가지 도형을 모두 보여준다). 리지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오픈소스 인공지능 중 하나인 릴라제로(Leela Zero)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다. 대부분의 프로기사와 애기가들은 리지로 AI를 구동한다.

‘AI 막대’는 막대의 크기로 현재의 형세만 나타내고, ‘AI 그래프’는 대국 전체의 형세를 X축과 Y축을 이용한 도표로 나타내는 것이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 그림2



바둑 방송미디어가 대부분 <그림2>의 ‘AI 그래프’보다는 <그림1>의 ‘AI 막대’를 사용하는데 흔히 용어를 혼동해 쓴다. 해설자와 진행자조차 ‘AI 막대’를 ‘AI 그래프’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 가지 예는 ‘승률(勝率·Winning Percentage)’이란 표현이다. 막대나 그래프를 통해 나타나는 AI형세분석 수치를 ‘승률’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AI 승률’ 혹은 ‘승률 그래프’ 와 같은 부정확한 용어를 쓰고 있다. 승률의 사전적 정의는 ‘이긴 경기의 수를 전체 경기의 수로 나눈 비율’이다.

‘한돌’과 함께 국내 AI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바두기’ 개발자 이주영 고등과학원 교수는 “전체 전적 혹은 기록의 통계적 용어로 많이 쓰이는 승률은 AI 형세분석에서 엄밀하게 보아선 틀린 말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일반 대중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용어는 ‘이길 확률(Winning Probability)’이다”라고 했다. 그런 뒤 “물론 이길 확률이 아주 정확한 정의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이길 확률이라고 써도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승률과 이길 확률은 서로 비슷한 것 같지만 뜻 차이가 분명하다.   

이처럼 현재 바둑AI에 대한 용어와 이론정립이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2020년 새해를 맞아 특집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AI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와 그에 대한 진실을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특집에 자문해준 ‘릴라제로(Leela Zero)’ 개발자 지안 카를로 파스쿠토(Gian-Carlo Pascutto·벨기에), ‘바두기(BaduGi)’ 개발자 이주영 고등과학원 교수, ‘미니고(Minigo)’ 개발자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미국), ‘엘프 오픈고(Elf OpenGo)’ 개발자 위안둥 톈(Yuandong Tian·미국), ‘카타고(KataGo)’ 개발자 데이비드 우(David Wu·미국)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박정환 九단이 인공지능의 이길 확률 3% 분석을 뒤엎고 역전승하며 LG배 한국 우승을 확정지었던 장면. 박 九단은 타오신란 七단과의 준결승전에서 375수까지 가는 사투 끝에 흑 3집반승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오해와 진실? - AI 형세분석이 바둑의 스코어다?


최근 AI 형세분석 기능은 TV방송 및 온라인 프로대국 중계에서 널리 사용한다. AI의 이길 확률에 따라 요동치는 막대와 그래프는 해설자와 관전자가 대국의 유불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AI의 이길 확률’이 다른 스포츠의 스코어와 같이 실시간으로 대국의 우열을 정하는 기준이 되고 대국형세를 현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까.

▲ <그림3> 2020. 1. 5. 2019-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4라운드 4경기.



<그림3>은 김지석 九단(백)과 홍성지 九단의 대국 중반 장면이다. 흑이 149에 둔 상황이고, 우하귀 백돌은 흑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두면 패가 된다(동그라미 부분은 AI가 추천하고 있는 자리다). 하변과 상변이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전체적으로 복잡한 국면이다. 이 상황에서 ‘릴라제로’는 백의 88.7%의 우세를 나타냈다. 바둑TV 생방송에서 보여주던 AI 형세분석도 비슷한 수치의 우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대국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박정상 해설위원은 “이렇게 국면이 복잡할 때 인간이 느끼는 형세는 저 정도의 차이가 될 수 없다”라고 해설하고 있었고, 대국자들의 표정도 팽팽한 형세를 방증하듯이 심각했다.

▲ 그림4


김지석 九단은  <그림4> 백150으로 우하귀 백돌을 완생하며 패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 순간 놀랍게도, 흑백의 확률이 뒤바뀌었다. AI는 오히려 흑이 이길 확률을 58.1%라고 나타냈다. 백150 탓에 백의 확률이 45% 이상이 깎인 것이다. ‘패의 뒷맛을 없앤 저 한 수의 과오가 저렇게 크다는 말인가.’

이렇게 확률이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AI 형세분석 확률에 대한 다른 개발자들의 정의를 들어보았다.

앤드류 잭슨은 “AI가 분석한 수들의 서브트리 평균값(Average value of the subtree of moves explored)”이라고 정의한다. 즉 서브트리 평균값은 AI가 생각(수읽기)하고 있는 수들의 평균값이고, 이 값(Value)이 높을수록 그만큼 이길 확률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 위안둥 톈



위안둥 톈은 “확률은 실질적으로 몇 집을 이기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AI가 승리하는 길(Winning path)을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두 개발자의 정의가 약간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AI 형세분석 확률은 AI가 수읽기(Self-play)를 통해 도출한 흑백의 이길 확률(얼마나 잘 이길 것인가)을 나타내는 수치라고 정리할 수 있다. 

▲ 파스쿠토



다시 <그림4>의 상황으로 돌아가, 지안 카를로 파스쿠토는 “AI가 인간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AI가 생각하는 이기는 길을 인간이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고 말한다.

AI 형세분석이 현재 상황을 확률로 판정해주지만 AI 수읽기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대국에선 현실반영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파스쿠토는 이어 “일반적으로 대국자가 강할수록 AI 형세분석이 현실(실전)을 더 잘 반영한다. 하지만 AI가 더 강해질수록 AI 형세분석은 인간의 실전상황을 덜 정확하게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이 AI가 생각하는 수를 발견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체스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파스쿠토는 유명한 체스 엔진 개발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대국자가 AI가 생각하는 최선의 수를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AI의 형세판단을 스코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 국산AI '바두기' 개발자 이주영 교수.


오해와 진실? - AI 형세분석이 언제나 정확하다?

한국 바둑룰(일본룰과 동일)에서 덤은 6집반이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이 접하는 거의 모든 인공지능은 덤이 7집반으로 세팅됐다. 한국룰로 프로그램을 코딩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이유가 컸다. 알파고도 중국룰로 훈련을 했고 알파고제로 논문을 바탕으로 재구현한 다른 AI들도 그런 영향을 받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6집반의 한국룰을 적용하는 국내대회와 LG배, 삼성화재배 등의 한국주최 대회와 월드바둑챔피언십과 같은 일본주최 대회에서 벌어지는 대국에서는 AI 형세판단을 참고할 때 어려움이 따른다. 덤이 7집반으로 세팅되어 있는 AI 형세판단과 덤이 6집반인 실제 형세와는 1집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집이 큰 차이가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팽팽한 형세의 종반전과 끝내기 단계에서는 1집으로 형세가 정반대로 뒤바뀔 수 있다. 특히 반집 승부일 경우 흑이 반집 유리한 국면은 백의 승리로 계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래 그림을 보자.

▲ <그림5> 2020.1.5. 2019 크라운해태배 16강. 송지훈 五단(흑) vs 김명훈 七단.


<그림5>는 실제로 흑이 반집을 승리한 대국(덤 6집반)이다. 하지만 위의 막대는 백이 이길 확률을 97.3%라고 나타내고 있다. 덤이 7집반으로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반상에서 7집을 앞서고 있는 흑이 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주 발생한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AI 형세분석의 엔진은 릴라제로, 미니고, 엘프고, 돌바람, 절예(한큐바둑 버전), 한돌 등의 ‘7집반 세팅 AI’다. 독자 여러분이 AI의 후반 형세분석을 볼 때 항상 이러한 덤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고, 흑이 -1집 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누구나 ‘덤을 1집 줄여 6집반으로 세팅하면 되는 것 아닌가?’와 같은 의문을 떠올릴 수 있고. 실제로 필자도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직 어떤 매체에서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6집반 미스터리’에 대해 필자는 지안 카를로 파스쿠토에게 답을 구했다. 파스쿠토는 “덤을 단순히 6집반으로 바꾸는 것은 단 하나의 값(Value)만 코드에서 수정하면 해결되는 사소한 부분이다. 진짜 문제는 바로 한국룰(일본룰)이다. 한국룰은 규칙이 너무 많고 복잡하며 일관되지 않는다. 각양각색의 상황에서 이러한 규칙들을 풀어서 코드로 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이에 반해 중국룰은 모순이 없기 때문에 트럼프-테일러 룰(Trump-Taylor Rule, Jone Trump와 Bill Taylor가 바둑룰을 최대한 간단하고 논리적으로 풀어 정립한 룰)을 통해 도달할 수 있고, 단 8줄의 문장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본적으로 어떤 개발자도 한국룰을 지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모든 연구는 중국룰로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이어 “한국룰을 지원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봤다. 하지만 사실은 이 또한 중국룰을 내부적으로 사용하고 단지 계가만 한국룰로 바꾼 것이다. 한 가지 더 설명하자면 한국룰에서는 대국이 끝났을 때 본인 집과 상대 집에 두는 것이 손해다(중국룰에서는 손해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AI가 대국이 끝나도 계속 두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흑백 양쪽이 최대한 빨리 패스(순서넘김)를 하게 해서 대국을 종료한다. 이 방법은 대부분의 경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 과연 어떤 AI가 6집반 세팅기능을 지원할까? 현재까지는 중국의 골락시(Golaxy)와 데이비드 우가 개발한 ‘카타고(KataGo)’, 이 두 AI만이 이러한 기능을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골락시는 http://www.19x19.com/index에서 결제 후 사용이 가능하고 카타고는 인공지능바둑통합설치팩을 다운로드해 사용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wonsiksnz/221629228882

골락시는 현재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아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카타고에 대해 흥미를 느낀 필자는 베일에 싸인 카타고 개발자 데이비드 우와의 접촉에 성공했고, 그의 설명을 이메일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우는 “카타고는 다른 제로(Zero) 기반의 AI와 다르게 승패와 스코어를 같이 계산한다. 카타고의 스코어 출력(Score output)은 카타고가 자가대국훈련(Self-play training)을 통해 스스로를 상대로 거둔 평균 집 차이를 예측하도록 개발됐다. 또한 카타고는 단순히 이기기만 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더 큰 차이로 이기려고 한다(이기고 있는 형세라면 확실한 승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물러나버리는 대다수의 인공지능과 차이를 보이는 특성이다).”고 카타고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제한된 전산능력으로 홀로 개발을 하고 있고 본업 외에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만 개발을 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조만간 새로운 훈련 테스트를 할 예정인데 기본 버전보다 더 강한 기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자가대국훈련에서 일본룰을 포함할 수 있는 방법을 대부분 생각해냈다”고 전했다. 개발자의 설명을 들으니 카타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

카타고의 집 차이 계산기능과 6집반 세팅기능에 대해 ‘결함이 많다’는 지적이 많다. 필자 역시 카타고를 사용하면서 대국이 종료됐을 때 집 차이 계산이 틀린 경우를 자주 발견했다. 아직까지 AI 형세분석을 한국룰에 완벽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정확한 AI 형세분석을 위해 이러한 오류 극복은 중요한 과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데이비드 우는 정확도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으며, 바두기의 이주영 교수와 릴라제로의 지안 카를로 파스쿠토도 AI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자유로운 룰 세팅기능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룰 세팅에 대한 기술은 향후 꾸준하게 발전할 것이다. 

오해와 진실? - 이길 확률은 집으로 환산이 가능하다?

AI 형세분석을 즐겨 사용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떠올렸을 법한 의문이다. 이에 대해 실제로 지난해 10월 LG배 4강 종료 후 어떤 기자가 박정환 九단에게 가장 큰 차이로 격차가 벌어졌을 때 집으로 환산한 수치를 물어봤다. 박 九단은 “대략 3∼4집반 정도였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AI 형세분석에 따르면 박정환 九단의 이길 확률은 최소로 떨어졌을 때가 3∼5% 가량이다. 박 九단의 소감을 그대로 적용하면 3∼4집반의 우세가 90%의 이길 확률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형세분석에서 집 차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카타고로 당시 상황을 분석해봤다.

▲ <그림6> 2019. 10. 30. 제24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본선 4강. 박정환 九단(흑) vs 타오신란 七단.


<그림6>은 당시 중반 상황이다. 현재 카타고(덤 6집반 세팅)는 백이 93%의 수치로 유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네모로 표시되어 있는 집 차이다. 흑이 3.6집의 차이로 불리하다고 말하고 있다. 박정환 九단의 형세판단이 AI(카타고)와 비슷했다는 얘기다.

다시 정리하자면 <그림6> 상황에서 박정환 九단은 3∼4집반 정도 불리했다고 판단했던 것이고 AI 또한 이 국면에서는 90% 이상의 우세를 판단한 것이다.

▲ <그림7> 2019. 12. 26. 2019 NH농협은행 시니어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조치훈 九단(흑) vs 서봉수 九단. 



이번엔 <그림7>을 보자. <그림7>은 <그림6>보다 조금 더 대국이 진행된 다른 기보의 한 장면이다. 카타고(6집반 세팅)는 흑의 94%의 우세를 말하고 있다. 집 차이는 14.1집이 난다고 한다. <그림6>과 비슷한 확률의 우세지만 집 차이는 다르다. 이 차이가 시사하는 바는 확률은 같아도 국면에 따라서 실제 집차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앤드류 잭슨은 “제로기반의 AI는 확률을 집과 관련짓지 않는다”고 한다. 제로기반의 AI란 ‘알파고제로’ 논문을 기반으로 개발된 AI를 뜻한다. 2017년 구글 딥마인드가 발표한 알파고제로 논문은 순수 독학(자가학습)만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알파고제로버전에 대한 논문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AI프로그램은 이 논문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예를 들어 흑이 이길 확률이 90%고 백이 이길 확률이 10%면 그 실제 집 차이는 국면과 상황에 따라 10집이 될 수도 있고 1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안 카를로 파스쿠토 역시 “확률은 대국의 국면에 따라 결정된다. 끝내기 단계에서는 1집 차이도 쉽게 100% 차이가 될 수 있다. 또한 대국자의 수준에 의해 달라진다. 양쪽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둔다고 가정한다면 포석에서의 1집 실수가 100% 차이가 된다.”

위안둥 톈은 “제로기반 AI는(인간과 달리) 얼마나 이기고 있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가장 확실하게 이기는 길(Path)을 찾으려고 한다. 확률이 높을수록 상황에 따라서 집 차이는 크지만 변수가 있는 우세거나, 작지만 매우 확실한 우세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 데이비드 우



데이비드 우 역시 “집은 확률로 변형시킬 수 없고, 확률은 집으로 변형시킬 수 없다. 집과 확률은 그저 두 개의 서로 다른 예측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했을 때 집과 이길 확률은 완전히 별개의 지표로 간주해야 한다. 이길 확률을 집으로 환산할 수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다른 제로기반 AI와 다르게, 카타고는 집 차이를 따로 측정해 확률과 더불어 몇 집 만큼 이기고 있는지 알려준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데이비드 우는 릴라제로의 예를 들면서, “릴라제로가 훈련할 때 A(다음 수로 어디에 두면 좋을지)와 B(누가 이길지)를 학습한다. 그 다음 A와 B를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한 훈련 데이터를 만들 목적으로 A와 B를 이용해 더 많은 대국을 벌인다. 카타고가 훈련할 때는 A와 B 외에 C(최종 스코어)와 DEF(몇 가지 다른 것들)를 학습한다. 그런 다음 ABC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훈련 데이터를 만들 목적으로 ABC와 DEF를 이용해 더 많은 대국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카타고는 집 계산을 추가로 학습한다는 뜻이다.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됐는지 계기를 묻자 그는 “신경망은 예측(Predict)능력을 훈련시킬 수 있고, 원하는 어떤 것이든 예측이 가능하도록 시도할 수 있다. 집 차이는 바둑 팬이라면 누구든지 알기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AI 형세분석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AI 형세분석은 바둑계의 풍토를 180도 바꿔놓았다. 과거 프로기사의 해설에만 의존했던 형세판단은 이제 훨씬 더 정확해졌고 누구나 알기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AI가 제공하는 형세분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앤드류 잭슨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A와 B의 대국에서 A의 확률이 높으면 ‘AI는 A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 단지 확률의 높낮이에 따라 AI가 ‘흑이 약간 맘에 들어’ 또는 ‘흑이 아주 맘에 들어’와 같이 말하는 차이로 보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지안 카를로 파스쿠토는 AI 형세분석 접근법에 대해 “체스에서의 경험을 비춰보면, AI는 변화도 위주로 사용하는 것이 좋고, AI가 보여주는 독특한 수들은 발상을 일깨워주는 원천(Source)으로서 대하는 게 연구에 효율적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령 AI가 흑이 이긴다고 하면, 변화를 확인해보고 왜 이길 수 있는지 이해할 때까지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같은 의미로 AI가 호각이라 가리키더라도 한쪽이 10가지의 좋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면 실제로는 호각이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상대는 연속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기에 더 어려운 입장에 처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다수의 제로기반 AI가 현재 집계산과 여러 덤 세팅을 제공해줄 수 있는 개발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한쪽의 이길확률이 현재 집 차이의 우세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향후 둘 수 있는 좋은 수로 인해 우세를 얻을 수 있는 건지 이해하고 싶다면 답을 알 수 있을 때까지 그 변화들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끝으로 “AI를 이용한 분석은, AI가 그렇다고 하니 그것이 진리라는 식으로 복음서를 대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토론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개발자들의 조언을 종합해봤을 때, 크게 3가지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AI 확률은 AI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AI의 분석과 추천수들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일반 애기가가 프로기사의 관점과 수읽기를 따라가기 어렵듯이, AI의 수읽기를 따라가기 어려운 인간의 대국에 AI 확률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둘째, 아직 AI바둑에서는 한국(일본)룰과 덤을 자유롭게 조정 가능하게 하면서도 정확도를 높이는 시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룰의 문제보다, 대부분의 AI 개발자들이 이에 대한 필요성과 의욕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에 대해 국내 바둑계가 더 큰 관심을 가지고 AI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한 특별 프로젝트 가동 등과 같은 시도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AI 확률과 집 차이는 관계가 없다. 이렇기 때문에 AI가 90%의 확률을 말하고 있어도 몇 집만 손해 보면 역전당할 수도 있다. 몇몇 AI가 집 차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아직 정확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AI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참고를 하되 그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을 하여 실제로도 그런지에 대해 연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2016년 구글 알파고의 등장으로 AI시대가 도래했고, 2017년 페이스북 엘프고의 소스코드 공개로 인해 촉발된 오픈소스 AI의 발전으로 누구나 쉽게 집에서 AI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우리는 프로기사를 2∼3점(현재) 접는 ‘바둑신’과 언제든지 바둑을 둘 수 있고 기보를 해부할 수도 있다. 이런 엄청난 문명의 이기(利器)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다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이런 최첨단 문명을 즐기시고 잘 활용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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