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캐스터/ TBS 앵커 박철민
바둑캐스터/TBS 앵커 겸 기자 박철민
융합과 초연결의 시대, ‘박철민’이라는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인공지능을 전공하고 있는 아나운서 박철민입니다.”
제1회 대통령배 전국바둑대회 개막식 현장에 뜬금없이 ‘인공지능 전공자’가 나타났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철민 아나운서의 준비된 멘트는 바둑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바둑이야말로 인공지능과 가장 밀접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즐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박철민 아나운서의 얼굴이 익숙할 듯싶다. 시청률 28.1%를 찍었던 히트작 ‘별에서 온 그대’ 등 지금까지 약 150여 편의 드라마에 앵커 혹은 기자 역으로 출연해왔다. 과거 단역 배우들이 맡았던 드라마 내 앵커 역할은 최근엔 박철민 아나운서 같은 진짜 앵커들이 맡아 연기하는 추세인데, NG 한 번 없이 A4 용지 1장 분량의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그는 단연 섭외 1순위다.
바둑TV 신입 캐스터들의 발성 등 방송적인 영역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바둑TV 캐스터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바둑계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박철민 아나운서를 만났다.
<박철민 아나운서 약력>
TBS 앵커 겸 기자
YTN science 앵커
CJ헬로비전 아나운서
바둑TV MC
연세대 공학대학원 인공지능 석사과정
모아 아나운서 아카데미 강사
드라마 출연(앵커, 기자역) 150여편
‘별에서 온 그대’, ‘베가본드’, ‘머니게임’ 등
가수들의 가수,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다 같이 TV에 나오는 인기 스타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인정하는 사람에게 붙는 호칭이다.
바둑계에도 ‘캐스터들의 캐스터’가 존재한다. 류승희(2019년 4월호), 장혜연(2019년 6월호), 이유민(2019년 12월호) 등 인기 바둑캐스터들에게 발성과 스피치의 묘수를 전수한 사람, 박철민 아나운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쳤다 했던 1월 초의 어느 날, 상암동에 위치한 TBS 본사에서 박철민 아나운서를 만났다.
- 얼마 전 하림배 여자프로국수전 시상식에 이어 제1회 대통령배 전국바둑대회 사회도 맡았어요. 깔끔한 진행 능력으로 호평이 자자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기자님이 하림배 시상식이 끝난 후 ‘많은 행사를 다녀봤는데 이렇게 부드럽고 재치 있게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아마 오유진 七단의 ‘귀요미 포즈’를 이끌어낸 것과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든 최정 九단과의 즉석 인터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평상시 팬 서비스를 잘해주는 두 기사여서 잘 해줄 걸로 믿어 의심치 않았죠.
- 바둑계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기다리던 질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약간 바로잡을 내용이 있어요. 이 코너에 ‘공채 1기 바둑캐스터’ 같은 표현이 나간 적이 있는데(2018년 9월호 안수민 캐스터) 엄밀히 말씀드리면 제가 공채 1기거든요. 안수민 캐스터는 ‘특채 1기’랄까요. 활동 시기는 비슷하지만요.
- 진정한 바둑TV 공채 1기 MC였군요. 당시 오디션 분위기도 기억 하시나요?
그럼요. 어제 일처럼 생생하죠. 약 30명 정도의 지원자가 왔고 그 중에서 5명 정도를 선발했어요. 제가 비바둑인으로선 최초의 공채 방송인이 됐고요. 같이 합격한 사람은 이현욱·배윤진·손근기 등 대부분 프로기사들이었죠.
- 오디션을 볼 때까지만 해도 바둑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바둑TV 오디션을 보게 됐나요?
추천해준 사람이 바둑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제 고등학교 친구예요. 갑자기 전화가 와서 ‘내일까지니까 이력서 써서 제출해’라고 하는데 처음엔 황당했죠. 바둑도 모르는데 뭘 하냐고, 그랬더니 막 화를 내더라고요(웃음). 친구 등쌀에 떠밀려서 얼떨결에 이력서를 써서 냈는데 서류 전형이 합격됐으니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바둑 공부를 시작했죠.
- 오디션 현장은 어땠나요?
대기실에 저를 빼고 모든 지원자가 다 아는 사이더라고요. 제가 당시에 7년차 아나운서였거든요. 오디션도 정말 많이 봤기 때문에 여간해선 긴장을 안 하는 편인데 30명 중에 저만 혼자인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다 같이 어울려 준비하는 분위기였어요. 정말 오랜만에 긴장이 돼 몸이 굳더라고요. 문지방 정도의 턱이라고 생각했던 바둑계라는 벽이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처럼 느껴지면서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 그럼에도 결과는 아주 좋았어요.
제 바로 앞 순서에 오디션을 본 사람이 나중에 ‘기보해결사’를 같이 진행하게 되는 이현욱 八단이었어요. 지금은 바둑계에서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가 됐지만 당시엔 초면이었죠. 당시 대기실에서부터 (이)현욱이가 텃세 아닌 텃세처럼 ‘누구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하면서 견제하는 분위기였는데 막상 오디션 하는 걸 보니 긴장이 확 풀리더라고요. 생각보다 너무 못하더라고요(웃음). 바둑은 프로인데 방송은 아마추어였던 거죠. 그때부터 자신감을 되찾고 준비한 걸 보여드렸더니 심사위원들이 박수를 보내주시더라고요. ‘바알못’ 최초의 바둑 MC가 된 거죠.
- 바둑TV 오디션을 볼 때 이미 7년차 아나운서였고, 수석(?)으로 바둑 MC가 됐음에도 바둑TV에서 자주 보진 못했는데,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역시 ‘바알못’의 한계가 분명 존재하더라고요. ‘기보해결사’ 같은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비롯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종국에는 역시 바둑을 잘 모른다는 한계에 늘 봉착하게 됐어요. 나름대로 프로기사들이 운영하는 ‘꽃보다 바둑’도 수강했고 기력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역시 바둑 실력이란 게 단 기간에 느는 건 아니다보니(웃음). 그 대신 지금은 바둑캐스터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 강의를 하면서 바둑TV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2019년 12월호 바둑캐스터 코너에 나왔던 이유민 캐스터 등이 저와 함께 공부한 케이스죠.
- 바둑TV 대신 요즘엔 공중파 드라마나 케이블 TV에서 종횡무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200회를 맞이한 TBS의 간판 프로그램 ‘TV민생연구소’가 가장 대표적일 것 같고요. 과학이란 분야도 제가 몸 담았던 곳은 아닌데 과감하게 오디션을 봐서 ‘YTN사이언스’를 진행하게 됐어요. 드라마 현대극을 보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앵커나 기자의 멘트로 대체하는 게 요즘 트렌드인데요, 과거엔 단역 배우들이 앵커 역을 맡았다면 요즘엔 현직 앵커나 기자들이 연기를 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어요. 이 분야 또한 사실상 제가 개척을 한 거나 다름없어서 현장에선 ‘앵커 역할의 단군’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신 분도 계실 정도예요. 이 모든 게 바둑TV 오디션을 보면서 시작된 하나의 나비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방송만 아는 우물 안 개구리였는데 바둑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게 엄청난 계기가 됐던 거죠.
- 사실 드라마 약 150여 편에 출연했다고 하면 엄청난 양인데요, 그 중에서도 장안의 화제였던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이라면 기억하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것 같아요.
그 장면은 19화였는데요, 제가 나온 걸 기억하지 못하시더라도 그때 했던 멘트를 하면 ‘아 그 장면!’ 하면서 다들 알아봐주시더라고요. 당시 극중에서 ‘천송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내용의 현장 보도를 하는 기자 역할이었어요.
- 최근엔 인공지능을 전공하면서 외연을 더 넓혀가는 양상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려면 몸이 10개는 돼야 하지 않나요?
시간을 쪼개면 가능합니다. 지금도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잖아요(웃음).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에서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석사 과정’을 개설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게 됐어요. ‘최초 전문’인 저로선 이것 또한 최초로 해보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겠습니까. 바로 지원을 했는데 여기도 역시 경쟁률이 굉장히 셌어요. 지금은 유튜브에 ‘박철민의 AI 뉴스’를 정기적으로 업로드 하면서 인공지능 전문가로서의 영역도 개척해가고 있습니다.
- 범인은 범접하기 어려운 다재다능한 ‘끼’를 타고 나신 것 같아요.
하하. 그렇지 않아요. 누구라도 한 줌의 의지와 한 줌의 열정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화 시대가 아니라 융합의 시대입니다. 초연결의 시대이면서 탈권위의 시대이기도 하고요. 저는 아나운서도 아니고 앵커도 그렇다고 기자도 아니고 그냥 박철민인 거죠. ‘박철민’이라는 브랜드가 하나 생긴 겁니다. 인공지능 전문가일 수도 있고 바둑 아나운서일 수도 있고, 때론 배우 때론 강사일 수도 있는 거죠. 최근엔 유튜버와 방송제작자로서의 박철민도 추가 됐고요(웃음).
- 바둑TV와 바둑방송에 조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조언보다는 칭찬을 하고 싶어요. 제가 처음 바둑TV와 인연을 맺고 활동했던 2016년보다 지금 훨씬 파격적인 변화들이 많이 진행됐다고 느껴요. 2016년 바둑방송과 2020년 바둑방송은 단순 비교만 해봐도 여러 모로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어요. 그런 시도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의 바둑TV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만, 현재 바둑TV의 인력은 타 방송사의 10분의 1, 심하게 표현하면 100분의 1에 불과하거든요. 정말 적은 인력임에도 이 정도의 퀄리티를 낸다는 자체가, 이 분들은 일당백으로 일하시는 분들이라는 느낌을 받는 거죠. 바람이 있다면 시청해주시는 분들이 이 노력과 변화에 거부반응이나 위화감을 느끼기보다는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작년에 발표된 거긴 한데 2019년 ‘교수신문’에서 뽑은 사자성어가 공명지조(共命之鳥)였거든요. 불교 경전에도 나오는 머리가 둘 달린 새를 일컫는데, 협업했으면 오래오래 잘 살았을 새가 서로를 시기 질투하다 같이 죽는다는 내용이에요. 지나고 나면 별 일이 아닌 일들로도 당시엔 양 극단의 큰 대립으로 번지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는 요즘인데요. 바둑을 사랑하는 팬들은 이런 극단과 극단의 대립에서 자유롭길 바랍니다. 한 판의 바둑처럼 서로 조화롭게 화합하면 좋겠어요. 오청원 선생님이 설파한 ‘조화’야말로 바둑의 정신 중 으뜸이니까요. 저 또한 사석이 되지 않고 의미 있는 돌이 되기 위해 어떤 한 수를 놓을지 고민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바둑 팬 여러분들 모두 요석이 되는 한 수를 놓을 수 있길 희망합니다.
<인터뷰/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