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현장 I ‘쿼터 종료 10초 전입니다’
‘쿼터 종료 10초 전입니다’

체육관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에 바둑돌을 쥔 손이 멈춘다. 선수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면, 곧이어 다음 선수가 빠르게 자리를 메우고 잠시 멈춰있던 반상에 다음 수가 이어진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한 수, 한 수를 이어가는 팀 바둑. 색다른 형식의 대국이 펼쳐지는 2025 챌린지바둑리그가 돌아왔다.
7월 6일, 강원도 춘천 봄내체육관에서 챌린지바둑리그 두 번째 지역 투어가 열렸다. 지난 6월, 개막전과 함께 리그의 서막을 알린 철원에서 1~4라운드를 마친 후, 시즌 마지막 단체전인 5·6라운드가 빙상원류도시 춘천의 홈그라운드에서 펼쳐졌다.
단체전이라 그런지 평소 조용하던 대국장과는 확실히 다른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다. 검토실에서 선수들은 마치 조별 과제를 준비하는 학생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바둑판에 머리를 맞대며 진지하게 전략을 세운다. 곳곳에서 웃음과 유쾌한 대화가 오가며 긴장감 속에서도 에너지가 넘쳤다.
대회장에는 육동한 춘천시장을 비롯해 김진호 춘천시의회 의장,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 한종진 한국프로기사협회장, 함호식 춘천시체육회부회장, 유웅식 춘천시바둑협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하며 개막을 축하했다.
육동한 춘천시장은 “세계적인 바둑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여러분의 면면을 보니 앞으로도 그 저력이 굳건히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며, “춘천은 경관이 아름답고 도시 분위기가 차분해 바둑 두기가 좋은 도시인만큼 이곳 춘천에서 좋은 경기 펼치시길 바란다”는 환영사를 전했다. 이어 김진호 춘천시의회 의장은 “참가한 12개팀 모두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쳐 값진 성과를 거두길 바라며 모든 분께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멋진 대회가 되기를 기원한다”는 덕담을 건넸다.
한종진 프로기사협회 회장의 개막 선언과 함께 5라운드 막이 올랐다.
홈팀인 빙상원류도시 춘천(혁기)과 진남토건(좌은)의 메인 경기를 필두로, 부산 이붕장학회(혁기)vs 맥아더장군(좌은), 장수영 바둑도장(혁기) vs한국바둑중고등학교(좌은), 의정부 행복특별시(혁기) vs 올테스트인포(좌은), 부강테크(혁기) vs 바둑의 품격(좌은), 한종진 바둑도장(혁기) vs 사이버오로(좌은)까지 여섯 판이 동시에 시작됐다.
각 팀 1쿼터 선수들은 미리 준비한 수를 되새기며 반상에 돌을 놓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선수가 교체되는 단체전 경기는 릴레이처럼 선수들이 쿼터별로 차례대로 나와 남은 수를 이어가며 바둑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으로 4쿼터로 나눠 대국이 진행됐다. 쿼터가 종료되면 다음 선수가 30초 내 착석해 다음 경기를 속개했다. 특히 이번 5~6라운드는 어느 팀이 먼저 흐름을 타느냐에 따라, 상위권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갈림길이기도 했다.
‘작전 타임’
챌린지 리그의 백미인 ‘작전 타임’은 경기 중 단 한 번, 1분간 허용되는 히든카드로, 이 짧은 시간이 승부를 좌우하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1쿼터부터 진남토건이 가장 먼저 ‘작전 타임’ 팻말을 들며 초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후 다른 팀들도 경기 중간중간 ‘작전 타임’을 알리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본격적인 전략 싸움을 펼쳤다. 또 쿼터가 바뀔 때마다 선수가 교체되는 점도 챌린지 리그의 묘미 중 하나. 각 팀 선수들은 30초라는 짧은 교체 시간 동안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다음 수를 계산해 경기를 이어갔다.

결과가 하나둘씩 나왔다. 메인 경기였던 빙상원류도시 춘천과 진남토건 대결에서 4쿼터에 감독 겸 선수로 출전한 송규상 七단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김다빈 四단이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빙상원류도시 춘천이 귀중한 1승을 챙겼다.
혁기 그룹인 부산 이붕장학회와 장수영 바둑도장, 빙상원류도시 춘천, 의정부 행복특별시, 부강테크가 각각 1승씩 따냈고 좌은 그룹에선 사이버오로가 유일하게 승리를 챙겼다. 검토실에 있던 선수들은 대국 자리로 모여 대국을 마친 선수들과 함께 복기를 나누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대국장 밖,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의정부 행복특별시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있어 리그 첫 출전에 대한 소감을 물어봤다. “팀원들과 여행 온 느낌으로 즐겁게 대국을 둘 수 있어 새롭고 재밌다”고 고미소 三단이 수줍게 답했다. 이재성 五단은 “아직 절반 정도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릴레이로 대국을 경험해 보니 색달랐고, 팀원들과 화합도 잘 돼 즐겁게 두고 있다”고 전했다. 목표를 묻자, 선수들은 주저 없이 “우승이죠!”라고 입을 모았다. 이때 옆에 있던 선수겸 감독 최광호 六단이 “저는 플레이오프 진출인데?”라며 웃으며 덧붙였고, 선수들은 감독 의견에 장단을 맞추며 목표를 바로 수정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각 팀은 검토실에 모여 다음 라운드를 위한 전략을 세우며 분주히 움직였다. 오후 2시, 대국장은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6라운드는 바둑의 품격(좌은)과 의정부 행복특별시(혁기)의 경기를 중심으로, 한국바둑중고등학교(좌은) vs 부산 이붕장학회(혁기), 진남토건(좌은) vs 장수영 바둑도장(혁기), 올테스트인포(좌은) vs 빙상원류도시 춘천(혁기), 사이버오로(좌은) vs 부강테크(혁기), 맥아더장군(좌은) vs 한종진 바둑도장(혁기)이 맞붙었다.
대국을 지켜보던 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전기 우승팀이었던 바둑의 품격 한웅규 九단이 이번 시즌에는 사이버오로 유니폼을 입고 검토실에 앉아 있어 사이버오로 단장에게 슬쩍 물었다.
“지난해 결승 상대 선수 아니었어요? 올해는 사이버오로로 출전했네요?”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선수들이 바로 데리고 오던데요?”
의정부 행복특별시는 고미소 三단(1쿼터)과 최광호 六단(2쿼터)의 활약으로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으며 바둑의 품격을 압박해 나갔다. 3쿼터, 바둑의 품격이 ‘작전 타임’ 을 외치며 반전을 꾀했지만, 곧이어 의정부 행복특별시도 ‘작전 타임’ 을 사용하며 준비해 온 전략을 재정비한 끝에 승기를 굳혔다. 6라운드 모든 대국이 마무리됐다. 그 결과, 혁기 그룹에서는 부산 이붕장학회, 빙상원류도시 춘천, 의정부 행복특별시가, 좌은 그룹에서는 진남토건, 사이버오로, 맥아더장군이 각각 승리를 거뒀다.
이번 춘천 투어를 끝으로 총 11라운드 중 단체전 6라운드를 마친 챌린지리그는 반환점을 돌며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좌은 그룹에서는 강력한우승 후보로 꼽히는 사이버오로가 5승 1패로 단독 선두를 달렸고, 혁기 그룹에서는 부산 이붕장학회와 의정부 행복특별시가 나란히 5승 1패를 기록하며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다.
다음 7라운드부터는 3판 다승제(1:1 대항전) 개인전 무대가 막을 올린다. 총 11라운드의 정규리그가 종료되면 각 그룹 상위 3개 팀은 포스트시즌무대에 올라 스텝래더 방식의 토너먼트로 챔피언자리를 놓고 격돌한다.
전략과 팀워크가 승부의 판도를 결정짓는 2025챌린지 바둑리그, 진짜 승부가 시작됐다.
<글·사진/김미정 기자>