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다정의 힘? 최정의 힘? 사이버오로 단독 선두
여자바둑리그가 10라운드를 치르고 이제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아직도 포스트시즌 진출팀은 한 팀도 확정이 안된 안갯속이지만 그래도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10라운드가 끝난 현재 단독 1위는 서울 사이버오로이다. 세계 여자 바둑계에서 원톱으로 군림하고 있는 최정 9단이 1주전으로 있는 사이버오로가 1등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면 올해 상반기 바둑계의 일정을 잘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최정 9단은 상반기에만 50판의 대국을 치렀을 정도로 굉장히 바빴다. 특히 여자바둑리그가 시작된 이후에 대국이 더 집중됐기 때문에 전반기 7경기 중 고작 3번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 일정을 알고 있었기에 여자바둑리그 개막 당시 우승 후보를 예상할 때 많은 바둑 전문가들은 사이버오로를 제외시켰었다.
▲ 최정 9단은 2019 시즌 6전 전승이다. 2018 시즌 10라운드 때 이유진 2단에게 패한 이래 지금까지 16연승 중. 과연 무패로 시즌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전반기에 최정 9단이 자주 나올 수 없었음에도 사이버오로는 전반기를 4승 3패, 5위의 성적으로 마쳤다. 5위라고는 하지만 당시 1위와는 고작 1게임 차이로 상당히 훌륭한 성적이다. 그 훌륭한 성적의 중심에는 강다정 2단이 있었다.
현재 7승 3패로 다승 공동 1위인 강다정 2단은 팀의 2주전으로서, 주장 최정 9단이 없을 때 주장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주장 최정 9단이 합류한 후반기에는 더욱 힘을 내서 최정 9단과 같이 3연승으로 팀의 3연승을 합작하여 팀을 단독선두로 만든 것이다.
▲ 서울 사이버오로의 2주전 강다정 2단(왼쪽)은 올해 7승 3패의 빼어난 성적으로 다승 공동 1위, 팀 선두를 이끌고 있다.
후반기에도 어쩌면 최정 9단은 바쁜 대국 일정상 한번 정도는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성적이라면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이버오로의 단독 1위에 살짝 가려져 있지만 후반기에 강력 질주를 하고 있는 팀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부안 곰소소금이다. 부안 곰소소금은 여자바둑리그 원년인 2015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참가했지만 한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올해도 개막 전에 주목받지 못했었다.
부안 곰소소금은 굉장히 무던한 팀이다. 어지간하면 팀의 멤버를 잘 안 바꾼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간다는 뜻인데, 매년 새로운 드래프트로 팀의 멤버가 계속 바뀌는 우리나라 바둑리그 제도의 속성을 감안하면 굉장히 이채로운 팀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팀의 성적이 좋지도 않았다. 올해도 작년과 바뀐 선수는3주전 이유진 2단(2018년에는 김민정 초단)밖에 없다. 사실 이유진 2단으로 선수를 바꿨다기보다는 이유진 2단을 다시 불러왔다는 표현이 옳다. 소속 팀에서 3년간 선수를 보호지명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데, 이유진 2단은 2015~2017년 팀에서 활동하다가 보호 연한이 끝난 2018년에만 인제 하늘내린에서 활동했을 뿐 원래 부안 곰소소금이 고향인 선수이다. 그 외의 선수는 작년과 동일하다. 작년의 성적은 정규리그 8위였고 올해 선수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 팀 창단 이래 첫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부안 곰소소금팀.
그런데,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바로 부안 곰소소금의 주장이 우리나라 여자 바둑 부동의 2인자 오유진 6단이라는 점이다. 오유진 6단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간 여자바둑리그 정규리그에서 42승 14패, 승률 75%를 기록하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오유진 6단 역시 전반기에는 대국이 많아서 국내외를 오가며 대국을 치르느라 2번은 출전하지 못했고 성적은 3승 2패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 안정적으로 국내 대회에 집중할 수 있게 된 후반기에 들어서는 3연승을 거두며 올해 성적은 현재 6승 2패, 다시 승률 75%에 복귀했다. 그리고 작년보다 한층 발전된 기량의 팀의 2주전 허서현 초단이 힘을 보태, 후반기에 3연승을 거뒀다.
현재 부안 곰소소금의 성적은 7승 3패로 단독 2위. 선두 사이버오로와는 승점 차이 없이 개인승수에서만 2승 차이로 2위이다. 남은 4라운드에서 1승만 추가해도 팀의 첫 번째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10라운드 팀 순위
▲ 7라운드(전반기) 당시 팀 순위
10라운드 현재 3,4,5위는 서귀포 칠십리, 서울 EDGC, 포항 포스코케미칼이다. 이 팀들의 전반기 성적은 2위, 4위, 1위였다. 이 세 팀은 모두 6승 4패인데, 개인승수와 승자승 등의 차이로 미세하게 순위가 갈렸다. 즉 1,2위 팀과는 고작 팀 1승 차이이기 때문에 당장 다음 라운드 맞대결에서 이기면 곧바로 순위가 바뀐다.다만 이 3팀은 이제 4라운드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남은 경기에서 최소 2승2패를 해야 한다. 즉 이제부터는 전혀 여유가 없어서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매 판에 최선을 다 해야만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해진다.
▲ 현재 3위 서귀포 칠십리팀.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다.
▲ 4위 서울 EDGC팀. 올해 처음 참가한 신생 팀이다.
▲ 5위 포항 포스코케미칼팀은 2015년 원년부터 2018년까지 항상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온 전통의 강팀이다. 2017 시즌 우승에 이어 올해 두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다.
6위 인제 하늘내린은 조금 상황이 딱하다. 아직 5승 5패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승수가 너무 적어서 남은 4경기 중 3승 1패를 거둬도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렵다. 다만 남은 4경기를 모두 이긴다면 당연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다. 인제 하늘내린은 전반기를 마쳤을 때까지만 해도 5승 2패의 성적으로 당당한 3위였다. 그런데 후반기 들어 갑작스러운 난조로 3연패를 당하며 팀이 위기에 빠졌다. 남은 경기에서 주장 김미리 4단과 2주전 송혜령 2단의 분전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 6위 인제 하늘내린팀은 후반기 들어 3연패를 당하며 난조에 빠졌다.
7위 여수 거북선은 현재 2승 8패로 포스트시즌 진출은 불가능하다. 2017, 2018년 연속 준우승을 했던 명문 팀이었는데, 올해 성적이 갑자기 나빠진 것은 아무래도 팀의 마스코트였던 프랜차이즈 스타 이슬아 5단의 이탈 탓으로 보인다. 2017년 7승 6패, 2018년 12승 4패로 갈수록 성적이 좋아지고 있었는데 중국 유학을 결정하고 결혼을 발표하면서 곧바로 프로를 은퇴해서 많은 팬을 아쉽게 했다.팀에서도 그 아쉬움이 컸는지 주장 김다영 3단이 3승 5패로 부진한 상황(작년 12승 4패)이다. 여수 거북선으로서는 이제 올해보다는 내년을 기약할 일이다.
▲ 전반기 마지막 경기 전까지 전패를 당하며 곤란을 겪었던 여수 거북선의 이현욱 감독과 서울 부광약품의 권효진 감독이 동병상련의 상황 속에 선전을 다짐하며 악수하는 장면. 여수 거북선이 이기며 먼저 전패를 탈출했다.
서울 부광약품은 1승 9패의 성적으로 8위이다. 유일한 1승이 바로 이번 10라운드에서 거둔 것이다. 서울 부광약품은 시즌 개막 전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팀이었기에 이러한 성적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서울 부광약품이 우승후보로 거론됐던 이유는 주장이 우리나라 여자 바둑 랭킹 3위인 김채영 5단이고 후보선수가 용병으로 온 루이나이웨이 9단이기 때문이다. 김채영 5단은 2017~2018 시즌에 걸쳐 여자바둑리그에서 25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을 정도로 여자바둑리그에서만큼은 최정 9단 못지 않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루이나이웨이 9단은 설명이 필요없는 여자 바둑계의 살아 있는 신화와 같은 인물.
▲ 10라운드에서 첫 승리를 거둔 직후의 인터뷰에서 권효진 감독은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다른 팀에 고춧가루를 팍팍 뿌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런 두 명의 선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첫승을 거둔 것이다. 부진의 이유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던 루이나이웨이 9단이 1승 4패(1승이 바로 이번 10라운드의 1승이다)로 부진했기 때문이다. 첫승의 감격 속에 인터뷰에 임한 권효진 감독은 포스트시즌 진출은 불가능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다른 팀에 고춧가루를 팍팍 뿌리겠다고 선언했다. 그 전력을 볼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로 공연한 엄포가 아니라 현실이다. 따라서 아직 서울 부광약품과 시합하지 않은 다른 팀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2015년 원년부터 참가해온 서울 부광약품은 첫해에 최정 9단과 위즈잉 6단이라는 당시 한중 여자 바둑 랭킹 1위를 보유하고도 꼴찌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했는데, 그 이듬해인 2016년에는 완벽히 적응하며 정규리그 1위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도 쌍포의 위력으로 완벽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당시 첫해에는 야간시합에 적응하지 못했는데 적응을 한 그 다음 해에 우승을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올해 아침 대국으로 바뀐 첫해여서 적응이 잘 안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고, 그럼 적응을 마친 내년에는 좋은 성적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팀 성적 이외에 개인 성적은 조혜연 9단, 강다정 2단, 조승아 2단이 나란히7승 3패로 다승 공동 1위이다. 그리고 여자 랭킹 1,2위인 최정 9단과 오유진 6단이 6승으로 4,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역대 다승왕은 2015년에만 오유진 6단이었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최정 9단이 다승왕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은 김채영 5단과 공동 1위)
▲ 10라운드 현재 개인 다승 순위
현재 모든 선수들은 앞으로 4판씩의 대국 기회가 더 있는데, 과연 선두 그룹 3명이 끝까지 연승하며 최정 9단의 다승왕을 저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최정 9단이 막판 추격에 성공하여 4년 연속 다승왕에 오를 수 있을지도 큰 관심거리이다.
다승왕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순위표에서 눈에 띄는 두 명의 선수가 있다. 9위에 랭크되어 있는 권주리 2단과 김수진 5단이다. 5승 2패의 성적으로 9위인데, 이 얘기는 3번씩 출전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서울 EDGC의 권주리 2단은 2016년부터 여자바둑리그에 출전하기 시작했는데,그 동안 다른 여자기전에 비해 유독 여자바둑리그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16년에는 1승 8패, 2017년에는 1승 6패, 2018년에는 3승 10패였다. 그런데 올해는 5승 2패로 3년간 거둔 모든 승수와 이미 같다. 당시에도 야간 경기에 약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2018년 3승 중 2승이 통합리그로 치러진 주간 경기에서 거둔 것임) 아침 경기로 바뀐 올해 성적이 좋아진 것을 보면 야간 경기에 약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서울 EDGC의 3주전 권주리 2단(왼쪽)은 7라운드에서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용병 왕천싱 5단에 이기며 팀 승리에 수훈을 세운 바 있다.
서귀포 칠십리의 김수진 5단은 1987년생으로 팀의 맏언니이다. 그 동안 실력이 베일 속에 쌓여져 있다가 2017년 삼성화재배 예선에서 루민취안, 판양 등 중국의 강자들을 연파해서 주목을 받은 뒤에 2018년 처음으로 여자바둑리그에 선발됐다. 2018년에는 후보로서 4승 5패의 괜찮은 성적이었는데, 올해도 역시 후보로 선발됐기 때문에 출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승 2패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어서 후보 중에 단연 돋보이는 성적이다. 후보끼리의 경쟁이라고 했지만 후보 중에는 각 팀의 주장급에 해당하는 외국인 용병 선수가 4명이나 있음을 감안하면 굉장한 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 서귀포 칠십리의 후보 김수진 5단(왼쪽)은 현재 5승 2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사진은 7라운드 때 서울 사이버오로의 2주전 강다정 2단에게 승리하며 팀 승리를 일궈냈다.
이제 여자바둑리그는 4라운드가 남아 있다. 당연히 가장 큰 관심은 어느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은 흥밋거리는 최정 9단의 다승왕 4연패를 누가 저지할 수 있느냐와 그 동안 항상 강력한 용병이 있는 팀이 우승을 차지해 왔는데, 올해는 과연 용병 없는 팀이 우승을 할 수 있을까이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11라운드가 시작된다. 모든 팀들이 팀의 명예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8월 15일까지 13라운드를 치르고, 마지막 14라운드는 공정성을 위해 8월 22일에 동시에 대국할 예정이다. 마지막까지 분투할 모든 참가선수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2019 여자바둑리그의 모든 경기는 아침 10시 바둑TV를 통해서 생중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