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바둑뉴스

바둑뉴스

박정환이 무너져도 원익은 흔들리지 않는다

등록일 2024.01.12

1월 12일 한국기원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KB국민은행 바둑리그 3라운드 2경기의 승리는 원익에게 돌아갔다.
주장 박정환이 랴오위안허에게 패했음에도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이기며 에이스 결정전 없이 팀 승리를 만들었다.
특히 박영훈과 김진휘는 2% 미만의 승률기대치를 가질 정도로 궁지에 몰렸으나 두 선수 모두 역전승을 거두면서 이희성 감독을 웃게 했다.

▲ 이지현(왼쪽)이 난적 신민준을 제압했다


1국 성남 원익 이지현(승) : 울산 고려아연 신민준

원익의 2지명 이지현의 초반 대진은 가시밭길이었다. 개막 라운드에서는 신진서를 만났고 이어지는 2라운드는 박건호였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3라운드의 상대는 고려아연의 에이스 신민준이었다.
최근 다섯 판을 둬서 1승 4패로 고전한 신민준과의 대결은 역시나 어려운 흐름으로 흘러갔다.

초반의 주도권은 명백히 신민준에게 있었다. 두텁게 정리하면서 실리로 크게 밀리지 않는 신민준의 운영은 훌륭했다.
잘 두는 상대를 보며 이지현은 급하게 돌진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팻감이 쌓이는 순간 정확히 패를 걸어가며 판의 흐름을 바꾸었다.
서로가 장점을 발휘한 초중반의 전투는 50 대 50으로 마무리가 되고 후반부로 들어갔다.

두 선수의 집들이 커지면서 형세 판단이 어려운 시점에서 신민준이 먼저 움직였다.
잡혀있던 돌들이 다시 삶을 꿈꾸면서 준동했다. 다만 이지현의 포위망이 견고했기에 약간의 이득만 보고 후퇴를 해야 했다.
바로 이 선택의 순간이 승부의 분기점이 된다.
조금 이득만 보고 빠지기 아쉬웠던 신민준이 선수 교환을 하고자 했는데, 이 수가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선수 교환이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긴 신민준이 착각을 일으킨 사이 이지현의 눈빛이 빛나면서 손을 빼는 과감한 선택으로 승착을 착점 했다.
후반부 집중력이 더 뛰어났던 이지현이 시즌 첫 승을 난적에게 얻어냈다.

▲박정환을 상대로 데뷔전 승리를 거둔 랴오위안허



2국 성남 원익 박정환 : 울산 고려아연 랴오위안허(승)

양카이원에 이어 두 번째로 등장한 용병 선수는 울산 고려아연의 랴오위안허였다.
원익의 에이스 박정환과 랴오위안허의 대결은 시종일관 팽팽한 승부로 진행됐다.

피셔 대국 방식에 대한 경험이 적은 랴오위안허지만, 워낙 속기 파인 그는 빠르게 시간을 모으면서도 중요한 장면에서 집중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강자 박정환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박정환도 평소처럼 안정감 있게 두어 가면서 랴오위안허에게 흐름을 내주지 않았다.

쌍방 좋은 내용이 진행되던 바둑이 요동친 부분은 좌하였다.
패가 발생했고 이 패를 둘러싼 판단이 승부처로 다가온 것이다.
먼저 실수를 범한 쪽은 랴오위안허였다. 자그마한 패감을 쓰면서 귀의 가치를 크게 보지 않았다. 여기서 박정환이 패를 해소했다면 박정환의 반면 10집 우세로 진행될 바둑이었다.
그러나 박정환의 판단도 어긋나고 만다. 팻감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고, 이 평가에는 착각이 묻어있었다.

박정환은 넘어갈 수 있다고 보고 내린 선택이었지만 급소를 찔리면 뒷부분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었다. 랴오위안허는 그 부분을 정확히 공략하며 큰 득점을 올렸다.
판이 어느 정도 정리된 바둑이었기에 이 피해는 승패에 직결됐고, 랴오위안허는 시즌 첫 승과 박정환에 대한 첫 승을 한 번에 올렸다.

▲베테랑 박영훈의 투지가 빛났던 한 판이다


3국 성남 원익 박영훈(승) : 울산 고려아연 문민종

베테랑 박영훈은 소신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계산이 정확하다. 난전을 즐기는 타입은 당연히 아니며 차분한 구도에서 진행되는 장기전에 능하다.
반면에 어린 문민종은 수읽기가 최대 장점이며, 어려운 전투를 풀어가는 힘이 아주 좋다.
이런 기풍을 고려한다면 복잡한 모양의 전투는 문민종이 원하는 전장이며 이길 확률이 높아지는 구도다.
그리고 이 바둑은 올 시즌 바둑리그 대국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복잡한 난전으로 흘러갔다.

초반부터 돌들이 엉키기 시작한 흐름은 중반에 이르어 더 뒤죽박죽 섞여버렸다. 어떤 돌이 살아있고 어떤 돌이 잡힌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는 난전의 끝은 문민종의 대승이었다. 본인이 잡고자 하는 돌을 다 잡는 동안 받은 피해는 전혀 없었고 승부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난전에 능한 문민종의 힘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전투에서 대패한 박영훈은 남아있는 모든 병력을 투입해서 마지막 전투를 펼치고자 했다.
옥쇄를 각오한 박영훈의 돌진에 승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문민종의 손길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갈피를 잃은 문민종을 보며 박영훈의 노련한 행마들이 판을 메워나갔다.
시간도 없는 상황에서 방향을 잃어버린 문민종은 상대의 역습에 눈앞이 캄캄해졌고 꼭 두어야 할 자리를 놓치면서 대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베테랑의 투혼이 팀이 바라던 간절한 1승으로 이어졌다.

▲ 김진휘의 분투가 원익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4국 성남 원익 김진휘(승) : 울산 고려아연 이창석

동갑내기 친구면서 동문인 두 사람이 만났다. 객관적인 전력은 이창석의 우위였지만 최근 잦은 출장으로 체력이 떨어져 있는 변수가 있었다.

먼저 득점을 올린 쪽은 이창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김진휘가 스스로 상대에게 점수를 가져다주었다.
초반의 강점이 있는 이창석은 먼저 좋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 곳으로 김진휘가 돌격을 한 것이다.
유리한 전장에서 상대를 맞이한 이창석은 제대로 펀치를 날리며 친구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자 했다.

이 지점에서 김진휘는 최대한 어렵게 버텨갔다. 상대가 어떤 걸 어려워하는지 아는 김진휘의 버팀에 이창석은 착각을 일으키고 만다. 이는 끝낼 기회를 놓친 것뿐만 아니라 뒤로 이어지는 모든 내용에 영향을 주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착각이 발생한 직후 장면에서 형세는 미세해졌지만 이창석의 우세였다.
그러나 너무 큰 착각을 한 이창석은 형세를 비관하면서 무리한 수법을 이어나갔다.
인공지능 그래프는 팽팽하나 계속 진격의 나팔을 부는 사람은 이창석이었고, 김진휘는 때를 기다리며 힘을 비축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때가 다가오자 김진휘는 인공지능과 같은 수준의 바둑을 선보였다.
좋은 수읽기로 패를 들어간 뒤 상대의 패감을 불청하고 해소하는 정확한 판단과 그 뒤로 진행되는 완벽한 끝내기로 승리를 확정 지었다.
지켜보던 원익의 주장 박정환도 감탄할 정도의 멋진 수순이었고 김진휘의 승리는 박정환의 패배를 덮어주며 팀 승리를 확정 지었다.

▲ 허탈한 미소의 이창석과 서서 복기를 하는 박승화 감독의 모습이다 이창석은 몸이 안좋은지 대국 내내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 랴오위안허를 포함한 고려아연의 선수단과 팬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고려아연의 검토실 분위기가 항상 좋기로 유명하다


▲ 3라운드 2경기까지 순위표로 원익이 승점 8점으로 1위 자리에 위치했다


지난 시즌 양대 리그에서 단일리그 8개 팀 출전으로 변화한 KB국민은행 바둑리그는 더블리그 총 14라운드로 진행되며, 상위 네 팀이 스탭래더 방식으로 포스트시즌을 통해 최종 순위를 결정한다.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정규리그는 매주 목 금 토 일 진행되며, 대국 시간은 저녁 7시에 1국과 2국이 시작하고 8시 반에 3국과 4국이 열린다.

승점제로 순위를 가리며, 4대0 3대1 승리 시에는 승점 3점, 3대2 결과가 나올 때는 승리 팀이 2점 패배 팀이 1점을 획득한다. 무승부가 날 경우에는 양 팀에 모두 1.5점이 주어지며 1대3 0대4 패배의 경우 승점을 얻지 못한다.

제한 시간은 피셔 방식을 사용한다. 장고전은 40분에 매 수 20초 추가, 2~4국은 10분에 매 수 20초가 추가된다. 2 대 2 동점 시에 펼쳐지는 에이스 결정전의 경우 1분에 매 수 20초가 더해지는 초속기로 진행되며 개인의 에이스 결정전 최대 출전 수는 6판이다.
*피셔 방식은 기본 제한 시간이 주어진 후 착점 할 때마다 제한 시간이 늘어나는 방식이다.

상금은 우승 2억 5000만 원, 준우승 1억 원, 3위 6000만 원, 4위 3000만 원. 상금과는 별도로 정규 시즌 매 경기 승패에 따라 승리팀에 1400만 원, 패배팀에 700만 원을 지급한다.

1월13일에 두어지는 2023-2024KB국민은행 바둑리그 3라운드 3경기는 정관장천녹(감독 최명훈)과 한국물가정보(감독 박정상)의 대결이다.
대진은 박상진-박민규(0:0). 변상일-당이페이(3:2), 홍성지-한승주(4:4), 한상훈-강동윤(4:9)으로 성사됐다. *괄호 안은 상대전적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