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현장2 ㅣ 국가대표, 북한산을 오르다
바둑 국가대표들이 산에 간다는 소문을 듣고 10월 15일 오전 11시, 우이역 2번 출구로 향했다.
바둑을 두는 모습은 익숙하지만, 등산하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잘 산을 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약속된 집결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신진서·박정환·신민준·최정 九단 등 바둑계의 내로라하는 정상급 프로기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바둑 국가대표 상비군을 포함해 여자 국가대표와 미래 꿈나무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총출동했다. 몇 명을 제외하곤 거의 참석했다. 홍민표 국가대표 감독과 이영구 코치, 그리고 진시영 九단도 함께하며 산행을 이끌었다. 평소 대국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편한 옷차림에 등산화까지 신고 나선 국가대표 선수들의 색다른 모습이 꽤 신선했다.
진시영 九단이 도착한 선수들에게 미리 준비한 김밥과 물을 나눠 줬다. 각자 가방에 먹거리를 챙겨 넣고, 삼삼오오 모여 출발지인 도선사 입구로 향했다. 출발 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바둑 국가대표 선수들은 모두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단체 사진을 찍고 하나둘씩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찍은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비가 올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지 않았다. 구름이 끼어 있고 선선하니 오히려 등산하기 딱 좋았다. 이날의 산행 코스는 최단 거리 중 하나인 북한산 백운대 코스다. 도선사 입구에 있는 백운대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하루재와 백운 대피소를 거쳐 백운대 정상까지 오르는 여정이다.
북한산이라 어느 정도 힘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등산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훨씬 더 험난했다. 땀은 비처럼 흐르고, 숨이 가빠져 턱까지 차올랐다. 순간 ‘그냥 내려갈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산을 올랐다. 그러다 보니 선두 주자들과 멀어지며 뒤처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선수는 이나현 初단과 김민서 四단뿐이었다. 다행히 진시영 九단이 발을 맞춰주며 ‘천천히 가도 괜찮아,힘내!’ 라며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따듯한 응원 덕분에 지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계속해서 오르다 보니, 나무 사이로 인수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숨 돌리며 그 풍경을 감상했다. 북한산의 자연경관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단풍이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무에서 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한참을 올라가니 백운봉암문(위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윽고 백운대 정상 아래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해 정상까진 등반이 위험하다는 반가운 소리에 빠르게 포기했다. 마침, 이미 정상을 찍고 하산하던 선두 주자들을 잠깐 만났다. 국가대표라 그런가? 전혀 지친 기색도 없이 경쾌하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험난한 등반길도 그저 하나의 일상이자 훈련의 연장선 같았다.
북한산 정상 아래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고이 챙겨온 김밥 한 줄을 맛있게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젠 내려갈 차례. 북한산성 코스를 따라 도착지인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까지 무려 3.5km나 이어진다. 만만치 않은 난코스가 우리를 맞이했다. 가파른 경사와 험난한 길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든 순간이 여러 번 찾아왔다.
체력도 중요하지만, 이젠 정신력 싸움이다. 꽃게걸음을 하며 힘겹게 하산하던 중 이미 도착한선수들이 먼저 식사 장소로 이동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소식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른 채 정신을 차려보니 식사장소에 앉아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마무리 자리에서 홍민표 국가대표 감독은 “자연이든 대국이든 다 극복할 수 있을 걸로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 한계를 가두지 말고 도전 정신을 가지면 된다”라고 선수들을 격려했다.이어서 “오늘 고생많았고, 다음에는설악산으로 가자”라는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된산행이 끝났다.
<글·사진/김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